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3화 (228/239)

233화. 51 – 3

거마로트 공작 부인? 성을 거마로트로 바꾸자고? 잠시 유제니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던 사람들은 곧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거마로트 공작 부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지적하는 거다.

아서가 마법사의 탑 감옥에 끌려가긴 했지만 거마로트 공작 부인이 아직 남아 있다.

그녀는 유제니가 비스컨 백작 부부의 친자식이 아닌 것을 안다. 심지어 유제니의 아버지가 누군지 안다고 했다.

유제니의 머릿속에 그것 역시 아서가 흘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유제니의 출생에 의문을 품고 그녀의 친아버지에 대한 정보가 많이 퍼지면 그가 자신을 드러내기 쉬워질 테니까.

그 분위기를 이용해서 공주의 아버지가 되려 했던 거다.

“걱정 말게. 그녀와는 우리가 이야기를 하지.”

국왕의 말에 약간 느슨하게 앉아 있던 엘리엇이 자세를 바로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매우 궁금하다는 태도가 국왕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엘리엇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왜 가만히 있는지 궁금해하던 국왕의 머릿속에 번즈 백작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소문에 의하면 이 오만방자하며 타인에게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번즈 백작이 레이디 비스컨 앞에서는 예의가 바르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왕이 본 바에 따르면 번즈 백작은 평민 출신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예의범절이 뛰어났다.

꽤 재미있군. 국왕은 엘리엇과 유제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아들이잖아요.”

유제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드래곤에게 잡혀 있다는 데 가만히 있을 어머니는 없다. 아무리 국왕이라 해도 그녀가 가만히 있을까.

“성은 마음에 드나 보군?”

국왕이 물었다. 유제니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요.”

절대 싫다. 그녀는 비스컨이라는 성이 좋다. 하지만 너무 빨리 대답한 게 무례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제니는 자세를 바로 하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어깨를 으쓱하는 국왕 옆에서 왕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 왕비는 웃음을 눌러 참은 뒤 물었다.

“공작 부인이 걱정되나 보군?”

왕비는 공작 부인이 유제니에게 해를 끼칠까 봐 걱정되냐고 물어보는 거였지만 유제니는 다르게 해석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네. 아들을 잃을 위기에 처한 어머니잖아요.”

당장이라도 아들을 구하러 가고 싶은데 가야 할 장소를 모른다. 얼마나 피가 마를까.

왕비는 유제니의 대답에 국왕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자네와 번즈 백작에게 피해를 끼쳤는데도 걱정이 되나?”

“두 가지는 별개니까요.”

유제니는 공작 부인을 용서한 게 아니다. 그녀는 비스컨 가와 번즈 가를 괴롭혔다. 두 집안은 피해자고 거마로트 공작가는 가해자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보면 공작 부인은 피해자기도 했다. 철없는 아들의 책임감 없는 행동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저는 공작 부인이 이해가 돼요. 아들을 구하고 싶을 테니까요.”

물론 유제니라면 엘리엇에게 정중하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게 공작 부인의 큰 실패고.

“공작 부인을 돕고 싶습니까?”

유제니의 이야기를 듣던 엘리엇이 몰랐다는 듯 물었다. 그의 반응에 유제니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도울 수 있다면요. 하지만 도울 수 없잖아요.”

아무도 드래곤의 둥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도망친 힐데자르의 동료들도 장소를 모른다. 힐데자르를 구할 방법이 요원하다.

“제가 안내할 수는 있습니다.”

그때, 엘리엇이 말했다. 뭐라고?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엘리엇을 쳐다보았다. 그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말했다.

“구할지는 알 수 없지만 구하러 가는 길을 안내해 줄 수는 있죠.”

능청스러운 엘리엇의 말에 유제니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는 분명 드래곤의 둥지로 가는 길을 모른다고 했다. 돌아올 때는 다아리브혼이 마법으로 보내 줬기 때문에.

“기, 길을 알아요?”

유제니의 질문에 엘리엇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안다. 그가 찾아간 길인데 또 못 찾아갈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렇게 해 주겠다고?”

그렇지 않아도 거마로트 공작 부인의 요청에 시달리던 국왕이 반갑게 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야만인에게 작위를 수여한 게 잘못된 일이라고 하는 통에 귀찮던 참이다.

물론 아들이 드래곤에게 잡혀 있으니 제정신이 아닐 거라 생각해 받아 주고 있긴 했지만.

“레이디 비스컨이 그러길 바란다면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번에는 유제니를 향했다. 어쩌면 이 모든 걸 끊어 버릴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유제니의 머릿속에 들었다.

앞으로도 공작 부인은 엘리엇을 공격하려 할 거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도와준다면 적어도 입을 다물 사람이다.

“오, 네.”

유제니는 진심으로 말했다. 공작 부인을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이 악연을 끊어 버리고 싶다.

