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0화 (225/239)

230화. 50 – 6

그때, 응접실 안쪽에서 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둥지둥 안쪽으로 뛰어들자 먼지가 빠져나간 탓에 안이 조금 보였다.

“줄리아!”

줄리아는 가장 안쪽에 있었다. 그녀의 뒤로 불이 붙은 커튼이 활활 타는 게 보였고.

세상에.

나는 정신없이 줄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불은 그녀의 근처까지 번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줄리아는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줄리아가 이런 상황에서 그냥 의자에 앉아 있을 리가 없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몸과 의자를 묶은 끈을 풀어냈다.

“그, 그 점술가예요!”

끈을 푸는 동안 줄리아가 소리쳤다. 점술가? 나는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응접실 밖으로 내몰았다.

“일단 나가!”

당장은 여기 쓰러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내가 쓰러진 빅스를 발견해 그의 팔을 잡았을 때였다.

“반대쪽 잡을게요!”

응접실 밖으로 비틀비틀 뛰어나간 줄 알았던 줄리아가 돌아와서 말했다. 우리는 쓰러진 사람의 팔을 잡아 응접실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창문이 깨진 덕에 연기로 질식할 위험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은 계속 번지고 있었다.

“전하?”

응접실 밖으로 모든 사람을 끌어낸 다음에야 나는 왕대비 전하를 찾았다. 그녀가 끌어낸 핸더슨 후작 부인은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줄리아, 가서 사람 불러와!”

불을 끄고 이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우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줄리아에게 외치기 전에 그녀는 벌써 현관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그사이에 나는 왕대비 전하를 찾았다. 어느새 아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왕대비 전하만 보이지 않아도 걱정이 되는데 아서까지 보이지 않는다니, 불길하다. 나는 두 사람을 찾아 집 안을 헤집고 다녔다.

“건방진 놈!”

우리가 있었던 응접실을 지나 식당을 확인하고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왕대비 전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게 쿵쾅거리는 소리와 질질 끌려가는 듯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나는 소리를 따라 주방 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거기 있었다. 정확하게는 주방이 아니라 주방으로 향하는 뒷문 쪽에.

“아서!”

나는 뒷문을 열고 나가는 아서를 뒤쫓아갔다. 그는 한 손으로 왕대비 전하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쥐고 있었다. 그 검은 왕대비 전하의 허리춤을 겨누고 있었고.

젠장.

누가 봐도 아서가 왕대비 전하를 납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불이 나기 전 그가 한 행동으로 봤을 때 어쩌면 처음부터 이걸 목적으로 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제니. 내 딸.”

나를 돌아본 아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왕대비 전하를 향한 칼을 한번 쳐다보고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날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짓은 못 할 텐데.”

내가 말해 놓고도 기분이 착잡해졌다. 아서가 정말 날 딸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짓은 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그분을 납치해서 어쩌려고?”

“예의 바르게 말해야지. 세이마리아가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줬니?”

“자기 애도 버리고 도망친 남자한테서 구해 주느라 바쁘셨나 보지.”

아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널 버린 건 제네비브야! 난 어쩔 수가 없었어!”

“마법 장학생이라 마법사의 탑에서 일하기로 결정돼 있었잖아.”

내가 그 사실을 알 줄 몰랐던 모양이다. 아서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그는 꽤 조심했다. 아서 브라이트라는 이름으로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귀족들의 상담이나 여흥을 위한 마법을 제공했다고 했지만 모두 가명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왕실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나는 그가 말한 정보가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특히나 마법사의 탑에서 살았다는 건 상당한 방패였다.

마법사의 탑에서는 보안상의 이유로 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일반인에게는 공유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래. 거기서 나와서 우리 셋이 가족을 이룰 생각이었지.”

말도 안 되는 아서의 생각에 실소가 나왔다. 이웃 나라 왕비님이 되기로 한 공주가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린다고?

“그런데 그녀가 우릴 배신한 거야.”

“건방진 놈! 감히 너 따위가….”

“책임을 진 거지.”

아서의 말에 화가 난 왕대비 전하가 소리쳤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배신했다고? 제네비브 공주님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을 진 거다.

“자식을 버린 걸 보통 책임이 없다고 하지.”

아서가 조롱하듯 말했다. 다시 왕대비 전하가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버린 건 너고. 공주님은 책임을 다했어. 나라를 위해 약속한 대로 뉴커크로 시집갔고, 날 친구에게 맡겨 잘 키우게 했지.”

서서히 왕대비 전하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전혀 다른 입장의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서는 정말로 내가 제네비브 공주님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길 바란 모양이다. 어쩌면 왕대비 전하도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 봐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네비브 공주님이 내 친어머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그녀가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뉴커크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날 키웠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지금 이 나라가 멀쩡할 거라고 생각해?”

