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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141화 (완결) (141/141)

#141화(完)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황성에 도착했다.

율리아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고, 그녀를 기다리는 설레는 기분을 겪어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체스터!”

율리아는 저 멀리서 걸어오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체통도 잊은 채 내게로 달려왔다.

저렇게 급히 뛰지 않아도 되는데.

가만히 서 있던 나는 발걸음을 옮겨 뛰다가 넘어질 것처럼 보이는 율리아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율리아의 팔을 붙잡으며 걱정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율리아, 뛰지 마세요.”

“그치만 난…… 체스터가 보고 싶었는걸!”

정말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노골적인 애정 표현을 왜 나는 그토록 싫어했었던 건지. 왜 그때는 몰랐던 걸까.

율리아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꺼운 건지를.

“넘어져서 다칠까 걱정됩니다. 제가 다가갈 테니, 뛰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체스터가 걱정한다니까…… 알았어! 다음부터는 안 뛸게!”

“네. 당신이 다치면 제 마음이 아플 테니까, 방금 한 약속은 유념해 주세요.”

율리아는 뭐가 이렇게 즐거운 건지.

전에는 보여 준 적 없는 헤실거리는 웃음을 서슴없이 보여 주었다.

고작 말을 했을 뿐인데. 첫 번째 삶과는 다르게, 그저 걱정의 말을 건넸을 뿐인데.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할 일인가.

작은 행동에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이전의 내가 얼마나 율리아에게 못되게 굴었던 건지 체감되었다.

“응! 약속할게!”

“……갈까요?”

율리아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본심은 팔에 쏙 들어오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사이가 아니었기에 참았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갈 생각이었으니까.

“체스터, 우리 어디 갈 거야?”

율리아는 무척 수줍게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물었다.

피부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따스한 온기는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디에 갈 것 같습니까?”

“어……. 그, 그러게?”

“그냥 믿고 따라오면 됩니다.”

또다시 율리아를 잃을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외부적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일이 또다시 발생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무력함을 느끼는 건 이전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율리아와 함께할 수 있는 이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도 애틋하고 소중했다.

* * *

손을 잡는 것도, 껴안는 것도, 입을 맞추는 것도 모두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상은 아직 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까지 내가 율리아를 무척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고 싶어서.

무엇보다 이젠 그녀가 내 곁을 떠날까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여유로웠고, 느긋하게 율리아가 주는 달콤함에 취해 갈 수 있었다.

율리아와 편안하게 웃는 얼굴로 마주 보고 경치가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지만 한편으론 낯설지 않았다.

“체스터, 무슨 생각해?”

“흠…….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내가 맞혀 봐?”

“네.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맞히면 상을 줄게요.”

율리아는 ‘상’이라는 말에 신중한 얼굴을 한 채,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얼마나 귀여운 말을 내뱉을지 벌써부터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이게 연애라는 거였을까. 연애가 주는 달콤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맞혀 볼게!”

“네.”

“으음…….”

아직도 대답을 정하지 못했던 걸까.

율리아는 살짝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사랑스럽기 짝이 없게 꽃 받침을 하고는 눈웃음을 흘렸다.

“내 생각?”

정말 귀여웠다. 하는 말도, 말하는 모습도, 나를 보며 기대하는 눈빛도 전부. 시선을 뗄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았어요, 율리아.”

“상은?”

기대에 가득 찬 반짝반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싶어도 뗄 수가 없었다.

양쪽 주머니 속에 있는 상자들을 만지작거렸다.

둘 다 원래부터 줄 생각이었지만, 하나는 늘 주고 싶어도 주지 못했던 거고, 하나는 율리아가 하면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따로 구매한 것이었다.

전자는 늘 주려고 마음만 먹고, 꺼내지 못했던 것이기에 이번에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쉽게 내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우선 원래 선물로 줄 생각이었던 상자를 꺼내어 율리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어……. 이건?”

율리아는 신나게 상자를 열어 안에 든 것을 확인했다. 그러곤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와 상자 안을 번갈아 보았다.

“원래부터 줄 선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나의 일방적인 선물 공세가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감정을 나누면서 주는 선물은 처음이었다.

“당신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체스터…….”

