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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63화 (63/141)

#63화

체스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의 주제를 돌렸다.

“율리아, 저녁 먹고 밤바다 구경 갈래요?”

“말 돌리지 마요.”

“……저는 분명 자제하려 노력했습니다.”

“…….”

“하지만 당신이 제 자제력을 잃게 할 정도로 너무 예쁜 걸 어떻게 합니까.”

결국 체스터의 다정한 웃음과 사탕 발린 말에 넘어갔다.

비록 내가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꼴은 번데기 같아도 그가 연인처럼 다정하게 웃으며 저렇게 말하는데 그러려니 해야지.

체스터의 품에 안긴 채로 침실로 돌아갔다.

바뀐 거라고는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뿐이었다. 영롱함을 내뿜는 불멸을 뜻하는 불순물 하나 보이지 않는 다이아몬드.

깨지지 않는다는 다이아몬드처럼 나와 체스터의 사랑이 부서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달콤하고 따스한 행복이 반지에 박힌 영원을 뜻하는 보석처럼 변치 않길 바라면서.

“……체스터.”

그냥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 심상치 않음을 느껴 심각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네?”

“저 허리 아파요…… 그것도 엄청.”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움직이면 엄청 아팠다.

체스터는 살짝 미소 짓고는 뻣뻣하게 굳은 내 몸을 침대에 눕혀 엎드리게 하더니 내 허리를 손끝으로 지압하기 시작했다.

“윽……!”

아파! 엄청 아팠다. 나도 모르게 고통이 가득 찬 신음을 무의식적으로 쏟아낼 정도로 강도가 있는 안마였다.

체스터의 손에 짓눌리는 허리가 욱신대며 아까보다 더한 통증을 호소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버둥거리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으윽, 아파요! 아파! 아프다고!”

“잠깐만 아플 겁니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팠잖아요! 거짓말하지 마요!”

“끝나면 안 아플 겁니다.”

“하윽……!”

허리 근육들을 재조립한다면 딱 지금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그 정도로 무척 아팠다.

결국 뼈까지 재조립 당하는 지옥 같은 고통을 겪은 후에야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안 아프지 않습니까?”

“안 아플 리가……!”

……있네? 거짓말처럼 아픔이 씻은 듯 사라졌다. 정말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저번보다 가벼워졌던데 앞으로는 제대로 먹어요. 그리고 일단 오늘 저녁부터 먹죠, 율리아.”

“걱정해요?”

체스터의 저런 걱정은 좋았다. 그는 바로 말을 꺼내는 게 아니라 내 턱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대로 잘생긴 얼굴을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내 얼굴 앞에 들이밀더니 배부른 포식자처럼 눈웃음을 짓고는 뜨겁게 속삭였다.

“연약한데 거기에 가볍기까지 한 부인을 걱정하지 않을 남편이 있겠습니까?”

“살찌면 안 예쁘지 않아요?”

“율리아, 저는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든 상관없이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거짓말.”

“흐응? 거짓말 같습니까?”

거짓말이라도 괜찮았다. 그저 체스터가 나를 사랑한다는 그 점 하나만이 기쁠 뿐이었다.

“저는 체스터의 얼굴을 사랑하는 건데.”

“흐응…… 제 얼굴만 사랑합니까?”

“당연하죠!”

“흐음, 앞으로는 더 분발하겠습니다.”

체스터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더니 위험함이 감지되는 눈웃음을 지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배부른 포식자였는데 지금 그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먹잇감을 삼켜 버릴 듯한 뜨거운 눈빛을 내뿜고 있었다.

“다음에 당신의 입에서 나올 때는 얼굴 때문이 아니라 몸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체, 체스터?”

“부인께서 제 얼굴만 사랑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분명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부인 하나 만족을 못 시켰나 봅니다.”

체스터는 방금 멀쩡해진 내 몸을 그대로 밀어 침대로 밀어뜨렸다.

그대로 그의 무릎이 허벅지 사이에 얽혀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손이 치맛자락 안으로 파고들었다.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 아까 밖에서 그렇게 하고도 이러고 싶다고?

“율리아?”

“아, 아까 많이 했잖아요!”

“제가 아까 참아서 그런지…… 부인께서는 제 몸을 사랑하는 것에 포함해 주시지 않았잖아요.”

“그건……!”

그냥 장난인 건데. 어떻게 체스터 얼굴만 사랑하겠어.

물론, 그의 얼굴 역시도 이 감정에 커다란 한 몫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얼굴이 전부인 건 아니었다.

“그냥 장난친 거예요. 어떻게…… 얼굴만 사랑하겠어요. 체스터를 사랑하는 거죠.”

“한 번 더 말해 주세요.”

“체스터를 사랑하는 거죠?”

고작 이 말에 체스터는 내게 무게를 실으며 그대로 나를 꼭 껴안더니 커다란 강아지처럼 굴었다.

조금 무겁긴 했지만, 그의 이런 행동이 귀여워서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사랑해요, 체스터.”

* * *

저녁을 먹은 후에 체스터와 바깥으로 산책을 나왔다.

제복을 풀로 입고 있는 체스터도 좋았지만, 지금처럼 가볍게 튜닉만 입고 있는 체스터도 좋았다.

이런 차림의 체스터는 나만 볼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가 또 보여 주고 싶다는 곳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해가 진 저녁이라 그런 건지.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체스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안아 줄까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안아도 됩니까?”

