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3/239)

208화. 45 – 3

클레어는 지난번 올리버의 사기 결혼 소동에서 비스컨 백작 부인이 얼마나 가차 없을 수 있는지 봤다. 그녀는 올리버와 약혼했다고 주장하는 여자들에게 비난의 편지를 보냈고 커피 하우스에는 직원을 당장 해고하라는 요청까지 불사했다.

물론 상인의 집에는 딸 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불호령을 내렸고.

그녀가 그냥 넘어간 집은 커센 가문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커센 양과 그 가족들은 야반도주를 해 버렸다. 그렇다고 알려져 있다.

그 사건에서 비스컨 백작 부인은 사교계에 확실하게 알렸다. 이번 일과 비스컨 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피해자라는 것을.

그 과정에서 커센 양과 유제니 사이에 사고가 있었다는 소식도 조금씩 알려졌다. 유제니가 어머니께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니 그녀가 말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귀족의 저택에는 많은 하인이 살고 있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며 입이 있다. 하인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갔던 거다.

다행히 유제니가 공격당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비스컨 백작 부인의 대응 덕에 사람들은 여자들이 탐욕스러웠고 멍청했다고 이야기했다. 유제니는 착하고 순진한 아가씨였을 뿐이라고.

그 이야기가 클레어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제니가 공격당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거 같냐던 엘리엇의 말이 떠올랐다.

꿈이었다면 사람들은 유제니를 비난했을 것이다. 독하고 못된 마녀가 피해자를 괴롭힌 거라고.

이번에는 비스컨 백작 부인이 유제니를 보호했다. 그녀가 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곳의 유제니도 꿈의 유제니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마녀라는 소문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클레어는 비스컨 백작 부인이 언제까지 유제니를 보호할지 걱정이 됐다. 유제니가 사생아라는 소문은 비스컨 백작가에 전혀 좋지 않으니까.

“내 어머니가 가문을 위해 유제니를 버릴 거라는 말이야?”

올리버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클레어가 말하기 전에 한숨을 내쉬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럴 리 없다. 그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한다. 올리버에게 유제니가 동생인 것처럼 어머니에게도 유제니는 딸이니까. 아니 어쩌면 올리버보다 비스컨 백작 부인의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 유제니가 자주 아팠어. 어머니는 나보다 유제니 곁에 더 오래 계셨지.”

한 번은 올리버가 정원의 꽃을 꺾어서 가져다준 적 있다. 아픈 유제니를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선물하려는 거였다. 그런데 그가 가져간 꽃을 본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며 유제니에게 말했다.

- 이것 보렴. 올리버가 널 위해 꽃을 가져왔구나.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 올리버는 유제니가 안중에도 없었다. 그 녀석은 거의 항상 비실비실했으니까. 게다가 원래 나이 차가 얼마 안 나는 동생이란 걱정된다기보다는 경쟁 상대인 법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그 뒤로도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올리버는 유제니가 친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부모님은 전혀 티를 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유제니를 편애한 것도 아니다. 올리버가 아카데미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비스컨 백작 부부는 반드시 유제니를 데리고 올리버를 응원하러 오곤 했다.

귀찮아하는 십 대의 유제니에게 비스컨 백작 부인이 말했다. 네 오라버니가 뭔가를 하는데 응원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렌시드 자작가와 약혼시켰잖아?”

클레어의 지적에 올리버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곧 클레어가 진상을 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거.

사교계에는 유제니가 인기 있어지자 조급해진 어닝이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파혼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고.

올리버는 다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그리고 나는 어닝이 진짜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했거든.”

“그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클레어의 말에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클레어가 보기엔 비스컨 백작 부인이 유제니를 빨리 치워 버리려고 적당히 아무나 고른 것처럼 보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진짜로 비스컨 백작 부인과 올리버는 어닝이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 유제니와 약혼하기 전까지 여자와 관련된 소문이 하나도 없었다고. 그리고 나쁜 버릇도 없었고.”

도박이나 술 문제가 있는 남자들이 있다. 그리고 사교계는 너무 심하지만 않다면 그 정도는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고.

그러니 나쁜 버릇도 없고 여자 문제도 없으며 부유하기까지 한 렌시드 가의 후계자는 상당히 인기 있는 남편감이었다. 유제니와 약혼하기 전에도 딸을 가진 많은 집안에서 어닝을 눈독 들였었다.

“게다가 유제니가 불편해하지 않는 녀석이었거든.”

“불편해하지 않았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클레어의 질문에 올리버는 미간을 찡그렸다. 사실 그도 잘 이해를 못 하겠다.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여자들을 보면 약간 우월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하지만 유제니는 아니었다. 그녀는 구혼하는 남자들이 단둘이 있으려 하거나 손을 잡으려 하면 불편해했다.

“아.”

