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체스터는 미약한 숨결마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율리아의 호흡을 모조리 삼켜댔다.
잠든 그녀가 힘들어하며 뒤척이고 밀어내는 등의 피하는 행동을 보여서야 그는 입술을 떨어뜨렸다.
“모자랍니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아랫입술을 쓸던 손이 천천히 내려가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그리고는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그는 그녀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혀와 혀가 뒤섞이는 자극적인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숨을 쉬기 버거워하는 율리아의 반응에 체스터는 맞닿아 있는 입술 안으로 호흡을 불어 넣었다.
그는 한참이나 그녀의 입 안을 탐하고 나서야 입술을 떨어뜨렸다.
“우응…….”
“아무리 삼켜도 갈증이 납니다.”
그는 한참이나 율리아의 입술에 취해 있던 것치고는 그리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빛은 위험한 맹수마냥 번뜩이고 있었다.
체스터는 새하얀 율리아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녀의 뺨을 쓰다듬던 그의 손은 천천히 턱 아래로 내려가 가냘픈 목에서 도드라진 쇄골까지 매만졌다.
“왜 닿으면 닿을수록 갈증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더 원하게 되는 건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은 하지도, 건들지도 않았다.
“당신을 온전히 소유해서 제 품에 가두면 타오르는 갈증이 해소될까요.”
그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한 줌을 한 손에 쥐고는 그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노골적인 욕망이 담긴 눈동자에는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율리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당신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쁠 줄 알았는데…… 왜 마냥 기쁘지 않았던 건지.”
체스터는 깊은 잠에 빠진 율리아에게서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어내지 않았다.
그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는 잠든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
색색 대는 안정적인 호흡.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 따뜻한 체온.
닿아 있는 피부로 느껴지는 그녀의 존재에 한 팔에 휘감기는 얇은 허리를 조금 더 끌어당겨 몸에 밀착시켰다.
그런 그녀의 목덜미에 그는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율리아, 당신한테서 달콤한 향이 나요. 참기 어려울 정도로.”
그녀의 체향을 코끝으로 한껏 들이마시자 약에 취하듯 정신이 몽롱해지는 착각이 일렁였다.
달콤한 과실의 향이라는 약에 취한 사람처럼 그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순간 그는 하반신에 온 신경이 쏠리는 걸 느꼈다. 한숨을 토해내며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착한 생각을 해야겠네요.”
* * *
정신이 들자마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내 옆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며 아침부터 일을 하고 있는 체스터의 모습이었다.
역시 아침부터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침이라 그런 건지 그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옷차림은 새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만을 입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 그런 체스터의 허리를 두 팔로 휘감았다.
“율리아?”
머리를 그의 허리에 파묻고는 뺨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는 밀어내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허리를 휘감은 팔에는 그의 탄탄한 복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침은 여기로 가지고 오라 할까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잠시 후 하녀가 들어왔다.
“아침 식사는 여기서 하지.”
“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하녀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이내 체스터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감미롭게 들려왔다.
“율리아, 일어나요.”
“모닝 키스해 줘요. 그럼 일어날…….”
더는 말이 이어지지 못했다. 내 입술을 그의 입술이 덮었으니까.
짧게 닿았다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맞물렸다. 그걸로 모자라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 그의 혀가 파고들었다.
그는 장난을 치듯 혀로 이곳저곳을 툭툭 쳤다.
입 안으로 들어온 그의 혀를 아프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고 장난스럽게 아주 살짝 깨물었다.
그의 손이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정말 체스터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충만하게 들었다.
숨이 막히도록 그가 주는 달달한 감정에 취해 있던 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확 들면서 떨어질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체스터를 강하게 밀쳤다.
“아침 먹어야죠!”
화들짝 놀라서 그의 품을 벗어나 침대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그의 팔 사이에 갇혔다.
하녀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지 가지고 온 음식들을 테이블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세팅을 끝내자 알아서 방 밖으로 나갔다.
“네. 아침 먹어야죠, 율리아.”
“체스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체스터는 갑자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괜히 불안하기만 했다.
순간 그의 팔이 내 무릎 아래로 파고들었고 그의 다른 팔은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대로 몸이 들리면서 그의 품에 쏙 안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흐응……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아침 먹어야죠.”
