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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74화 (74/141)

#74화

이젠 아픈 곳도 없는데 체스터는 나를 너무 과보호했다.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조금 심심했다.

책이라도 읽게 해 주면 좋겠는데, 체스터는 내게 잠을 자길 권유했다. 그래야 빨리 회복된다면서.

나 진짜 멀쩡한데. 아픈 곳 하나 없는데.

“체스터.”

“네.”

“저 진짜 괜찮은데요.”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혹시 당신이 쓰러질지 모르니까요.”

“너무 심심하단 말이에요!”

일하는 체스터한테 이렇게 투정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너무 심심했다.

체스터가 잘생겨서 얼굴을 구경하는 건 흥미롭긴 했지만, 이렇게 떨어진 거리에서 누워 있는 지금은 할 게 너무 없었다.

“율리아, 심심합니까?”

“네.”

“자요.”

아니, 왜 기승전 잠이야? 심심하다고 하면 책이라도 읽을 거냐고 물어는 봐야지!

“왜 계속 재우려고 해요?”

“다칠까 봐 그렇습니다.”

“……걱정해서?”

“네. 걱정됩니다. 또다시 쓰러지면 그때는 당신이 영영 깨어나지 못할까 봐.”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도 더는 투정을 부릴 수가 없잖아…….

그냥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만을 보자, 상념에 잠겼다.

전에 본 그 검은 대체 뭐였지? 대체 왜 내가 누워 있던 침대 아래에 검이 놓여 있던 걸까.

일부러 거기에 놓았다고 하기에는 다급하게 숨긴 것처럼 보였다.

만일 혹시 모를 자객에 대비한 거라면 침대 밑에 두는 것보다 옆에 두는 게 더 효율적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체스터가 나를 죽일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체스터에게 그가 나를 죽이는 꿈을 꾸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 그의 반응은 무척 상냥하고 다정했으니까.

“체스터.”

“네.”

“제가 아플까 봐 걱정하는 거 말고, 저한테 오지 않는 다른 이유는 없어요?”

“네.”

“진짜? 진짜로 없어요?”

나를 사랑해서 이러는 거라고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진짜 이럴 때는 눈치가 없었다.

뽀뽀는커녕 안아 주는 것도 해 주지 않는 사람인데, 내가 뭘 바란 건지.

“율리아,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아뇨! 전혀 잘못한 거 없는데요.”

“아니면 제게 듣고 싶은 말이라도 있습니까?”

“저언혀 없는데요.”

절대로 삐진 게 아니고,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금 서운할 뿐.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체스터가 나와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거였다.

“잘 거예요.”

“잘 자요.”

잔다니까 잘 자라고? 진짜 마음에 안 들었다.

“율리아, 몸이 온전히 회복되면 함께 여행 갈래요?”

“…….”

“싫습니까? 싫다면…….”

“싫다고 한 적 없어요!”

체스터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

“싫지…… 않습니까?”

슬쩍 곁눈질로 체스터를 봤다. 옅은 웃음을 띠고 있는 체스터의 얼굴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저렇게 웃으면 곤란한데……. 이러면 체스터의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잖아!

“……전혀 싫지 않아요.”

“그러면 지금은 좀 자요.”

하지만 내가 잠들면 너는 내 옆에 있어 주지 않잖아.

예전 같았다면 내가 일어났을 때 그의 온기가 침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을 텐데.

내가 독을 먹고 깨어난 이후로는 그의 온기가 침대에 조금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걸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지 않다는 거.

“체스터.”

“네.”

“제 옆에서 같이 자면 안 돼요?”

“……율리아.”

“네? 안 돼요?”

체스터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여기서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나는 꼭 체스터의 옆에서 자고 싶었으니까.

“네? 응? 체스터!”

“……안 됩니다.”

“또…… 저를 외롭게 둘 생각이에요?”

“율리아, 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

“그러면 무슨 뜻인데요? 우리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됐다고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요즘 왜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건지.

체스터는 내게 다가와 내 이마를 한 손으로 잡고 그대로 베개에 눕히며 웃었다.

“율리아, 누워요. 당신이 잠들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까요.”

“진짜?”

“네. 진짜로요.”

체스터는 마지못해 내 옆에 누웠다. 아마도 내가 계속 투정을 부려서 그런 거겠지.

왜 그가 나랑 한 침대를 쓰는 걸 꺼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전생만 하더라도 같은 침대를 못 써서 안달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구니 전혀 적응이 안 됐다.

“진짜 지켜야 해요. 저 놔두고 가면 안 돼요.”

결정했어. 나는 체스터를 믿기로 마음을 먹었다.

체스터가 시선을 돌렸다. 역시 내 남편. 아주 잘생긴 얼굴에 또다시 반할 것 같았다.

“율리아, 자요.”

체스터는 손으로 내 눈을 덮었다. 아마도 빨리 잠들라는 의미겠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체스터가 옆에 없으면 좀 울적할 텐데. 그럴 일은 없겠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분명 체스터가 옆에 있을 테니까.