뉴커크는 화가 날 거다.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 가장 잘 해결된다 해도 외교 관계는 최악이 됐겠지.

그렇다면 사생아 공주로 태어난 나는 행복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 때문에 이 나라의 외교가 틀어졌는데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어?

“제네비브 공주님은 옳은 선택을 했어. 나라와 가족, 그리고 내게 책임을 진 거야.”

아무도 몰래 내 어머니가 날 키우도록 했다. 덕분에 나는 좀 가난해도 행복한 집안에서 자랄 수 있었다.

나는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아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 고맙다고 말해야겠군. 당신의 의무를 저버려서. 비겁하게 도망쳐 준 덕분에 나라와 내가 무사했어.”

이번에는 아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세이마리아가 잘못 키웠군. 내가 교육시켜 주마.”

동시에 그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중 하나가 반짝 빛났다. 마법인가?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안 돼.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뜨자 나와 똑같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서가 보였다. 그는 자신의 손을 거둬 반지를 쳐다보더니 다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아무래도 그가 가져온 마력석의 마법이 사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당황한 아서의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유제니!”

깜짝 놀란 왕대비 전하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대로 아서의 몸에 부딪쳤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아서가 나동그라졌다.

“전하!”

넘어진 채 재빨리 왕대비 전하를 확인하자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 넘어져 있었다. 나는 일어나려는 아서를 막으며 소리쳤다.

“가세요!”

왕대비 전하는 내 지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바로 저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멈춰!”

다시 한번, 아서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다시 반짝하고 빛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법이 사용됐다.

“전하!”

나는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지는 왕대비 전하를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뒷문이 열리고 엘리엇이 나타났다.

“유제니!”

엘리엇이 왔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누군가의 팔이 내 목을 감쌌다. 그리고 날카로운 것이 허리에 닿는 게 느껴졌다.

“다가오지 마!”

젠장. 나는 아서가 엘리엇을 향해 내민 칼을 보고 내 허리에 닿았던 게 그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서가 어찌나 내 목에 팔을 세게 감았던지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제니, 괜찮습니까?”

생각보다 침착하게 엘리엇이 말했다. 오, 아니군. 나는 그의 눈을 보고 그가 전혀 침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이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서 제정신인 게 나뿐인 것 같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아직은요.”

적어도 아서가 들고 있는 칼이 내 허리에 닿지 않고 있다. 나는 말을 하기 위해 내 목을 감은 아서의 팔을 잡아당겼다.

“왕대비 전하를 살펴 줄래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어디 한 군데 다쳤을 것 같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도 남 걱정할 여유가 있나 보군.”

아서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어쩌면 나도 제정신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살아 있어야 할 사람이 나와 왕대비 전하니까.”

아서가 날 죽일 리 없다. 그 정보가 엘리엇에게 전해지자 그의 눈동자가 조금이나마 원래대로 돌아왔다. 좋아. 우리 중 한 명은 제정신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내가 미친 짓을 해야 하거든.

“둘 중 하나가 죽어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

여유로운 척 아서가 말했다. 하지만 내 목을 죄어 오는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으로 전혀 여유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엘리엇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떠 보이며 말했다.

“내가 공주가 되려면 나와 왕대비 전하 둘 다 필요해. 국왕은 내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엘리엇은 다행히 나와 아서의 말싸움으로 무슨 상황인지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는 검을 들고 있던 팔을 늘어트리며 끼어들었다.

“레이디 비스컨과 왕대비 전하 둘만으로도 어려울걸?”

“편지가 있어.”

아서의 주의가 엘리엇에게 향하는 게 느껴졌다. 그가 엘리엇을 향해 칼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제네비브가 내 딸을 낳았다는 편지가….”

내 목을 감싼 아서의 팔에 힘이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클레어에게 배운 거다.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우리 집에서, 그리고 ‘응접실’에서 사람들과 연습했다. 다양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기도 했다. 부디 그 효과가 있길.

“젠장!”

당황한 아서의 신음이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다음 동작으로 연결했다. 그대로 몸을 굴려 앞으로 피하는 거다.

“이리 와!”

아서의 고함이 들렸다. 하지만 아직 내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앞을 향해 달렸다.

“유제니!”

다음 순간, 엘리엇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갑자기 움직인 탓이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팔을 뻗어 문손잡이를 찾았다.

다시 엘리엇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괜찮습니다.”

손에 문손잡이가 닿았다. 문을 열고 나서야 나는 몸을 돌려 엘리엇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서도.

보이는 건 엘리엇뿐이었다. 설마 도망쳤나? 그가 끼고 온 마력석 반지를 생각해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왕대비 전하도 그렇게 납치하려 했을 거고.

“이쪽입니다.”

다행히 엘리엇이 내가 뭘 찾는지 알아차렸다. 그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엘리엇의 발에 밟혀 있는 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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