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4/239)

209화. 45 – 4

올리버고 나발이고 별로 반갑지 않다. 엘리엇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유제니의 말대로 올리버와 클레어를 발견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 인간들은 왜 유제니의 눈에 들어와서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제니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도 산책 중인가 보군요.”

“그런 것 같죠?”

다행히 올리버와 클레어는 공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공원 바깥쪽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만약 공원 안이었다면 유제니가 말을 걸었을 게 분명했다.

엘리엇은 그대로 유제니를 낚아채고 반대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유제니와 그에게 인사를 건네서 마음에 들지 않던 터였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유제니의 질문에 엘리엇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검술에 대한 토론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유제니는 어이가 없어서 엘리엇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리고 멀어지는 올리버와 클레어를 쳐다보며 말했다.

“둘이 그런 이야길 하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두 사람은 산책할 사이도 아니다. 엘리엇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유제니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두 사람이 산책할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아닙니다.”

어떻게 아는 걸까. 엘리엇은 재빨리 부인했다. 그러자 유제니는 그의 속을 꿰뚫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전부터 저 두 사람 사이가 이상했거든요.”

“어떻게 말입니까?”

‘어떻게’라고 하면 좀 어렵다. 유제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둘 다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엘리엇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유제니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처음엔 클레어만 올리버를 의식하는 거 같았거든요?”

“그 의식이 그리 좋은 감정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나와 유제니가 기억하는 게 서로 다른가? 엘리엇의 질문에 유제니는 배시시 웃었다. 그의 말대로 처음 올리버를 향한 클레어의 반응은 철천지원수에 가까웠다.

유제니는 내친김에 물었다.

“꿈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올리버는 클레어와 만나기 전까지 그녀를 몰랐다. 그렇게 그를 미워할 만한 사건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건은 꿈에서 일어났던 게 아닐까.

유제니는 자신에게는 과도하게 호의를 보이고 올리버에게는 과도하게 적의를 보이는 클레어를 떠올렸다.

있었다면 엄청난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

“글쎄요.”

엘리엇은 모호하게 대답했다. 클레어가 왜 올리버를 싫어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 거라면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다.

꽤 비겁한 대답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 부부거나,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했어요.”

그때 유제니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내뱉었다. 부부가 아니었을까 했다는 생각이 너무나 절묘해서 엘리엇은 저도 모르게 유제니를 쳐다봤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까?”

엘리엇의 질문에 다시 유제니의 콧잔등에 주름이 생겼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 두 사람을 보면 뭔가 재미있거든요.”

“재미요?”

재미있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유제니는 이미 사라진 올리버와 클레어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둘이 나란히 있는 걸 보면 재미있다.

“음, 둘이 좀 더 있는 걸 보고 싶어요.”

“두 사람이 결혼하길 바라는 것과 다른 겁니까?”

엘리엇의 질문에 유제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잘 모르겠다. 둘이 결혼하길 바라나? 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가 어떤 사람들이 결혼하길 바라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살면서 누구와 누가 잘됐으면 좋겠다거나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유제니는 남의 연애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있잖아요? 저 사람들은 결혼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요.”

교제하기 전부터 혹은 구혼한다는 소문이 돌기 전부터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김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다들 그렇지 않나? 유제니는 그게 감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나이 든 부인과 대화할 때면 그녀와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올리버와 클레어는 아니다. 유제니는 다시 한 번 클레어와 올리버를 떠올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모르겠어요.”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요? 어떨 것 같습니까?”

두 사람이 결혼한다라. 재미있는 상상에 유제니는 빙긋 웃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엄청 싸울 것 같은데요.”

엘리엇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유제니가 그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렇지 않나요?”

* * *

늦은 밤, 엘리엇은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과 가볍게 산책을 하고 성 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말이 산책이지 결국은 보고다. 엘리엇은 귀족들의 상태와 국내외 정세를 이런 식으로 산책을 하며 보고하곤 했다.

회랑을 걷던 엘리엇의 눈에 반대편 복도에서 코너를 꺾어 사라지는 클레어와 올리버의 모습이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자세를 꼿꼿하게 하고 걷는 클레어와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거는 듯한 올리버의 모습이었다.

“비스컨 백작이 리오스 부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요.”

엘리엇은 두 사람을 보지 못한 척하고 말했다. 유제니도 봤을까. 그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래?”

유제니는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한때 자신의 오라버니였던 사람과 말벗의 이야기인데 자신과 관계없다는 듯한 말투다. 엘리엇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잠시 멈칫했다가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제야 유제니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미소를 지우고 말했다.

“마음이잖나.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아무도 모르지.”

그렇긴 하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유제니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좀 다른 반응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엘리엇의 의문은 다른 의문으로 이어졌다. 혹시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은 비스컨 백작과 리오스 부인의 만남을 반기지 않는 걸까?

“두 사람이 잘되는 걸 바라지 않으시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리오스 부인에게 한마디 하면 될 것이다. 비스컨 백작이라면 반발할지도 모르지만, 리오스 부인은 유제니가 원하지 않는 건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엘리엇의 착각이다. 유제니는 방금 사라진 올리버와 클레어가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아니, 그 반대일세. 하지만 때때로 외부의 도움이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지.”

그 반대가 아닐까. 엘리엇은 하마터면 입 밖으로 그렇게 말할 뻔했다. 비스컨 백작과 리오스 부인이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건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허락한다면 저 두 사람을 막을 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 순간, 유제니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놀란 엘리엇이 뒤로 물러나기 전에 유제니가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아니, 아닙니까?”

올리버는 유제니가 허락한다면 클레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것이다. 그리고 클레어는 올리버가 사실은 유제니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를 받아들이겠지.

“내 허락과 상관없이, 저 두 사람을 막고 있는 게 너무 많아.”

대외적으로 올리버는 귀족의 앞잡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클레어는 누구나 인정할,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의 말벗이고.

두 사람이 교제를 한다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그러고도 꾸준하게 사람들의 의심을 사겠지.

유제니는 두 사람이 그런 희생을 하길 원하지 않았다. 남는 게 상대방밖에 없는 사랑이라면 그건 파멸일 뿐이다.

“그 말은 이번 생은 안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가 고개를 돌렸기 때문에 유제니에게는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번 생이라니, 농담처럼 들린다. 하지만 유제니는 그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어떤 아이가 성인식을 치르고, 어떤 커플이 결혼할지 느껴지는 것처럼 유제니는 상대방의 농담 속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래.”

올리버와 클레어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려서 엘리엇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그건, 꼭 유제니와 그의 관계 같다. 몇 번, 몇십 번을 만나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럼 언제 됩니까?”

엘리엇은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유제니를 가질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키고, 드래곤을 잡을 수 있다. 멍청한 귀족 놀음까지 하고 있는데 못할 게 뭐란 말인가.

그녀가 원한다면 엘리엇은 뭐든 될 수 있었다. 언제든 기다릴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될 수 있었다.

“글쎄.”

엘리엇을 따라 걸음을 멈추며 유제니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올리버와 클레어를 떠올렸다.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발시안이 안전하고 평화롭길 바라는 만큼, 유제니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별것도 아닌 일로 남녀가 엄청나게 싸울 때가 있지 않나.”

그렇게 말하며 어둠 속에서 유제니의 초록색 눈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 밝게 빛나는 게 마치 마법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그런 때가 오겠지.”

아주 먼 미래를, 어쩌면 가까운 과거를 헤매던 유제니의 시야가 엘리엇을 향했다. 밝게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엘리엇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자 유제니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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