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아니! 이게 아니지. 잠시 잘생긴 얼굴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렸네.
“오빠, 나 체스터 데려간다.”
“그래.”
대충 보니 오빠가 술을 마시긴 마셨지만, 본인은 한 잔 마실 때 체스터에게 두 잔씩 권한 모양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체스터를 앉은 의자에서 일으켰다.
“후우…… 체스터, 가요.”
눈이 풀린 체스터를 데리고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약간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부축할 필요 없이 잘 따라왔다.
마차의 문이 닫혔다. 체스터는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변함없는 아니, 오히려 살짝 풀린 눈 덕분인지 평소보다 더 치명적으로 잘생긴 얼굴은 내 심장에 아주 해로웠다.
“미안해요, 우리 오빠가 워낙 술을 잘 마셔서…….”
“……율리아.”
체스터는 나른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속삭이더니, 그대로 나를 들어 안아 무릎에 앉혔다.
그는 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내 허리를 팔로 단단히 옭아맸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고개를 그의 얼굴 쪽으로 돌렸는데 체스터는 풀린 눈으로 한껏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너무 절륜했다.
“너무 예쁩니다.”
“체스터!”
“싫습니까……?”
“아니…… 싫은 건 아니고요…….”
진짜 심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잘생겨도 되는 거야?
이대로 휩쓸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얼굴이었다. 체스터는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포식자의 눈빛을 띠고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꼭 굶주린 맹수에게 붙잡힌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진짜…… 이건 반칙이잖아요…….”
“사랑합니다, 율리아.”
체스터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벌어진 잇새로 파고들어 여린 살들을 탐하는 말캉거리는 살덩이가 머릿속을 혼탁하게 만들며 안을 간지럽혔다.
그의 목에 팔을 휘감고 나를 원하는 체스터에게 숨결을 내어 주었다. 뜨거운 타액이 안으로 밀려 들어오며 호흡을 어지럽혔다.
“흐읏……!”
내 입술 위에서 떨어진 그의 입술은 이내 천천히 목선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에 닿았다.
피부로 파고드는 짙은 숨결이 너무도 뜨겁고 달았다.
허리를 단단히 옭아맨 그의 팔뚝에 힘이 아까보다 실리면서 더욱 꽉 조였다.
마차 안을 뜨거운 열기가 가득 채웠다.
* * *
“윽……!”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전신의 근육이 고통을 호소했다. 강제로 침대 신세를 지게 될 것 같았다.
술은 내가 아니라 체스터가 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율리아, 깼습니까?”
“으으…….”
“많이 아픕니까?”
어제의 체스터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에는 얼마나 배려해 준 건지 온몸이 부서지도록 강제로 깨달았다.
정말 어젯밤의 체스터는 그냥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율리아?”
“……누구 때문인데요.”
“진짜 미안해요…… 하, 원래는 자제했었는데…….”
“변명.”
“변명이…… 맞죠.”
어깨에 체스터의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그는 나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미안해요, 율리아.”
“…….”
정말 미안해하니까 그냥 넘어가 줄까?
“체스터.”
“네.”
“곧 체스터 생일이잖아요.”
기억을 살짝 더듬자, 곧 체스터의 생일이었다.
“네.”
“갖고 싶은 거 있어요?”
“흐응, 율리아. 당신이 갖고 싶습니다.”
“저요?”
“네. 당신이 갖고 싶습니다, 율리아.”
위험했다. 물론, 내가!
아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당장이라도 잡아먹고 싶어 하는 포식자의 눈빛을 한 체스터와 시선이 얽힐 게 분명했다.
어제 그렇게 잡아먹혔는데, 오늘 아침까지 시달릴 수는 없었다.
“다른 거는요?”
“……안 됩니까?”
“이미 저는 체스터 거잖아요.”
“……정말, 당신이 제 것입니까.”
“네. 저는 체스터 거예요. 그러니 다른 건 없어요?”
“초상화요. 당신과 초상화를 남기고 싶습니다, 율리아.”
초상화? 하지만 최근에 결혼한다고 그려 둔 초상화는 많을 텐데.
“당신만 있는 초상화와 저희 둘 다 있는 초상화를 집무실에 두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요.”
“그러면……!”
“오늘 중으로 화가를 불러요.”
“사랑합니다.”
“오늘은 어제 그렇게 했으니까 자제해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율리아. 오늘은 미안해서라도…… 안 건드릴 테니까요.”
내 뺨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체스터는 내 심장을 어지럽게 간지럽혔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너무 선명해서 좋았다.
이 따스함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게 행복했다.
물론, 내 몸이 좀 많이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양심이 있으면 건들면 안 되죠.”
“……제가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
체스터는 짙은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카락을 한 줌 집어 그 위에 입을 맞췄다.
무엇보다도 체스터의 말에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율리아, 쉬세요.”
“…….”
“화가가 오기 전까지 온찜질이라도 할래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율리아.”
체스터가 방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하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직도 허리랑 다리는 고통을 호소했다.
“아파…….”
