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40 – 1
“이번에 캐낸 광석을 가공한 겁니다.”
엘리엇이 내민 목걸이는 가느다란 줄에 내 새끼손톱만 한 보석이 달린 거였다. 이거, 팔찌랑 비슷한 디자인이라 같이 착용하기 좋을 것 같다.
“아시겠지만 보석의 가치가 높지는 않습니다.”
그가 그렇게 덧붙였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보석의 가치를 살펴보고 있던 게 아니다.
“오, 아니에요. 가지고 있는 팔찌와 비슷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왕비님께 받은 팔찌와 비슷한 디자인이다. 가운데에 조금 더 큰 마법석이 있는 것까지.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같이 착용할 수 있도록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고마워요. 잘 사용할게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짜로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팔찌도 내가 쓰기엔 조금 어린 디자인이 아닐까 싶었는데 평상시에 하고 다니기 좋았거든.
“착용해 보시겠습니까?”
하녀를 불러 목걸이를 넘기려는데 엘리엇이 물었다. 어, 그럴까? 선물 받았으니 착용한 걸 보여 주는 게 예의긴 하지.
“앤.”
목걸이 착용을 도와달라고 앤을 부르려는데 엘리엇이 상자에서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잠시 실례.”
실례? 나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시에 엘리엇의 손이 내 머리 뒤로 향했다.
어.
나는 그제야 허둥지둥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으며 말했다.
“오, 뭘 하려는 건지 몰랐어요.”
목걸이를 직접 걸어 주려 한 모양이다. 눈앞에서 엘리엇이 괜찮다는 듯 빙그레 웃는 게 보였다. 심지어 평소보다 더 크고 가깝게 보인다.
이거, 심장에 별로 좋지 않은데.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쪽 무릎을 꿇은 엘리엇의 다리와 발이 보인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내 앞에서 이렇게 자주 무릎 꿇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목덜미로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헉.”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자 엘리엇이 재빨리 손을 들어 보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손가락이 닿았습니다.”
목덜미에 그의 손가락이 닿았던 모양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 목으로 손을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괘, 괜찮아요. 그냥 좀 놀랐을 뿐이에요.”
그것도 기분이 이상했다. 손가락이 스쳤던 부위가 간질간질하게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떨쳐 내기 위해 그대로 그가 걸어 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예쁘네요. 고마워요.”
다시 엘리엇을 쳐다보며 인사하자 그는 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지? 어리둥절해하는데 옆에서 앤이 거울을 내밀며 말했다.
“아가씨, 거울로 보시겠어요?”
세상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보지도 않고 예쁘다고 했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하다. 나는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재빨리 거울을 들었다.
거울 안에 아주 잘 익은 내 얼굴과 웃음을 참는 앤의 얼굴이 보인다. 어휴. 창피해라.
“괜찮습니까?”
거울 뒤에서 엘리엇이 물었다. 저게 부디 내 얼굴이 너무 붉어서 괜찮냐고 묻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얼굴색이 조금 가라앉은 것을 보고 거울을 앤에게 넘기며 말했다.
“네, 예뻐요. 정말 고마워요.”
엘리엇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으으, 저 미소가 무슨 의미일지 알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주제를 바꾸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비스컨 남작 사칭 사건 말인데요. 좀 이상해요.”
금세 엘리엇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휴, 다행이다. 나는 안도하며 가져온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가 종이를 확인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초상화예요.”
“사칭범의 초상화입니까?”
그는 곧바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놀라운데? 이 그림만으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아무것도 없다. 종이에 그려진 건 얼굴형과 목뿐이다. 약간 갸름하다 싶은 얼굴형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기억을 못 합니까?”
“네. 아무도요. 아, 커센 양은 기억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커센 양은 찾을 수가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이상하네. 그녀의 가족들은 마치 야반도주라도 하는 것처럼 사라졌다.
설마 우리 집이 그녀의 집에 항의나 피해 보상이라도 요구할까 봐 그런 걸까. 사과만 하면 덮어 두겠다고 말했는데.
“아닐 겁니다.”
그때, 엘리엇이 불쑥 말했다. 뭐가 아니야?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가 다시 말했다.
“당신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닐 거라고요.”
세상에.
