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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28화 (28/141)

#28화

한계였다. 더는 숨이 부족했기에 버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또 물에 빠져서 죽는 걸까.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후회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수영을 배워뒀어야 했는데. 물에 빠져 죽었으면서 이번 생에서도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

바보같이.

모든 걸 포기한 그 순간 내 입술 위로 말캉한 무언가가 포개어지면서 공기가 입을 통해 들어왔다.

내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공기 방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조금의 공기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파하!”

제대로 된 공기가 폐부로 들어오고 나서 숨을 몰아쉰 후에 느껴지는 건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였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저 체스터의 목에 내 두 팔을 휘감고서 그에게 의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의 옷도 나와 함께 쫄딱 젖어서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하…….”

“율리아, 많이 추워요?”

“죽기 싫어…….”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있는 팔에는 아까보다 더 힘이 들어갔다.

물을 흠뻑 먹은 드레스는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무거운데 이런 나를 한 손으로 지탱하고 있는 그는 얼마나 더 힘들까.

미안했다. 내가 꼭 짐덩이처럼 느껴졌다.

서서히 정신이 흐릿해져 갔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고 싶다는 감각이 서서히 선명해져만 갔다.

“율리아. 조금만 참아요.”

그는 나를 먼저 물 바깥으로 꺼내고 본인도 이내 나와서, 내 무릎 밑에 팔을 집어넣고 다른 손으로는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분명히 드레스가 물을 먹어서 무거울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깃털처럼 아주 가볍게 안아 들었다.

그런 그의 목을 두 팔로 단단히 감싼 채로,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체스터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를 안심시켜주려는 것처럼 상냥하게 등을 토닥였다.

“율리아.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요.”

그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예전에도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아주 차디찬 물속에서 얼어 죽어가던 감각이 떠올랐다.

전생의 감각이 아니었다. 전생은 차가운 물에 빠져 죽은 것보다는 숨을 못 쉬어 죽었으니까.

그럼 도대체 언제지? 기억이 제대로 나질 않았다.

자꾸 눈이 감겼다. 열심히 눈을 뜨려고 했지만 계속 쏟아지는 졸음에 나도 모르게 눈이 사르르 감겼다.

모든 게 암흑이었다.

* * *

난간 위에 발을 딛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서 있었다. 등 뒤에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살갗을 꿰뚫었다.

울컥거리는 감정이 턱밑까지 솟구쳤다.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핏빛 눈동자를 마주친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심장은 먹먹해졌다.

조금의 미동조차 없는 무심하기 짝이 없는 표정. 칼로 그의 몸을 후벼 파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

“……너는 반드시 후회할 거야!”

저주가 아닌 소망을 내뱉었다. 그는 그저 가만히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천천히 지켜볼 뿐이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또다시 코끝을 찔렀다. 그가 미웠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사랑했다.

차마 그를 죽일 수가 없어서. 내가 그를 죽이면 내게 남는 건 그 무엇도 없어서 나는 나를 죽이기로 했다.

“체스터.”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입에 담고 위태롭게 난간 위에 서 있던 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몸이 기울더니 무척이나 예쁜 밤하늘이 두 눈에 담겼다. 그리고 내 몸은 달빛을 머금고 있던 황궁의 깊은 호수 위로 추락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몸을 파고들며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깊었던 황궁 속에 있던 호수에서 숨이 서서히 꺼져가고, 손끝부터 얼어가는 감각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선명했다.

* * *

“허억……!”

두 눈이 번쩍 뜨이면서 반사적으로 손이 내 심장 부근을 부여잡았다.

추위 때문인 건지, 아니면 꿈의 내용이 선명해서 그런 건지 몸이 달달거리며 떨고 있었다.

“율리아?”

나를 부르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안심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피를 잔뜩 묻히고서 차가운 눈동자로 나를 보던 그 얼굴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의 몸을 밀쳐냈다.

“아…….”

다시 두 눈을 깜빡이고 체스터를 보자 다행히 그의 얼굴은 깨끗했다.

손을 뻗어 깨끗한 그의 뺨을 건드렸다. 그저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헛것을 본 게 맞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온몸을 파고들던 그 차가운 물의 감각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과거에 겪었던 일이 꿈으로 나타난 것처럼.

기분 탓이겠지. 아니, 기분 탓이어야만 했다.

만약 내가 원작을 비틀지 않았더라면 벌어졌을 상황이니까. 지금은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안심해도 될 거야.

“율리아,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체스터…….”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꿈에서 보았던 그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은 무척이나 상냥한 눈동자로 나를 걱정스럽게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팔을 뻗어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귓가에 들리는 그의 심장 소리와 피부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에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불길함은 무엇인지. 꿈은 꿈일 뿐이고 원작의 내용에서는 벗어났으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텐데. 나는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걸까.

