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초점을 잃어 가는 율리아를 보며 조금은 예상했었다.
이미 한 번 죽었던 그녀를 봐 왔기에, 뺨에 닿는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체온이 그녀의 죽음을 조심스럽게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도 끝내지 못했는데…….
아직 나는 사랑하는 율리아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었다.
율리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마지막에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눈이 온전히 감기기 이전.
‘안녕.’
이라는 그 말은 심장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해 왔는데, 왜 율리아의 죽음 앞에서는 초연하지 못한 건지.
직접적으로 이렇게 가까이서, 사랑하는 이의 숨이 꺼져 가는 모습은 처음 봐서 그런 걸까.
내 뺨을 감싸던 율리아의 손에서 힘이 빠지더니 툭 떨어졌다.
“율리아, 율리아!”
그녀의 이름을 수없이 되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원래 차가웠던 손은 이젠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또다시 율리아를 잃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엔 이미 차갑게 죽어 버린 그녀를 품에 안았지만 지금은 서서히 죽어 가는 그녀를 지켜봤다는 거겠지.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율리아가 죽었다는 사실을.
“…….”
지옥까지 따라갈 생각이었다. 나보다 율리아가 먼저 죽으면 따라 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잔인하게도 그녀의 유언은 딜런을 무사히, 그것도 자신이 주지 못했고, 못 할 애정으로 키워 달라는 거였다.
허망했다.
과거에도 죽은 율리아를 끌어안고 후회했었는데,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녀를 잃었다.
“하, 하하…….”
전혀 현실감이 없는 지금의 상황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왜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도저히 멈추지 않는 건지.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일까. 아니면 심장을 잃은 것만 같은 공허함일까.
* * *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상황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
율리아는 지크베르트 공작 부인이기 이전에, 황녀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신분에 걸맞게 그녀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성대한 장례식은 정말 그녀의 죽음을 더욱 선명하게 강조했다.
차게 식은 그녀의 육신을 순백의 국화로 가득한 관에 안치했다.
지독하게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두 눈을 감고 있는 율리아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 보였다.
늘 율리아의 표정을 잘 살펴 왔기에, 알 수 있다. 지금 율리아의 얼굴이 가장 편안해 보인다는 것을.
영영 눈을 뜰 수 없게 되었을 때가 와서야 기뻐 보이는 얼굴을 하다니, 정말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머릿속에 늘 평온한 삶을 살 거라고 조잘거리던 율리아의 말과 행동이 주마등처럼 짧게 스쳐 갔다.
“……이게 당신이 말한 평온입니까.”
곤히 잠든 것만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귀에는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율리아는 이 이상 삶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미 기회를 한 번 부여받았으나, 바로잡지 못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이번 같은 실수 따위는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한 번 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지크베르트 공.”
당연히 율리아의 장례식에 빠지지 않을 사람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황제는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공이 율리아의 건강을 가장 신경 많이 썼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너무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
“율리아는…… 원래부터 건강한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돌아가신 아버지도, 나도 율리아가 오래 살 거라는 생각은 한 적 없었네.”
“죄송…… 죄송합니다…….”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것은 오로지 사죄의 말뿐이었다.
그 외의 말은 내뱉을 수가 없었다.
“공이 미안하게 생각할 건 없네. 그리고…… 딜런이 있으니, 정신 차려야지.”
“…….”
“이런 상황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건 딜런일 테니까. 공은 나와 아버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네.”
실수. 잠깐 잊었었다. 왜 율리아의 정신이 그토록 불안정했었던 건지.
어쩌면 내 상황은 그녀의 부친과 동일하다고 봐야 했다.
목숨보다도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은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니까. 자식을 깜빡할 정도로, 마음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율리아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한다면 딜런에게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율리아가 마지막으로 딜런에 대해 당부한 이유.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하니까.
율리아는 자신의 죽음에 초연하지 못할 나로 인해, 딜런이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 말했던 거였다.
나를 끝까지 신뢰하지 않았기에, 나온 말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율리아는 분명 딜런이 상처받지 않길 바랄 테니, 공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정신을 놓으면 안 되네.”
