22화
"으으으읍! 흐읍, 흐으으으..... 윽!"
피가 튀고 아이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움찔거렸다. 방금, 무슨 일 이 벌어진 거지?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손가락을 완전히 절단한 뒤에는…… 단면을 붙이고 고풍스 러운 잔에 담긴 물을 손가락에 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잘린 손가 락이 이어 붙었다. 그러나 고통은 여전한지 아이가 거센 숨을 몰아쉬 었다.
속이 뒤집히는 감각이 들었다. 토 악질이라도 시원하게 하면, 이 더러 운 기분이 사라질까?
고문은 계속됐다. 일련의 과정이 반복된다. 대체 저 행위에 무슨 의 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저들은 중대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경건 한 얼굴이었다. 옷은 피범벅이 되었 으면서.
[알림: 목적을 마주했습니다.]
[히든 게이트 '나타롯샤 신학교'
등급: C
목적: 5명 미만의 사망자로 탈출 하라.
내용: 이 신학교에서는 종교적인 목적을 이유로 끔찍한 일들을 벌이 고 있습니다. 신학교 내의 학생들을 데리고 탈출하십시오! 탈출 과정에 서 5명 이상의 사망자(학생 한정) 가 발생하면 실패로 간주합니다.
실패 페널티: 한 달간 모든 스탯 이 절반으로 하락, 칭호 '구해내지못한 자' 획득.]
언제나 그랬듯이, 빌어먹을 게이트 였다.
당장 여기서 뛰쳐나가 저 아이를 구하면…… 모든 일이 꼬일 거다. 이런 종류의 게이트는 동료들끼리 정보를 모아 철저하게 준비해 시행 해야 한다. 그것이 정석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게이트 안의 인 물들은 각성자인 우리들을 제외하 면 모두 가상의 존재다. 클리어하면 먼지처럼 사라질. 알고 있다. 아는 데도…….
"흐, 흐으으읍! 으븝, 우욱!"
고통에 비명 지르는 저 아이가 너 무 진짜 같아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참담하 기만 했다.
그리고 그때 내 시야에 다른 인물 이 들어왔다. 다른 신부들과 같은 옷을 입었지만 미묘하게 아이로부 터 한 발자국 떨어져 서 있는 사 람. 숨길 수 없는 불쾌감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최대한 표정 관리 를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
검은 머리의 신부, 김기택이었다.
스테이지형 게이트라 해도 외관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전청운보다는 김기택 쪽이 신부였 나. 그 역시 처음 보는 끔찍한 실 태에 충격받은 것 같았다. 그를 확 인했으니 오늘의 수확은 끝이었다. 전청운이 함께하지 않는 걸 알았으 니, 그가 어디에 있을지도 잘 생각 해봐야겠다.
나는 떨리는 손을 애써 모르는 척 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침대에 누워 평온하게 잠든 아이 들 틈바구니에 숨어들고 나서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다음 날,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며 인사를 건네는 달리아에게 대충 대 답했다.
"응……. 잠이 좀 안 와서."
"그래? 큰일이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수업을 듣기 힘들 텐데."
달리아가 상냥한 어조로 걱정했다. 이곳의 실체를 알고 나니 모든 것 이 믿기 어려웠다. 대체 얼마나 많 은 아이들이 그곳에 끌려갔을까? 이 방의 아이들도 그랬을까? 그렇 다면 왜 다들 침묵한단 말인가. 그놈의 그릇이 되기 위해? 성녀가 되 기 위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바람을 쐬면 좀 나아질까 싶어, 창 가에 가 창문을 열려고 했다. 덜컹. 창문이 열리질 않았다.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냐, 리트?"
달리아가 걱정스럽다는 듯, 울상을 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우린 외부와 단절되어 있잖아."
창문 이음새에, 큼직한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칭칭 감은 쇠사슬이,이 창문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의 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하하……. 외부와의 단절이, 이런 의미였던 가?
"자. 어서 기도회에 가자."
