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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135화 (135/141)

#135화

바깥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체스터는 나를 품에 안은 채, 말 위에 올랐다.

찬바람이 옷 안으로 파고들자, 저절로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추워요?”

체스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참아 줘요. 도착할 때까지만요.”

“응…….”

“금방 도착할 거예요.”

추위에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따뜻한 온기에 아까보다 조금은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더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 편한 곳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 * *

품 안에 얌전히 안긴 채로, 꼼지락거리는 율리아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몸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내 몸에 기대어 곤히 잠든 율리아의 얼굴이 꽤 편안해 보였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율리아.”

모든 게 기꺼웠다.

역시 내 삶에서 율리아가 없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회귀 전에는 대체 왜 그렇게 그녀를 거부해 왔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우는 얼굴도 정말 예쁘고……. 원래도 예쁜데 더 예쁜 표정을 지으면 정말 반칙인데.”

또 울리고 싶어지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나, 화가 솟구치는데 율리아가 우는 모습을 보면 심장이 동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율리아가 내 품에 안겨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이랬을 텐데.”

조금 많이 돌아왔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었어야 한다는 약간의 후회가 있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율리아는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으니까.

* * *

원래는 율리아가 옷만 갈아입으면 바로 영지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 버린 탓에, 아쉽게도 오늘 하루는 이 도시에서 머물기로 했다.

하루라도 더 빠르게 율리아와 함께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함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다.

“흐응.”

그래도 저절로 기분 좋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상황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일단, 품에서 잠든 율리아를 안고 실내로 들어와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난로에 불을 붙여 방 안을 따뜻하게 덥힌 후, 그녀가 편히 잘 수 있도록 몸을 옥죄는 옷을 천천히 벗겼다.

준비되어 있던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이어 이불도 꼼꼼히 덮어 주었다.

“잘 자요, 내 사랑.”

이제 시간은 많으니 너무 조급해할 이유는 없었다.

내 옆이라는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 그녀가 도망칠 일은 더는 없다고 봐야 하겠지.

그럴 수도 없을 테고.

그러니 지금부터는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잡아먹으면 그만이다.

* * *

10의 노력을 보이면 1의 마음을 주겠다고 했던 내 말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 모양일까.

“율리아, 몸은 어떱니까?”

체스터는 이전처럼 뭔가를 강제하거나, 막무가내로 다루는 행동 없이…… 무척 다정하고, 신사적으로 굴고 있었다.

아직 영주 성에 도착하기 전이라 내게 잘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의 꽃이 피어나기는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정말 내 환심을 사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괜찮아.”

“다행이네요. 편히 쉬어요. 영지로는…… 당신의 건강이 어느 정도는 회복된 후에, 당신이 돌아가고 싶어 할 때 떠날 테니까요.”

“정말?”

“정말.”

부드러운 웃음.

다정한 목소리.

걱정스러운 말투.

상냥한 행동.

모든 게 완벽한데.

되레 너무 완벽해서 의심스러우며, 이질적이었다.

“체스터.”

“네.”

“내가 잊을 수 있을까? 네가 내게 한 모든 악행의 기억을 나는…… 도려낼 수 있을까?”

“글쎄요……?”

“넌…… 네가 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어?”

어떤 식으로 후회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진심으로 내게 한 행동에 대해 미안해하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한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고스란히 피해를 받은 것에 대한 후회인지.

나에 대한 죄책감일까. 아니면 그저 과오라고 치부하는 걸까.

내가 아는 체스터라면 들키지 말았어야 지금처럼 어긋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후회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당신에게 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리아.”

저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감언이설이 아니라 그의 진심 어린 사과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이미 불신은 크기를 너무 많이 키워서,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는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은…… 제게도 중요하니까요.”

왜 나는 이게 현실보단 꿈에 가깝다고 느끼는 걸까.

분명 이게 현실이 맞는데. 그런데 왜 환상처럼 다가오는 건지.

너무나도 이상적이라서,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진심입니다, 율리아.”

“……믿을게. 네 말을 믿으려고 노력할게, 체스터.”

“괜찮아요. 당신이 절 믿지 못하는 원인은 전부 제게 있는 거니까. 이건 제가 감당해야 하는 거잖아요?”

