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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화 (3/361)

3 화

툭 내뱉자, 고해윤이 눈을 크게 떴 다.

"다리가 위험한 건 맞지만, 저 짐 을 들고 1시간 동안 이동할 순 없 어요. 우리는 20대라 해도 여기 계 신 분들은 대개 중장년이니까요."

"짐을 최대한 줄이면……

"실내체육관에 그냥 들어갈 수 있 을 것 같아요? 거기도 지금 자원 부족으로 난리일걸요. 뭐라도 싸 가 지 않으면 문전박대 당할 게 뻔해 요."

고해윤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위험성이 대 단해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물자 를 확보해서 가지 않으면 실내체육 관 문 앞에서 쫓겨나 다 죽을 테니 까.

"설민준 씨. 정찰 스킬로 얼마나 멀리까지 볼 수 있어요?"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내 눈에 보

이는 데까지는 다 살필 수 있어."

그 정도면 쓸 만하다.

"최대한 다리에 접근해서 정찰 스 킬로 살펴줘요. 적어도 우리가 다리 를 건너는 동안에 무너질지 아닐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테니까."

명령조인 내 말이 거슬리는지 살 짝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 덕인다. 사소한 불만 사항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불만 이 많을 검다. 다리로 이동하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말입니다."

김태병이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내

생각은 확고했다.

"올 사람만 오라고 해요. 남고 싶 은 사람은 남아도 상관없으니까요."

버릴 사람은 확실히 버리겠다는 말이었다. 그 속뜻을 눈치챘는지, 다들 순간 굳었다.

"몇 명이 따라오든, 저는 내일 여 길 떠나서 실내체육관으로 갈 거예 요."

단호하게 선언했다.

* * *

뚫린 벽 너머로 밤하늘이 보였다. 평소처럼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모 를 불빛이 드문드문 비치고 있었다.

소란이 다 지나가고 홀로 밤을 맞 이하니, 지금 상황에 대한 여러 가 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선 첫째,

'이건 현실인가, 망상인가?'

현실이라기엔 터무니없고, 망상이 라기엔 내가 모르는 인물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내 상상력이 이렇게까 지 풍부했던가? 아니면 나도 모르 게 미련이 남았던 걸까. 이때 이렇 게 행동해서 모두 살았다면 어땠을지?

그리고 둘째로, 만약 이게 현실이 라면…… 왜 나는 과거로 돌아왔는 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만약 정말로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라면. 나는 무엇에 의해서, 무엇을 위해서 과거로 돌아왔을까.

회귀 전 상황을 떠올리자, 더더욱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 애중의 게이트에서 3년을 처참하게 생존했다. 그 과정에서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려고 시도하는헌터 무리를 만났고, 그들과 친분을 쌓으며 함께 클리어를 해나갔다. 알 고 싶지 않은 진실까지 알아 버렸 고…… 끝내는 희생을 치르면서 모 든 걸 마쳤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대형 길드의 러브콜을 질리도록 받 았다. 게이트에서 능력을 입증한, 중고 같은 신인으로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그 모든 권유를 뿌리치고, 중소길드 에 몸을 담았다.

역천.

다름 아니라...... 게이트 안에서

스러졌으나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줬 던 헌터, 표혜원이 길드장으로 있던 곳이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는 그 남동생인 표연원이 이어받았고, 나 는 그를 돕고 표혜원의 의지를 잇 기 위해 역천에 남았다.

적이 누구인지는 게이트에서부터 알았다. 놈들은 슬금슬금 제 그림자 를 드리우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치고받고 싸웠을까…….

나와 수없이 부딪치며 원수처럼 싸웠던 귀뾰족 놈과 미운 정마저 들 때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최후의 결전에 섰다. 그 최전방에나 역시 서 있었고.

표연원은 가지 말라며 날 붙잡았 으나, 갈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를 쳐부수는 건 내 평생의 목적이었고, 내 삶의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길고 긴 난전 끝에, 귀뾰족 놈의 창끝이 내 가슴팍을 찔렀다. 의문의 여지 없이 죽음이 도래했다. 놈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대로 죽 음을 맞이했다.