나는 너무 놀라서 무례하다는 것도 잊고 입을 딱 벌린 채 엘리엇을 쳐다봤다. 내가 그 생각 하고 있었던 걸 대체 어떻게 알았지?
엘리엇은 나를 보고 다시 씩 웃었다.
“죄책감을 가지고 계시잖습니까.”
“어, 얼굴에 보여요?”
내가 그렇게 표정으로 잘 드러나는 줄은 몰랐는데. 나는 당황해서 손바닥을 뺨에 대며 물었다. 방금 전에는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제는 표정에서 다 드러난 모양이다. 이건 귀족의 소양이 부족한 거다.
“아니요. 당신이라면 자기 탓을 하실 거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다행히 엘리엇은 내 표정을 읽고 말한 게 아닌 모양이다. 어느 쪽이 더 나쁜 건지 모르겠네.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것과 속을 읽히는 것.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두 명은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어요.”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하다. 결혼을 약속할 정도로 만난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머리 색이나 눈동자 색도 말입니까?”
엘리엇은 텅 빈 초상화를 보며 물었다.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처음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라 숨겨 주려고 그러는 건가 싶었지만,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눈 수사관 말로는 피해자들은 자신이 약혼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당황했다고 한다.
“이상하죠? 가장 잊기 어려운 부위잖아요?”
나는 아직도 어닝의 눈 색이나 머리 색을 기억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엘리엇의 눈동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에잇, 뭘 하는 거야? 어닝의 눈동자 색을 떠올리라니까?
멍청한 내 머리를 혼낸 다음 엘리엇을 쳐다보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살짝 놀라자 엘리엇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그 대답이 다시 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스친 목덜미가 뜨겁게 느껴져서 나는 손을 들어 목을 만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사는 곳이나 나이, 키도 모른답니까?”
이어진 엘리엇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키는 어느 정도 됐느냐는 질문에도 피해자들은 혼란스러워했다고 한다.
“어디서 만난 건지도 기억하지 못하겠군요.”
정답이다. 엘리엇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꼭 그 남자에 대한 기억만 지운 것처럼요.”
“두 여자의 공통점은 없습니까?”
없다.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한 명은 어렵게 살아가는 커피 하우스의 직원이고 한 명은 부유한 상인의 딸이니까. 사는 곳은 물론 활동하는 곳도 겹칠 일이 없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베라를 만나기 전까지.
“아쉽게 됐어요. 꼭 유제니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었거든요.”
엘리엇이 떠난 뒤 나는 베라를 만나기 위해 하몬 저택에 방문했다. 베라가 좋은 차가 들어왔다고 며칠 전에 초대했다.
물론 그녀의 자랑대로 굉장히 좋은 차였다. 향은 은은했고 맛은 부드러웠다. 문제는 엘리엇의 집에서 대접받은 차와 같은 차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아는 척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베라는 내게 차를 따라 주며 점술가가 떠났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래?”
베라가 저렇게 아쉬워하니 좀 궁금해지긴 했지만, 이미 떠났다는데 방도가 없다. 여유롭게 차를 즐기는 내게 베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다들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던 모양이에요.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거기까지 말한 베라가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그 피해자도 점술가의 팬이었어요.”
“피해자?”
하마터면 차를 마시다가 기침을 할 뻔했다. 깜짝 놀라는 내게 베라가 점술가의 팬이었다는 피해자를 알려 주었다.
“그 집도 꽤 부유하거든요. 그런데도 그 점술가가 큰돈을 요구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상인의 딸을 말하는 거다. 그녀도 점술가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점술가나 음악가, 화가 같은 사람들은 대상에 따라 비용을 다르게 청구한다. 좀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돈을 받는 대신 더 많은 것을 해 준다.
화가라면 초상화를 작게 한 장 더 그려 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점술가는 더 자세하게 점을 봐 주는 식이었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나도 점을 돈을 주고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점술가는 상인의 딸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돈을 받았고, 하몬 경은 그걸로 혀를 찼다고 한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언제 부자가 되겠냐고.
“돈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이었나 보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돈을 벌기보다는, 뭐라고 할까. 수양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할까.
보통 수도사들이 그렇긴 하지만.
“맞아요. 때때로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점을 봐 주기도 했던 모양이에요.”
“노동자?”
“하녀들 사이에서도 유명했거든요. 그리고 찻집이나 커피 하우스의 직원들도 종종 점을 봤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