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8화 (238/239)

238화. 53 – 1

유제니와 엘리엇이 거마로트 공작 부인과 함께 힐데자르를 데리고 돌아오자 왕궁에서는 환영 파티가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힐데자르의 귀환 환영 겸, 힐데자르를 구한 유제니를 치하하는 파티다. 하지만 두 집안 중 참석한 건 비스컨 백작가뿐이었다. 거마로트 공작가는 힐데자르가 쇠약해져 있어서 치료를 위해 참석할 수 없다고 연락해 왔다.

왕과 왕비는 제일 먼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뒤로 물러났다. 사교 시즌이 끝나서 수도에 남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루한 겨울을 달랠 수 있어서 수도에 남은 귀족들은 모두 참석해 있었다.

“거마로트 백작이 많이 약해졌나?”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국왕이 슬쩍 엘리엇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힐데자르가 쇠약하다는 이유로 공작가가 참석하지 않았으니 물어보는 거다.

물론 그리 위험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국왕 부부는 아직 힐데자르를 보지 못했다. 오늘 오전에 공작 부인만 다녀갔을 뿐이다.

“겉보기엔 괜찮습니다.”

엘리엇은 가볍게 대답했다. 공작 부인이 들었으면 어디가 괜찮냐고 펄펄 뛰었을 말이다. 그녀가 보기엔 툭 치면 쓰러질 정도로 홀쭉하게 여윈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툭 친다고 해서 쓰러질 정도로 여윈 건 아니지만 유제니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여윈 건 맞다.

하지만 엘리엇은 힐데자르가 자기 다리로 걸어 다니는 걸 봤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니 겉보기엔 괜찮다고 말한 거다.

“자네가 보기엔 어땠나?”

국왕의 질문은 유제니에게 향했다. 엘리엇과 나란히 서 있던 그녀는 잠시 당황하다가 말했다.

“많이 말랐더군요.”

“쇠약해졌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보군.”

왕은 그렇게 말하고 왕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이 많았더군. 다아리브혼이 그에게 먹을 것은 주지 않았다고 하던데.”

오늘 오전에 다녀간 공작 부인이 그렇게 말했다. 잡혀 있는 동안 용이 힐데자르를 굶겨서 쇠약해졌다고.

물론 거짓말이다. 아니면 공작 부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인 건지도 모르고.

유제니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입을 다물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다아리브혼은 힐데자르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 그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힐데자르의 입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용의 식사와 인간의 식사는 다르니까요.”

가까스로 유제니가 그렇게 말하자 국왕 부부의 눈썹이 올라갔다. 다아리브혼이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공작 부인의 말과는 다르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거지?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다아리브혼 입장에서도 힐데자르가 알이 깨지지 않도록 잡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가 살아 있어야 하죠.”

유제니는 재빨리 덧붙였다. 다아리브혼은 힐데자르를 살려 둬야 했다. 국왕 부부 역시 힐데자르가 살아 있어야 했고.

만약 힐데자르가 죽었다면, 그리고 그를 죽인 게 용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국왕은 다아리브혼에게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다. 사악한 몬스터가 발시안의 귀족을 살해한 거니까.

유제니와 엘리엇이 힐데자르가 멍청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이유가 바로 그거다. 그의 멍청한 행동 때문에 나라가 곤란해질 뻔했다. 다행히 유제니는 그런 큰 사건을 수습했다. 이보다 더 좋은 수습은 없을 거라 싶을 정도로.

국왕은 슬쩍 왕비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유제니가 힐데자르를 구하지 못했다 해도 상을 내릴 생각이었다.

“잠깐 저쪽으로 가지.”

왕비가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는 유제니와 엘리엇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왕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자네에게 말해 둘 게 있어서.”

한적한 곳으로 오자 다시 왕비가 입을 열었다. 유제니는 저도 모르게 엘리엇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왕비에게 고개를 돌려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생각해 봤는데 실란트에 영주가 없더군. 자네도 마음에 들 것 같은데.”

실란트가 어디지? 유제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국왕 부부는 엘리엇은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렘버트와 가깝지.”

그래? 유제니의 시선이 엘리엇을 향했다. 렘버트는 엘리엇의 영지다. 그는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마차로 이틀 정도 걸리는 곳이죠.”

“두 사람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은데.”

왕의 말에 유제니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요?”

“그래. 가까이에 있어야 번즈 백작이 관리하기도 편할 테고.”

“번즈 백작이요?”

이제 유제니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보다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왕보다 왕비가 먼저 그걸 눈치챘다. 그녀는 재빨리 나섰다.

“생각해 보게. 두 사람의 아들이 두 영지를 다스린다면 가까운 게 좋지 않겠나?”

“가까운 것뿐만 아니라 수확량도 괜찮더군.”

아직도 왕은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고른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

“레이디 비스컨?”

유제니의 표정을 본 왕비가 그녀를 불렀다. 유제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엘리엇은 슬쩍 떨어져 사람들의 시선에서 유제니의 얼굴을 가렸다.

멀리 있는 사람들이 유제니의 표정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걸 그녀가 좋아할 리가 없다.