체스터는 진정하라는 것처럼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많이 무서웠습니까?”

“체스터…… 저한테 숨기는 거 없죠?”

불안했다. 그 꿈이 마치 내 미래를 암시하기라도 한 걸까 싶어서.

“안색이 좋지 않아요, 율리아.”

“대답해줘요.”

“……제가 숨기는 건 없습니다.”

“정말요?”

“네. 숨기는 것 따위는 없으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악몽을 꿨어요.”

“많이 무서웠습니까?”

“네…… 꿈이라는 걸 알지만…… 꼭 현실인 것처럼 생생해서.”

무서웠다. 그 꿈이 현실이 될까 봐. 그리고 지금까지 봤던 그의 모습이 거짓된 걸까 봐 두려워서.

아니, 사실은 누군가 내게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체스터를 멀리하라는 경고. 그와 함께 한다면 분명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엔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율리아.”

“네?”

“지금 제게 키스 그 이상은 못 하게 제약을 걸어두고 이러시면…… 좀 많이 곤란합니다.”

“아…….”

1초 전까지만 해도 경향이 없어서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 상황이 눈에 들어오면서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체스터가 입고 있었던 셔츠는 내가 입고 있었고, 그는 상의를 입고 있지 않았다.

눈을 데구루루 굴려서 이곳저곳을 살펴본 결과 모닥불 근처에 놔둔 내 옷은 아직 마르지 않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는 동굴 안처럼 보였다.

잠깐만…… 다시 확인해보니 지금 나는 체스터의 셔츠 한 벌만 달랑 입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어…… 혹시 체스터가 제 옷을?”

직접 벗겨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힌 거야?

위험을 감지한 내 몸이 그의 품에서 멀어지기 위해 슬쩍 내뺐다. 살짝 벌어진 거리에서 흔들리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의 손이 허리를 덥석 붙잡았다.

“율리아. 왜 이제 와서 내외하려 해요.”

“으음…… 이건 내외하는 게 아닌데요.”

“이미 갈 때까지 갔잖아요.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체스터의 입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맹수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내 허리를 휘감고 있는 그의 팔에 아까보다 더 힘이 실린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착각이 아니라면 조금 전보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어…… 체스터?”

“해도 됩니까.”

“네? 뭐…… 뭐를요?”

내 허리를 단단하게 휘감고 있는 팔. 나른한 눈빛. 살짝 올라간 입꼬리. 나직한 목소리.

그 모든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아서 심장이 두근두근 대며 난동을 부렸다.

허리를 붙잡지 않은 그의 손이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엄지손가락으로 내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키스.”

혹시라도 내 얼굴이 홍당무마냥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해도 됩니까?”

그의 핏빛 눈동자에는 짙은 열망이 담겨 있었다. 당장이라도 삼키고 싶지만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는 인내하는.

길들여진 맹수. 이게 지금의 그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였다.

“안 된다고 하면…… 안 할 거예요?”

“네. 아직은 참을 수 있으니까요.”

“키스는…… 해도 돼요.”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맞물렸다.

그의 혀가 어서 입술을 벌리라고 재촉하듯 꾹 닫힌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마음만 먹으면 쉬이 닫힌 입술을 벌리고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을 수 있었지만, 그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런 그가 귀엽게 느껴져서 입술을 벌렸다. 벌어진 틈 사이로 그의 혀가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숨결을 입 안에 불어넣었다.

뜨거운 열기가 입과 입을 통해 섞여들며 주변의 기온마저도 덥게 만들었다.

좀 더 체스터를 원했다. 그의 목에 팔을 휘감아 내 몸을 그에게 더 밀착시켰다.

그의 손이 셔츠 안으로 쑥 들어왔다. 맨살에 그의 차가운 손이 닿자 몸이 깜짝 놀라면서 입술이 떨어졌다.

“흐읏, 잠깐……!”

저지할 틈도 없이 또다시 그는 입술을 겹쳐왔다.

벌어진 잇새로 그의 혀가 밀려 들어왔다. 그에게서는 숨결 한 조각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소유욕이 짙게 배어났다.

정신을 혼잡하게 만드는 그의 입맞춤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소유욕과 함께 느껴지는 다정함에 몸이 흐물흐물해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더 체스터를 원하고 있었다.

셔츠 속으로 들어온 그의 손이 허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조금씩 그의 손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선명해져 갔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허리 부근을 쓰다듬던 그의 손은 이제 명백히 가슴 아래에 위치하고 언제 위로 올라올지 간을 보고 있었으니까.

이 이상은 위험해서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아 더 올라오는 것을 저지했다.

붙어 있던 입술을 간신히 떨어뜨리고 엉망이 된 호흡을 가다듬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흣, 체스터…… 우리 키스까지만 하기로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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