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17/239)

222화. 49 – 1

“그걸로 끝입니까?”

엘리엇이 물었다. 그는 며칠 전 내가 아서와 나눈 이야기를 들은 참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공주님과 아무 상관 없을 거라고 선을 그었고 아서는 알았다고 했다.

“다행이에요.”

나는 엘리엇를 향해 머리를 기울이며 말했다. 커다란 홀이지만 사람이 많다. 우리 주변에는 사람이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다행입니까?”

엘리엇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다행인 거 아닌가? 내가 쳐다보자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는 왕대비 전하께 당신과 자신의 관계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거잖습니까.”

“그렇죠.”

“전에, 그걸 걱정하셨잖습니까.”

나는 엘리엇에게 내 속물적인 모습을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그랬다. 내가 부모님의 친자식이 아니면 사교계에서 떠돌 소문을 걱정했지.

“여전히 걱정은 돼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직도 걱정된다. 그래서 아서가 자신의 존재를 엘리엇에게 말하지 말자고 했을 때 안도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좀 달라요. 아서는 왕대비 전하와 화해하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화해요?”

엘리엇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정확히 말하면 화해가 아니긴 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왕대비 전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으면 아서는 계속 숨어 살아야 하잖아요.”

“그건….”

입을 연 엘리엇은 잠시 멈칫하더니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그렇죠.”

“인생의 반을 마법사의 탑에 갇혀 있었잖아요. 남들처럼 살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아서가 내 친아버지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가 갇혀 있었던 게 그의 잘못에 합당한 벌이었는지, 과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는 지금 풀려났고 두 번째 기회를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인생의 반이라고요?”

그때, 엘리엇이 물었다. 인생의 반이겠지. 내가 태어날 때 잡혀가서 지금 풀려났으니까.

“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일지도 모르고요.”

내가 태어날 때 잡혀갔다가 지금 풀려났으면 인생의 반보다 더 오래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엘리엇은 내 말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언제 풀려났다고 했습니까?”

“한두 달 전일 거예요.”

풀려나서 내 행방을 찾았다고 들었다. 살던 곳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서 자신의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그것도 가슴이 좀 아팠다. 인생의 반 이상을 갇혀 살았는데 가지고 있는 개인 물건도 하나도 없다는 게.

“하지만 다행히 편지는 남았군요.”

전혀 다행인 것처럼 안 들린다. 나는 엘리엇이 무엇을 의심하는지 알아차리고 걸음을 멈췄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름대로 알아봤다.

“우체국이요.”

엘리엇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체국에 남아 있었대요. 수신인 불명이라 우체국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더군요.”

사람을 보내 알아봤다. 우체국에서는 어떤 우편물을 누구에게 언제 전달해 줬는지까지는 알려 줄 수 없지만 꽤 오랜 기간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준 사례는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그렇군요.”

“마법사의 탑에도 문의를 해 놓았어요.”

아서가 마법사의 탑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사람을 보내 물어봤다. 그가 마법사의 탑에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나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엘리엇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 정도 확인은 해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니까요.”

다 자란 자식에게 갑자기 찾아온 친부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당연히 나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 봤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지금까지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대부분 사실이었다. 왜 대부분이라고 하냐면 확인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고.

“오랜만이군, 레이디 비스컨.”

나는 백발의 신사가 인사를 건네자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엘리엇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양손을 모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일록 후작님.”

내 할아버지뻘인 이분이 사일록 후작이다.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은 있지만 딱히 친분이랄 건 없다. 그런 분이 오늘 자신의 저택에서 여는 음악회에 나를 초대한 이유는 아마….

“비스컨 남작은 어때? 잘 지내나?”

이분의 조카가 올리버를 납치 감금 폭행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직설적으로 올리버의 안부를 묻는 사일록 후작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 사건 이후에 사일록 후작이 어머니께 사과를 했다. 그리고 조카를 책임지고 다시 교육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들었다.

무슨 교육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확실한 교육이어야 할 거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에 만날 땐 사일록 경의 코를 부러트릴 거니까.

“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도 오고 싶어 했는데 몸이 안 좋아서요.”

뻔한 거짓말이지만 사일록 후작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거짓말이라고는 해도 그도 이해하겠지. 올리버가 이 집에 오는 걸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걸.

“비스컨 백작은? 잘 계시고?”