여기까지 너무도 선명한 기억이다. 이후, 사실 내가 기적같이 살아남아 식물인간이 되었고 난 회귀하는 망상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건 내 상상이고?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모든 것 이 너무 선명했다.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래, 바람이 뺨을 스 치는 감각이나 풀벌레 우는 소리 같은 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내가 환상계열 치료를 받고 있거나 공격 스킬을 맞았다면 충분히 가능 성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고유 스킬, '공간 간섭'.

가볍게 스킬을 시전하자 익숙한 감각이 발끝부터 타고 올라왔다.

아. 이 감각을 누가 어떻게 재현할 수 있단 말인가?

머릿속에 도면을 그려 넣듯이 내 가 지배한 공간의 정보들이 뇌에 새겨진다. 이 방대한 정보량까지 세 세하게 조작한 환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래. 이게 정말 현실인지 망상인 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되돌아왔 다는 건 내 스승도 이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게 망상과 현실 어느 쪽이라 할지라도, 나는 내 눈 앞에서 내 스승님이 죽는 모습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스승님, 이곳에서 당신을 살리 는 것이 내 속죄의 길일지도 모르 겠습니다.

당신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이것이 내 머릿속 환 상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빠져들 테 니.

우선은 눈앞의 과제에 집중해야 했다. 최대한 많은 숫자가 살아 돌 아가면 좋겠지. 모처럼 다른 선택을 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마음껏 행동 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우선 이들을 데리고 실내체육관으로 향하고, 그 곳에 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사람이 있다면…….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다 보니 스 르르 눈이 감겼다. 별빛이 나를 향 해 미소 짓는 듯 느껴진 건 내 착 각이었을까.

다음 날. 3분의 2는 나와 함께 떠 나기로 했다. 어제 나와 얘기를 나 눴던 이들은 모두 나를 따라왔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확신 어린 어조 로 말한 게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 이다.

충분한 물자를 챙기고 밖으로 나 섰다. 정확히 말하면 무너진 한쪽 벽에 씌운 비닐을 살짝 걷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긴장감이 공기 중에 맴돌았다. 엉망진창이 된 마트가 눈 앞에 펼쳐졌다.

«으.."

누군가가 침음성을 내뱉었다. 곳곳 에 시체 토막이 흩어져 있었다. 몬 스터들이 씹어 먹고 남긴 잔반이었 다. 살코기가 적은 팔다리나 머리통 이 덩그러니 굴러다녔다. 역겨운 모 습이었으나, 낯익기도 했다.

"흔적을 보니 여기가 바람갈퀴 구

역이 맞나 보네요."

벽에 손톱자국이 선명했고, 콘크리 트 벽은 두부처럼 뭉개져 있었다. 그 섬뜩한 흔적에 다들 낯빛이 창 백하게 변했다.

다행히 마트에 녀석이 있진 않았 는지, 우리가 마트를 빠져나올 때까 지 아무것도 마주치지 않았다. 바람 갈퀴를 만날까 봐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바람갈퀴는

몸은 투명하게 만들 수 있을지

라도 기척이나 소리까지 숨길

없었다 .

엉망이 된 채로 물건들이 바닥을

굴러다니는 마트 안에서 놈이 소리 없이 움직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 다.

"허……

"이게 대체……

마트 밖으로 나오자 상황이 더 심 각했다. 폭풍이라도 휩쓸고 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건물들은 반파되 어 있고,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바 닥을 나뒹굴었다. 핏자국이 군데군 데 보였으나 애써 무시했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 무언가 스치듯이 잡혔다. 붉은색 피막으로 둘러싸인 얇은 날개. 아주 특징적인 것이었다.

세상이 멸망한 것 같았다.

바람에 실려 오는 꺼슬꺼슬한 모 래알갱이가 뺨을 때렸다. 그래. 이 꼴을 마주하고 나니 더욱 선명해졌 다. 나는 이 지옥 같은 곳에 다시 끌려온 것이다.

