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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5화 (5/361)

5 화

일행 대부분은 다리에 두고 설민 준과 김태병을 데리고 나왔다. 사실 설민준이 꼭 필요한 작전은 아니지 만,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그에게 기 여도를 나눠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 잘 키우면 좋은 전력이 될 것 같았 다.

"제, 제, 제가 잘할 수 있겠슴까?"

김태병은 다른 것보다 겁이 많다. 탱커가 되기엔 심약한 성미다. 그러 나 안타깝게도 나나 설민준이나 그 를 따스하게 감싸줄 성미는 못 되 는지라 그냥 무시했다.

"해야죠."

"네, 넵……

기름고래 근처에 다가갔기 때문에 몸놀림이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녀 석은 귀가 거의 들리지 않을 테니 조금 바스락거려도 상관없을 테지 만, 사브락 소리가 울릴 때마다 등 에 땀이 흘렀다.

"제가 말한 거 기억하죠? 최대한

가까이 붙어야 해요."

최대한 천천히 걸어 나가니, 시간 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지루 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다가 갈수록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기름진 냄새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예정된 위치에 서자, 기름고래가 가까이서 보였다. 퇴화된 눈은 겹겹 이 흘러내린 가죽더미 사이에 겨우 흔적만 남아있었고,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점액질의 피부는 손대기 싫 을 정도로 더러워 보였다. 달팽이처 럼 녀석이 지나온 길을 따라 기름 자국이 남아있었다.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떴다.

푸른 빛이 아롱거리며 눈 안에 맺 혔다. 순식간에 공간 좌표가 깔렸 다. 가끔은 가상현실 같다. 섬세하 게 3D 모델링을 한 것같이 느껴진 다고 하면 좀 이해가 갈까.

내가 도착할 지점을 응시하면서 마력을 일깨운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내 몸 이 아주 섬세하게 분해되고 재조립 되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뜨자마자 악취가 코 점막을 무자비하게 찔러 왔다. 당장 토악질을 하고 싶었지만 내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촤룍!

라이터가 경쾌한 소리를 냈다.

기름고래가 갑자기 등장한 나를 인식하고 몸체를 휘두르려는 순간, 크게 외쳤다.

" 지금!"

쿠웅!

김태병이 구멍 뚫린 철판을 바닥 에 두드렸다. 쿵쿵! 발 굴림처럼 진 동이 흙 속을 울릴 거다. 기름고래 의 신경이 반대쪽으로 집중됐다. 바 로 이어서 라이터를 집어던진다.

휘익,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라

이터가 녀석의 몸뚱어리 위에 내려 앉자마자,

-꾸르르륵, 우웅!

솟구치는 불길이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나는 바닥을 두어 번 굴렀 다. 그리고 곧장 김태병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화르륵! 기름과 함께 고래 녀석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면서.

"으윽.…"

뒤에 있는 내게까지 불씨가 튀었 다. 앞에 있는 김태병에겐 열기가 더 심하리라.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 났다.

"돌아가죠."

김태병이 후끈후끈한 뺨을 대충 옷가지로 훔쳐내며 고개를 끄덕였 다.

설민준이 말없이 내게 라이터를 건넸다. 혹시 몰라 갖고 온 여분의 라이터였다. 내가 실패하면 설민준 이 던져야 했겠지. 만약 나와 김태 병이 실패했으면 돌아가서 우리의 비보를 알리고. 어느 쪽이든 유쾌한 역할을 아닌지라 설민준도 좀 가라 앉아 있었다.

"고생했어."

무리로 되돌아가자 권성민이 말을 건넸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다리만 건너 면 실내체육관은 금방이다.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뒷목을 긁적이며 말을 잇는 모습 이 영락없는 건실한 청년이다. 하지 만,

'게이트 안에서 사람을 섣불리 믿 으면 안 되지.'