“당신이 괜찮다면요.”

* * *

“당신은 안 왔어도 되는데요.”

창백한 얼굴로 말에서 내리는 유제니를 도와주며 엘리엇이 말했다. 말이 도와준다지 그가 말에서 내려 주는 거나 다름이 없다.

유제니는 감각이 없는 엉덩이와 멀미로 사람들의 시선도 잊고 그의 팔에 몸을 기댔다. 너무 힘들어서 지금 그녀가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발이 땅바닥에 닿는 감각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말을 타고 오는 내내 그토록 느끼고 싶던 감각이다.

“제가 와야죠. 당신이 만들어 준 자리인데.”

“공작 부인과도 이야기가 끝났잖습니까.”

거마로트 공작 부인도 동의했다. 엘리엇이 그녀를 다아리브혼에게 안내해 주면 유제니에 대해 더 이상 아무 발언도 하지 않겠다고.

거기에는 왕실에서 유제니에게 작위를 내리는 것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아들의 일만 아니면 그녀는 유제니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못마땅한 건 엘리엇뿐이고 유제니는 어쩔 수 없는 피해자일 뿐이다. 엘리엇은 가족도 없고 소중한 사람은 유제니뿐이니까.

“이 근처인가?”

유제니를 부축해 바위에 앉는 걸 도와주는 엘리엇에게 거마로트 공작 부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도착했냐는 질문에 유제니의 시선이 엘리엇을 향했다.

“아직입니다.”

더 가야 한다. 그렇다면 왜 쉬는 거지? 공작 부인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금세 평소보다 훨씬 창백한 유제니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힐데자르를 구하러 가는 여정은 공작 부인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늦춰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레이디 비스컨의 체력도 한몫한다.

말을 타고 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험한 산을 오르는 건 더더욱 그렇다. 거마로트 공작 부인이야 아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티는 거지만 레이디 비스컨은 어디까지나 호의로 동행하는 것 아니던가.

“차를 가져오라고 하지.”

공작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레이디 비스컨이 힐데자르를 구하러 가 달라고 번즈 백작을 설득하는 대신 그녀에 대해 입을 다물겠다고 약속했다.

어차피 그 모든 게 힐데자르를 구하기 위한 계획이었으니 그녀는 원하는 것을 반쯤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얼마든지 레이디 비스컨에게 호의적일 수 있었다.

“다아리브혼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까요?”

공작 부인이 하인들에게 차를 끓이라고 지시하는 사이, 유제니가 물었다. 힐데자르를 구하겠다고 다시 돌아왔으니 공격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엘리엇은 자신의 망토를 벗어 유제니의 어깨에 둘러 주며 물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니다. 유제니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공격하면 어떻게 해요? 마법으로 도망칠 거예요?”

엘리엇이 왕궁 무도회로 이동했던 그 마법으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많은 사람이 다 도망치려면 상당한 마법이어야 한다.

유제니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목걸이를 만졌다. 예전에 엘리엇이 선물해 준 목걸이다. 여기 오겠다고 결심하자 잠시 목걸이를 빌려 갔던 엘리엇이 마력석에 마법을 담아 왔다.

여정 중에 위험한 순간이 오면 그 마법을 이용해서 유제니가 도망칠 수 있도록.

-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보험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엘리엇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그녀는 목걸이의 마법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강도나 산적은 공작 부인의 하인들이 처리했으니까.

“아마 도망칠 일은 없을 겁니다.”

엘리엇은 유제니의 질문에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에서 공작 부인이 다가오고 있다. 컵 두 개를 들고.

“감사합니다.”

그녀가 컵을 내밀자 재빨리 받아 든 엘리엇은 그대로 유제니에게 건넸다. 그러자 못마땅하던 공작 부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처음부터 레이디 비스컨을 위해 가져온 차였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유제니가 인사를 건네고 차를 홀짝이자 공작 부인은 남은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엘리엇의 차는 가져오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유제니가 마시던 차를 엘리엇에게 내밀며 말했다.

“당신도 마셔요.”

“괜찮습니다.”

엘리엇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는 괜찮다. 지금 이렇게 쉬는 것도 유제니를 위해서다. 그는 아직 한나절 더 가도 거뜬할 거다.

그때, 공작 부인이 물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그걸 물어보려고 자리를 뜨지 않은 모양이다. 엘리엇은 잠시 산꼭대기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거의 다 왔을 겁니다.”

“왔을 거라고?”

“다아리브혼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공작 부인과 유제니가 물어보려는 순간, 세 사람의 주변이 휙 하고 바뀌었다. 유제니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공작 부인은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먼 곳에서 폭풍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공작 부인의 검이 엘리엇을 향했다. 그가 그녀를 속인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검을 휘두르기 전에 유제니가 말했다.

“다아리브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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