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0/239)

175화. 37 – 3

모르겠다. 믿나? 나는 안 믿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같은 꿈을 꾼 사람들이 내 곁에 나타났잖아. 증인이 있는데 안 믿어도 되는 건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당신은요? 안 믿어요?”

엘리엇의 얼굴에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건 비겁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으음, 확실히 좀 비겁하긴 하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질문을 바꿔 보죠. 미래가 고정되어 있다고 믿습니까?”

갑자기 어려운 질문이 돌아왔다. 아니, 간단한 질문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어렵네요. 미래가 고정돼 있다면 내 미래는 결정돼 있고 나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이잖아요?”

내가 어닝과 결혼하지 않는 거로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나는 어쨌든 어닝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그게 내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 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다.

나는 내 선택으로 어닝과 파혼했으니까. 그게 미래가 고정돼 있어서 일어난 일이라면 내 선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된다.

나는 다시 생각하고 말을 고쳤다.

“아니요. 안 믿을래요."

엘리엇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결정할 수 있거든요.”

나와 똑같은 이유로 엘리엇 역시 미래를 예지한다는 걸 믿지 않는다. 그게 나를 조금 기쁘게 했다. 나는 엘리엇을 보고 미소를 짓다가 문득 로렌이 생각나서 고개를 돌렸다.

로렌은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 그녀는 꿈에서 자신의 미래를 봤다고 생각하고 있다. 방금 전 미래가 정해졌다는 걸 믿지 않는다는 나와 엘리엇의 말이 그녀에게도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미래를 알고 싶지 않아요?”

다시 베라가 물었다. 그녀는 알고 싶나 보다. 그러니까 점술가를 부르는 거겠지. 주최자가 어떤 여흥을 준비하느냐를 보면 그 주최자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귀족은 무슨 행사를 열든지 반드시 감초 사탕을 내놓기도 한다. 심지어 감초 사탕을 만드는 사람을 불러와서 즉석에서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점술가를 여러 번 부른다는 건, 하몬 가의 사람들이 점 보는 걸 좋아하는 거겠지. 어쩌면 하몬 경이 예언이나 예지 같은 걸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사업하는 사람 중에 점술가를 측근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더라.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알 수도 없는 거 아냐?”

줄리아의 질문에 베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라는 표정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두 개는 다르지. 추측할 수는 있으니까. 예를 들면 줄리아, 네가 지금처럼 과제를 안 한다면 방학이 끝난 뒤 혼이 나겠지.”

내 말에 줄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투덜거렸다.

“아, 한다고요.”

“한다면 혼나지 않을 거고. 그럼 미래는 바뀌는 거 아닐까?”

어쩌면 진짜 예언가나 미래를 봤다는 사람이 없는 이유도 이것 때문인지 모른다. 미래는 고정돼 있지 않으니 예언을 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바꾼 거지. 로렌처럼.

“그럴 수도 있죠.”

엘리엇은 재미있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베라를 대신해 다시 물었다.

“어때요?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나요?”

“아니요.”

엘리엇의 대답은 곧바로 튀어나왔다.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엇답다. 그는 이미 자신의 인생을 개척했다. 그러니 미래를 엿보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개척하려 하겠지.

“당신은 어떻습니까?”

뒤이어 엘리엇이 내게 물었다. 나는 보고 싶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이상하게 그가 긴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질문인데 왜 긴장하는 걸까. 엘리엇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다들 보고 싶어 하지 않나?

하지만 곧바로 나는 내가 진짜 내 미래가 궁금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 답을 먼저 알고 풀고 싶은 것에 가깝다. 나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자체가 더 재미있거든.

어려운 문제를 내가 아는 공식에 대입해서 계산하면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미리 엿본 답과 내가 계산한 답이 맞다면 내가 맞았다는 안도감도 들고.

하지만 내 인생은 수학 문제가 아니다. 미래는 수학 문제의 답처럼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내 미래를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해요.”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로렌과 엘리엇에게 두 사람의 꿈에 나온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묻는 것도 그래서다.

재미있잖아. 나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 나라면 내릴 법한 결정이라는 게.

하지만 그건 두 사람의 꿈에 나온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일단, 내가 왕이 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진짜 내 미래라면, 아니요. 안 보고 싶어요.”

