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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64화 (64/141)

#64화

“몸은 괜찮아요?”

“……전혀 안 괜찮아요. 여기서 더 하면 진짜 저 죽어요!”

체스터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그의 행동이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율리아.”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체스터의 목소리가 감미로웠다.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늘 힘들다고 아프다고 하면서 잘 걸어 다니잖습니까.”

“……원래는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할 생각이었어요?”

“흐응, 제가 참아야겠죠?”

“각방 쓰고 싶은 게 아니라면, 참는 게 좋지 않겠어요?”

“네. 제가 참아 보겠습니다.”

내 뺨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뺨에서 느껴지던 말캉한 감촉은 이내 입술에서 느껴졌으니까.

체스터의 애정이 맞물린 입술에서 뜨겁게 묻어났다.

* * *

머리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뜨거웠다. 아니,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이내 이마 위가 시원해졌다. 마치 차가운 무언가를 이마에 올려놓은 것처럼.

녹아 버릴 것처럼 뜨거웠던 머리가 시원해지기 시작하며 떠지지 않았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떠졌다.

좁은 시야 사이로 체스터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체스터?”

내 뺨에 닿은 그의 손이 시원했다. 느껴지는 시원함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살짝 시선을 올리자 이마에 놓인 하얀 물수건이 미약하게 보였다. 이마의 열을 식히고 있는 물수건은 아마도 체스터가 해 놓은 것 같았다.

열이 많이 났던 걸까.

“저 아팠어요?”

“……지금도 열이 많이 납니다.”

“걱정했어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아프지 마세요, 율리아.”

이러면 안 되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나를 걱정하는 게 좋았다.

자연스럽게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하지만 그는 내가 지금 상황에 웃는 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건드렸다.

“그냥 감기잖아요. 지금 체스터를 보면 꼭 제가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보여요.”

“감기라는 건 압니다. 다만…….”

“그냥 심한 감기일 뿐이에요. 제가 감기 걸린 원인은 체스터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율리아, 감기는 옮기면 낫는답니다.”

“제 말의 뜻은 전혀 그게 아닌데요?”

“감기는 옮기면 나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온전히 덮었다.

체스터의 사심이 적나라하게 담긴 숨을 쉬기가 버거운 짙은 입맞춤에 규칙적인 호흡은 흐트러졌다.

열이 펄펄 나기 때문인지 그의 입술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벌어진 잇새로 파고드는 그의 말캉한 살덩이는 입 안 곳곳을 헤집으며 점막을 훑었다.

안으로 밀려드는 타액과 살덩이는 뜨거운 내부의 온도를 낮추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한참 동안 뜨겁게 입 안을 탐하던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하아…….”

“쉬세요.”

체스터는 내 이마에 올려둔 물수건을 새로 바꿔 주더니 내 옆에서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일어서는 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가지 마요. 옆에 있어 주면 안 돼요?”

“율리아.”

“아, 혹시 많이…… 바빠요?”

내가 바쁜 사람을 붙잡았다는 생각에 잡고 있던 그의 소매를 놓았다.

혹시 내 목소리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서 그를 귀찮게 군 게 아닌지 걱정됐다. 괜히 나 때문에…….

“전혀 바쁘지 않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났던 체스터는 도로 침대에 앉았다.

“정말?”

“네, 제게 있어서는 당신이 늘 최우선이니까요.”

“진짜로?”

“거짓으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거짓말이길 바라시는 겁니까.”

체스터는 열이 오른 내 뺨에 손등을 가져다 대었다. 그의 손길은 무척 다정하고 세심했다.

그의 손등에 얼굴을 비볐다.

“체스터.”

“네.”

“사랑한다고 해 줘요.”

체스터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방금 내가 내뱉은 말이 그에게는 우습거나 혹은 웃기기라도 했던 걸까?

그는 이런 내 걱정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이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사랑합니다, 율리아.”

내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체스터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침이 고였다.

“흐음…… 율리아, 제게는 아픈 사람을 건드리는 취미는 없는데…….”

“……앞으로도 그런 취미는 만들지 마요.”

“다 나을 때까지 옆에 있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편히 자요.”

“……제가 잠들면 일하러 가도 돼요.”

“아픈 사람을 두고 어딜 가겠습니까. 곁에 있을 테니 편히 쉬어요. 다시 일어났을 때는 죽이라도 먹는 게 좋겠죠.”

체스터는 열로 인해 땀에 젖은 내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헝클어뜨리면서, 내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그의 애정에 집착하는 만큼, 체스터가 나를 갈망하는 게 좋았다.

“그러니 어서 나아요, 율리아.”

“사랑해요.”

나는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체스터의 하루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내가 그의 하루이길 원했다.

체스터의 걱정을 독점하는 것도 좋았다. 그의 걱정은 체스터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단 확신을 들게 했으니까.

“그리고…… 바쁘면 바쁘다고 말해요.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니까요.”

“율리아, 당신은 제게 이기적으로 굴어도 됩니다. 제가 일할 때 당신이 온다면 당신이 우선이니까요.”

“…….”

