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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0화 (10/361)

10화

사브락, 사브락. 풀 밟는 동작 하 나하나가 머리에 때려박힌다. 과도 한 정보에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그 렇다고 풀 순 없다. 옆에서 권성민 이 나를 따라 검을 바로 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모습을 드 러냈다.

크르르르…….

윤기 나는 검은 털. 기다란 다리에 근육질 몸체, 그 위에 얹힌…… 3 개의 머리. 한가운데 놓인 머리가 우리를 빤히 웅시했다. 왼쪽 머리가 헥헥 혀를 길게 빼고 있었고, 오른 쪽 머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고깃덩이를 으드득 씹고 있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떠보니, 나는 케르베 로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카람빗을 쥐고 무게를 실어 휘둘렀으나, 케르 베로스도 만만치 않았다.

-잠깐, 인간…….

가운데 머리가 입을 열었다. 내 공

격을 가볍게 피해낸 직후였다.

" 말을.2"

권성민이 당황스럽게 중얼거렸지 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케르베로스는 말을 하기도 해."

케르베로스는 까다로운 몬스터지 만, 파훼법은 분명 있었다. 이 녀석 들은 머리가 셋이나 달린 게 도리 어 약점이다. 치명적인 급소가 무 려, 세 개나 존재한단 뜻이니까!

흙을 뿌려 셋 중 하나라도 시선이 팔리면 바로 카람빗으로 찌를 작정 이었다.

-싸움. 아니다. 나, 임무…….

놈이 무어라 말한 것도 같지만.

촤륵!

이미 흙더미는 허공에 흩뿌려졌다.

켕!

길게 혀를 빼고 있던 왼쪽 머리가 갑작스러운 흙세례에 앓는 소리를 냈다.

기회였다.

휙!

주저하지 않고 카람빗을 휘둘렀으 나.

콰득.

오른쪽 머리에 가로막혔다. 날카로 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왼쪽 머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 리고 에취, 에취, 재채기를 하고 있 었다.

-인간. 너. 전한다…….

전해? 그 와중에 가운데 머리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나, 맡았다, 임무.

"나한테 전할 말이 있다고?"

가운데 머리가 끄덕였다.

나한테, 전할 말이 있다고? 누가?

뭘?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D급 몬스 터를 고작 전언용으로 쓰는 존재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그 정도 급 이면 이 게이트의 보스몹과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이 게 이트의 보스몹이라면……, 내가 알 기론…….

" 누가?"

-나의 주인…….

"……벨제부브가?"

- 맞다.

빌어먹을. 그 자식이 얽히면 제대

로 풀리는 일이 없는데.

벌써부터 불안감이 엄습했다.

벨제부브. 그가 누구인가. 이 게이 트의 보스몹으로, 말하자면 최종보 스다. 제일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 하는 흑막, 이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의 주인! 덧붙여, 고 약한 취향과 심미안을 갖고 있는 미친놈이다.

-나의 주인……원한다.

가운데 머리가 스산하게 말을 이 었다.

-너와 만남을.

……아무리 생각해도 안 좋은 결 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 기 위해 그에게 가야 하는 숙명이 긴 했다. 그 목을 따지 않으면 이 게이트는 영원히 지속될 테니까! 그렇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 소름끼치는 녀석이 나한테 흥미를 가지다니.

'이 경우를 생각하지 못했어. 젠 장.'

그 변태 같은 놈이 회귀 전에 집 착했던 대상이 내가 아니었으니까. 그 대상은…….

'내 스승님이었지.'

표혜원, 내 스승이었다. 그녀의 끝 이 어땠는지는 굳이 더 말하지 않 아도 되리라. 이건, 데드플래그인 가?

-기다리고 있겠다…….

"잠깐만. 그놈이…… 어디서 기다 리고 있는데?"

그 근처엔 절대 가지 말아야지.

-태양이 뜨고 지는 곳…….

" 뭐?"

그딴 식으로 수수께끼처럼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케르베로스는 내 이의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 전했다..

"아니, 그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려 줘야..I"

-끝, 났다……내 역할…….

마지막 말과 함께. 케르베로스는 재로 화해 허공에 흩날렸다.

꼬리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그러 나 확실하게.

케르베로스는 가루로 변해 그대로 흩어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D급 몬 스터치곤 너무도 허무한 최후였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기여도가 0입니다.]

[적합한 기여도를 가진 개체가 존 재하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개체 를 우선으로 아이템이 배분됩니다.]

시스템 창이 잠시 떠올랐다가 작 은 빛으로 변했다. 손을 뻗어 받으 니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초급 치유포션〉

등급: E

설명: 초보자용 치유포션입니다. 심각하지 않은 외상을 치료합니다.

〈초급 마나포션〉

등급: E

설명: 초보자용 마나포션입니다. 마나를 500만큼 회복합니다.

〈케르베로스의 맹약〉

등급: D

설명: 케르베로스는 평생 단 하나 의 맹세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케르베로스의 맹약에 대고 맹세하면 절 대 어길 수 없습니다.

아이템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서하 언니! 성민 오빠!"

"누나!"

"어, 어떻게 됐던 검까! 갑자기 사 라져서 저희 모두 깜짝 놀랐습니 다!"

다시 만난 일행들이 외치는 소리 도 쏟아졌다.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그들 을 진정시켰다. 권성민도 대체 무슨일이 벌어졌던 건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두 손에 들린 아이템만이, 케르베로스를 만났던 게 꿈이 아니란 증거였다.

"케르베로스는 이제 안 나올 거 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머리가 복잡해서 자세히 설명해 줄 정신이 없었다.

