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이게 잘못되었단 것을 알면서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았으니까.
황명을 내리자, 딸의 비명 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생생하게 들려왔다.
“아빠! 아빠!”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결국 딸아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래도 명색이 황녀니, 저항한다면 근위 기사들도, 시녀들도 망설일 수밖에 없겠지.
“아빠! 아니잖아요……. 아빠가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가 없잖아요! 그쵸?”
간절한 눈빛. 하지만 나는 그 눈빛을 나를 위해 외면했다.
아이의 간절함보다는 내 간절함이 더 크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린아이에게 강제로 황후와 똑같은 머리카락 색이 나오도록 염색을 시켰고, 눈동자 색을 바꾸는 약을 구해 매일 넣도록 했다.
염색약이 아이에게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 색을 바꾸는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전부 알면서도 그런 명령을 내렸다.
원망스러웠던 아이는 염색을 하고 눈에 약을 넣자 황후와 똑 닮은 모습을 했다.
“율리아.”
완벽한 황후의 분신이었다.
아이는 황후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 후로도 율리아를 볼 때면 죽은 황후가 떠올랐다.
황후가 죽은 후 처음으로 옅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이제 네 엄마를 닮았구나.”
이제는 더 이상 아이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스럽다는 말이 어울리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황후와 똑 닮아 있었으니까.
매일 집무실에 두고, 일하지 않을 때는 무릎 위에 앉히고 머리를 빗겨 주기도 했다.
또한 황후를 닮은 지금의 모습을 남겨 두고자 많은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율리아는?”
여느 때처럼 딸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율리아가 방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말을 거역한 적 없고, 순순히 따르던 아이는 처음으로 가출을 했다.
황성을 전부 뒤져 봐도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자 심장이 철렁였다. 몸에 흐르는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고작 어린애가 멀리 가 봤자 수도 안이겠지.”
사라진 율리아를 찾기 위해 기사들을 풀었다. 불안감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지금까지 내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자식에게, 그것도 아직 어린아이한테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자식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죽은 아내를 살아 있는 아이에게 투영하다니. 이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은 놓아주어야 하는데 억지로 내가 붙들고 있는 바람에 자식까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죄책감으로 머릿속이 물들어 갈 때였다. 좀처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기사들을 추궁했다.
“수도 안에 있을 텐데, 왜 찾질 못하는 거지.”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크베르트 공작 부부의 장례식과 겹쳐서…….”
“고작 어린애 한 명이다. 그것도 제국의 하나뿐인 황녀란 말이다!”
찾아야만 했다. 고작 어린애가 멀리 가 봤자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다고 찾지를 못하고 있는 건지.
순간 방문이 다시 열렸다.
“아버지.”
“…….”
“제가 직접 율리아를 찾아보겠습니다.”
아들이 말했다.
그래. 어쩌면 율리아가 오해한 걸 수도 있으니까.
황성 기사들을 풀면 그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 그래서 어딘가에 숨어서 못 찾은 걸 테지.
“그래. 네가 직접 다녀와라.”
불안했다. 황후 다음으로 잃는 건 황녀일까 봐.
잃는 건 사랑하는 사람 한 명으로도 충분했다. 사랑하는 이가 남겨 준 소중한 아이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이의 소중함은 아이가 사라져서야 깨달았다.
“율리아를 꼭 데려와라.”
“네.”
내 딸이 혹여 위험에 빠져 있는 상황은 아닐까 두려웠다. 혹시라도 딸아이마저 내 곁에서 사라질까, 손끝이 떨렸다.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글씨는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리고 걱정됐다.
다시 돌아온다면 황후를 닮은 자식이 아닌, 내 딸인 율리아로 자랄 수 있게 해야겠지.
내가 죽은 아내를 살아 있는 딸에게 연기하라 강요시킨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황성에서 나간 거라면. 나 때문에 만약 황성 밖으로 나가서 변고라도 당했다면.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살아 있을 자격이 있을까?
이제야 현실이 느껴졌다. 이미 내 손은 불안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황후가 숨을 거두던 그 순간의 감정과 흡사했다.
“율리아,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제발 살아다오.
다시 여기로 돌아온다면 네가 바라는 건 뭐든 해 줄 테니까.
너도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어린 너를 더 챙겼어야 했는데.
네가 사라져서야 이걸 깨닫다니, 네가 살아 있지 않다면 전부 부질없는 후회일 텐데.
창밖을 보자 또다시 해가 지고 있었다.
“아버지.”
문이 열리면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아들은 혼자 온 게 아니라 딸과 함께 왔다.
약효가 끝났는지 율리아의 눈동자 색은 원래의 보라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율리아.”
