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0/239)

165화. 36 – 2

“요새 번즈 백작과의 사이는 어떠니?”

오늘 아침은 사과를 넣은 팬케이크였다. 그리고 달걀. 올리버는 두툼한 오믈렛을 해 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삶은 달걀 하나만 부탁했다.

“유제니.”

삶은 달걀의 껍질을 스푼으로 톡톡 치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어머니와 올리버, 둘 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나한테 하신 질문이었어?

나는 당황해서 올리버를 돌아봤다가 진짜 내게 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올리버 역시 인상을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좋아요. 왜요? 안 좋은 것 같아요?”

나와 엘리엇의 사이는 아주 원만하다. 어제도 번즈 저택에 가서 차를 마시고 왔거든. 너무 자주 방문해서 그를 방해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엘리엇은 그리 바빠 보이지 않았다.

“요즘 번즈 백작이 바쁜 것 같아서 말야.”

바쁘다고?

방금 전까지 그가 그리 바빠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나는 어머니의 말에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올리버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바쁠 거예요. 번즈 백작, 하는 일이 많거든요.”

“많아?”

바쁘다고? 전혀 몰랐는데?

내 질문에 차를 한 모금 마신 올리버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런저런 사업을 하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도 하몬 경과 배를 살펴봤다는 것 같던데요.”

“하몬 경과 동업한다는 말은 들었지.”

어머니의 말에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게도 몇 개 인수했더라고요.”

“가게? 무슨 가게?”

내가 방문했을 때면 엘리엇은 늘 한가해 보였다. 바쁘거나 시간이 촉박하다는 느낌도 없었고. 그는 한 번도 내게 다음 약속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내가 방문하면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일어나면 벌써 가느냐고 붙잡기까지 했다.

아, 물론 대부분 손님이 떠나려 하면 예의상 붙잡기는 한다. 하지만 엘리엇은 예의상이 아니었단 말야. 내가 집에 간다면 항상 케이크 하나 더 먹고 가라고 한다. 끝까지 집에 그만 가 봐야겠다고 할 때가 되어야 아쉬워하며 데려다준단 말이지.

“음, 커피 하우스 하나 인수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찻집도.”

“둘 다?”

어머니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커피 하우스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면 찻집을 이용하는 건 대부분 여성들이다. 찻집은 커피 하우스와 달리 남성들도 많이 이용하지만.

“다양하게 손대 보는 모양이더라고요. 대장간도 하나 인수했다고 들었고요.”

진짜 여러 분야에 손대 보는 모양이다. 관심이 다채롭네. 나는 차를 홀짝이며 올리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다음에 방문하면 또 어떤 가게를 인수했는지 물어봐야지.

“저런.”

어머니는 안됐다는 듯 한마디 하더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왜 안됐다는 표정인지 모르겠네. 나는 그녀가 차를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저와 다퉈서 안 오는 줄 아신 거예요?”

“그건 아니고….”

잠시 풀어졌던 어머니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뭐지? 나와 올리버가 어리둥절해하자 그녀는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거마로트 공작가와 사이가 조금 안 좋은 것 같다는 말이 있거든.”

거마로트 공작가와? 핸더슨 후작가가 아니라?

나는 뜻밖의 말에 놀라 올리버를 쳐다봤다. 놀랍게도 올리버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왜요?”

“번즈 백작이 말 안 했니?”

안 했다. 내가 고개를 젓자 어머니와 올리버의 시선이 부딪쳤다. 내가 들은 건 그와 핸더슨 후작가와의 관계뿐이다.

그와 핸더슨 후작과의 관계로 후작 부인이 엘리엇을 적대시하는 바람에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생겼고. 엘리엇이 우리 집에 방문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핸더슨 후작 부인은 더 이상 엘리엇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우리가 후작가를 찾아 대화를 나눈 뒤로.

그런데 엘리엇은 아직도 우리 집을 방문하지 않고 있지.

“무슨 일인데요?”

나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문득 가십에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와 올리버가 이해가 됐다. 내게 중요한 사람에 대한 가십이 있는데 나는 전혀 모르다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어, 번즈 백작이 거마로트 공작의 아들을 용에게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있거든.”

이번에도 올리버가 대신 대답했다. 나는 재빨리 딱 잘라 말했다.

“헛소문이야.”

헛소문이다. 오히려 엘리엇은 멍청한 힐데자르에게서 발시안을 구했다.

“하지만 그게 헛소문이라는 걸 사람들은 모르지.”

올리버가 다시 말했다. 정말? 모른다고?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국왕 전하께서는 그게 헛소문이라는 걸 아셔.”