사람 좋은 얼굴을 해도 '두 얼굴의

신사' 같은 칭호가 달려있을지도 모르는 거다.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권성민에게 는 '타고난 리더십' 같은 종류가 하 나, 본성을 드러내는 칭호가 하나, 이렇게 2개가 있을 거다. 특별한 업적을 세우지 않은 각성자는 흔히 칭호를 2개 정도 갖기 마련이니까. 2번째 칭호를 모르는 이상 권성민 을 마냥 신뢰할 순 없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이 오류는 언제 풀리 는 거지?'

[상태창]

이름 : 한서하

칭호 : 재■장한 플■■어, 전■의

■■을 여■ 자, ■■의 별, 기■의

귀재

고유 스킬 : 공간 간섭

상태창에는 여전히 칭호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처음 보는데. 이 게이트에서 빠져나가면 각성연구소나 게이트연구소를 찾아 가봐야 할 것 같다.

설민준은 아직도 좀 멍해 보였고, 김태병도 악취가 밴 옷이 영 찝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 다.

"드디어, 저기!"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들 너머로 익숙한 건물이 아득히 보였다.

실내체육관. 대피소로 지정된 건물 이라 비상전력과 식수대를 보유하 고 있다. 이 근방에서 여기만큼 훌 륭한 요새도 없을 거다. 게다가 대 피소는 대몬스터 방비소재를 벽 완 충재로 사용하도록 법으로 정해두 었다. 그러니 어지간한 몬스터의 공 격에도 끄떡없을 거다.

'원래대로면 이 게이트가 클리어되

는 데 장장 3년이니, 이 정도 위험 을 감수하더라도 여기에 올 필요가 있지.'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연달아 몬 스터들과 충돌해 잔뜩 신경이 곤두 서있었을 것이다. 직접 대치한 몬스 터가 땅장군 포함 셋에, 스쳐지나간 몬스터는 그보다 더 많으니 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 룩했을 거다.

게이트화 전에는 걸어서 1시간이 면 오는 거리였는데, 짐을 지고 주 변을 경계하며 걸으니 3일이나 걸 렸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안락한 휴식처와 씻을 수 있는 곳이 모두 에게 절실했다.

실내체육관에 도착하기 전에 사건 이 터졌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전투 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권성민 이 내게 어떻게 할 것이냐 물었고, 나는 가까이 접근하되 일단은 참견 하지 않기로 했다.

내 기억에 이 시기쯤엔 실내체육 관에서도 그럭저럭 능력 좋은 각성 자들을 선출해 외부로 돌리고 있었 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 마…….

쿠루룩, 쿨룩!

"어어, 조금만 더 버텨줘!"

"젠장, 그 말만 지금 몇 번째인 줄 알아!"

"지인짜 미안! 쫌만 더!"

어울리지 않게 앳된 목소리가 울 려 퍼졌다. 색소가 엷은 머리카락이 휙휙 빠르게 움직여댔다. 역시. 벌써 이곳에 있었구나.

안유수, 안유라 쌍둥이. 천재적인 레인저 콤비로 저 실내체육관을 무 너지지 않는 성곽으로 만든 공신. 몇 안 되는 생존자들 중 하나였으 며, 게이트 밖으로 나가자마자 활개 를 치며 승승장구했던 천재 헌터들 이다.

그 반중으로, 고작해야 10대 후반 일 아이들이 '터럭벌레'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어그로를 끌어주 는 탱커가 따로 있긴 했지만 이 정 도면 훌륭한 편이다. 벌써 어엿한 전투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 는가.

"자, 마지막 한 발!"

"잠깐만! 막타는 내 거라고!"

둘이 투닥투닥하면서 활시위를 당 긴다.

'벌써 아이템 배분까지?'

암만 헌터와 게이트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활까지 흔하진 않다. 아마도 저건 몬스터를 잡은 뒤에 나온 아이템일 가능성이 컸다. 생각 보다 체계가 빨리 잡혔다.

"이 망할 쌍둥이들……. 고생은 내 가 다 하고, 어?"

"에이, 아저씨도 기여도 받았으면

"아이템은 안 나왔지만!"

아이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화 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슬슬 나가 야 할 때인 것 같다. 나가자고 신 호하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바로 옆에서 숨을 급하게 들이켜는 소리 가 들렸다.