진짜 움직일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꼼짝을 못하겠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체스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그리고 엎드려 누워 있는 내 허리에 뜨거운 찜질팩을 올려놓았다.
이게 병 주고 약 주고라는 건가.
“체스터.”
“네?”
“다시는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 게 좋겠어요.”
“……미안해요, 율리아. 자제력을 잃으면 안 됐는데.”
진짜 얼굴이 반칙이었다. 얼굴만 아니었어도 절대 체스터를 사랑하지 않았을 확신이 있을 정도로.
지금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게 현실이라는 걸 알지만 꿈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체스터.”
“네.”
“혼자 있고 싶어요.”
“…….”
체스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기분 탓이길 바라지만 왜 서늘함이 느껴지는 거지?
“바쁘잖아요. 혼자서 잘 쉬고 있을 수 있으니까 일하고 와요.”
“안 바쁩니다.”
“거짓말.”
“정말입니다.”
“바쁘다는 거 알아요.”
내가 아빠랑 오빠를 얼마나 많이 봤었는데.
물론…… 나야 한량 같은 황녀였기에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나태한 삶을 이어 가며 놀고먹었지만, 아빠와 오빠가 얼마나 일에 치여서 살았는지 봤다.
체스터라고 해서 다를 건 없겠지.
결국 체스터도 한 가문의 주인인 만큼 할 일이 아주 많을 텐데. 여기서 나랑 노닥거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바쁜 체스터를 이해했다.
“이따 점심 같이 먹어요.”
“…….”
“제 초상화 갖고 싶다면서요. 빨리 일 끝내고 와요.”
아마 일을 다 끝내고 난 후면 어두운 밤이겠지만 아, 내가 자고 있을 수도 있겠네.
뭐, 이건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니까.
“응? 체스터?”
“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오겠습니다.”
* * *
점심 식사 후, 체스터와 정원을 산책했다.
분명 아침보다는 허리 상태가 나아졌긴 나아졌는데, 아직도 통증이 남아 있었다.
평소보다 더 욱신거렸다. 이제 좀 익숙해졌나 했는데 내 몸은 체스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직도 버거워했다.
“율리아…… 아직도 아파요?”
“……짐승.”
“흐응?”
“짐승 맞잖아요. 어떻게!”
체스터는 내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며 내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세상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바람에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해서 그럽니다, 율리아.”
진짜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아,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뜨거워지는 얼굴을 식혔다.
“율리아, 얼굴이 붉습니다.”
“…….”
“예뻐요.”
체스터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파고들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분명 손길은 다정한데 눈빛은 왜 전혀 다정하지 못한 걸까?
“체스터.”
“네?”
“왜 그런 눈빛으로 봐요?”
이건 애정이라 하기보다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꼭 어젯밤과 비슷한 눈빛이었다. 그저 기분 탓이겠지?
“제 눈빛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그래서 화가는 언제 도착한대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아직 허리도 멀쩡하지 않은데 이렇게 휩쓸릴 수는 없었다.
“응? 체스터?”
“곧 도착할 겁니다.”
체스터는 내 뺨을 유혹하는 것처럼 쓰다듬었다.
이렇게 좁은 거리에서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체스터의 얼굴을 보려면 목을 꺾는 수준으로 올려보아야 했다.
그런데 왜 체스터는 내 눈이 아니라 내 입술을 보고 있는 것 같지? 기분 탓이겠지?
“체스터?”
“……키스해도 됩니까?”
“네?”
“안…… 됩니까?”
심장이 쿵쿵거렸다. 무척 잘생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홀릴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자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읏……!”
“율리아, 싫습니까……?”
“……싫을 리가 없잖아요.”
대답을 하자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가볍게 집어삼켰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내 심장 소리인지, 체스터의 심장 소리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숨을 쉬는 게 버거워질 때가 되어서야 입술이 떨어졌다.
“하아…… 체스터.”
“예쁩니다.”
체스터의 손이 내 뺨을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얼굴이 가까워지는 걸 보니, 한 번 더 키스할 생각인 것 같았다.
다시 그의 입술이 닿으려던 찰나였다. 집사장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주인님, 화가가 도착했습니다.”
다급하게 내게 붙어 있던 체스터를 밀쳤다. 역시 남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밖에서 하는 건 부끄러웠다.
괜히 허락했다는 약간의 후회가 밀려드는 찰나였다.
“율리아, 화가가 왔답니다. 가죠.”
“……네.”
체스터가 내민 손을 꼭 잡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손을 잡는 건 숨을 쉬는 것만큼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익숙해졌다.
안에서는 몽실몽실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미리 마련된 방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체스터와 나란히 앉았다.
“예쁘게 그려야 해요.”
화가에게 당부하고, 무척이나 다정해 보이도록 나는 내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리고 체스터는 내 어깨를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아마도 무척 다정해 보이는 초상화가 나오지 않을까.
화가는 커다란 캠퍼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주 행복하고 다정해 보이는 나와 체스터의 초상화가 그려지길 원하는 만큼 활짝 핀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