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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123화 (123/141)

#123화

“약만 다 먹으면 정말 갈 거야?”

“네.”

율리아는 지금 경계심이 가득하고 의심도 많으니, 이렇게 내가 한 발자국 물러서는 게 옳았다.

이게 그녀를 위함이니까. 조금이라도 율리아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건 나니까.

“약에 이상한 짓 한 건 아니지?”

“의심됩니까?”

나를 향하는 시선에 불신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해는 됐다. 회귀 전에 내가 한 짓들이 있으니, 못 믿는 게 당연하니까.

나는 하는 수 없이 율리아가 먹어야 하는 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런 방식이 그녀에게 반발심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었다.

손을 뻗어 율리아의 턱을 붙잡아 머리를 고정하고, 다른 팔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지금 뭐 하려는……!”

지금 내가 뭘 하려는지 전부 예상하고 있으면서 이런 반응을 내비치는 게 귀엽긴 했다.

율리아는 모르겠지만, 이런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이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당연하게도 율리아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겹쳤다.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던 약을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 천천히 흘려 넣었다.

“읍!”

입 안에 가득했던 약이 전부 율리아에게로 넘어갔다.

이제는 놓아줘도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좀 더 원했다. 혀끝에 닿는 그녀의 체액이 무척이나 달콤해서.

조금 더 탐하고 싶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달콤한 그녀의 입 안을 부드럽게 훑었다.

조그만 손으로, 최대한 힘을 쥐어 짜내어 밀어내려고 버둥거리지만, 너무 약한 힘은 내게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밀어내는 움직임은 멈추고, 율리아는 몸을 뒤로 내빼기 시작했다.

밀려 들어오는 뜨거운 숨결을 더 많이 삼키고 싶어, 세게 빨아들였다.

만족감이 느껴져서야 정신을 차리고, 율리아를 놓아주었다.

“하아, 하…….”

“독은 타지 않았습니다.”

붉게 상기된 율리아의 얼굴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나를 보는 눈이 무척 매서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입술에 남아 있는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율리아의 눈빛을 보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멈췄다.

“이제는 믿을 수 있겠습니까?”

“……너, 넌 진짜 싫어.”

“또 의심하면서 약을 안 먹겠다고 버티면, 이런 방식으로 다시 먹일 겁니다.”

“너…… 꼴도 보기 싫어…….”

눈가에 고인 투명한 눈물 때문인지. 보랏빛 눈동자가 유독 더 예쁘게 빛났다.

나도 참 미쳐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율리아를 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신의 건강만 회복되는 대로, 바로 영지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 놓았습니다.”

“…….”

“그러니 몸을 회복하는 것에만 집중하세요. 저는 이만 나가겠습니다, 쉬어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율리아가 편하게 쉬려면 내가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때였다. 가느다란 손이 아주 살짝 내 옷소매를 붙잡는 게 느껴져서, 움직이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율리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습니까?”

“딜런이랑 둘이서 살래.”

별로 내키지 않는 발언이었다.

딜런과 율리아 단둘이서 살겠다는 저 발언은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의 세상에서 나를 제외하겠다는 뜻으로 들렸으니까.

아니,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 터였다.

“이번에는…… 딜런이랑 둘이서 조용히 살고 싶어.”

“…….”

“너랑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율리아. 정말…… 정말 잘해 줄 자신 있습니다.”

진심이었다. 회귀 전과는 다르게, 율리아를 무척 사랑해 줄 자신이 있었다.

내 감정이 어떠한지. 그리고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회귀 전과 같은 실수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딜런의 존재가 있었다. 적어도 딜런이 있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딜런은 나와 율리아의 관계를 이어 주는 중요한 존재였으니까.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잘해 주겠다면서…… 나를 방 안에 가둬?”

“율리아.”

“소름 끼쳐! 모든 걸 다 알면서…… 내가 그때 기억에 시달릴 때,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날 달래 주던 것도!”

그때는 과거를 알고 있단 사실을 들키지 않았으니까. 침묵을 고수했었다.

적어도 그때는 침묵이 옳은 답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 순간만을 기준으로 둔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아마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끝까지 모르는 척을 했을 테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소름 돋아…….”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율리아의 모든 말들을 묵묵히 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변명도 없이, 단지 그녀의 화풀이를 고스란히 받아 주며 분노가 사그라들길 기다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슨 낯짝으로 우리 아빠랑 오빠랑 유모를 본 거야?”

