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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화 (200/239)

205화. 44 – 3

응?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질문, 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제 말은, 그러니까….”

내가 너무 놀랐던 모양이다. 클레어는 나를 보더니 허둥지둥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런 생각 하잖습니까? 다른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런 거요. 아니면 뭐, 언제로 돌아간다거나. 그런 생각이요.”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클레어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 비슷한 질문을 엘리엇에게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클레어는 낭패를 본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실수한 모양인데 무슨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네.

“아니요.”

일단 클레어의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다. 이번 답은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빠르게 흘러나왔다.

이미 엘리엇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으니까. 그때 생각했었다.

나는 좀 더 확실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런 생각 안 해 봤어요.”

“어, 정말요? 어, 그러니까. 다른 집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외에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요?”

그건 해 봤다. 어닝과 파혼했을 때. 과거로 돌아간다면 과연 내가 그와 파혼하지 않았을지 생각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떨지는 생각해 봤어요.”

“언제로요?”

“어닝과 파혼했을 때요. 돌아간다면 과연 파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죠.”

클레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녀는 이상한 냄새를 맡은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돌아가면 파혼하지 않으실 건가요?”

“아뇨. 돌아가도 내 행동은 같았을 거예요.”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다.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했던 건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가정은 의미가 없다.

“클레어는요? 그런 생각 해 봤어요?”

그렇게 물어본 뒤에야 나는 어쩌면 지금이 클레어에게 그런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꿈을 꾼 자다.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꿈으로 꿨다.

그러니 지금 클레어의 인생은 어떻게 보면 다시 돌아온 게 되겠지.

“네.”

클레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기 때문에 나는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군. 그녀는 꿈에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엘리엇도.

“다른 집에서 태어나는 것도요?”

그런 생각도 해 봤냐는 질문에 클레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서재 문에 등을 기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 생각도 했어요.”

흠. 그렇군. 엘리엇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귀족으로 태어났더라면 나와 만나는 게 더 쉬웠을 거라고도 말했지.

“어쩌면 그게 공통점인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서재에 있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다리가 아프다. 내가 앉으라고 권하자 클레어가 내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공통점이요?”

“꿈꾼 자들의 공통점이요. 엘리엇도 비슷한 질문을 했거든요. 당신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요?”

“그건….”

재빨리 입을 연 클레어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게 꿈을 꾸게 만든 게 아닐까요?”

나는 그런 꿈을 안 꿨다. 그리고 올리버도. 우리는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다. 그런 대화를 했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주 많을 텐데요.”

그중에서 몇 명만 꿈을 꿨다는 게 이상하다는 말에 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런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다른 집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안 해서 그런지 그렇게 많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클레어가 말했다.

“저는 지금보다 좀 더 평화롭고 어머니가 살아 계신 집에서 태어났으면 할 때가 있거든요.”

거기까지 말한 클레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

“주변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거든요.”

오, 그렇군.

나는 클레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줄리아를 말하는 거다. 그녀도 어머니가 살아 계신 집에서 태어나고 싶어 할 거라고.

물론 줄리아가 그런 생각을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꼭 줄리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되찾고 싶어 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꾸는 거라면 확실히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꿈을 꿨어야 한다.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클레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응? 나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뺏었다고?

“클레어, 우린 그냥 대화를 한 거잖아요.”

친구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걸 가지고 시간을 뺏었다고 하진 않는다. 우리가 친구가 아니거나, 지금 한 대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구끼리 시간을 보낸 것 아닌가요?”

혹시 클레어는 아직도 날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꿈에서 그녀와 내가 주종 관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그녀가 날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그녀를 살려 줬기 때문에 죄책감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마, 맞습니다. 친구끼리 시간을 보낸 거죠.”

그렇게 말한 클레어는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억지로 짓는 듯한 미소였기 때문에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꿈속의 나와 다른 사람인 건 알죠?”

가끔 엘리엇과 클레어가 나를 꿈속의 나와 동일시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꿈속의 내가 두 사람에게는 진짜 나로 느껴질 테니까.

두 사람은 레이디 비스컨인 나보다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인 꿈속의 나를 더 먼저 만났고 더 오래 알고 지냈다. 당연히 지금의 나보다 꿈속의 내가 더 가깝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나는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아니다. 가족을 모두 잃고 왕이 되지도 않았고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하지도 않는다.

안타깝게도 클레어의 얼굴에 충격받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꿈속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시했던 모양이다. 나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녀에게 말해도 될지 잠시 고민했다.

나는 그녀와 엘리엇이 사랑하는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쌓은 이야기가 없다. 그들이 존경하거나 미워하고, 사랑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드래곤이 침략했을 경우 내 미래가 됐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나는 그녀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느낀다.

“나는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아니에요.”

나는 입을 열지 못하는 클레어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말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갖지 않길 바란다는 말이에요. 그녀가 저지른 잘못이 내 탓이 아니듯, 당신에게 준 호의 역시 내 것이 아니니까요.”

클레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물었다.

“혹시, 제가 불편하다는 말씀이시면….”

“맙소사, 클레어.”

전혀 아니다. 나는 재빨리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잠깐 시간을 둔 뒤 말했다.

“당신을 멀리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에요. 난 당신이 좋아요. 당신이 내 친구라서 아주 좋아요.”

간신히 클레어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은, 당신과 같은 속도로 가고 싶다는 말이에요.”

“같은 속도요?”

“당신이 내게 가진 친근감과 내가 당신에게 가진 친근감이 다르다고 느껴요.”

나와 클레어는 많은 일을 함께하긴 했다. 하지만 그녀가 꿈속의 나와 겪은 일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겠지.

내가 클레어를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클레어가 나를 가깝다고 생각하는 감정이 더 깊다는 말이다. 나는 그 부분을 그녀가 이해했길 바라며 말했다.

“당신이 날 보호하려 하는 건 꿈속의 나와 있었던 일 때문이잖아요. 그렇죠?”

엘리엇도 그렇다. 그는 과도하게 나를 보호하려 한다. 아니, 과도한 정도가 아니지. 가끔 나는 엘리엇이 나를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건 과장하는 게 아니다. 엘리엇은 비 오는 날 내가 걷는 것도 불편해한다. 밝은 날 함께 산책할 때면 양산도 못 들게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꿈속에서 나와 겪은 일을 겪지 않았어요. 당신은 내게 어떤 빚도 없다는 말이에요. 나 역시 마찬가지고.”

다시 클레어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무례한 말을 한 걸까.

모르겠다. 나는 꿈을 꾼 자가 아니니까. 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는 게 어쩌면 클레어나 엘리엇에게 상처가 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알아요. 꿈속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당신이나 엘리엇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예요.”

꿈속에서 굉장히 긴 시간을 함께했는데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성장 배경을 가진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불편하게 느껴지겠지.

나는 클레어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덜 상하길 기도하며 말을 이었다.

“때때로 나는 죄책감을 느껴요.”

두 사람의 꿈에서 만난 내가 부러워질 때가 있다. 얼마나 길고 많은 추억을 쌓았던 걸까. 얼마나 깊은 교류를 했길래 두 사람이 이토록 내게 잘해 주는 걸까.

“지금 당신의 호의는 내가 아니라 당신의 꿈속에서 만난 내가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내게 마땅히 주어지지 않은 걸 갈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내가 갈취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는 거지만.

“그건….”

클레어는 입을 열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 역시, 자신의 호의를 내가 아닌 꿈속의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당연한 거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과 내가 같은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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