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76/239)

181화. 39 – 1

이상한 꿈을 꾼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올리버의 머릿속에 몇 달 전부터 사교계 안에 돌던 소문이 떠올랐다.

아주 무서운 꿈을 꾸게 된다고 한다. 어찌나 무서운 꿈인지 그 꿈을 꾼 사람들은 미쳐 버린다고 들었다. 미쳤다는 소문이 났다가 지금은 시골로 내려간 레이디 데번도 그 꿈을 꿨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가십일 뿐이고.

“말도 안 돼.”

신문을 보던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활자 위를 헤매고는 있지만, 신문은 한 장도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레이디 데번 말고도 미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던 자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발시안이 멸망하는 꿈을 꿨다고 주장하던 저먼 경.

그 멍청이는 저먼 가에서 죽을 때까지 집밖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거둬들였다. 물론 저먼 가는 그래야 할 거다. 만약 올리버의 눈과 귀에 띈다면 그 순간 저먼 경은 죽은 목숨일 테니까.

그 녀석 역시 꿈을 꿨다고 했다. 그 멍청이의 미친 짓이 꿈 때문이라면. 꿈을 꿨다던 클레어 역시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허.”

말도 안 된다. 올리버의 머릿속에 또렷한 클레어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미친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또렷하고 깨끗하지는 않을 거다.

클레어의 눈을 생각하자 올리버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그제야 손에 들린 신문을 발견한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며 신문을 내려놓았다. 이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클레어가 그랬다. 그녀의 꿈에서 올리버가 유제니를 죽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는 클레어가 완전히 개꿈을 꿨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유제니를 죽여? 그건 정말로, 진짜로 말도 안 된다. 차라리 유제니나 올리버가 평생 혼자 사는 꿈을 꿨다고 해도 올리버는 이 정도로 어이없어하진 않았을 거다.

“유제니가 좀 짜증 나긴 하지.”

올리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 생각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끔 유제니가 잘난 척하는 걸 보면 동생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물론 그가 그렇게 말하면 유제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오라버니가 오라버니답게 굴면 되는 문제라고 하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유제니는 하나뿐인 그의 동생이다. 어릴 때 입이 짧아서 작고 허약했던 동생. 아플 때면 어머니가 품에 안고 약을 먹이던 그의 어린 동생.

“비스컨 남작.”

갑자기 올리버의 앞에 벽이 나타났다. 그에게 벽처럼 느껴질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올리버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가 그와 부딪칠 뻔한 사람이 번즈 백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 번즈 백작.”

어느새 올리버는 복도에 나와 있었다. 맞은편에 엘리엇이 오고 있는데 멍하니 걷고 있으니 부딪치기 전에 알려 준 것이다.

올리버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엘리엇이 용병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잠깐, 시간 좀 있나?”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던 엘리엇은 올리버의 요청에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시간은 많지만, 타인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올리버는 유제니의 오라버니고, 그것만으로 엘리엇은 올리버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었다.

“그, 자네는 여러 사람을 만나 봤잖나?”

두 사람이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뒤, 올리버는 그렇게 서두를 뗐다. 물론 엘리엇은 그가 대체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몰라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혹시, 음, 최근에 몇몇 사람에게 도는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문 말입니까?”

엘리엇의 질문에 올리버의 말이 멈췄다. 아, 그거부터 설명해야 하네. 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몇몇 사람 사이에 소문이 돌거든. 어떤 꿈을 꾸면 미친다고 말이야.”

다시 엘리엇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표정에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모른다. 무슨 꿈인지.

그냥 그런 꿈이 있다고 들었을 뿐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드래곤의 습격을 받아 발시안이 멸망하고 어느 마녀가 발시안을 지배한다고 한다더군.”

거기까지 말한 올리버는 엘리엇이 들었을까 싶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엘리엇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문득, 예전에 사람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번즈 백작은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라 어렵다고.

어쩌면 그냥 말도 안 되는 개꿈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한심해하는 건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괜한 이야기를 했군.”

“그런 꿈을 꾸기라도 했습니까?”

올리버가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려는데 엘리엇이 불쑥 물었다. 그는 멈칫하고 엘리엇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꾼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게 문제가 됩니까?”

생각도 못 한 질문에 올리버는 어리둥절해졌다. 무서운 꿈을 꾼 게 문제가 되냐고? 그는 당연히 문제가 된다고 하려다가 번즈 백작이 아직 소문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그 꿈을 꾸면 미친다고 하더군.”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이 미쳤습니까?”