“안아 줘.”

“네?”

“안아 줘, 체스터.”

두 팔을 뻗으며 그가 나를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기를 요구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냥 그의 심장 소리가 듣고 싶었을 뿐이다.

나를 보며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을 느끼면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것만 같았으니까.

체스터는 잠시 멈칫하기는 했지만, 이내 나를 다정하게 안아 주었다.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게요, 율리아.”

“응.”

“딜런은 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응.”

“더 궁금한 건 없습니까?”

“……없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언제든 궁금한 게 생기거나, 뭔가 먹고 싶거나, 필요한 게 생긴다면 말해 줘요.”

“그럴게.”

“사랑합니다, 율리아.”

그의 달콤한 사랑 고백에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아직 내 감정에 대한 확신도 존재하지 않았고, 아직 조금 남아 있는 과거의 잔상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왜 대답이 늦는지 체스터는 묻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대답을 못 할 거라고 예상했는지 말없이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 주었다.

“푹 쉬어요, 내 사랑.”

* * *

딜런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건강이 회복되기가 무섭게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영주 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던, 체스터의 소굴과도 같은 곳에 제 발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체스터가 주장한 대로, 그의 옆보다 바깥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지 않았나.

그러니 아이와 나를 위해서라도 그의 옆자리에 있는 게 맞았다. 아니, 원래 있었던 체스터의 옆으로 돌아가는 게 옳았다.

“당신을 위해 방을 새로 준비했어요. 이곳에는 딜런이 좋아하는 것들도 가득 두었으니, 딜런도 무척 좋아할 거예요.”

그런 체스터의 말을 조금의 의심 없이 믿었던 내가 잘못된 걸지도 몰랐다.

전적이 많았던 체스터인데, 너무나도 그에 대한 의심을 쉽게 거두고, 믿었다.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가자, 정말 딜런을 위한 용품들이 가득했다.

요람. 모빌. 딸랑이. 공. 이 외에 다른 것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딜런이 다치지 않도록 바닥도 푹신했다. 그리고 위험해 보이는 물건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정말 체스터가 딜런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근데 딜런은?”

딜런을 위한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딜런이 보이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끼고 몸을 돌려 체스터를 바라보는 순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게…… 뭐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결코 이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저 손에 들려 있는 걸 내게 사용할 생각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체스터는 아무런 설명 없이, 내 앞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뭐, 뭐 하려고!”

“글쎄요……? 율리아는 제가 뭘 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런 말이 쉽게 터져 나오지 않았다.

체스터는 나를 침대에 앉히더니, 갑자기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물건을 내 발목에 채웠다.

“뭐야?”

“저도 안전장치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

“걱정하지 마세요. 성 밖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율리아.”

체스터는 다정한 어조로 쓸데없이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이질적이고 낯설었다. 하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당신을 위해 특수 제작한 마법 물품이에요.”

“하……. 그럼 너는 원래부터!”

“율리아가 제게서 도망친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이번에도 또 뒤통수 맞고 싶지는 않거든요.”

특수 제작한 마법 물품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체스터는 나를 이곳에 데려오는 순간, 사슬이 없는 족쇄를 채울 생각이었던 거였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내게 자유를 주는 척 이 족쇄를 준비했던 게 분명했다.

“내 사랑.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잠시 잊었나 봅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한테만큼은 너그럽다는 거 알잖아요.”

“……네가 나한테 너그럽다고?”

도대체 어디를 봐서?

“제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치더라도 유일하게 살아 있는 건 당신 하나뿐이니까요.”

체스터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짓더니, 내 발등에 입을 맞췄다.

“이 방 밖으로 못 나가게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율리아. 그리고 별로 불편하지도 않고, 차고 있다는 느낌도 안 들잖아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망각해야 하는 건 지난 생들의 기억인데, 내가 잊은 것은 체스터의 본성이었다.

잊어야 하는 건 못 잊고,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쉽게 잊혔다.

“이젠 제게서 도망치고 싶어도…… 절대 도망 못 쳐요, 내 사랑.”

나를 담아내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는 선명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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