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체스터가 무슨 말을 내뱉을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기다렸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 눈이었지만 그래도 내일 디저트 카페에 가자고 할 줄 알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흐트러진 앞 머리카락에 닿았다.
“율리아…… 아무리 당신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게 굴어도……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의 건강입니다.”
“…….”
“당신이 쓰러졌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몰라요! 이제 돌아가요.”
그의 손을 피해 고개를 홱 돌렸다.
내 이마를 건들던 그의 손가락은 멈칫하며 더는 다가오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
“율리아. 저는 그저 당신이…….”
“돌아가요.”
“…….”
“제가 먼저 찾아갈 때까지 찾아오지 마요.”
“율리아!”
이제는 고개만 돌린 게 아니라 그에게서 온전히 등을 돌렸다.
“……당신이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안 아파요.”
“아버님도 먹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하나는 먹어도 괜찮다고 허락했습니다.”
“나가요, 체스터.”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체스터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같은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오지 마요. 제가 오라고 하는 게 아니면 먼저 찾아오지 마요.”
“율리아.”
“당분간 보고 싶지 않아요.”
“…….”
“절대로 찾아오지 마요.”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내 위로 드리워졌다.
체스터는 이불을 내 목까지 덮어주고는 자신이 할 일은 끝난 사람처럼 내게서 멀어지는 발소리를 내고는 사라졌다.
문이 있는 방향으로 다시 몸을 틀었다.
그는 내 쪽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정말 나가려는 사람처럼 미련 없이 문 앞까지 걸어갔다.
바로 문을 열지는 않았고 잠시 앞에서 멈췄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체스터는 나가려는 듯 문을 열었다.
“크흠!”
그가 문을 열자 오빠와 헛기침을 하는 아빠가 있었다.
당연히 돌아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앞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디저트의 양을 제한한 걸 미안해하는 걸까. 아니면 내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이라도 있던 걸까.
“왜 안 갔어요? 아빠랑…… 오빠랑 왜 아직도 거기에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아빠와 오빠는 내 눈을 슬쩍 피했다.
계속 내게 등을 보이던 체스터는 몸이 온전히 방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살짝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꿈속의 그와 겹쳐 보여서.
“율리아,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 말만을 남긴 채 그는 더는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나갔다.
* * *
체스터는 왜 반역을 일으켰냐는 질문에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가 처음으로 내게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 가장 원했던 그의 웃음을 보았다.
그의 표정에 담긴 웃음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지만.
“황족이…… 아니, 황가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이런 거야?”
체스터는 피가 흐르는 검을 집어넣고 내 앞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그와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게 가깝게 있고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가 끼고 있는 검은 장갑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궁금하십니까.”
“황족이 되고 싶었다면…… 내가 있었잖아. 내가 널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대체 왜…….”
두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질 못했다.
그는 피가 묻어나는 장갑 낀 손으로 우악스럽게 내 턱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당연하게도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여자 때문이야? 클로이 후작 영애가 그렇게 좋아?”
“…….”
“나는 네가 그 여자한테 관심을 두기 전부터 널 사랑했잖아!”
“시끄럽습니다.”
“어째서…… 고작 그 여자한테 생긴 관심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킨 거야?”
“…….”
“체스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의 눈빛은 조금의 미동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고작 관심이 생긴 그 여자 때문에 널 본 그 순간부터 사랑한 나는 한 번도 봐주질 않은 거야?”
“…….”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데…… 정말 오래 기다려왔는데…….”
미쳐가는 건 나일까. 아니, 이미 나는 미친 사람이었다.
소중한 가족이 죽고, 엄마와 다름없는 내 유년 시절을 책임져 준 유모가 눈앞에서 죽는 걸 목격했는데.
어떻게 제정신일 수가 있을까.
“드디어 찾았는데…… 왜 내가 아니라 그 여자인 거야?”
“그건 알 필요 없습니다.”
체스터는 나른한 눈빛을 한 채로 붙잡고 있던 내 턱을 아까보다 강하게 짓눌렀다.
“황녀 전하께서는 참…… 궁금하신 게 많습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반역을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아닙니다. 황녀 전하께서 너무 귀찮게 굴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겁니다.”
내가 고작 귀찮게 굴었다는 이유로 반역을 일으키는 게 정상적이야?
내 소중한 사람들이 끔찍하게 도륙당할 만큼 내가 잘못한 일이야?