“제가 직접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율리아는 순순히 내게 목걸이를 넘겨주었다. 그대로 목걸이를 받아 든 채, 그녀의 뒤로 걸어갔다.

조심스럽게 목걸이의 체인을 붙잡았다. 그런데 목걸이를 붙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앞에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고작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는 것뿐인데, 심장이 쿵쿵거리면서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체인 하나를 걸어 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 건지. 이제야 깨달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목걸이를 걸어 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됐습니다.”

목걸이를 걸어 주는 행위가 긴장되는 게 아니라,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아서였다.

아직도 주머니 안쪽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 상자를 꺼내야 하는 타이밍.

머리도, 본능도 전부 알고 있는데.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았다.

“어때? 잘 어울려?”

“……네. 잘 어울립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어울렸다. 물론, 뭘 착용해도 어울리는 건 당연하겠지만.

아무리 장신구가 화려하게 예쁘다 하더라도, 가장 빛나는 건 율리아의 얼굴이라는 건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그런데 왜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렁이는 건지.

미인 울렁증이 있을 리는 없는데. 만약, 미인 울렁증이 있었더라면 이전에도 분명 율리아를 보며 느꼈을 테니까.

무의식중에 입에 가득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율리아, 이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응? 뭔데?”

이전에는 쉽게 내뱉었던 말이었는데. 왜 이번에는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건지.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제 속도를 잃고 크고 빠르게 뛰어 댔다.

“그리고 그 목걸이보다…… 훨씬 더 예전부터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몇 번의 생을 거듭하더라도 내 감정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면…… 그 모든 시간들을 율리아와 함께하고 싶었다.

이번 생도, 지난 생도, 다음 생도.

함께 늙어 가고 싶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옆에 있고 싶었다.

이러한 마음은…… 지난 삶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느꼈던 감정이었다.

지난 삶에서는 함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런 이유로 결혼을 쉽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율리아와 함께 있지 않으면 괴로울 게 뻔해서, 더더욱 신중해졌다.

결혼. 내가 마음만 먹고 강행한다면 율리아와 결혼하는 건 어렵진 않지만, 나는 지난 삶처럼 그녀를 구속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번에는 신뢰로 가득한 삶을 함께하길 원했다.

“그게 뭔데?”

“당신과 연애를 하면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게 있었고, 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뭔데, 체스터?”

무엇보다 율리아의 옆에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있는 모습은 내가 두 눈을 뜨고 있는 한…… 아니, 내게 숨이 붙어 있는 한 볼 수 없을 테니까.

그녀의 옆자리는 내가 아닌 다른 놈은 차지할 수 없어야만 했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상자를 꺼내어 열어서 그녀의 앞에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율리아, 저랑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이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것보다, 이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게 더 긴장되었다.

율리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반지와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진심이야?”

“진심입니다.”

“나중에 무르기 없어!”

다행이었다. 율리아는 내 청혼을 거절하지 않았다.

* * *

모든 건 순조로웠다.

결혼 준비도, 율리아와의 연애도, 그리고 나중에 그녀가 슬퍼할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 두는 것도.

전부 잊지 않았다. 그녀와의 사이가,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한 번은 몰라서 그랬고, 또 한 번의 기회는 실수로 잃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 테니,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었다.

“…….”

율리아와 하는 결혼식이 처음도 아닌데.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뛰어 댔다.

그녀는 부친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환한 얼굴을 한 채.

부친의 팔을 붙잡고 있던, 율리아의 손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황제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읊조렸다.

“율리아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해서는 안 되네.”

“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폐하.”

“그래. 혼인이 선언되면 공식 석상이 아닌 곳에서는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도록.”

“……그리하겠습니다.”

황제는 나를 토닥여 주며, 자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마음고생을 시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율리아의 손이 이제는 내 팔로 옮겨 왔다.

그녀의 보폭에 맞추어 나란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례는 이번 생에도 똑같이 교황이었다.

“……신랑 체스터 지크베르트와 신부 율리아 베아트리스는 평생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룰 부부가 되기를 맹세합니까?”

“네.”

“네.”

“이에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함께 증인이 되어 두 사람의 결혼이 진실하게 이루어졌음을 여러분 앞에 선언합니다.”

앞으로는 사랑하는 그녀와 행복할 날들만이 남았다.

[完]

외전으로 이어집니다.

By.[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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