“전하.”

유제니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국왕 부부가 자신을 쳐다보자 입을 다물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 영지는 제게 내리시는 건가요, 저와 결혼할 남자에게 내리시는 건가요?”

네 사람 사이에 흐르던 공기가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왕은 입을 열었다가 다물고 왕비를 쳐다봤다.

“자네와 자네가 결혼할 남자의 것이지.”

왕비가 천천히 말했다. 결국, 영지를 다스리는 건 남자의 일이니까. 그리고 번즈 백작이라는 작위와 함께 유제니와 엘리엇이 낳은 아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제 아들이 물려받고요.”

당연하다. 왕비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제니는 그게 마치 아주 나쁜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쳐다봤고 이번에는 왕이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있다. 유제니는 자세를 바로 하고 물었다.

“제가 받는 상인데 왜 번즈 백작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죠?”

국왕 부부의 시선이 동시에 엘리엇을 향했다. 두 사람, 결혼할 거 아닌가? 하지만 엘리엇은 왜 자신을 쳐다보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가 작위와 영지를 받을 때는 미래의 부인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건 당연하다. 누가 작위와 영지를 내릴 때 미래의 부인을 고려해서 내린단 말인가.

왕과 왕비는 서로를 쳐다보다가 유제니에게 물었다.

“번즈 백작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

그럼 좀 곤란하다. 두 사람은 신비한 힘을 가진 마고의 혈통이 이어지길 바란다. 유제니가 너무 늙기 전에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말이다.

번즈 백작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면 지금부터 부지런하게 새로운 신랑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해도 유제니의 혈통은 왕족이기도 하니 그 혈통에 어울리는 남자를 골라야 하고.

대체 누가 있지? 국왕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너무 한미하지 않으면서 너무 늙거나 어리지 않은 미혼 남성의 이름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요. 그건 아직 모릅니다.”

그때, 유제니가 말했다. 모른다고? 왕과 왕비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유제니는 엘리엇과 함께 용을 만나고 왔다. 미혼의 젊은 남녀가 그렇게 여행을 할 거라면 결혼할 생각인 법이다.

당황하는 두 사람을 보고 유제니는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 그녀가 결혼한다면 엘리엇과 하겠지.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엘리엇이 다스리기 편한 위치에 있는 영지를 받을 생각은 없다. 그건 온전히 그녀의 것이어야 할 테니까.

“전하, 저는 제 영지를 제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습니다.”

“뭐라고?”

이어진 유제니의 폭탄선언에 왕과 왕비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대체 네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엘리엇이 다스리게 할 생각도 없고요.”

유제니의 덧붙임에 왕비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녀는 왕을 한 번 쳐다보고 유제니에게 말했다.

“비스컨 가에 편입시키고 싶은 거라면 허가할 수 없네. 그건 자네가 왕족이기 때문에 주는 거니까.”

유제니의 혈통으로 이어져야 한다. 마고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에게 남겨져야 하니까. 그리고 유제니 역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엘리엇에게 다스리게 하거나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전하, 저는 그 영지가 궁극적으로 제 남편이나 아들이 다스리게 되는 게 아니라 제가 다스리길 원해요.”

“영지를?”

이상하다는 왕의 질문과 달리 왕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지를 다스리는 건 가주의 일이다. 가주는 보통 남자고.

하지만 일찍 남편을 잃고 영지를 다스리는 부인은 많다. 남편이 죽지 않았다 해도 전쟁이 터지면 부인들은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대신해서 영지를 다스렸다.

“그리고 제 영지는 제 딸에게 물려줄 거고요.”

왕과 왕비의 시선이 엘리엇을 향했다. 유제니의 이런 생각을 알고 있었냐는 표정에 엘리엇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레이디 비스컨에게 내리시는 영지 아닙니까?”

그와 아무 상관 없다는 태도에 왕은 “끙” 하고 신음을 내뱉었고 왕비는 유제니를 설득하려 입을 열었다.

“가문의 재산을 축적하는 게 좋다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더 많은 재산과 더 많은 영지가 가문을 부강하게 만든다. 그게 그 가문으로 시집간 안주인의 의무이고.

하지만 유제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안주인이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국왕이 그녀에게 영지를 내리는 건 그녀가 마고의 후예이기 때문이지 않던가.

“드래곤의 말에 의하면, 마고의 힘은 여자아이에게 발현된다더군요.”

느닷없는 말에 국왕 부부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라고? 곧바로 왕은 인상을 썼고 왕비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발현된다고?”

마고의 피를 통해 이어지니 아들에게도 그 힘이 이어지긴 할 거다. 하지만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딸뿐이다. 크리사가 그렇게 말했다.

“작위와 비슷하죠.”

이어진 엘리엇의 말에 국왕 부부는 서로를 쳐다봤다. 작위는 가주의 장자에게 이어진다. 아들이 없다면 딸이 이어받지만, 딸이 작위를 갖는 게 아니다.

딸이 낳은 아들이 작위를 갖게 된다.

“그러니, 전하. 제게 영지뿐 아니라 작위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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