감상에 빠지기도 전에 다시 마트 로 뛰어 들어갔다.

"방금 그건…… 뭐였지?"

"……붉은줄송곳벌."

창백한 얼굴의 권성민이 물었고

내가 답했다. 윙윙, 시끄러운 소리 가 가깝게 들렸다가 점점 멀어졌다.

붉은줄송곳벌. 그 살벌한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꽁무니에 달린 침 이 아주 치명적인 몬스터였다. 벌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벌은 아니니, 침 을 쏘고 나서 죽는 편리한 시스템 은 아니다.

"그럼 독침이라도 쓰는 건가?"

"그럴 리가. 송곳벌의 침은 찌르기 를 위한 거예요. 빙글빙글 돌아가기 도 하니까, 송곳보다는 드릴에 더 가까워요."

내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송곳벌은 제 침으로 마트 벽에 구 멍을 뚫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누군가가 짐을 두고 물류창고 쪽 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 이다. 몬스터들도 원래 자기만의 구 역이 있는 법이다. 이 마트는 명백 하게 바람갈퀴의 것이었고.

그런데 바람갈퀴는 안 보이고 송 곳벌이 여기까지 침범했다는 건…….

"땅장군 사체가 주변 몬스터들을 끌어 모으고 있어."

이 척박한 땅은 인간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에게도 가혹하다. 몬스터들 도 항상 굶주린 상태라, 죽은 사체 를 뜯어먹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 도 오늘 밤쯤엔 저 물류창고도 아 작이 날 것이다.

"어, 어떻게 해야 해? 젠장, 곧, 벽이 뚫리겠어!"

이찬송이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외 쳤다. 그의 말대로 드릴 같은 침의 끄트머리가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저 송곳벌 도 도급 몬스터다. 이들이 도급인 이 유는, 파훼법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약점 또한 명확하다. 공격용으로 쓰이는 침. 저건 유리검과 같아서, 공격할 때는 강력해도 방어력이 극 심하게 낮다.

"다들 숨어요!"

마트의 가판대나 무너진 천장과 벽 부스러기 뒤로 사람들이 몸을 숨겼다. 어설프지만, 당장은 괜찮을 것이다.

-위이이이잉!

벽이 뚫리고 송곳벌이 마트 내부 로 들어왔다. 투명한 날개가 서로 비벼지며 특유의 공명음을 냈다. 송 곳벌끼리는 저 소리로 소통하겠지만, 우리에겐 극심한 소음일 뿐이 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우리를 눈치채 지 못하고 물류창고로 향하는 것이 다. 마트 내부는 곳곳에 사람 시체 가 늘어져 있으니, 우리의 냄새를 알아채진 못할 것이다.

송곳벌이 날개를 접고 바닥에 내 려앉았다. 징그러운 다리들이 긴밀 하게 협력하며 앞으로 기어 나온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누군가의 팔뚝 을 더듬이로 툭툭 건드리더니 스쳐 지나간다. 어디서 배불리 먹은 모양 이지.

사사삭, 송곳벌이 천천히 걸어 나 간다. 숨 쉬는 소리조차 낮췄다. 심 장 뛰는 소리가 들릴까 봐 가슴께 옷자락을 그러쥐었다.

숨 막히는 침묵 사이, 송곳벌이 거 의 다 지나갔을 그 무렵.

- 에취!

송곳벌이 우뚝 멈췄다. 마트에는 다시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긴 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고, 순식간 에 송곳벌이 날아올랐다.

위이이이잉!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송곳벌이

소리의 원천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캉! 쇳조각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도 바로 옆에 김태병이 있었던 모양이다.

탱커 특화로 보이는 그에게 미리 전해주었던 철판이 제 역할을 다했 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라이팬에 구멍이 뚫리자 그가 황급히 철판을 내던졌다.

위이잉!

"옆으로 굴러!"

내 외침에 그가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김태병이 서 있던 자리에구멍이 뚫리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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