흥미를 떠나서 선택한다면 안 보고 싶다. 그러니까 그 미래가 진짜 내 미래라면, 모르는 게 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째서요? 궁금하지 않아요?”

줄리아가 물었다. 궁금하긴 하지.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내가 거기에 사로잡힐 수도 있잖아.”

나라면 그 미래를 의식하겠지. 어닝과 파혼한 뒤에도 그랬잖아. 로렌과 엘리엇에게 두 사람의 꿈에 나온 내가 누구와 결혼했는지 물어봤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남자와 결혼했고 그 남자를 안다면 의식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게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영향을 줄 테고.

그렇다면 예언은 결국 성립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예언이 움직이는 방식일지도 모르고.

“그런가? 난 그래도 알고 싶은데.”

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로렌을 쳐다봤다. 로렌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어, 정말?”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베라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로렌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군. 로렌은 자신이 꿈을 꿨다는 걸 나와 줄리아에게만 말한 모양이다. 나는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모르고 싶은 건 우리뿐인가 봐요, 엘리엇.”

금세 베라의 주의는 미래를 알고 싶지 않다는 나와 엘리엇에게 향했다. 나는 그녀가 로렌을 쳐다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야 바꾸죠.”

그때, 로렌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꿈을 꿨기 때문에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게 조금 안타까워서 말했다.

“로렌, 너는 영리하니까 그냥도 바꿀 수 있어.”

꿈이 아니었어도 꿈처럼 되지 않았을 거다. 로렌은 내 위로에 씁쓸하게 말했다.

“아닐 거 같아요.”

그렇지 않다. 로렌은 꿈을 꾸자마자 꿈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심지어 겁도 없이 수도 밖으로 도망치려 하기도 했지.

나는 그녀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순간 상황을 고치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을 잔뜩 샀을 때 기억나?”

얼마 안 됐으니 기억날 거다. 로렌은 체크무늬 천을 잔뜩 샀을 때를 이야기하자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끄러울 일인가?

“드레스를 만들어 판다고 했는데 잘 안 됐잖아.”

“제가 바보였어요.”

“난 그냥 네가 뭔가 시도를 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해.”

다들 그런다. 나도 멍청한 시도를 꽤 많이 했다. 복숭아 파이를 만들어 보겠다며 주방을 엉망으로 만든 적도 있다.

오죽하면 우리 집 요리사가 나한테 진지하게 아가씨는 직접 요리할 일이 없으니 요리에 관심 두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고 나서 그 천을 전부 팔아 치웠어. 짐 가방에 덧대서 말야.”

그건 정말 대단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 짐가방을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는 편지가 어찌나 많이 왔던지 내가 가방 판매원이 된 기분이었지.

“하지만 속았잖아요.”

여전히 기운이 없는 로렌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도 있지. 로렌은 고작해야 열여덟 살이고 꿈에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그건 지금과 다른 인생이다. 어디까지나 꿈이고.

우리는 살면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나쁜 사람도 만난다. 나쁜 사람이라고 완전히 나쁜 것만도 아니고 좋을 수도 있고.

그건 그냥 로렌이 경험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도 겪는 거다. 거기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어른의 일이고.

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채 만들어지지도 않은 수영복을 팔기도 했어.”

로렌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녀를 따라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운도 팔았지. 지금도 내 훈련장을 네가 관리하고 있잖아.”

로렌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열여덟 살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완이 있고.

“나는 네가 스스로 자기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너뿐만이 아니라 줄리아나 베라도 마찬가지고.”

베라도 그렇다. 아직도 그녀는 실수를 한다. 그리고 아직도 아침마다 자신이 실례를 저지른 사람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있다.

받아 준 사람도 있고 무시한 사람도 있다. 거기서 실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차근차근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그런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거. 사과하는 거.

그게 나한테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우리, 점쟁이 이야기하는 거 맞죠?”

그때, 베라가 끼어들었다. 그녀가 듣기론 이게 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점을 보는 게 좋은지와 싫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고요?”

“점 보는 건 좋아.”

재미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베라에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점은 어디까지나 점이라는 거지.”

맞을지 틀릴지도 알 수 없는 거. 현재의 상황을 기반으로 미래를 추론하는 거.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에언이다.

그렇구나. 베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렇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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