“아뇨. 그냥 빨리 가요!”

어두워서 그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에서는 장난기가 다분하게 느껴지는 걸 보아 불길했다.

그냥 손깍지만 낀 채로 그와 나란히 걸었다.

“낮에 와도 괜찮지만, 밤에 보는 게 더 예뻐서요.”

체스터가 한 말의 의미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연스러운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니까.

“와아……!”

밤이었기에 은은한 달빛에만 의존해서 걸었다. 하지만 동굴 안으로 들어온 그 순간 신비롭게 발광하는 내부의 모습에 모든 시선을 빼앗겼다.

고여 있는 물은 바닥이 전부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정말 예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너무 예뻐요!”

“…….”

“체스터?”

그는 대답이 없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린 순간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빤히 보고 있는 체스터가 보였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의 의중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체스터는 갑자기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며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더니 내 턱을 부드럽게 손으로 붙잡았다.

“역시…… 당신보다 예쁜 건 존재하지 않나 봅니다.”

“네?”

그는 내 허리를 단단한 팔로 감쌌다. 그대로 내 입술이 체스터의 입술에 잡아먹혔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체스터의 팔이 내 허리를 단단히 옭아매면서 꼼짝없이 그의 품에 갇힌 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녹아들었다.

동굴 바깥으로 선명하게 보였던 달의 형상이 흐릿하게 보이자 맞물렸던 입술이 떨어졌다.

뜨거운 숨이 벌어진 잇새 사이로 가파르게 터져 나왔다.

“여기서 당신보다 예쁜 건 없습니다, 율리아.”

체스터는 나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런 웃음을 지을 때마다 내 허리를 포함한 몸의 근육들이 멀쩡했던 적은 극히 드물었는데.

목덜미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체스터?”

다리와 다리가 교차했다. 그 순간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주 뜨겁게 달아오른 단단한 무언가가 내 허벅지를 꾹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아니, 잠깐만 여기서 하자고?

당황스러웠다. 체스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체스터? 지금 제정신……!”

“저는 지극히 제정신입니다, 율리아.”

갑자기 전혀 아프지 않았던 허리가 욱신거렸다. 허락한 이후에는 내 허리가 또다시 아파질 암담한 미래가 보였다.

몸이 휘청거릴 때마다 찰팍이는 물소리가 발아래에서 울렸다.

“흣!”

그의 손이 다리를 덮고 있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드러난 맨다리 사이로 익숙한 감각이 밀려 들어왔다.

귓가에 느껴지는 뜨거운 호흡. 달달 떨고 있는 내 몸을 단단히 지탱하는 그의 단단한 팔.

발은 차가운데, 발을 제외한 온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랑합니다, 율리아.”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나 싶더니, 체스터는 내 귓바퀴를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내 몸이 쓰러지지 못하게 그의 팔이 단단히 붙잡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 * *

격렬한 움직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쫄딱 젖었다.

슬쩍 체스터를 올려보았다. 그는 정말 제정신이 맞는 건지,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게 맞는지 의심됐다.

물론,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다는 건 아까 뼈가 저리도록 온몸으로 시달리면서 깨달았다.

나는 일어서지도 못하겠는데, 체스터는 잔뜩 물을 먹은 나를 아주 가볍게 안아서 데려가고 있었다.

“율리아, 춥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에취!”

젖은 옷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추운 건 싫었다. 꿈속에서 깊고 차가운 물 속에서 얼어 죽어 갔기에 그런 건지.

유독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싫었다. 특히 머리까지 물에 잠기는 건 무서웠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

“곧 도착합니다, 도착하면 제가 씻겨 줄까요?”

“충분히 혼자 씻을 수 있거든요!”

나는 몸이 달달 떨릴 정도로 추운데, 그는 조금도 추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상의로 튜닉 하나 입은 체스터보다 두께감 있게 입었는데. 추워하는 건 억울하게도 나였다.

체스터의 말대로 금방 도착했다. 그리고 굳이 그는 나를 욕실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나를 욕조 안에 눕혀 주는 쓸데없는 친절과 함께 뜨거운 물까지 틀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겠는데.

“……왜 안 나가요?”

“힘들잖아요.”

“나가요.”

“저희는 부부이고, 아까도 다 봤고, 그러니 굳이 내외할 필요가 있…….”

“나가요.”

“힘들면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제가 씻겨 줄…….”

“됐거든요!”

사양이었다. 어떻게든 체스터를 욕실에서 내쫓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그를 간신히 내보냈다.

이제야 편안한 마음으로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일 수 있었다.

허리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물 밖으로 나오면 더 아플 거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아…… 전혀 감당이 안 되는데…….”

체스터의 넘치는 애정을 독차지하는 건 좋았다. 나도 그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니까.

그런데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일 년이 넘도록 참아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눈만 마주쳤다 하면…….

“안 돼, 안 돼…….”

내 몸을…… 아니, 나를 위해서라도 체스터는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몸부터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살려면 체스터가 자제해야만 했다.

허리가 지끈거렸다.

“으, 진짜…… 무식하게…….”

다 씻고 머리는 물기만 제거한 채, 나이트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와 체스터가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체스터!”

침대에 앉아 있는 그에게 총총 달려가 허리를 껴안으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옷 위로 체스터의 탄탄한 근육이 온몸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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