“계속 회피하지 않으십니까. 이제 주변을 좀 둘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당신의 쓸데없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그는 억지로 내 고개를 돌렸다. 결코 눈에 담고 싶지 않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 들어왔다.
태양 아래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은빛 머리카락은 검붉은 피가 잔뜩 엉켜 있는 걸로도 모자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걸어서 아빠와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기어서 움직였다.
내가 기어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체스터는 붙잡고 있던 턱을 놓아주었다. 턱에서는 진득한 액체가 묻은 게 느껴졌다.
아마도 지금 내 얼굴은 피범벅이겠지.
“아……빠?”
기어서 아빠와 오빠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릎이 욱신거리며 통증을 호소했지만 그 아픔은 이내 충격으로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손을 뻗어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아빠의 뺨을 살며시 건드렸다.
아빠에게서는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죽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덜덜 떨고 있는 손을 움직여 아빠보다도 더 처참하게 죽어 있는 차마 감지도 못한 오빠의 두 눈을 손으로 덮어주었다.
“미안해…… 미안해, 오빠…….”
살아남으라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오빠가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나를 살리려고 발악했는데, 내가 살아남지 못해 줘서.
내가 죄인이었다. 나 때문에 내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끔찍하게 죽었다. 나만 아니었어도 이들은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살아 숨 쉬는 게 죄였다. 나는 태어난 것부터가 죄였다.
“내가…… 내가…… 살아 있으면 안 되는 건데…… 나는 태어나선 안 되는 존재였는데…….”
내가 태어나면서 엄마를 죽어 가게 만들었고, 화목했던 가족의 행복을 망친 건 온전히 나의 존재였는데.
엄마가 죽는 게 아니라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냥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렸어야 했는데. 나라는 존재는 황성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해악이었는데.
괜히 이때까지 살아 있어서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나의 존재는 비극이었다.
“끕, 끄윽……!”
두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대리석은 가족의 피로 검붉은색을 띠며 차갑게 말라붙어 있었다.
내가 입고 있던 새하얀 옷은 시뻘건 핏물로 검붉게 얼룩져 있었다.
“그래도 황녀 전하께는 자비를 베풀어 자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
챙강-
체스터는 마치 자비라도 베푸는 어조로 내 옆에 짧은 단도를 던졌다.
“……단 한 순간도 나를 사랑한 적 없어?”
“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차갑게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뻔히 답을 아는 질문을 굳이 한 것은 미련을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그저 제대로 대답을 들으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서.
“나를…… 살려줄 생각도 없……지?”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흔들림 하나 없는 매정한 눈동자만을 보일 뿐이었다.
단도를 손에 쥐고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일어나려고 했다.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휘청거리며 잠깐이라도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스운 건 고작 이 작은 칼조차도 무겁게 느껴져서 일어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점이었다.
단도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흔들리는 다리로 체스터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 늘 안기고 싶어 했던 그를 껴안았다.
“마지막으로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유언입니까.”
머리 바로 위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
지금의 이 행동은 마치 곧 죽을 사람에게 자비 정도는 베풀어주겠다는 듯 딱히 나를 떼어내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에 그의 허리를 꽉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말 한마디 내뱉는 게 이토록 두려웠던 걸까.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말들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진심으로 사랑했어, 체스터.”
“네, 압니다.”
“하지만…… 다시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네. 죽어서는 영원히 저를 원망하세요.”
“…….”
이제 됐어. 이걸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났어.
이제 그에게 미련은 없었다. 그의 사랑을 원했지만 끝끝내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내 진심을 지금 털어놓았으니 이 감정은 이곳에 두고 떠날 수 있겠지.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는 아까 그가 있었던 창문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 내 행동은 유흥인 걸까. 딱히 내 행동을 저지하지도 나를 바로 죽이지도 않았다.
“체스터…….”
다시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너를 증오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을 거야.
너에 대한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너를 향했던 모든 감정들을 도려낸 채로.
하지만 조금은 네가 고통받기를 원하고 있어. 네가 조금이라도 아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길 바라.
그리고 만약 내게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단 한 순간도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넘치는 행복에 겨워하는 삶.
신이 존재한다면 이 모든 기억을 지워주세요. 그리고 다음 생은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그들이 죽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너는 반드시 후회할 거야.”
간절한 소원을 삼키고 울컥거리는 감정을 뒤로한 채, 그대로 차가운 겨울 호수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