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05/239)

210화. 46 – 1

“어머, 참 예쁘네요.”

“그러게요. 저건 과자로 만든 집인가 봐요.”

“세상에. 가구까지 다 있네.”

패터슨 자작 부인의 다실에서 다과회가 끝나 가고 있었다. 리사는 최근 들은 정보와 다른 상황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며칠 전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 패터슨 자작의 사업이 크게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냥 실패한 게 아니다. 뉴커크에서 수출이 금지된 물건을 수출하려다 들켰다고 한다.

패터슨 자작의 부하들은 뉴커크에 억류돼 있고 외교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인지 패터슨 자작 부부는 한동안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크고 화려한 다과회를 연 것이다.

리사가 알기론 뉴커크에서 밀수하기 위해 뉴커크의 귀족들에게 많은 뇌물을 건넸다고 들었다. 그리고 밀수품을 구매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을 썼다고.

당연히 이렇게 크고 화려한 다과회를 여는 건 조금 어려웠을 것이다. 설마 왕비님이 도와주셨나? 리사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패터슨 자작 부인이 초대 손님을 둘러보며 물었다.

“입에 맞나요?”

맞고 말고. 리사는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다 고급이었다. 이 정도의 사람을 초대해서 이렇게 고급스럽고 화려한 다과회를 열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그녀가 얻은 정보가 잘못된 걸까? 그렇지 않다. 리사는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인했다. 물론 그녀가 정보라면 뭐든 수집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정보를 맹신하는 것도 아니다.

리사는 진짜로 패터슨 자작의 사업이 아주 크게 실패했다는 걸, 잘못하면 패터슨 자작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파악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외교적인 문제기 때문이다. 단순히 국내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면 패터슨 자작 부인이 왕비님의 말벗이니 왕비님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확인한 바로는 패터슨 자작의 불법을 뉴커크에서 적발했다. 현 뉴커크의 왕비는 발시안의 공주였고 현 발시안 국왕의 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발시안과의 외교에서 철저하게 자른다는 평이 있다.

“아주 맛있어요.”

사람들의 칭찬에 패터슨 자작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하인에게 부족한 디저트를 더 가져오라고 지시한 뒤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그녀의 지인이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소문을 잘 내는 사람도 초대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하몬 부인도 있었다.

그리고 리사 그런트 양.

패터슨 자작 부인은 리사를 보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최근 레이디 비스컨과 친하게 지낸다는 걸 알고 있다. 부유한 그런트 가의 아가씨는 발이 넓고 아는 사람도 많다는 평이다. 그녀가 오늘 다과회에서 나온 소문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면 좋겠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레이디 비스컨의 귀에 들어가기만 하면 성공이다.

“최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패터슨 자작 부인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의 다과회에 상당히 만족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의 돈으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한다는 건 모든 사람의 꿈일 것이다.

일이 잘된다면 내년에도 이렇게 지낼 수 있겠지. 패터슨 자작 부인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패터슨 자작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고아한 어느 귀족 아가씨가 사실은 사생아라는군요.”

이게 무슨 소리야? 다과실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의 행동이 멈췄다. 리사 역시 인상을 쓰며 패터슨 자작 부인을 쳐다봤다.

“누굽니까?”

패터슨 자작 부인 근처에 앉아 있던 남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고아한 귀족 아가씨가 사생아라니.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들으면 못 믿을걸요?”

패터슨 자작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피식 웃었다. 그냥 헛소문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비스컨 백작가의 아가씨가 글쎄, 비스컨 백작 부부의 친자식이 아니라는군요.”

다과실 안에 충격으로 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스컨 백작가의 아가씨라면 레이디 비스컨? 사람들의 머릿속에 조용하고 안색이 나쁜 유제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 확실히 그녀는 가족과 좀, 다르긴 하죠.”

제일 먼저 물어본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제니는 비스컨 부부 중 어느 쪽도 닮지 않았다. 다들 그녀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닮았더라도 지금보다는 미인일 거라고 말하곤 했을 정도로.

“오, 맞아요.”

남자의 근처에 있던 여자도 맞장구쳤다. 유제니의 별명 중 하나가 그거 아니던가. 비스컨 중 가장 못생긴 비스컨.

금세 다과실에 유제니가 비스컨 사람들과 다른 점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비스컨 백작 부부나 남작에 비해 작죠.”

“어릴 때부터 비스컨 남작은 건강했는데 레이디 비스컨만 잔병치레가 잦았고요.”

“좋게 말해서 조용하지만 비스컨 가의 사람들에 비하면 낯을 가리는 편이죠.”

