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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40화 (40/141)

#40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사랑하는 걸 알면…… 적어도…….”

적어도 그렇게는 말하지 말았어야지.

두 눈에서는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참으려고 해도, 도저히 이 슬픔과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잖아…….”

“황녀 전하께서는 제게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온건적으로 널 대했지?”

이제는 필요 없어.

네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이제 예전처럼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갈구하지 않을 거야.

내가 가지지 못하는 건 없으니까.

나는 황녀로, 이 제국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니까.

권력으로 너를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 아빠는 충분히 내 뜻에 동참해줄 사람이니까.

“절대로…… 네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체스터!”

“…….”

“내가 가지지 못하는 건 없어. 이제는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지금까지 네 애정을 바랐지만, 이제 더는 나를 향한 온기가 가득한 네 눈빛조차 볼 수 없을 테니까.

내가 원하고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데도, 남에게 빼앗길 마음도, 넘겨줄 생각도 없으니까.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이제 네가 날 싫어해도 내가 너를 놓지 않을 거야.”

지금껏 너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최대한 미움을 받을 만한 행동을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미움받지 않으면 너를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게 돼.

“황녀 전하, 허튼짓을 할 생각은 삼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무 너한테 무른 사람이었던 것 같아. 네 말대로 나는 황녀인데…….”

미련하게 네게 사랑을 갈구했던 걸까.

그냥 권력으로, 너와 결혼을 추진하면 될 뿐이었는데. 바보같이 사랑을 원했다.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네가 나를 온기가 넘치는 눈동자로 봐주지 않을 거라는 걸 인지했는데.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희망 때문에, 권력으로 짓누르지 않은 내가 미련했다.

내게는 힘이 있는데도!

“우리는 결혼할 거야. 네가 거부할 수는 없어.”

“…….”

“네가 원치 않아도 해야 할 거야. 나는 제국의 유일한 황녀고, 그 황녀는 너를 원하니까!”

나는 내 거를 결코 빼앗길 생각이 없어. 그리고 넌 내 거니까.

“이제 더는 네게 거부할 권한을 주지 않을 거야.”

헌신적이던 애정은 집착으로 물들었다.

* * *

“으으…….”

“율리아, 정신이 들어요?”

“……체스터?”

힘겹게 눈을 뜨자 체스터의 얼굴이 보였다.

팔을 뻗어 그를 끌어당겼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녹아나서 그런 건지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는 약간 곤란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만 들릴 정도로 귓가에 입술을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으음…… 율리아, 지금 여기에 저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를 팍 밀어냈다.

주변을 둘러본 순간 얼굴이 토마토마냥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게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내 방 안에는 체스터뿐만이 아니라 아빠와 오빠, 그리고 유모를 비롯해서 황궁의까지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 숨고 싶었다.

“어…… 음…… 다들 걱정했어요?”

부담스럽다기보다는 부끄러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 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체스터를 그렇게 끌어안았으니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율리아. 아프면 말하라고 했잖아.”

“아니……. 원래는 아프지 않았는데……. 진짜 변명이 아니야, 오빠!”

“아프지 않았던 애가 갑자기 쓰러져?”

“내가 아프지 않았다고 했으면 안 아팠던 거야!”

이제는 괜찮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체스터에게 저지당한 채 도로 침대에 눕혀졌다.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직은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아니…… 저 진짜 안 아프고 완전 멀쩡한데…….”

“괜히 움직이셨다가 또 쓰러지시면 어떡합니까.”

이렇게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일어나겠어. 그냥 누워 있어야지.

시선이 집중되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전부 내 업보겠지.

“오빠.”

“그래, 율리아.”

“빨리 결혼해.”

“…….”

“내가 또 쓰러지기 전에 어서 결혼해. 죽기 전에 오빠가 결혼하는 건 봐야겠어.”

그냥 오빠가 빨리 세실과 결혼해서 원작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이게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확신을 원했다.

이제는 체스터를 보면 심장이 쿵쿵거리며 반응했다.

마치 꿈속에서 내가 체스터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척이나 흡사했다.

내 감정은 꿈과 동화되어가고 있는 만큼, 이후에 일이 꿈대로 흘러갈까 봐 초조했다.

내 운명이 오빠의 손을 잡고 도망가다가 나 혼자 남은 그 악몽의 내용처럼 흘러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빠?”

“그래. 네가 그리 재촉한다면 해야지.”

“진짜?”

“응. 그래도 클로이 후작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은 어느 정도 주어야겠지.”

“괜찮아! 그건 당연한 거잖아!”