“……네.”
왼쪽 가슴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 심장을 잃어버린 기분.
무얼 해도 이 비어 버린 공간을 채울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시 율리아가 되살아나는 것뿐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정신을 유지해야만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의 전부를 잃은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딜런.”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혼자 있었을 딜런에게 찾아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혼자 있는 딜런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올라왔다.
사랑하는 율리아가, 내 목숨보다 소중한 그녀가 부탁한다고 당부한 우리의 아이.
“혼자 두어서…… 미안하다.”
* * *
율리아의 장례식도 잘 치렀고, 또한 가장 좋은 자리에 안치했다.
조용히 그녀의 묘비에 국화 꽃다발을 내려놓고, 잠든 그녀의 곁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순간 환청이 들렸다.
‘체스터.’
너무나도 그리운 달콤한 그녀의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에 발걸음을 멈췄다.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황홀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죽었을 뿐이라고,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다시 눈을 뜨면 품에 곤히 잠든 율리아가 안겨 있기를 바랐다.
이게 헛된 망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체스터! 어디 가?’
환청이라는 걸 알지만, 선명하게 귓가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 기억 속에 담긴 그녀의 울림과 동일했다.
그랬기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거겠지.
“…….”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애써 무시했는데, 율리아는 내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회귀하기 이전과 똑같이 실재하지 않는 거짓된 환영인 율리아가 나를 헤집으며 괴롭혔다.
환영에서 벗어나려는 나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가지 마, 체스터.’
“율리아.”
‘옆에 있어 줘.’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을 줄줄이 읊는 율리아의 목소리에, 이게 완벽히 허상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걸 아는데도 왜 내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건지.
“……당신은 죽었습니다, 율리아.”
‘내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해?’
“…….”
들리는 환청을 애써 모르는 척 넘기며,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 냈다.
형체조차 없이, 목소리만을 내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환청을 뒤로하고 그녀의 묘에서 멀어질 계획이었다.
‘체스터, 또 날 혼자 두고 갈 생각이야?’
환청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 말을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발걸음이 멈췄다.
‘응? 체스터? 가지 마. 나랑 여기에 있어 주면 안 돼? 혼자는 싫단 말이야.’
내가 멈칫하는 반응을 보이자, 잔인하기 짝이 없는 환청은 더욱 나를 자극하며 붙잡는 말들을 내뱉었다.
“제가 여기 있으면…… 딜런은 어떻게 합니까.”
‘딜런? 너는 지금 딜런이 중요해?’ 그 말을 듣는 순간, 확신이 생겼다.
이건 진짜 율리아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다.
확신이 생기면서 바로 떨어지지 않고, 무겁게만 느껴졌던 발걸음을 떼어 내 멀어졌다. 더는 환청이 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회귀하기 전에도 지독하게 시달렸던 환청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환청이나 환영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다름 아닌 딜런이었으니까.
* * *
율리아가 없는 삶이었기에, 딜런이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모든 걸 전부 물려줄 생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모든 걸 딜런에게 넘겨주고, 율리아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부모가 둘 다 없는 삶을 살아 봤기에, 딜런에게 나와 똑같은 불행한 유년 시절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
딜런은 잘 자라 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넘겨줄 수 있을 만큼.
이미 작위를 제외하고 다른 것들은 전부 딜런에게 넘겨주었다.
딜런은 자라면 자랄수록 머리색을 빼면 정말 그녀를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표정조차, 율리아보다는 나를 더 닮아 버려서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까.
“……그래.”
“어머니의 죽음에는…… 아버지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
“어머니가 죽은 건 아버지 때문입니다.”
할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율리아는 내 곁에서 서서히 죽어 갔다.
그러니, 지금 내 심장에 내가 딜런에게 물려준 칼이 박혀 있겠지. 나와 율리아의 아이가 직접 꽂은.
생각보다 후련했다.
율리아와 나의 자식을 두고 먼저 떠나는 거지만, 그 아이가 직접 선택한 거였으니까.
“……딜런, 미안하구나.”
애석하게도, 이대로 죽어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자 기뻤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