“네. 그렇지 않아도 곧 수도에 도착한다고 편지를 보내셨어요.”

오늘 아침에 받은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며칠 안에 도착할 거라고.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서가 나만의 문제지만 부모님이 오시면 함께 의논할 수 있을 테니까.

안타깝게도 올리버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오라버니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어? 그래도 아서와 만나고 나면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어보긴 한다.

그래도 오라버니라고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지?

“즐거운 시간 보내게. 자네도, 번즈 백작.”

사일록 후작은 나와 엘리엇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기 위해 떠났다. 엘리엇은 나와 나란히 서서 후작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좋은 분 같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만나면 항상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다. 그 정도면 좋은 분이지, 뭐.

나는 다시 엘리엇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음료대 쪽으로 향했다.

“‘응접실’은 어떻습니까? 잘 되어 가는 것 같던데요.”

그럭저럭 괜찮게 굴러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첫 세 달 정도는 적자를 각오했다. 내 목표는 넉 달째부터 적자만 면하는 거였거든.

하지만 놀랍게도 ‘응접실’은 아직까지 적자였던 적이 없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년부터는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나눠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부터요?”

엘리엇의 놀랍다는 표정을 보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투자자의 투자금을 갚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이 속도라면 내년부터는 투자자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로렌의 봉급도 올려 줄 수 있을 테고.

수익이 이렇게 나는 데는 로렌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녀는 방문한 사람들이 원하는 걸 기가 막히게 포착하거든.

그리고 리사의 사무실도 좀 더 제대로 꾸며 주고. 가장 큰 투자자인데 그녀가 원한 건 작은 사무실 하나뿐이었다. 자신에게 정보를 팔러 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쓰고 싶다고 했다.

“당신의 친구가 정보를 팔지는 않겠죠?”

리사의 이야기를 들은 엘리엇이 물었다. 아직 사기만 하고 팔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네. 좀 더 정보를 잘 다룰 수 있을 때 생각해 보겠다더군요.”

정보를 잘 다룬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게다가 팔지만 않을 뿐이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 주고 있다.

내게도 괜찮은 정보를 알려 줬다. 어느 사업가가 사업을 하려는데 괜찮을 것 같다는 식으로.

“오, 그리고 하몬 경의 사업이 최근 상당히 안 좋다는 이야기도 해 주더라고요.”

이건 반쯤은 가십이었다. 하몬 부인이 새로 시작한 수영장이 영 별로라고 했다. 그리고 하몬 경의 다른 사업도 죄다 실패했다고.

물론 워낙 부유해서 베라가 드레스 한 벌 못 살 정도로 가난해지지는 않았다.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고.

“저도 들었습니다. 듣기로는.”

거기까지 말한 엘리엇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내게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뉴커크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려다 걸렸다는군요.”

“하몬 경이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다. 불법이라니, 무슨 일을 했길래? 깜짝 놀라서 걸음이 멈췄다. 엘리엇은 나를 따라 걸음을 멈추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하몬 경이 아니라 패터슨 자작이군요.”

그거, 안다.

나는 잠시 엘리엇을 멍하니 쳐다봤다. 리사가 분명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고 했는데 엘리엇은 어떻게 아는 걸까?

“설마 그것도 친구분께 들으셨습니까?”

놀랍다는 엘리엇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태도를 보자 리사가 자랑스러워졌다. 이것 봐, 리사. 네 정보를 모으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니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요.”

“없을 겁니다.”

“그럼 왕비 전하께서는 아실까요?”

“아시지 않을까요?”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엘리엇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남의 일이 맞긴 하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나라의 귀족이 이웃 나라에서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다 걸린 거다.

이게 외교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좋겠는데.

“걱정되십니까?”

엘리엇의 질문에 나는 인상을 썼다. 당연히 걱정된다.

“패터슨 자작이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이야기겠지만요.”

안타깝게도 아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왕비 전하께서 근심이 많으시겠어요.”

엘리엇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왕비 전하께서 패터슨 자작을 도와줄 거라 생각하십니까?”

“자작 부인이 왕비 전하의 말동무니까요.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외교적인 문제가 될 테니 어떻게든 해결하려 하시겠죠?”

“그 과정에서 패터슨 자작가에 아무 불이익이 없을까요?”

“오, 그럴 리가요.”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저었다. 왕비님이 패터슨 자작가를 그냥 둘 리가 없다. 벌을 내리겠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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