“그래.”

“……걱정시켜서 미안해. 근데 나 정말 아프지 않아! 나 아픈 거 아니야!”

오빠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 내 말을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의심되면 황궁의도 있으니까…….”

슬쩍 황궁의에게 눈치를 줬다. 나는 멀쩡하니까 어서 진맥을 살펴서 오빠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 주기를.

가족들한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황궁의는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이내 내 옆으로 오더니 진맥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픈 곳은 없으니 결과야 뻔했다.

“황녀 전하…… 큰 병은 없지만 몸이 쇠약해진 건 사실입니다.”

뭐, 그 정도는 그럴 수 있지.

“음식량을 늘리는 게 좋겠습니다.”

“…….”

“그리고 당분간 디저트는 줄이는 게 좋겠습니다.”

“네?”

잠시만 이건 아니지!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가 있어!

“황녀 전하께서는 밥 대신 디저트를 더 많이 드시지 않습니까.”

“아…… 그건 맞지만…….”

“디저트 양을 줄이지 않으면 식사량이 늘지 못할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달달한 디저트는 내 삶의 낙인걸.

폭신하고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데 그 맛있는 걸 줄이라고?

없던 병이 충격으로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동안…… 아니 한 달은 황녀에게 디저트는 하루에 하나만 먹게 하도록.”

“아……빠.”

“황명이다.”

그런데 거기에 기름을 부은 건 아빠였다.

“아빠!”

“율리아…… 네가 혹여나 다시 쓰러질까 봐 겁난다.”

“아빠! 그래도!”

“레아도! 처음부터 아팠던 게 아니었다.”

엄마의 이름을 언급하는 아빠의 모습에 저절로 입을 다물었다.

엄마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중 아빠가 가장 무너지고 변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에 가장 많이 슬퍼했던 사람.

그만큼 내가 엄마처럼 아파하다가 시름시름 앓다 죽을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엄마의 건강이 급작스럽게 나빠진 원인은 나의 탄생에 있었다. 차라리 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알겠어요.”

“너를 위해서란다, 율리아.”

“알아요. 이제 혼자 있고 싶어요.”

“……그래.”

혼자 있고 싶다는 말에 모두가 나가려고 했다. 그들을 따라 나가려는 듯 일어서는 체스터의 옷소매를 꾹 잡았다.

“가지 마요.”

“…….”

“체스터만 남고…… 전부 나가줘요.”

오빠가 약간 납득을 못하겠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행동을 취했지만 이내 아빠가 그런 오빠를 저지했다.

다행히 체스터만 남고 전부 방 밖으로 나갔다. 더는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방 안에는 나와 체스터 단둘만이 남았다.

“체스터.”

“네.”

“일단 앉아요.”

체스터는 옆에 놓인 의자를 침대에 가까이 옮긴 후 앉았다.

“괜찮습니까.”

“진짜 안 아픈데……. 아픈 곳 하나도 없는데 아빠가 괜히 크게 반응하는 거예요.”

“율리아.”

“내일 카페에서 데이트해요.”

“……율리아, 방금 황궁의가 디저트를 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도 황명을 내리셨고요.”

“안 아파요.”

“걱정됩니다.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그건…….”

“갑자기 또 아프다며 쓰러지셨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함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내 손을 꽉 붙잡고 처연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쓰러진 이유는 아마도 그 괴이한 꿈 때문이었다. 절대로 내 몸에 이상이 생겨서 쓰러진 게 아니었다.

하지만 차마 그 꿈에 대해 말하기는 꺼려졌다.

“체스터.”

“네.”

“그래도 케이크는 먹고 싶어요. 아빠 몰래 먹으면 괜찮을 거예요.”

“……율리아.”

“네? 안 될까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아빠가 황명으로 내게 디저트 섭취량을 제한했다면 이런 편법이 내게는 있었다.

“네? 체스터?”

“하아, 율리아…… 그건 곤란합니다.”

“역시…… 안 되나요.”

그럼 나 진짜 한 달간 1일 1디저트만 해야 되는 거야?

20년이나 먹어왔던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던 그 디저트들을 하루에 하나밖에 먹질 못한다고?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율리아, 대신 고기를…….”

“초콜릿. 케이크. 마카롱. 파르페. 쿠키. 머랭쿠키.”

“…….”

“먹고 싶은데. 내일 체스터랑.”

목소리에 서운함을 담았다.

그의 얼굴을 눈동자만 슬쩍 움직여서 보는 순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서렸다.

체스터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으니까. 다행히 디저트를 평소보다 덜 먹어야 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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