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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139화 (139/141)

#139화

이어진 딜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들렸다.

물론, 정말 말 그대로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겠지만…….

딜런은 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당연히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가진 게 아니니까요.”

내가 율리아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내가 그녀에게 쏟아부었던 애정은 무엇이 되는 거지. 헛웃음이 서렸다.

딜런이 크는 동안 율리아가 애정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딜런을 잘못 키우기라도 한 걸까.

나를 보는 딜런의 눈은 너무나도 나를 닮아 있었다.

애석한 웃음이 슬프게 입가에 번지고, 씁쓸함은 비릿한 뜨거운 액체와 함께 입 안에서 감돌았다.

“내가…… 율리아에게 관심이 없었다라…….”

“아버지가 어머니께 관심이 없으셨던 건 아니었죠. 단지, 그 방향이 아주 많이 어그러졌다는 건 아셨을 텐데요.”

“……그래.”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율리아에게 한 행동들은 결코 정석적인 애정 표현 방법이라고 볼 수 없었으니까.

차가운 금속이 바닥에 떨어지며 나뒹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이건…….”

“네. 아주 잘 기억하고 계셔야 할 겁니다.”

기억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어찌 본다면 후회되면서 가장 후회가 없는 선택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어머니의 발목에 채웠던 족쇄입니다.”

“그래.”

“아버지는 이것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으셨죠. 어머니의 병세가 짙어지는 와중에도, 어머니의 발목에는 이게 꾸준히 착용되어 있었고요.”

“…….”

“어머니는 이 족쇄를 죽어서야 빼낼 수 있었습니다.”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고, 핑계처럼 들릴 테니까.

그러나 그 족쇄가 그녀의 발목에 채워져 있는 한,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더는 율리아가 내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아버지는 이 족쇄로 안정을 얻으셨던 모양이지만, 어머니의 건강이 결정적으로 악화된 계기가 이 족쇄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

“제가 이 사실을 말하는 건, 아버지가 죽기 전에 반드시 후회와 죄책감을 느끼길 바라서입니다.”

하…….

제대로 한 방을 먹었다. 딜런이 한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가슴 한편에 남는 이 찜찜함을 해소할 수는 없겠지.

그저 웃음만 나왔다. 단지, 이 웃음은 기쁨에서 비롯된 게 아닌, 헛웃음일 뿐이었다.

“저 족쇄가 어머니의 수명을 갉아먹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미 조사가 끝난 상태니까 부정하려 들지 마세요.”

“……그래.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아들의 손에 죽는 최후라.

어쩌면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리아처럼 죽을병에 걸려 죽는 것도, 수명이 다해 자연스럽게 늙어 죽는 것도, 전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죽음이었으니까.

“……딜런, 미안했다.”

덤덤히 나의 마지막을 받아들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앞에 율리아가 있기를 바라는 염치없는 꿈을 꾸며 눈을 감았다.

* * *

내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은 나를 원망하거나 증오하는 눈빛이 아닌,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한테 미쳐 있었다.

“……아버지.”

아직도 어렸을 때의 기억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 * *

“딜런!”

웃는 얼굴이 무척 예뻤던 사람이었다. 아마 내가 옹알이 정도를 할 때였을 것이다.

싱그러운 바람에 달빛을 그대로 담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내 이름을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부르던.

“어마!”

아버지가 무척이나 사랑했고, 사랑하고,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었던 어머니였었다.

“엄마라고? 우리 아들! 엄마 부른 거야?”

눈은 죽어 있긴 했어도, 최대한 어두운 부분을 내비치고 싶지 않다는 듯 생기가 도는 표정.

과장된 움직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던…… 심약한 사람.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부었던 아버지는 그런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여겼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을지도 몰랐다.

옹알이를 할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벌어졌다.

혼자 자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자고 싶은 어린 마음에 베개만을 챙겨 침실의 문을 살짝 열던 순간이었다.

“네가 싫어!”