"헙……

동시에 쒜액, 하고 거칠게 바람을 가르는 마찰음이 났다.

- 탁!

반사적으로 잡아채고 보니, 화살이

었다.

뭐?

"우와, 저걸 잡네?"

"네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 멍청 아."

"너랑 나랑 실력 비슷하거든?"

서로 핀잔을 주고받는 모습이 이 제는 귀엽게만 보이지 않았다. 아, 잊고 있었다. 이 쌍둥이가 유명한 것은 그 실력뿐만이 아니다.

"쥐새끼처럼 훔쳐보고 있길래 한 번 쏴봤는데, 사람일 줄은 몰랐셍!"

"아코, 내 실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마를 콩 쥐 어박는 모션이 아주 가증스럽다.

이 남매는 저 성질머리도 함께 유 명하단 걸 깜빡했다.

권성민이 내게 괜찮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답했다. 여기서 화내면 안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불청객이 고 저들에게 자비를 구해 저 요새 안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니까. 그것 을 아는지 그도 무어라 따지지는 못하고 입술만 꾹 깨물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흉흉해졌다. 수 십 명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면서 도 쌍둥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예끼, 이 녀석들!"

곧장 그 분위기가 박살났다. 익살 스럽게 등장한 중년 남성이 쌍둥이 의 머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쿵,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 걸 보 면 여간 세게 친 게 아닌 것 같다. 둘이 머리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냈다.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정말 죄 송합니다……. 이 녀석들이, 그, 워 낙 오냐오냐했더니 이럽디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 에 쌍둥이들이 또 왜 아저씨가 고개를 숙이냐, 그럴 필요 없다, 저 사람들도 우리 훔쳐보고 있지 않았 냐, 하며 난리를 피웠다. 남자는 그 걸 다 무시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생존자 분들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권성민이 대표로 앞에 나섰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기, 옆 동 H마트에서 왔습니 다."

"거기서 여기까지요? 그거, 고생이 꽤 많으셨겠는데요……

남자가 놀란 얼굴을 했다. 하긴,

아이템 배분까지 하는 체계를 갖추 고도 실내체육관에서 이 정도까지 밖에 못 나온 걸 테니.

"운이 좋았죠. 저희가 마트에서 출 발해서 식자재랑 여러 가지 생필품 을 챙겨 왔는데…… 혹시 체육관에 서 상황을 총괄하시는 분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죠. 방금 사냥도 끝났으니...."

남자가 곧장 뒤돌아 쌍둥이들에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후딱 정리 안 해?"

"엥. 아저씨는 쉬면서."

"노인공경이다, 인마."

아이들이 익숙하게 움직이며 터럭 벌레 사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몬 스터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체액과 피는 흙으로 덮어 최대한 막고, 터 럭벌레의 쓸모없는 부위는 잘라내 기 시작했다. 더듬이, 외피뿐인 다 리, 겉털 등등……. 빠른 손놀림이 아주 안정적이었다.

"이 부근은 저놈들 소굴이라서 말 입니다. 아주 도가 텄습니다."

"그렇군요……

"저놈들이 겉보기엔 징그러워도 내장만 빼내서 구우면 새우랑 비슷

한 맛이 납디다."

몬스터 고기를 먹는다는 게 비위 에 거슬렸는지 옆에서 김태병이 헛 구역질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상 위 티어 탱커가 되기엔 심성이 너 무 약했다.

"아저씨, 끝났어!"

"오냐, 잘 챙겨서 따라와라

"아, 진짜! 이거 완전 미성년자 착 취야!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거라 고!"

"웅, 해라〜."

남자가 유치하게 굴었지만 보기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가 벼운 대화였다. 그 부드러운 느낌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권성민도 저도 모르게 잠시 넋을 뺄 지경이 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야 더 말 할 것도 없었다.

여유, 농담 그리고 장난은…… 풍 요 속에서나 허용되는 사치다. 우리 는 지금까지 그런 사치를 누릴 형 편이 아니었으니…….

"아무튼 따라옵셔. 생존자는 일단 받아들이는 게 지금 철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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