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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60화 (60/141)

#60화

“이…… 이……!”

“다음부터는 수작 부리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유혹하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물론, 저한테만 한정입니다.”

“…….”

“다른 새끼들이 이러면 개수작이니 상종도 하지 마세요.”

체스터는 말이 다 끝났는지 내 손을 붙잡은 채로 나를 데리고 드디어 바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웃는 그의 얼굴에 입을 다물고 마주 웃었다.

“체스터, 제가 기억이 안 나서 그런데…… 여기 올 때 뭐 타고 왔어요?”

“흐음, 타고 싶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요트! 요트 타고 싶어요!”

“그럼 내일 아침에…….”

“지금! 지금 안 돼요?”

“지금 타고 싶습니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격하게 긍정했다. 체스터는 그런 내 모습에 피식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선박장까지 걷죠.”

“네!”

천천히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요트가 보였다.

하지만 역시 오는 길에 사람 한 명을 보지 못했다. 괜한 생각이라면 좋겠지만 마치 이곳에는 나와 체스터밖에 없는 것 같단 착각이 일렁였다.

“율리아.”

체스터가 먼저 요트로 넘어가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 나 역시도 요트로 넘어갔다.

몸이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중심을 잘 잡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심하세요. 그리고 바다는 추우니 담요 꼭 걸치고 있어요.”

실내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체스터는 내게 담요를 둘둘 둘러주었다. 꼭 번데기가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어…… 체스터, 운전할 줄 알아요?”

“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전복되더라도 당신은 살릴 수 있으니까요.”

“푸흡, 당연히 믿어요.”

내 남편은 뒷모습마저도 잘생겼다. 사실 요트 말고도 배를 타면 꼭 해 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멍하니 체스터를 바라보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체스터, 저 바깥에서 직접 바다 보고 싶은데…….”

“안 됩니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하지만 아직 내 로망이 남아 있단 말이야!

체스터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를 뒤에서 껴안았다. 아, 역시 내 남편 몸이 너무 좋…… 아니, 이게 아니지 참.

“체스터, 진짜 안 돼요?”

“이렇게 애교 부려도 안 됩니다.”

“같이 나가는 것도 안 돼요?”

“후…… 율리아, 이번만입니다.”

“네!”

체스터는 요트를 멈추고 내가 혹여 담요를 놓고 나갈까 걱정하는 건지 지금 두르고 있는 담요를 그는 단단히 고정시켰다.

담요를 꽁꽁 둘러주고서야 내 손을 잡고 실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실외로 나오자 멈춰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눈을 천천히 뜨자 황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분명 출발하기 전에는 해가 떠 있었는데 지금은 해가 지며 저녁노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에메랄드빛이었던 바닷물은 붉은 노을빛으로 영롱하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율리아.”

뒤에서 체스터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들었다. 석양과 함께 드리워진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를 깜빡했다.

다시 몸을 돌려 체스터를 바라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는 한쪽 무릎을 굽힌 채 내게 손을 뻗어 내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손등 위에 경건하게 입을 맞췄다.

체스터는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결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체스터…….”

“앞으로 당신과 함께 할 생각을 하니…… 무척 기쁘고…… 행복합니다.”

노을 때문일까. 그의 얼굴도 붉은빛을 가득 머금은 바다와 같은 색을 띄웠다.

체스터의 애정 어린 핏빛 눈동자에는 내가 담겨 있었다.

“체스터. 제 허리 좀 붙잡아 줘요.”

여기서 체스터와 함께하고 싶은 로망 하나가 있었다. 이 말을 남기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체스터의 손이 내 허리를 붙잡는 동시에 양팔을 옆으로 펼쳐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바닷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드레스와 함께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휘날렸다.

체스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가 요구했던 대로 묵묵히 내 허리를 붙잡았다. 여기서 하나 느낀 게 있다면 허리를 붙잡고 있는 그의 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마치 내가 넘어지거나 선박에서 떨어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단단함처럼 느껴졌다.

두 눈에 들어오는 노을빛 바다는 서서히 밤바다가 되어가며 영롱한 달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그래도 체스터와 해 보고 싶은 로망 하나를 실현했으니 매우 만족스러웠다.

“율리아, 위험합니다.”

“체스터가 잘 잡고 있잖아요!”

몸을 돌려 그의 어깨를 잡고 내려오려다가 가장 높은 갑판 위에 있는 지금은 내 시선이 체스터보다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체스터를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늘 체스터가 나를 내려다봤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율리아?”

“떨어뜨리면 안 돼요.”

체스터의 목에 팔을 휘감고 그대로 그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입술이 맞닿은 상태에서 그의 팔이 단단하게 내 허리를 옭아매더니 갑판에 있는 나를 가볍게 들어 안았다.

입술을 벌렸는데 닿아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체스터?”

“이 이상은 제가 자제를 못 할 것 같아서요.”

평소에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내더니 이제 와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한 채 뒤로 내뺐다.

“자제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해가 지고 있잖아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그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겹쳤다.

체스터의 혀가 쉬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입을 벌리자 자연스럽게 그의 혀가 잇새 사이로 파고들었다.

입 안에서 퍼지는 그의 숨결은 뜨거운 동시에 달았다. 머릿속은 온통 체스터로 잠식되어 갔다.

