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몸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상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나빠진 상태라는 건 조금도 인식하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진 걸지도 몰랐다. 애초부터 내 몸이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었으니까.
“율리아!”
내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본 체스터의 얼굴이 파리해지며,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주치의를 불렀다.
이걸 웃어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일그러지는 체스터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한때는 내가 무척 사랑했던 남자가…… 이제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사랑스럽게만 보였던 소중한 아이에게도 더는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서서히 내가 느껴 왔던 애정이라는 감정이 흐려지기 시작할 때부터, 몸은 천천히 망가져 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치의를 불렀으니, 괜찮을 겁니다.”
“체스터, 쿨럭!”
말을 내뱉을 때마다, 피도 함께 울컥거리며 입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내가 토해 내는 피의 양이 많아질수록, 체스터의 안색은 파리하다 못해 희게 질려 갔다.
그는 내가 흘린 피를 소매로 닦아 냈다. 옷소매가 피로 얼룩져 더러워지는 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율리아,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
“네? 많이 아파요? 말은 하지 말고, 고개만 끄덕여요.”
이런 모습을 보면 참 지극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무뎌졌는데, 체스터는 아직도 무뎌지지 않은 걸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말을 하는 대신, 눈을 감았다.
“율리아! 주치의가 금방 올 테니까…… 아직은 잠들지 말아요. 당신이…… 이런 상태에서 눈을 감으면 불안해진단 말입니다…….”
“내가…… 죽, 쿨럭! 죽을까 봐…… 그래? 쿨럭쿨럭!”
피가 주르륵 입 바깥으로 새어 나와 입고 있던 옷을 검붉게 물들였다.
그의 옷소매로 닦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상이기에, 체스터가 할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없었다.
단지 체스터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하얗게 질린 채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외칠 뿐이었다.
“율리아, 괜찮을 겁니다.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조금 있자, 주치의가 부랴부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하는 체스터를 뒤로하고, 주치의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진맥했다.
“율리아의 몸 상태는 어떠하지? 말을 할 때마다 피를 쏟아 내던데…….”
“…….”
“왜 말을 하지 않지?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래, 말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해 대는데, 문제가 없는 것도 이상하지.”
체스터는 주치의를 몰아붙였다.
주치의가 직접 말을 해 주지 않아도 대충 예상은 되었다. 아마, 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삶에 의미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죽어 버린다 해도, 더는 미련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더는 그 누구도 사랑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죽은 나를 보고 슬퍼하고 괴로워할 체스터를 생각하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체 율리아의 상태가 어떠한지 당장 말해!”
체스터는 주치의에게 윽박지르며 내 몸 상태에 대해 어서 말하라며 재촉했다.
결국 주치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힘겹게 입술을 떨어뜨렸다.
“각하께서는……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공자님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역시. 예상과 별반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체스터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차피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다른 건 다 가능할지 몰라도, 죽어 가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건 불가능이었으니까.
“마음의…… 준비라고?”
“예……. 아마, 부인께서는 오래 살지는 못할 겁니다……. 이전에도 말을 해 드렸듯, 건강이 무척 안 좋아져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럼 진행이라도 늦춰야 하는 게 자네의 본분이 아닌가!”
“제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보았지만…… 부인의 병의 진행 속도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후…….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테니, 뭐라도 좋으니 말해. 불가능에 가깝더라도 말해.”
“……방도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점점 숨이 가빠졌다.
호흡을 어떻게 하는 거였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숨을 쉬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정말…… 아무런 방도가 없나?”
“제가 부인께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은…… 피를 토하는 걸 멈추고, 죽기 전까지 고통을 잊게 해 주는 것뿐입니다. 곧 점점 더 고통을 느낄 게…….”
“율리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런 걸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체스터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나를 안아 들어 침실로 들어갔다.
* * *
주치의의 처방으로 고통은 멎었다.
체스터는 막강한 재력으로 값비싼 약을 사용하며 내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게 했다.
약은 비싼 만큼 그 값어치를 톡톡히 했다.
더는 피를 토하거나, 숨을 쉬기가 어렵거나, 다른 고통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효능은 꽤나 상당했다. 단지 내 수명을 더 연장시켜 주지는 못할 뿐.
체스터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내 곁을 매일같이 떠나지 않고, 지켰다. 아마도 내 임종을 지켜볼 생각인 거겠지.
“…….”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체스터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누가 봐도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내 손과 무척이나 비교되었다.
정말 내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죽음은 내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은 짙어져 갔다.
나는 죽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살고 싶은 걸까.
“체스터.”
“……네.”
죽어 가는 건 나인데. 체스터가 죽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
“죽는 건 난데, 왜 네가 그렇게 죽어 가는 목소리야.”
“미안해요.”
“……네가 미안해할 게 뭐가 있다고, 미안하다고 말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잖아요. 당신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게…… 너무 미안해서…….”
체스터의 목소리에서는 지독한 떨림이 묻어났다.
나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외면할 뿐이었다. 더는 체스터를 사랑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의 진심을 알면서도 무시해 왔다.
아니, 사실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무뎌진 것뿐이었다.
“난 더는 널 사랑하지 않아, 체스터.”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는 딜런에게 애정도 느껴지지 않아.”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전부 알면서…… 아니, 전부 알고 있었기에 지금껏 그렇게 행동해 온 걸 테지.
내가 주지 못하는 애정의 빈자리를 딜런이 느끼지 않도록, 체스터는 최선을 다해서 좋은 아빠가 되어 주며 애정으로 양육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딜런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했다.
“체스터. 지금껏 네가 딜런에게 해 왔듯이, 내가 죽어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키워 줘.”
“그러겠습니다…….”
“딜런에게는 내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알겠습니다.”
“체스터, 가까이 와.”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지만, 죽음이 가까워지는 건 느껴졌으니까.
죽어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본능적으로 내게 죽음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체스터의 얼굴에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의 뺨을 건드렸다.
차가운 내 손과 다르게 그의 뺨은 따뜻했다.
죽어 가는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경계를 명확하게 느끼게 해 주는 체온이, 왠지 슬프게 닿았다.
“후회해?”
“…….”
“응? 후회해, 체스터?”
“후회……합니다. 당신을 처음부터 사랑하지 못한 걸…….”
“전에 내가 죽기 전에 네게 했던 말이…… 이루어졌네.”
너는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했던 말이, 이번 생에서 실현이 되었다.
나의 죽음은, 죽어 가는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네게 최고의 복수가 될 테니까.
내가 딜런을 부탁한다는 말을 내뱉었기에, 체스터는 내가 죽어도 나를 따라 죽지는 못할 것이다.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체스터.”
“…….”
“나는 이대로 죽고 싶어.”
더는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윤회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기억들을 전부 가지고 환생하고 싶은 마음은 더는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전생의 기억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인연이든, 악연이든, 나는 우리 연이 이번 생에서 끝나길 원해, 체스터.”
“저는…….”
“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평범하고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하고 무던한 남자를 만나 사랑받고 싶어.”
“…….”
“너처럼 이런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아. 내가 죽으면 날 잊어, 체스터.”
그게 우리의 연을 끊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우리에 대해 서로 잊어버리는 게, 이 빌어먹을 운명을 끊어 낼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사랑하지 마, 체스터.”
그리고 더는 나를 위해 울지 마.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체스터가 보였다.
그는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짙은 후회가 뒤섞인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녕. 내게 다음 생은 없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