올리버의 설명에 클레어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 올리버는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알겠어?”

이해한다. 그녀도 그런 남자들이 불편했다. 꿈에서나 지금이나 그녀를 특이하게 여기고 접근하는 남자들이 있다. 그녀를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 신기한 조각상 같은 걸로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렌시드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어머니는 그걸로 상당히 마음고생을 하셨지.”

유제니가 파혼한 뒤, 비스컨 백작 부인은 유제니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마음고생을 했다. 올리버와 단둘이 있을 때 친구 중에 괜찮은 남자가 없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렌시드 경이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단 말이지?”

클레어의 질문에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고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람 속은 모르는 거잖아. 우리는 겉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 번즈 백작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유제니에게 잘해 주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올리버는 구혼 기간에 그렇게 여자에게 목매던 녀석이 결혼하자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걸 자주 봤다.

그럼에도 번즈 백작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그가 유제니를 지킬 힘이 있고 부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족이고.

클레어는 멍하니 올리버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번즈 백작은 결혼한다고 해도 행동이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꿈에서도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만 바라봤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현실에서도 유제니에게 접근한 걸 알고 좀 무섭다고 생각했다.

“레이디 비스컨, 번즈 백작.”

같은 시각, 공원 안을 천천히 걷던 유제니와 엘리엇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두 사람이 과연 약혼을 한 건지 궁금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돌고 있는 유제니에 대한 소문을 엘리엇이 알고 있는지도 궁금해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제니는 몰랐다.

“말해도 돼요.”

열다섯 번째 사람과 인사를 한 뒤 유제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의 옆에서 걷던 엘리엇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게 정원을 걷지 그랬냐고요. 그렇게 말해도 돼요.”

집을 나오기 전에 엘리엇은 몇 번이나 유제니를 설득하려 했다. 그냥 정원을 걷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유제니는 날이 좋으니 공원을 산책하고 싶다고 우겼다. 그 결과가 이거다. 벌써 열다섯 번째 인사를 하고 있다.

“말하면 들으실 겁니까?”

“아니요.”

단호하게 대답한 유제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유쾌한 웃음소리에 엘리엇도 따라 웃었다. 유제니는 그의 팔 안쪽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요. 다음번에는 좀 더 호젓한 산책이 될지.”

그러니 엘리엇의 조언을 듣지 않겠다는 말에 엘리엇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유제니를 쳐다봤다. 덕분에 유제니의 걸음도 멈췄다.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엘리엇이 물었다.

“만약 다시 산다면, 지금 인생을 바꾸시겠습니까?”

그를 바라보는 유제니의 눈에 어리둥절한 감정이 어렸다. 여전히 보석 같다고, 엘리엇은 생각했다. 날이 맑거나 기분이 좋으면 그녀의 눈동자 색은 조금 더 밝아진다.

“이상한 질문이네요.”

유제니는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리엇 역시 쉽게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렇습니까?”

“과거로 돌아간다면 인생을 바꿀 거냐는 거죠? 당신 꿈처럼요?”

“그렇죠.”

“당신 꿈과 같은 상황이네요.”

그렇다. 엘리엇은 미소를 지었고 유제니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엘리엇은 유제니가 콧잔등을 찡그리는 버릇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으며 공원을 살펴보더니 모호하게 말했다.

“글쎄요.”

‘글쎄요’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엘리엇의 한쪽 눈썹이 올라가자마자 유제니가 입을 열었다.

“바꿀 필요가 있나요?”

“인생을 바꿀 기회잖습니까.”

“바꾼 인생이 이보다 나을 거라는 확신이 없잖아요?”

엘리엇의 말문이 막혔다. 유제니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바꿀 수는 있지 않습니까.”

“난 지금 만족하는데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결과가 지금이잖아요.”

로렌을 도왔고 어닝의 거짓말을 알자 파혼했다. 엘리엇이 빌려준 배를 이용해서 시작한 그녀의 자그마한 계획은 클럽을 열기 직전까지 와 있다. 이 모든 건 그 당시 유제니의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 덕분이다.

“렌시드 경과 약혼하기 전으로 돌아가지도 않으실 겁니까?”

“그때의 나는 어닝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거예요. 게다가, 어차피 파혼했잖아요. 돌아가서 다른 사람과 약혼했다가 그 사람이 더 끔찍하면요?”

차라리 똑같이 어닝을 선택한 뒤 파혼하고 지금의 인생을 사는 게 낫다. 유제니의 그럴듯한 설명에 엘리엇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돌아가서 저와 약혼하는 방법도 있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유제니가 어닝과 약혼했을 때 엘리엇은 커런트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유쾌한 가정에 유제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하나 있어요.”

“무엇입니까?”

“당신도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 있어야 하잖아요.”

엘리엇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그때, 유제니가 엘리엇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올리버와 클레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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