방 안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에 방문을 벌컥 열려다가 멈췄다.

“율리아.”

“왜, 왜 나는 이곳에 갇혀서 살아야 해? 왜 내게는 네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건데?”

“딜런이 있잖아요. 이상적인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니까…… 진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나를 가지고 어머니를 겁박하는 아버지의 말에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섰다.

“또 딜런이야?”

지겹다는 듯, 이미 질리게 들었다는 것처럼 짜증이 들러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처음 들어 보는 무척이나 낯선 목소리의 어머니였다. 힘겹지만 조금이라도 애정이 묻어나던 기억 속 어머니의 음성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내게 딜런을 들먹일 셈이야, 체스터?”

“당신이 원한 게 아니었습니까? 평온을 원했잖아요.”

조심스럽게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바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가까스로 비명을 삼켜 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눈앞에 보였으니까.

어머니는 아버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지 얌전히 어머니의 손에 자신의 목을 내어 줄 뿐이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건지. 아버지의 저런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저런 행동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율리아. 무엇보다 늘 말하지만, 이 정도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어요.”

“너…….”

“정말 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이렇게 약하게 잡지 말고, 목을 조이거나, 뼈를 부러뜨릴 생각으로 꽉 붙잡아야죠.”

“너!”

이어진 아버지의 행동에 의해, 어머니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다정하게 붙잡더니 그대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듯 힘을 주었다. 손등으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정말 어머니도 어머니였지만, 제대로 미쳐 있는 건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정신이 미쳐 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미쳐 있는 상태라는 걸…… 너무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체스터, 멈춰!”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이 죽게 내버려 둘 거라는 선택을 할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어머니가 먼저 화들짝 놀라며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려고 했다.

“제가 죽길 바란다면 이렇게 마음이 약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율리아.”

“너, 너는…….”

“그만큼은 각오해야죠. 그래야 저를 죽일 수 있을 테니까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에 몸을 떨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로만 알았다. 그냥 어머니는 몸이 안 좋아서 눈빛이 죽어 있던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늘 몸이 안 좋은 어머니가 걱정되어 옆에 있는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눈에 보이던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율리아. 제가 이렇게 죽어 준다는데, 왜 받아들이지 못해요. 가만히 있으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제가 죽어 줬을 텐데.”

“…….”

“당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 같아서 그래요? 당신 때문에 죽는 것처럼 느껴져요?”

“나를, 나를…… 그냥 놓아주면 안 돼……?”

“그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당신이 원하면 죽어 준다고 했는데, 당신은 그걸 원하지는 않고.”

“체스터……. 제발…….”

“제게서 벗어나고 싶다면 저를 죽여요, 율리아.”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를 협박하고 있었고.

그때 알아차렸다.

겉으로는 완벽한데, 왜 우리 가족이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는지.

억지로 이어지는 관계였다. 누구 하나가 놓으면 사그라질 위태로운……. 가족이라는 허울 속에 갇혀 연극을 하고 있었다.

“…….”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아 버린 느낌.

그날을 기점으로 어머니의 눈빛과 행동, 그리고 말들이 전부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엄마!”

“……응, 딜런. 정원에 나갈까?”

애써 웃어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 이걸 왜 이제야 알아챈 건지.

“율리아, 바깥 날씨는 좀 쌀쌀합니다. 겉옷은 걸치고 나가는 걸로 하죠.”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내 쪽을 바라보더니 일그러지던 표정을 갈무리하며 내게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알았어.”

어머니가 이때부터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 *

아버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어머니의 정신이 점점 이상해져 갔다는 건 맞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어머니가 늘 발목에 착용하고 있었던 족쇄와 다름없던 그 발찌였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내가 따로 발찌를 공수해 그걸 따로 조사해 봤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아버지가 직접 채운 그 발찌는 어머니의 생명력을 서서히 조금씩 갉아먹는 족쇄나 다름없었다.

“…….”

어머니의 행복을 아버지도, 나도 바랐지만…….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죽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어머니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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