“체스터! 내려줘요!”
“네. 곧 내려줄 겁니다, 율리아.”
체스터는 무슨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그래도 그에게 사랑받는다는 게 느껴져서 그의 품에 안긴 채 얌전히 있었다.
그는 음식이 세팅 된 테이블의 의자에 나를 조심스레 앉혀주었다.
이제 아침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내 입술 위로 짧게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토끼마냥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체스터를 바라보았다.
“결혼해서 매일 이렇게 지낼 거라고 생각하니…… 당신과 결혼한 이후의 삶이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어…… 으음…….”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제가 당신의 모든 시간을 독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체스터의 발언에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황급히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뭐라도 씹으면 날뛰는 심장 소리가 잘 안 들릴까 싶어서.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그의 얼굴을 봤지만 도로 시선을 음식 쪽으로 되돌렸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한쪽 턱을 괸 채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아직은 부끄러웠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삼켰다.
“오늘도 자고 갈래요?”
“……네?”
갑작스런 그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농담입니다. 아직은 결혼 전이니 집에 고이 보내드려야죠.”
“……으음.”
“아직 당신은 황실 소속이니까요. 그리고 아버님께 밉보였다가 당신과의 결혼이 늦어지는 건 더더욱 싫거든요.”
“우리 오빠가 결혼하는 대로 우리도 결혼해요.”
이번에는 체스터가 내 말에 놀란 듯 그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가 이내 눈매를 곱게 휘었다.
“네. 그 말 지키셔야 합니다, 율리아.”
“당연하죠. 우리 오빠 결혼하고 한두 달 후에 우리도…….”
체스터가 나를 와락 껴안으면서 더는 말이 이어지지 못했다.
“어서 당신이…….”
“체스터?”
“……온전한 제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흐음…… 저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 온전히 가질 수가 없을 텐데.”
“율리아.”
그래도 그의 목소리에서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꽤나 절절했다. 혹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간절함인지.
“저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네. 절대로 저를 놓치지 마요. 제가 순순히 붙잡혀 줄 때 꽉 잡고 놓치지 마요.”
“당신이 도망치면…… 다시 잡을 겁니다. 그러니…… 제게서 도망치지 말아요, 율리아.”
체스터가 나를 꽉 안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조금도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황성으로 돌아갈게요. 더 늦으면 분명 아빠랑 오빠가 걱정할 거예요.”
“……율리아. 제가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다면 욕심이겠죠.”
“결혼하면 질리도록 보고 살 텐데. 당연히 지금은 좀 참아야죠.”
“그래야죠. 갈아입을 옷은 따로 준비해뒀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안고 있던 나를 놓아주었다.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옷…… 갈아입어요.”
그리고는 체스터가 방 밖으로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녀가 화려한 드레스를 가지고 들어왔다.
하녀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정말 능숙한 손으로 내게 드레스를 입혀주기 시작했다.
평소에 입는 것보다 화려한 편인 드레스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면 이 드레스가 체스터 취향인 걸까.
하녀는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테이블에 놓인 접시들을 치우고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여기 사용인들은 말이 거의 없는 듯했다.
그 모습이 황성과 별 차이가 없었다.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
막상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하루를 함께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체스터와 함께 있고 싶다는 충동이 강렬하게 드는 건지.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체스터가 들어왔다.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그래요?”
“네. 황성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같이?”
“네. 황성까지 에스코트해 드리겠습니다.”
체스터는 살포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말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오래 늘어났다는 거였다.
올라가려고 씰룩대는 입꼬리를 간신히 차분히 유지시킨 채로 최대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표정을 하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가요.”
그리고 내 앞에 내민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렸다.
다정한 연인처럼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으며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
체스터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 앞에 내밀어진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려온 순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오빠와 눈이 마주쳤다.
“어…… 오빠?”
“걱정했잖아.”
오빠는 체스터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떼어내더니 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걸로 모자라 오빠는 체스터를 무척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오빠…….”
당장이라도 싸움이 날 것만 같은 분위기에 나서려는 순간 오빠는 내가 움직이려는 것을 막았다.
아니, 갑자기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