귓가에 속삭이는 말이 더 이상 기 분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신께서 우릴 굽어살펴 주실 거 야."
* * *
이곳은 평화로움을 가장한 지옥이
다.
새벽같이 일어나 기도하고, 낮에는 공부하는 생활이 얼핏 행복한 신학 도의 모습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며칠간 살펴보니 이삼 일 간 격으로 아이들이 끌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매번 다르다. 조금 더 시 간을 두고 지켜보면 규칙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
김기택과 먼저 접선한 뒤 몇 차례 정보를 주고받았으나, 아직까지 다 른 사람들을 발견하진 못하고 있었 다.
꼭대기 층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단순한 고문이 아니다.
종교적인 의식이다. 미친 짓이지 만.
대체 이 신학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그것을 파 헤치면서, 동료들을 찾아내고 아이 들을 탈출시켜야 했다. 사망자가 5 명 미만이어야 하니 철저하게 정보 를 수집해서 작전을 세우는 게 최 선이다.
이 게이트를 실패해선 안 된다. 다 행히 실패 페널티가 사망은 아니지 만, 클리어팀의 전력 대부분이 모여 있는데 그 인원들이 전원 스탯 절반으로 하락하는 건…… 클리어가 물 건너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수녀님이 좀 늦으시네……. 최근 에 몸이 안 좋다고 수업도 쉬시더 니. 무슨 일이 있으신가?"
달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수업시간이 됐는데도 담당 수 녀가 오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지? 아이들이 작게 술렁이는데 벌 컥 문이 열렸다.
"미안, 좀 늦었지
다른 수녀들과 다르게 장난기 어 린 목소리. 나는 대번에 그게 누구 인지 알아챘다.
'혜원 언니!'
혜원 언니가 수녀복을 입고 강단 에 서 있었다. 수녀 역할로 배정된 것이다. 누가 봐도 성인 여자니 나 처럼 아이들이 아니라 수녀 역할을 맡은 것 같다. 혜원 언니는 가볍게 교실을 훑어보더니 나와 눈이 마주 쳤다.
살짝 웃고는, 당당하게 외쳤다.
"오늘 수업은 자습이다!"
"네? 텟사 수녀님, 자습이요……?"
"어. 자습. 다들 책 있지? 알아서 자습하고, 거기 너."
혜원 언니가 정확히 나를 가리키 며 말했다.
"너는 나랑 면담 좀 하자."
처음 겪는 일에 웅성거리는 아이 들을 뒤로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혜원 언니는 말없이 걸었고, 나 역 시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르니 섣부 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현재 쓰이 지 않는 구석진 빈 교실에 들어가 서야 우리는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갑자기 히든 게이트에 빠져서 놀 랐지? 미안해. 너까지 휘말리게 하 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내가 의도한 건데, 혜원 언니가 죄 책감 어린 얼굴을 하니 나도 찔려 왔다.
"다른 사람들은 찾았어요?"
"중등부에 하랑이가 있어. 어제 찾 아서 접촉했어. 나머진 모르겠고."
"신부 쪽에 김기택 씨가 있어요. 저랑 비밀리에 정보를 주고받고 있 고요."
"그럼 전청운 씨만 찾으면 끝이겠 네."
빠르게 현황을 주고받았다.
"여기, 뭔가 이상하단 거 눈치챘어 요?"
혜원 언니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밤마다 순찰을 도는 것도 이 상하고, 아이들을 어디론가 끌고 가 는 것도 봤어. 아직 내 순번이 아 니라 어디로 데려가는진 모르겠지 만……
"꼭대기 층으로 데려가요. 제가 따 라가 봤어요."
"꼭대기 층? 거긴 원래 신부들 만……
"거기서 아이들을 고문하고 있어 요."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본 광 경을 자세히 들려주자 혜원 언니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둘러야겠는데."
"그쵸? 이곳에 오래 있기엔 기분 이 나빠서……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야. 기택 씨 말이야."