* * *

“율리아, 당신을…… 잃는 줄 알았습니다.”

체스터는 손을 뻗어 잠든 율리아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공허한 눈동자에 그녀의 형상을 담았다.

그러고는 율리아의 손목을 그러쥐더니 그녀의 손바닥에 입술을 지분대며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말한 꿈처럼. 저도 꿈을 꿉니다.”

체스터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선명한 핏빛 눈동자에 뜨겁게 서린 집착과 소유욕.

“후회하게 될 거라는 그 말, 그 말만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달빛이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와 잠든 율리아를 비췄다.

색색거리는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호흡을 내쉬며 세상모르고 잠든 율리아의 모습은 그림 속 천사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제 행동을 후회한다 해도, 결국 저는 멈추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당신을 커다란 새장 속에 가둘 겁니다.”

* * *

팔랑-.

정신이 들며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슬쩍 눈을 뜨니 내 옆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 체스터가 보였다. 몸을 굴려서 그의 허리를 두 팔로 껴안았다.

“율리아, 일어났습니까?”

“네에, 일어났어요. 모닝 키스 해 주면 안 돼요?”

“네, 안 됩니다.”

체스터의 대답은 단호했다. 네가 안 해 준다고? 그러면 내가 하면 되지!

몸을 움직여서 체스터의 입술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의 표정을 보니 살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율리아.”

“왜요? 싫어요?”

“……싫은 건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런 표정 지어요?”

“곤란해서요. 당신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곤란합니다.”

“제가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체스터는 내 이마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다.

“네. 예쁘고 사랑스러우니 여기서 얌전히 쉬어요. 뭐, 이제 산책 정도는 해도 괜찮겠죠.”

“저 많이 아파요?”

“……아직 완벽히 해독되지 않았다 합니다.”

“그럼 제가 얌전히 있으면 되는 거예요?”

“네. 완전히 나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답답해도…….”

“네, 그럴게요.”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곧 체스터의 생일인데. 마침 초상화가 그때 딱 도착한다고 했으니까. 나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어서 완치되면 좋겠다!”

“네.”

“어서 나아야 체스터가 사랑해 줄 텐데.”

내 말에 체스터는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웃는 얼굴도 잘생긴 내 남편! 심장을 간지럽히는 잘난 외모였다.

“사랑해요.”

“……저도 사랑합니다.”

“같이 산책해요. 체스터랑 둘이 산책하고 싶어요.”

“그러죠.”

“안아 주면 안 돼요?”

체스터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싫지는 않았다.

“안 될 리가 있겠습니까.”

체스터는 가볍게 나를 품에 안았다. 그의 다정한 웃음은 나를 안심시켰다.

이대로 나의 행복이 영원하기를.

“체스터,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어요.”

영원히 멈추면 좋겠다. 그러면 영원히 지금처럼 그와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는 그의 애정을 받는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하고 기쁜 일이었으니까.

“율리아, 시간이 지나도 저는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꼭 그래야 해요.”

체스터가 나를 죽게 만드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또다시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대체 왜 내 침대 밑에 검이 있던 건지.

문득 막 의식이 돌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잘못 들었던 게 아니라면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지금 당신의 눈빛은 나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걸로밖에 보이질 않는데.

그를 믿기로 했지만 다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게 그의 진심인지 모르겠어서.

이미 그는 나를 한 번 죽게 했고, 나의 죽음을 바랐으니까.

“이렇게 예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

이 말이 전부 사탕발림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의 진심이길 바랐다.

체스터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너질 것만 같으니까. 이게 전부 거짓이라면 나는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 생각 변하면 안 돼요.”

“네, 제가 변할 리는 없을 겁니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체스터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고스란히 들렸다. 그의 심장은 나와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체스터를 믿어도 괜찮겠지?

“율리아, 아프거나 몸에 무슨 이상이라도 있으면…… 꼭 말해야 합니다.”

“알았어요.”

그의 걱정을 독점하는 건 좋았다. 그의 모든 것이 오로지 나만을 향하면 좋겠어서.

나는 그를 너무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에게 집착하게 되고, 그의 애정을 의심하는 동시에 갈구하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지금, 그리고 모든 기억이 떠오른 지금. 그를 볼 때마다 첫 번째 삶의 그가 떠올랐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가 또다시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볼까 봐.

“체스터.”

“네.”

나 사랑하는 거 맞지? 진심이 맞는 거지?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닐 거라고 나는 믿고 싶어.

“키스해 주면 안 돼요?”

“네. 지금은 안 됩니다.”

“…….”

“그렇게 보셔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벌써 식었어요?”

“네?”

“저를 향한 사랑이…….”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내 입술 위로 짧게나마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져서.

“체……스터?”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 주세요. 이 이상은 제가 참기 힘들어서요.”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에는 이 이상도 많이 했으면서, 이제야 참기 힘들다고?

대체 뭘 참기가 힘든 건데? 체스터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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