손끝이 떨렸다. 안도감에 드디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내 눈이 제대로 된 게 맞는지 의심되어 손으로 비비다가 조심스럽게 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다친 곳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살폈다.
다행이었다. 옷과 손이 더러워진 것을 제외하고는 멀쩡했으니까.
딸을 품에 안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미안하다, 우리 딸. 아빠가…… 많이 미안해…….”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속죄하더라도 아이의 상처를 완전히 지워 낼 수는 없겠지.
황후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도 된단다, 우리 딸. 아빠가…… 아빠가 네게 많이 잘못했단다.”
“아……빠.”
“그래.”
“아빠는 날 사랑하지?”
수많은 말 중에 내뱉은 말이 사랑하냐는 물음이었기에 심장이 찢기는 통증이 느껴졌다.
황성 밖까지 나갔다가 와서 하는 말이 원망의 말도 아닌 애정의 확인이라는 게 두 눈에서 뜨거운 액체를 떨구게 했다.
“그래. 당연히 널 사랑한단다.”
아이를 사랑했지만, 그 후로 내 마음 한쪽에는 애정의 감정보다는 죄책감이 더 크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 * *
“……이런 일이 있었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충격 그 자체의 내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장인어른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 해답을 얻었다.
“나는 율리아에게 잘못한 게 많네.”
예전에 보았던 그 금발의 소녀는 율리아였던 게 맞았던 걸까.
찬란한 금빛 머리카락을 가졌던 소녀였다는 건 머릿속에 똑똑히 박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눈동자 색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파란색 눈동자였는데.
“전에도 봤던 율리아의 그 불안해하는 정신병도…… 이때 일로 생긴 트라우마니까.”
“……혹시 그 눈에 넣었다는 약의 부작용은 무엇입니까.”
“눈이 파랗게 변하면 시력 저하가 시작됐다는 부작용의 전조 증상이지……. 율리아는 아예 앞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도 있었네.”
그제야 의문이 완벽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율리아, 우리 아주 예전에 만난 적이 있나 봅니다. 내가 봤던 그 금발의 소녀가 당신이었나 봅니다.
제가 한때 당신을 애타게 찾았던 것처럼 당신도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까.
“전조 증상 다음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시력이 돌아오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는 후유증이 길게 남는다네.”
“…….”
“꽤 오랫동안 사용했던 만큼 부작용도 길게 갔고, 아직도 미약하게 남아 있네. 약을 먹으면 괜찮지만……. 모든 게 내 죄겠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릿속에 잊어 버렸던 중요한 무언가가 떠오르려고 했다.
“자네도 이젠 황실의 일원이니, 율리아는 내가 자네에게 직접 말해 주길 원했네.”
“……아.”
“이만 돌아가도 좋네. 오늘은 단지 이 과거를 자네에게 알려 주기 위함으로 불렀으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율리아와 함께 보지.”
“……예, 장인어른.”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잊고 있던 중요한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나왔다.
복도를 지나는 순간 다시 율리아의 어렸을 때의 초상화를 보자 심장이 쿵쿵거리며 미친 듯이 초조하고 불안하게 뛰었다.
마차에 탈 때까지 비정상적인 몸의 반응은 멈출 줄 몰랐다.
“율리아…….”
분명 마차 안인데, 환각을 겪는 기분이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율리아가 스스로 연못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연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처량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붙잡을 수도, 위로할 수도, 만질 수도 없이 가만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체스터…….’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는 세상의 슬픔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또다시 악몽처럼 다가왔다. 분명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로 죽는 모습이.
강제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너는 반드시 후회할 거야.’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저주의 말. 꿈속에서도, 가끔 현실에서도 환청처럼 들려오는 말.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고 지워 내고 잊으려고 시도해 봤지만, 애써 떠올리지 않으면 꿈속의 그녀가 유령처럼 나타나 옆에서 그 말을 속삭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꼭 누군가 목을 조르는 기분이었다.
“저는…… 당신이 죽기를 바란 적 없습니다, 율리아.”
손끝이 덜덜 떨렸다.
눈앞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한 채로 죽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정말 내가 죽길 바란 적이 없어?’
거짓된 환영이다. 가짜였다. 진짜 율리아는 지금 공작저 안에서 쉬고 있으니까. 나는 애써 옆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를 무시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내가 만든 안락한 커다란 새장 속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이런 환영 정도는 떨쳐 내도 되는데.
왜 내 머릿속에서는 잔상처럼 남은 겪지 않은 일들이 떠오르는 건지.
“윽!”
갑작스러운 두통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또다시 악몽은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