바다라서 그런지 약간의 비린내가 섞여들었으나 그와의 키스는 모든 걸 잊게 할 정도로 달콤했다.

맞물려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하아…….”

“율리아.”

체스터의 눈동자는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그는 한 팔로 내가 떨어질 수 없게 엉덩이를 받쳤다.

허리를 단단히 붙잡던 그의 팔은 내 뒷머리로 향하더니 그대로 내 머리를 그의 어깨로 당겼다.

내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에 침대가 있습니다.”

체스터의 품에 안겨 도로 실내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나를 침대에 눕히고는 내 뺨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목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체스터의 입술은 그대로 목선을 타고 움직여 내 목덜미를 한입에 물었다.

“흣, 체스터……!”

체스터는 여린 살을 치아로 짓이겼다. 그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간지러웠다.

본능적으로 몸이 떨리며 나도 모르게 그를 밀어냈다. 그러자 체스터는 내 손목을 아프지 않게 잡고는 그대로 꾹 짓눌렀다.

얽힌 다리 사이로 그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급해요?”

“하아…… 율리아.”

“그…… 아까는 싫어서 밀어낸 게 아니라 간지러워서 저도 모르게…….”

“사랑합니다.”

체스터는 내 뺨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나를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행동과는 다르게 그의 눈빛은 한 마리의 늑대였다.

“먼저 저를 유혹한 건 당신입니다, 율리아.”

“……그렇죠?”

“그러니 중간에 약한 소리 하면 안 됩니다. 울며 애원해도 안 봐줄 겁니다.”

체스터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 입술을 겹쳤다. 숨을 쉬는 방법을 잊을 정도로 농밀한 달콤함에 허덕였다.

내 손목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은 서서히 손바닥 쪽으로 올라오더니 그대로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웠다.

“율리아, 중간에 힘들면 말하세요.”

“멈출 거예요?”

“멈추지는 못하고, 천천히 하려 노력해 보겠습니다.”

뻔뻔스러운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맞닿더니 내 입술을 혀로 핥아 올리며 열린 입술 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그의 존재에 몸이 이리저리 비틀렸다.

체스터의 얼굴에 번지는 옅은 웃음과 동시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다리가 그 손아귀에 붙잡혔다.

“으흑!”

끝까지 밀려드는 지독한 압박감에 입에서는 힘겨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어지러운 고통과 서서히 퍼져 오는 환희가 엉망으로 뒤엉켰다.

안을 꾹 짓누르는 감각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허리가 휘어졌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내게서 터져 나왔다.

“흣, 체스터…….”

목소리에서 떨림이 한가득 뚝뚝 묻어났다.

너무 힘들었다. 이 뜨거운 열기를 더는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이.

체스터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힘들어요…….”

“버텨요, 율리아.”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달래는 말이 아니라 버티라는 말이었다. 저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오늘 밤은 길어질 게 분명하다는 것을.

* * *

“율리아.”

색색대는 고른 숨결을 토해 내며 곤히 잠든 나신의 상태인 율리아의 턱 밑까지 이불을 덮어 준 체스터는 바닥에 뒹구는 옷을 챙겨 입었다.

체스터는 옷을 다시 입고 잠든 그녀의 옆에 앉아 땀으로 젖은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 뒤로 넘겨주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율리아의 굳은살은 물론 생채기도 보이지 않는 작고 흰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그 위에 입술을 문댔다.

“드디어 당신을 손에 넣었습니다.”

체스터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깊이 잠든 율리아를 살살 건드렸다.

새하얬지만 이제는 붉은 흔적들로 도배된 그녀의 목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졌다.

“근데 왜 불안한지. 왜 요즘 당신이 눈앞에서 죽는 꿈을 꾸는 건지. 분명 이제 당신을 손에 넣었으니 기뻐야 정상일 텐데.”

체스터는 율리아의 머리카락을 한껏 흐트러뜨린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운전석으로 가 요트를 선박장까지 몰았다.

율리아를 요트에서 잠들게 할 수는 없기에 그녀의 몸을 이불로 감싼 후에 그 위에 담요까지 덮어 두어서야 가볍게 공주님 안기로 요트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한 빛을 뿜어대는 율리아의 은빛 머리카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아…… 정말 전부터 느꼈지만, 너무 약합니다. 잘 참고 있었는데 먼저 유혹해 놓고 또 먼저 지쳐서 잠들고…….”

품에 안은 율리아의 호흡이 자극적으로 피부에 닿았다.

체스터는 그녀를 좀 더 품에 안고 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별장 안으로 들어오자 율리아가 깨어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사용인들이 지금은 가득했다.

“마님은 저희가…….”

“됐다.”

체스터는 자연스럽게 욕실로 향해 욕조에 손을 넣어 수온을 직접 확인하더니 땀에 젖은 율리아를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빤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잠들어서 들릴 리 없는 율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율리아, 당신을 보면 심장이 아픕니다. 대체 이유가 뭔지.”

당연하게도 율리아는 대답이 없었다. 체스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뽀얀 그녀의 둥근 어깨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죽는 꿈…… 개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합니다.”

체스터는 물기 어린 율리아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고는 여린 호흡을 내뱉는 그녀를 두 눈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의 핏빛 눈동자에는 선명한 불안감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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