권성민이 땀을 흘리며 결계 안에 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는 동안 나 는 일찌감치 텐트 안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엉켰다.

벨제부브. 일명, '붉은 어둠의 권 속'.

그 명칭과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 다시피 마족이다.

모든 게이트에는 클리어 방법이 있다. 이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스테이지형 게이트는 퀘스트 형식 으로 클리어 조건이 나타나지만, 이 곳처럼 필드형 게이트인 경우 보스 몹을 잡는 게 일반적인 클리어 방 식이다. 이곳에선 저 벨제부브가 보 스몹이고.

이미 내 손으로 그 목을 꿰뚫은 적이 있지만…… 이 게이트가 3년 이나 클리어되지 않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자가 바로 그 남자였다. 측정 난도 S급의 상위 마족 계열 몬스터. 그를 몬스터라고 불러야 하 나 싶을 정도로 인간과 흡사한 존 재다.

그리고 개인적인 기억 속의 그 남 자는,

-차라도 한잔하겠어?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고위 마족의 상징이 라는 붉은 눈동자는 항시 권태를담고 있었다. 태어날 적부터 고귀한 혈통이었다던 남자는 모든 것이 지 루하게만 느껴지는 듯 굴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다른 반응을 보일 때는 언제나, 내 스승이 연관되어 있었다.

-너는 다른 인간들과 달라, 혜원 아. 정말 특별하구나.

살짝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가 얼마나 소름끼치던지. 내 스승 도 매번 진저리치며 얼굴을 일그러 뜨리곤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내게 흥미를 품 었다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그자가 내 스승에게 워낙 심하게 집착해서, 당 연히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 데……

말 그대로였다. 스스로 인간을 관 찰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말하던 그 남자는 특히나 내 스승을 마음 에 들어 했다.

그가 제시하는 시련을 온갖 방법 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곤 했지. 거의 죽기 직전에 다다르면 슬그머니 다가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치료해주곤 했 으니, 얼마나 가학적인 취향인지 가 늠할 수도 없었다.

3년 동안 수많은 헌터들이 들어와 클리어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 다. 실험쥐를 갖고 놀 듯 괴롭히는 그 남자에게 정신적으로 지쳤던 스 승님은 마지막 작전을 준비했고, 끝 내 성공해 녀석의 목을 취했으 나…… 내 스승 역시 명을 달리하 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 자식은 내 스승의 원 수이기도 하다.

상상만 해도 이가 으드득 갈리고 손발이 떨려왔다. 그 곱상한 얼굴에 주먹이라도 꽂아주면 보기 좋은 꼴 이 될 텐데! 내 손에 목이 떨어지 는 그 순간까지, 여유롭게 미소 짓던 징그러운 녀석. 물론 진짜 죽는 게 아니니 그런 여유를 부렸겠지만.

그놈의 이름을 불시에 들으니 등 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끔찍했 던 과거의 기억들이 속속들이 되살 아났다.

아, 스승님. 나의 원죄시여…….

어찌 보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내 스승에게 향하는 관심을 내게 묶어둔다면,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다. 그래, 그것 역시 또 다 른 방법일 테니까…….

* * *

복귀한 다음 최우도에게 간단한 보고를 올리자, 그는 작게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가……

"아무래도 절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요."

권성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에 있었던 죄로 얼결에 결계 에 따라 들어온 그는 모든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증인이었다.

"보스 몬스터일 가능성이 높다 이

거지……

"케르베로스의 주인이라고 할 만 한 건 그 정도뿐이죠."

"……게이트가 열린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네."

최우도가 씁쓸한 어조로 서두를 열었다.

"이 정도로 게이트가 클리어되지 않는 건 드문 일이지. 아마 여러 번 정찰용 헌터를 안에 들여보냈을 것 같네만…… 잘 풀리지 않았겠지. 나도 이 게이트가 얼마나 광활할지 모르겠는데, 헌터들은 오죽하겠는 가. 여기서 보스 몬스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게야……

한 달. 내가 알기로 국가에서 클리 어용 헌터를 투입하는 게 이쯤이다.

전례 없는 규모의 게이트인 만큼 보스 몬스터도 만만치 않으리라 예 측해 실력이 제법 괜찮은 헌터들을 모집했었다. 거대 길드인 홍염, 태 산, 한마루 등에서도 주력 헌터를 파견해 다들 나쁘지 않은 승률을 점쳤다고…… 후에 기록에서 읽었 다.

"어쩌면 밖에선 우릴 버렸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버티는 데도 한 계가 있는데……

최우도가 드물게 약한 소리를 했 다. 공동체를 이끄는 중심의 깊은 고뇌가 슬며시 그 흔적을 보였다. 이렇게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명확한 판단이었다.

물자는 결국 바닥날 수밖에 없으 니까.

제아무리 아껴 쓰더라도 비상 전 력은 밑바닥을 보이기 마련이고, 그 이후에 삶의 질이 얼마나 변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인간다운 삶을 지속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불만을 어떤 방식으로 분출하는지 누구보 다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이 공동 체의 끔찍한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이 타이밍에 이 말을 꺼내는 게 맞나 싶지만, 그래도 말해야 했다.

"저는 떠날 거예요."

내 말에 권성민이 화들짝 놀라 나 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최우도는 가 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 낡은 안경 너머로, 노인의 혜안이 빛났다.

"……언젠가 자네가 떠날 거라 짐 작했네.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 만……

그보다 다른 곳에서 반응이 거셌 다.

"서하야. 진심이야? 떠나겠다고? 저 밖으로?"

권성민은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데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 럼 굴었다.

"저 밖에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보스 몬스터는 널 주시하고 있는데 여길 떠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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