백작 부부의 친자식이냐 아니냐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리사는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망설이며 패터슨 자작 부인을 쳐다봤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여긴 그녀의 다과회이고 이런 이야기는 결국 스캔들이다. 자신의 다과회에서 이런 스캔들이 널리 퍼진다는 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닐 텐데.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 짓도 많이 했군요.”

“오, 맞아요. 그 배도 그렇고요.”

“갑자기 검술을 배웠다면서요?”

“역시 태생이 천해서….”

“잠시만요.”

점점 유제니에 대한 이야기의 수위가 높아지자 리사는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비스컨 백작 부인이 그러던가요?”

그럴 리가 없다. 타당한 지적에 다과실 안이 잠시 멈췄다. 패터슨 자작 부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리사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그런트 양은 레이디 비스컨과 사이가 좋았죠?”

자작 부인의 말에 리사의 얼굴이 굳었다. 유제니와 사이가 좋으니 그녀의 편을 드는 거냐는 말처럼 들린다. 그녀는 침착하게 물었다.

“이 자리에 레이디 비스컨과 사이가 나쁜 사람이 있나요?”

어느 누구도 누군가와 사이가 나쁘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철천지원수라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가장 끝에 앉아 있던 부인이 생각났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함께 온 친구에게 속삭였다.

“패터슨 자작 부인이 레이디 비스컨을 곤란하게 한 적 있지?”

“음? 오, 기억나.”

레이디 비스컨이 배에 있는 수영장을 운영할 때였다. 왕비님이 레이디 비스컨에게 남자의 출입이 금지된 수영장에 왕자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왕비는 금세 그 말을 철회했고, 그런 요청을 한 걸 사과하기 위해 레이디 비스컨에게 선물을 줬다고 들었다.

“그게 자작 부인 때문이라지?”

“선물을 준 게?”

“아니, 왕자님과 수영장을 이용하고 싶다고 한 거 말야.”

그걸 자작 부인이 부추긴 거라는 말이 있다. 물론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일은 왕비의 실수다. 왕비라면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니까.

“오, 맞아. 자작 부인도 수영장을 열었지?”

안타깝게도 패터슨 자작 부인의 수영장은 그리 인기가 좋지 않았다. 일단 사람들에게 수영장이라는 것의 신선함이나 신기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이 추워진 탓도 있고.

“흠, 그러네. 패터슨 자작 부인은 레이디 비스컨이 마음에 안 들겠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 두 부인은 자작 부인이 그런트 양에게 뭐라고 말할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소문이 헛소문이건, 사실이건 상관없다. 강 건너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 법이니까.

“내가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하나 본데.”

패터슨 자작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니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말하는 거다.

“믿을 만한 제보자가 있어요.”

“누군데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손님의 질문에 패터슨 자작 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레이디 비스컨이 친딸이 아니라는 걸 비스컨 백작 부부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레이디 비스컨의 친부를 알고 있거든요.”

* * *

“들었나?”

높은 모자 클럽의 독서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남자가 맞은편에 앉은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신문을 읽고 있던 친구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남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디 비스컨이 클럽을 열었다는군.”

“클럽?”

그게 무슨 소리야? 친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클럽은 남성들이 식사와 오락, 때로는 수면을 취하기도 하는 곳이다. 때로는 그 대상이 귀족으로, 혹은 작위가 있는 귀족으로 한정되는 클럽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 전용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귀족가의 아가씨라면 클럽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레이디 비스컨이 클럽을 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친구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짜다. 그는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신문을 접고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열성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귀족 여성들이 식사와 차를 마시기도 하고 간단한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는군. 이게 뭐같이 들리나?”

그제야 친구의 얼굴에도 이상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듣기로는 딱 남성들의 클럽처럼 들린다. 그는 독서실 안에 앉아 각자 책이나 편지, 신문 따위를 읽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물었다.

“오락이라니, 무슨 오락을 즐긴다는 거지?”

“글쎄.”

친구의 질문에 남자는 여유롭게 자세를 바로 했다. 잘 모른다는 태도지만 그의 입은 이미 말을 잇고 있었다.

“여자들이 즐기는 오락이니까 수를 놓거나 편지를 쓰겠지.”

아니면 꽃꽂이를 하거나. 그럴 수도 있겠네. 남자의 말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굳이 그걸 클럽에 모여서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군.”

“몇 명이나 가겠어? 여자들은 자기 집 응접실이 더 편할 텐데.”

“그건 모르지. 레이디 비스컨이라면 지난번에도 이상한 일을 벌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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