체스터의 발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우선이라는 사실이. 빈발일지라도, 심장을 간지럽히는 감정을 들게 했다.

* * *

정말 체스터는 내가 나을 때까지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가 무섭게 수도로 돌아갈 준비가 끝나있었다. 이미 전부터 준비해 둔 것처럼 일 처리가 속전속결이었다.

“율리아.”

“정말…… 돌아가요?”

“네. 장인어른께서도 걱정합니다.”

아빠에 대한 언급에 얌전히 그의 손을 꼭 잡고서 선박장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배를 타고 들어왔으니 다시 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며칠 동안 감기로 앓아누웠지만, 그래도 푹 쉬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아픈 곳도 전혀 없었고.

이렇게 보면 체스터가 질병의 원인이 아닌지 의심이 되지만.

바깥으로 나온 순간 상쾌한 공기가 나를 반겨주었다. 며칠은 안에서 꼼짝없이 지냈더니 찬 공기가 반가웠다.

“율리아, 당신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무슨 생각이요?”

체스터는 대답 대신 그저 웃기만 했다. 그의 생각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선박장에 다다른 순간, 전에는 요트가 있었던 곳에 지금은 엄청나게 호화로운 유람선이 눈에 보였다.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 유람선에 탔고, 이내 배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바람을 만끽하고 싶었기에 실내로 들어가기보다는 갑판으로 향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는 감각이 간지러운 동시에 기분이 좋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서.

따뜻하고 포근한 부드러운 천이 내 몸을 덮었다.

“율리아, 바닷바람은…….”

“이제는 나았잖아요. 바깥에 있고 싶어요.”

내 고집에 체스터는 나직한 한숨만을 쉬고는 더는 내게 실내로 가자고 하지 않았다.

단지 담요를 둘러 준 채로 나를 뒤에서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담요가 따뜻한 건지, 그의 품의 따뜻한 건지.

체스터의 품에 폭 안긴 모양새가 되었지만 싫지 않았다.

“이럴 때면 당신을 새장 속에 가두고 싶습니다.”

“……저는 새가 아니에요.”

“네, 당신은 사람이니까. 새장 속에 가둘 수는 없겠죠.”

나를 껴안고 있는 그의 팔에 힘이 실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서 당신을 품에 가둬 두고 싶습니다.”

“이미 저는 체스터의 소유인데요?”

“율리아, 당신은 금방이라도 제 품에서 벗어날 것 같습니다.”

“…….”

“당신이 제게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줄 날개를 꺾어 버리고, 제게서 도망칠 수 없게 당신을 속박하고 싶습니다.”

말은 섬뜩하게 했지만, 체스터가 나를 대하는 행동은 무척이나 상냥했다.

얼굴을 내 어깨에 묻은 채로, 자신을 버릴까 불안해하는 강아지처럼 내 허리를 꽉 껴안았다.

커다란 덩치로 강아지처럼 구는 체스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체스터, 제가 당신의 품에서 도망칠 일은 없…….”

……을 거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단단한 무언가가 내 허리를 꾹 하며 압박했다.

아니, 잠시만! 대체 어느 부분에서?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데, 대체 왜?

나를 껴안고 있던 그의 손이 은밀한 부위로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몸이 흠칫하며 반응했다.

“체스터!”

“안 돼요?”

“……여기서 하자고요?”

정말 제정신 맞아?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여기는 지금 배 위인데, 그것도 머리카락이 이렇게 휘날릴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데, 여기서 하자고?

목소리부터 덜덜 떨렸다.

아니, 물론 내가 앓아누웠을 때 아픈 사람은 건드리는 취미가 없다던 체스터는 정말 건드리지 않았다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하기에는 절대 육지에 도착했을 때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없을 게 분명한데.

정말로 내 앞날이 암담해졌다.

“율리아, 이제는…… 제가 싫습니까?”

“아뇨!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 배 위에서는 좀…….”

쪽- 쪼옥- 쪽-

체스터는 일부러 적나라한 소리가 나게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채로 내 뺨과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저 되게 열심히 참아왔는데.”

“뭐, 뭘 참았는데요?”

“흐응? 무얼 참았는지 궁금합니까?”

아니,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체스터에게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일단 체스터에게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내 허리를 단단히 휘감고 있는 그의 팔을 풀어 보려고 낑낑대며 움직여 봤지만 조금도 끄떡없었다.

그에게서 벗어나려던 시도가 무색했다. 저절로 울상이 되었다.

“체스터, 저 감기 나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잖아요!”

정말 넘어가면 안 되는데, 여기서 허락하면 안 되는데.

계속되는 스킨십에 결국 무너졌다. 아니, 정확히는 잘생긴 얼굴에 무너진 거지만. 그래도 체스터 나름대로 조절은 해 주겠지.

결국 자기합리화였다.

“안 되는 건데…… 특별히 이번만 허락해 주는 거예요.”

“네.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체스터는 내 무릎에 팔을 두르더니 그대로 나를 안아 들었다. 혹여나 내가 떨어지기라도 할까 다른 손으로는 내 허리를 단단히 지탱했다.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안락한 실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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