어머니와 올리버의 시선이 부딪쳤다. 엘리엇은 얼마 전에 국왕 전하를 알현하고 왔다. 국왕 전하께서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고.

하지만 공작 부인은 아니었던 거지.

나는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어머니와 올리버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왜 거마로트 공작가와 엘리엇의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났는지는 알겠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것도.

“진실은 뭔데?”

올리버가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엘리엇이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건 그게 이 나라에 그리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겁도 없이 드래곤의 알을 건드린 힐데자르는 거마로트 공작의 아들이고 공작은 현 국왕 전하의 삼촌이다. 즉, 국왕의 조카가 나라를 멸망시킬 뻔한 게 된다.

엘리엇은 이런 소문이 퍼지는 게 현 왕가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가 다아리브혼을 막았다 해도 또 다른 혼란이 일어날 거라고.

그리고 왕족에게 빚을 지워 두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지.

하지만 과연 빚일까? 정작 거마로트 공작가는 엘리엇을 공격하고 있는데?

“엘리엇이 둥지에 들어갔을 때 이미 힐데자르는 드래곤의 알을 건드린 뒤였다고 해요.”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엘리엇에게 들은 이야기를 어머니와 올리버에게 전했다. 엘리엇은 이걸로 왕족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걱정한 모양이지만 난 아니다.

나는 왕족보다 엘리엇이 더 중요하다.

* * *

“이런 음악회도 있네요.”

며칠 뒤, 나는 줄리아의 감탄을 들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확실히 그런트 가문의 음악회는 평소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회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런트 가문 사람들의 연주로 시작하는 건 다른 음악회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건 전부 고용된 연주자들의 공연이었다.

그것도 한 팀이 아니라 여러 팀으로.

교향악단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다는 솔로 가수까지 다양한 연주가 준비돼 있다는 말에 줄리아는 물론 로렌까지 기대에 차 있었다.

끝까지 있어도 되겠군. 나는 줄리아와 로렌의 반응에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무도회라면 중간에 적당히 돌아가지만, 음악회는 끝까지 있고 싶다. 음악을 듣는 건 좋아하거든.

하지만 어머니나 줄리아와 오면 매번 중간에 돌아가곤 했다. 어머니는 피곤해하고 줄리아는 지루해하기 때문에.

“유제니, 와 줘서 고마워요.”

리사는 연주할 때와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나서 인사를 건넸다. 첫 곡으로 연주할 때는 일부러 맞췄는지 그런트 가의 사람들은 전부 흰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리사가 갈아입은 와인빛 드레스는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리사. 드레스가 아주 아름다워요.”

나는 리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예쁘다. 그리고 리사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리사는 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어머니는 제게 이 색이 안 어울린다고 하셨지만요.”

그래? 나는 그녀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다시 한 번 리사의 드레스를 확인했다. 아주 예쁘다. 물론, 젊은 아가씨가 입기엔 조금 어두운 색상이긴 하다.

하지만 리사에게는 잘 어울렸다. 나는 다시 한 번 확고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정말 잘 어울려요.”

리사는 내 칭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 팔찌도 아주 예뻐요. 그거, 왕비 전하께서 하사하신 거죠?”

어떻게 알았지? 나는 깜짝 놀라서 내 팔찌로 시선을 돌렸다. 공주님이 어릴 때 쓰던 팔찌에 함께 하사받은 보석을 넣었다.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왕비 전하께 팔찌를 받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자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랑이 맞기도 하고.

리사는 내가 왜 놀라는지 안다는 표징으로 웃으며 말했다.

“세공사를 알아요. 왕비 전하께서 하사하신 보석을 세공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아, 그렇군. 세공사에게 맡기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왕비 전하께 받은 거니 조심해서 다뤄 달라고.

그리 좋은 이유로 받은 선물이 아니다. 괜히 떠들어 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공사 쪽으로 소문이 날 수도 있는 거겠지.

나는 리사가 내가 왕비 전하께 총애를 받는다고 생각할까 봐 재빨리 말했다.

“약간 오해가 있어서요. 사과의 표시로 주셨어요.”

리사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는 표정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다. 왕족의 총애를 받으면 이득이 많다는 걸. 사람들이 내가 어떤 매력으로 왕족의 사랑을 받는지 궁금해하겠지. 그리고 왕족과 연결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내게 잘 보이려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과도한 호기심과 접근. 나는 원하질 않는다.

“참, 미안해요. 사과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때, 리사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과?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리사가 내게 사과할 일이 뭐가 있지?

“하몬 양과 하몬 부인이요. 아버지께서 초대하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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