불을 켜지 않은 교실 안은 어두운 느낌이 강했다. 짙게 드리운 그림자사이로 혜원 언니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이런 스테이지형 게이트는…… 목숨보다도 정신이 위험하니까. 오 래 있다가는 버티지 못할지도 몰 라."
확실히. 어린아이를 고문하는 걸 일주일에 두세 번씩 지켜본다 면……. 그러다 한 번씩 자신도 가 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정신이 망가져도 이상할 것 없었다. 김기택 역시 온갖 일을 다 겪은 헌 터겠지만, 스테이지형 게이트는 항 상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우리에게 선사하니까 말이다.
이런 찝찝한 느낌이 싫어서 스테 이지형 게이트보다 필드형을 선호 했건만…….
"어쨌든. 너랑 하랑이한테는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들어가니 까 접선하기 쉬워. 기택 씨한테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있 어야 할 텐데……
"제가 연락책이 될게요."
" 네가?"
"이곳의 아이들은, 신부님한테 면 담을 요청할 수 있거든요."
내 말에 혜원 언니가 알겠다며 일
단 부탁하겠다고 답했다.
♦ * *
우리는 착실히 정보를 모았다.
아직까지도 전청운을 발견하지 못 했지만…… 그 역시 이곳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가 없어도 일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오늘 점심 뭐래?"
"어……. 뭐더라? 무슨 포리지였던 거 같은데."
달리아랑 수다를 떨며 복도를 지 나가는 척한다. 혜원 언니와 살짝 팔을 스치면서 비밀스럽게 쪽지를 주고받았다. 몰래 화장실에서 펼쳐 보니 '오늘 밤 10시, 매일 만나던 그곳으로.'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쪽지를 품 안에 넣어두고 잠시 눈 을 감았다.
'김기택 방 안에 아무도 없고. 주 변 복도에도, 없군.'
스킬을 가볍게 발동하자 몇 가지 유용한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슬며시 눈을 뜨면, 김기택의 방 안 이다.
신부들은 대개 1인 1실을 쓴다. 자신의 본분에 맞게 종교 관련 서 적들이 책장에 빽빽하다.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책상을 무시하고 서 랍 두 번째 칸을 열었다. 간단한 서류 몇 장이 들어있지만 바닥 이 음새를 잘 헤집으면…….
달칵.
숨겨진 공간이 나온다. 고작해야 종이 몇 장 숨기는 게 전부인 곳이 다. 하지만 쪽지를 주고받기엔 충분 하지. 그 안에 쪽지를 넣어두고 원 래대로 돌려놓았다. 이따 김기택이 쪽지를 발견하면 내용을 읽고 불태 워 없앨 것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자, 나는 원래 있던 화장실이었다. 밖에서 달리아 가 아직 멀었냐며 재촉했다.
'근데, 달리아가 왜 주요인물이 지?'
밖으로 나가자 수업에 늦겠다며 가볍게 타박한다. 주요 인물이란 건 이 스테이지 게이트의 스토리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란 뜻인 데. 아직까지 달리아는 그저 성실하 고 단정할 뿐인, 평범한 학생들 중 하나로 보였다.
모두가 잠든 밤, 잠자리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데도 도가 텄다. 새벽 기도회나 수업 시간에 들키지 않고 꾸벅꾸벅 조는 것도 이제 아주 달 인이다. 조심스럽게 복도를 지나,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 건 물에 들어가 구석진 교실 한편으로 숨어들었다.
탁.
신발이 바닥에 닿는 소음이 났다.
연속적으로, 약속된 리듬을 그려냈 다. 탁. 타다닥.
"왔습니까."
그제야 김기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에 혜원 언니와 순하랑도 있 었다. 순하랑은 로브 대신 수녀복을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여기서까지 한결같다, 아주.
"좋은 정보가 들어왔어."
오늘의 모임은 혜원 언니가 소집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언니가 가운 데 서서 본론을 꺼냈다.
"2주 뒤에, 성녀가 이곳을 방문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