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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37화 (37/141)

#37화

입술을 삼켜대던 그의 입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말캉한 그의 입술이 닿았다. 낯선 감촉에 몸이 흠칫하고 떨렸다.

처음에는 목덜미에 입만 맞추는 줄 알았는데 이내 입을 벌리더니 피부에 이를 박아 넣고는 잘근거리며 살을 씹어댔다.

옅은 고통이 신경을 타고 느껴지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흐읏, 체스터! 할 말이 있어요!”

다급히 그를 떨어뜨리면서 안전거리를 두고 그가 물었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살짝 쓰라리기는 했지만 꽉 문 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흔적이었다.

“……무엇입니까.”

“으음…… 우리 결혼 말인데요.”

“…….”

“오빠가 결혼하고 한 달 후에 해요.”

“흐음…….”

체스터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저 혼자 결정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좋습니다.”

“체스터가 싫다고 하면…… 네?”

“적어도 반년 안에는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는 단숨에 나와의 거리를 확 좁히더니 그대로 나를 끌어당겨 품에 가두듯, 꽉 껴안았다.

이 느낌이 좋았다.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이 좋았다.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오늘따라 더 크게 들렸다.

고작 이런 거 가지고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인데…… 숨기는 게 있으면 안 되겠지? 아주 사소한 거라도.

예를 들면, 체스터의 친구인 이드리안이 내게 고백을 했다는 점을.

아닌가? 이거를 말하면, 체스터는 어떤 행동을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과연 이 사실을 말하고도 남주가 살아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율리아?”

“음…… 체스터는 블레어 소공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제게 묻고 싶었던 게…… 다른 남자였습니까.”

어…… 나 지금 잘못 건드린 건가?

다급히 체스터를 나무 아래 앉히고, 그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하…… 율리아.”

“……싫어요?”

아빠랑 오빠는 보통 이러면 좋아했는데. 체스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가.

안절부절 그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의 어깨에 기댄 머리를 다시 원위치시키는 순간이었다.

“싫을 리가요. 오히려…… 좋아서 문제입니다.”

그에게서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그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덮더니 도로 어깨에 기대도록 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길이 좋았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렁일 때였다.

“이런 예쁜 짓, 누구한테 배운 거예요?”

“어…… 그게 궁금해요?”

“네.”

“……어, 과거의 저한테요?”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행동 하지 마세요.”

“질투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행동을 하면, 연인의 입장에서 질투를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 그 말이 입 안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케이크보다도 달콤해서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릴 것 같지만, 무척이나 낯선 말이었다.

“율리아,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가끔 율리아는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망각한 사람처럼 굽니다.”

“……체스터.”

그러면 말을 해야겠지? 이드리안이 내게 고백했다는 사실은, 내 연인인 체스터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어떤 남자가 제게 고백했다면 체스터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일단, 그 사람의 미래도 생각은 해줘야 하니까. 정말 그러다가 남주가 암살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아니 암살이면 다행이지. 체스터는 대놓고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원작이 아무리 바뀌었다 해도 체스터는 흑막이니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그의 손가락이 내 뺨을 건드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다정해 보이는 눈빛으로.

“그러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이지는 않을 거죠?”

나는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몰라서 조마조마한데, 체스터는 느긋했다.

체스터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한 줌을 손에 쥐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설마 제가 제 친구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섬뜩했다. 물론, 내가 이런 걸 물어본다는 것에서 고백을 받았을 거라고 유추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 고백을 한 대상이 이드리안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에 찬 것처럼 말할 수 있는 거지?

“……체스터. 저는 그 사람이 블레어 소공작이라고 한 적 없는데요?”

“율리아.”

“네?”

체스터의 얼굴이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딱히 화난 눈빛은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체스터?”

“허락한다면 눈 감아요. 하지만 원치 않는다면 밀어내요.”

또?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면 어떻게 눈을 감지 않을 수 있을까.

눈을 감기가 무섭게, 그의 입술이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벌어진 입술 틈을 파고들어서는 입 안을 헤집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질 때가 되어서야,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나는 헐떡이고 있는데, 체스터의 눈빛에는 욕망이 서려 있었다. 정말 당장이라도 그에게 잡아먹힐 것만 같은 착각이 스쳤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하으…… 하…….”

“율리아. 힘들어요?”

잠시 키스 때문에 정신이 다른 쪽으로 쏠리기는 했지만, 다시 본론을 생각했다.