어어?

이어진 번즈 백작의 질문에 올리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미쳤냐고? 아니, 안 미친 것 같다. 하지만 미친 것 같은 소리를 한다.

답답한 마음에 올리버는 약간 빠르게 속삭였다.

“미친 것 같은 소리를 하니까 말이지.”

“그럼 미쳤나 보지요.”

이 인간이? 올리버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엘리엇은 여전히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는 올리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천천히 말했다.

“미친 것 같으면 미친 사람으로 치부하고 상대를 안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군요.”

정확한 지적에 올리버의 입이 딱 벌어졌다. 문제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그도 잘 모르겠다는 거다. 엘리엇의 말대로 다른 녀석들이 그랬다면 헛소리 작작 하라고 한 대 때리고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클레어 라넌 경이다. 올리버는 울컥해서 말했다.

“꿈에서 내가 유제니를 죽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나.”

그 순간, 엘리엇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올리버가 놀라서 물러나자마자 엘리엇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내가 잘못 봤나? 올리버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엘리엇이 말했다.

“개꿈이군요.”

“그, 그렇지?”

개꿈이다. 엘리엇 역시 그렇게 말했지만, 올리버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내가 유제니를 죽이다니, 말도 안 되지! 날 뭘로 보고!”

“꿈이라면서요.”

흥분한 올리버와 달리 엘리엇은 냉정하게 말했다. 꿈에서 그랬다면서? 그런 그의 말에 올리버 역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아니고 일어날 거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꿈을 꾼 것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올리버의 기분이 조금, 아주 조금 나아졌다. 그러자 엘리엇이 말했다.

“꿈은 반대라던데요.”

“그, 그래?”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있는 것도 같다. 꿈에서 누가 죽으면 오래 살 거라던가.

어디까지나 악몽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지금의 올리버에게도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래, 꿈은 반대지.”

올리버는 엘리엇의 말을 되뇌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사이 엘리엇은 몸을 돌려 자신이 들어온 길로 나가 버렸다.

“번즈 백작님.”

오늘 왜 이래? 근무를 마치고 나오던 클레어는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듯 서 있는 엘리엇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근무 전에는 비스컨 남작이 찾아오더니 근무 후에는 번즈 백작이 찾아왔다.

둘 다 그리 반갑지 않다. 하지만 클레어는 엘리엇에게 다가가 고개를 까딱하고 물었다.

“절 찾아오신 겁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 앞은 검은 늑대 기사단의 건물이니까. 번즈 백작이 여길 찾아올 이유는 클레어 라넌뿐이다. 문제는 그가 클레어를 찾아왔다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이라는 거고.

“설마 레이디 비스컨에게 문제라도?”

제일 먼저 클레어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유제니를 향한 걱정이었다. 번즈 백작과 그녀는 공통된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 서로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클레어는 엘리엇이 자신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왔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네가 입조심을 안 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차가운 엘리엇의 말에 클레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입조심을 안 했다고? 어리둥절해하던 그녀는 곧,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달았다.

“비스컨 남작이 떠들고 다니는 모양이군요.”

그 멍청이. 아주 조금이라도 그에 대한 마음을 고쳐먹으려 했던 그녀가 바보였다. 하지만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엘리엇이 말했다.

“떠들고 다니지는 않지, 아직.”

아마도 앞으로도 떠들고 다니지 않을 거다. 자신이 여동생을 죽이는 꿈이라니, 떠들고 다녀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엘리엇은 올리버가 떠들고 다니는 것보다 그게 유제니의 귀에 들어가는 게 가장 두려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맞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엘리엇의 비난에 클레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의 말이 맞다. 두 사람은 꿈에서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동의했다.

“제 잘못입니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클레어의 모습에도 엘리엇의 차가운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게다가 거짓말을 했더군.”

“그게 사실이니까요.”

거친 클레어의 반응에 엘리엇은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다는 그의 태도에 클레어가 화를 내며 물었다.

“당신은 화도 안 납니까?”

그녀는 꿈에서 깨자마자 비스컨 백작을 죽여 버리지 못한 걸 후회했다. 적어도 시도했어야 했다. 그녀가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의 충직한 신하이자 친구였다면.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보여 준 우정에 그 정도 보답은 했어야 했다.

그때, 엘리엇이 말했다.

“그가 죽인 건 아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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