“…….”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어? 전에 네가 다 죽였던 사람들이었잖아!”

“…….”

“그리고 왜 나랑 잔 거야?”

그건 당신이 먼저 나를 유혹했고, 나는 단지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겠지. 이럴 땐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었다.

“너…… 진짜 나쁜 놈이야.”

“미안합니다…….”

내가 율리아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 외에는 말할 자격도 없으니까.

덜덜 떨리는 연약한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있잖아, 체스터……. 너한테 딜런은 무슨 존재야?”

“딜런은 당연히 우리의 아이입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우리의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붙들어 주는 유일한 존재.

딜런이 없다면 나와 율리아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아니. 그거 말고. 네게 딜런의 존재가 뭐냐고.”

그녀의 의중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거봐. 결국 딜런도 네게는…… 도움이 되는 장기말 중 하나인 거잖아.”

“그건 아닙니다.”

“내게 있어서 딜런은…… 무척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제게도 딜런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 그러니 나를 위해서, 그리고 딜런을 위해서 우리를 놓아줘.”

“그건!”

“안 된다고 하지 마.”

정말 율리아는 사람을 돌아 버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네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제 생각이 궁금합니까?”

“……알게 되더라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면 더 도망칠 텐데.

매일 그녀를 보며 시커먼 욕망의 충동에 휩싸이는데.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이제껏 네가 원하는 대로 했잖아. 나는…… 이제 더는 네가 필요하지 않아.”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응. 그러니까…… 내 눈에 보이지 좀 말아 줘.”

내게는 아직 당신이 필요한데. 율리아는 모질게도 내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체온이 닿아야만 안정감을 느끼는데, 율리아가 옆에 있어야만 공허함이 채워지는데.

“그렇게 말하면 제가 순순히 알겠다고 해 줄 거라 생각했습니까?”

“…….”

“안타깝지만, 저는 당신이 원하는 요구에 맞춰 줄 생각이 없습니다.”

“체스터.”

빌어먹게도 내 이름을 입술에 담는 율리아의 음성은 무척 달콤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양보도, 배려도 없었다. 율리아가 내 곁에 없는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혼자 있을 시간을 줄 테니, 쉬면서 그 생각 포기해요. 저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

“제가 말했잖아요. 저를 미워하고, 원망해도 좋으니까…… 제 눈에 보이는 곳에서, 제 옆에서 그렇게 하라고.”

나를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한다면 옆에서 호시탐탐 내 목숨을 노리는 게 더 나았다.

차라리 옆에 보이는 게 더 안심됐으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음 주에 바로 떠날 겁니다.”

“뭐?”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최소한 율리아의 외상이 전부 나을 때까지는 이곳에서 있을 생각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생각은 없었다.

율리아가 수도에 있는 이상, 계속해서 그녀는 황성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할 터.

“먼저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던 건 당신입니다, 율리아.”

차라리 영지로 내려간다면 율리아도 체념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안고서, 바로 다음 주에 영지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얌전히 있어요.”

“……말이, 말이 다르잖아.”

“저도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율리아가 계속 쓸데없는 생각을 하잖아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

율리아는 연약하고 유약하기에 위험한 바깥에 내보내서는 안 되었다. 또다시 바깥에 내보내면 지금처럼 처참한 꼴로 돌아올 테니까.

그녀를 위해서라도 절대 바깥으로 내보내서는 안 됐다.

“영지에 내려가면 그때는 딜런과 자주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줄게요.”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미리 만들어 둔 온실 정도는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줄 생각은 있었다.

조심스럽게 율리아를 껴안았다. 그녀는 밀어내지도 않았지만, 마주 안아 주지도 않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걱정해서 그래요.”

“…….”

“이해는 바라지 않습니다. 영지에 당신을 위한 선물도 있습니다. 그러니 함께 내려가요.”

“어차피 나한텐 거부할 힘도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율리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그녀는 나와 함께 영지로 내려갈 테니까.

단지, 자발적으로 함께 떠나느냐. 억지로 나와 함께 내려가느냐. 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럼 적어도 이곳에서 있는 동안은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체스터.”

“……약 꼬박꼬박 챙겨 먹고, 밥도 제대로 잘 먹어요. 다 먹지 않으면 제가 직접 올 테니까.”

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다. 그래서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럼 쉬어요.”

너무 늦은 후에야 깨달았다. 있을 때 잘했어야 했다는 것과 비밀은 평생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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