정말 정신을 쏙 빼놓는 키스라서, 조금이라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저런 얼굴로 유혹하는데, 어떻게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체스터. 그래서 어떻게 안 거예요?”

“율리아. 제국민 모두가 당신이 제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 누가 감히 당신한테 사랑을 속삭일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맞죠?”

“그러면 답은 하나죠.”

체스터가 내 허리를 단단히 옭아맸다.

“제가 아니라면 누가 당신께 사랑 고백을 한 건지. 쉬이 유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합니다. 하지만 곤란하다면 말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율리아.”

“다음에 만나자고 해서, 다음 만남은 체스터와 제 결혼식에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체스터는 내 허리를 붙잡고 있던 팔에 힘을 주더니, 나를 그의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

어쩌다 보니 내가 체스터 위에 올라탄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다른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나른한 표정을 지은 채로 정말 기쁜 사람처럼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무척 예쁜 짓을 했네요, 율리아.”

“……뭐가요?”

“허튼짓을 했다면, 제가 따로 조치를 취했어야 했을 텐데…… 당신이 직접 조치를 취해 주었으니 제가 나설 필요는 없겠죠.”

응?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체스터? 제가 이해 못 해서 그런데, 그 조치라는 게 뭔데요?”

“율리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중요해요!”

조치가 아니라 처리면 어떡해!

체스터는 계속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원작 속 흑막의 본성이 그대로인지 아닌지 나는 알아야만 하니까. 그래야 내 행동거지도 변화할 테니까.

흑막이 원작 속 그 본성을 숨기고 있는 거라면 나름 대비는 해야 할 테니까.

“……죽이려던 건 아니죠?”

“율리아…… 가끔은 당신이 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흑막이라고 생각하지. 뭐라고 생각하겠어.

다만 지금은 원작이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 만큼, 나도 내가 체스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의하지 못했다.

“몰라요. 제 마음이 어떤지, 제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차마 체스터와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내 뺨을 매만지는 체스터의 손이 좋았다. 정말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율리아. 저를 보세요.”

“…….”

“제가 당신 앞에 있는데, 시선을 제게 두지 않는 게 싫습니다.”

“체스터.”

“시선 피하지 마요, 율리아.”

체스터의 핏빛 눈동자에는 짙은 열망이 서려 있었다. 포식자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포식자의 품에 갇힌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잡아먹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짙은 열망이 담긴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결혼식은…… 황성에서 하는 게 좋겠어요.”

“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저는 그저 우리의 결혼식이 앞당겨지기만을 원할 뿐입니다.”

“……왜요. 이런 연애는 싫어요?”

“싫다기보다는 부족하다에 가깝죠.”

그는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빗질하다가 한 움큼을 손에 쥐었다.

짙은 욕망이 서린 눈빛과는 전혀 다르게 경건하게 내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하루라도 더 빨리, 눈을 뜨면 제 옆에 당신이 곤히 자고 있길 바라거든요.”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무슨 저런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뱉는 건지.

“체스터!”

“하루라도 빨리 당신과 같이 살고 싶거든요.”

“…….”

“당신이 저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체스터. 배신하지 마요.”

“제가 당신을 배신할 리 있겠습니까.”

“믿을게요……. 그러니까 제 믿음을 배신하지 마요, 체스터.”

불안했다. 하지만 동시에 믿고 싶었다.

이렇게 나를 원하는 눈을 하고서 배신하는 게 이상하니까.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배신할 리는 없으니까.

“율리아. 눈 감아요.”

눈을 감자 입술이 맞물렸다. 자연스럽게 그의 혀가 얽혔다.

사랑이 맞는지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체스터가 내게 집착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제 더는 원작 속의 행동을 하거나, 나를 해칠 것 같지는 않았다.

내뱉는 숨결 전부가 그에게 삼켜졌다. 한참 동안이나 닿아 있던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흣, 체스터…….”

“율리아, 제 앞에서는 울어도 좋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 마세요.”

“…….”

“당신이 우는 모습을 다른 놈들이 보는 게 싫습니다. 당연히 저는 당신이 웃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고 싶습니다.”

“……왜요?”

“우는 것도 예쁘지만, 웃는 게 당신이 가장 행복해 보이니까요. 저는 당신이 행복하길 원하니까요.”

정말 가식이 아닌 거지? 정말 나를 사랑해서 내게 집착하는 게 맞는 거지?

그러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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