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55/239)

160화. 35 – 2

“하몬 양이 찾아왔었다고요?”

베라가 떠나고 오후가 되자 나와 어머니께 손님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친분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 방문했고 나는 나 대로 줄리아와 로렌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전에 하몬 양의 방문을 받았다고 하자 로렌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방문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 아니다. 뻔뻔하다는 표정이라 나는 쓰게 웃었다.

여기서 그녀가 뭘 요구했는지까지 이야기하면 안 되겠군.

“사과한다고 하더라고.”

“받아 줬어요?”

설마 받아 준 거 아니지? 줄리아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천과 바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니. 진심으로 사과한 게 아니더라고.”

“그럴 것 같았어요.”

로렌이 그렇게 말하며 내 천을 집어 들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래. 나 손재주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바느질을 너무 못해서 어머니가 내가 수를 놓은 걸 보면 한숨을 내쉬곤 하셨지.

예의 바르게도 로렌은 표정 관리에만 실패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얌전하게 천을 내 앞에 내려놓더니 자신의 천과 수틀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괜히 데려와서.”

“티 파티엔 네가 데려온 게 아니었잖아?”

하몬 양은 초대를 받아 왔다. 누가 데려온 게 아니라. 물론 그 초대를 해 달라고 내게 몇 번이나 편지를 보냈지.

하지만 로렌이 말한 건 티 파티를 말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애초에 음악회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 그때.”

그러고 보니 그렇다. 하몬 양이 내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건 음악회에서 로렌이 내게 그녀를 소개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몬 양과 어떻게 아는 사이야?”

그때 줄리아가 물었다. 응? 너희 모두 친구인 거 아니었어? 어리둥절해하는데 로렌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는 사이랄 것도 없어. 나한테 데려가 달라고 졸랐거든.”

“잘 모르는 사이야?”

당연히 잘 아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나는 놀라서 물었다. 로렌이 잘 모르는 사람을 우리 집에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 그러자 로렌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꿈에서 하몬 양에 대한 소문이 별로 안 좋았거든요. 마음이 쓰였었나 봐요.”

“꿈?”

줄리아가 또 꿈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로렌이 꾼 꿈이 어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다들 어떤 식으로든 꿈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클레어도 그렇다. 꿈속의 나에게 꽤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죄책감 같단 말이지. 전에 그걸 물어본 적이 있는데 꿈에서 그녀가 나를 믿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를 암살하려 한 적도 있다고 했고.

아마 그래서일 거다. 서로 잘 모르는 때 내게 해를 끼치려 한 게 아직까지 미안한 모양이지.

“나라가 기울면서 많은 사람이 도망쳤거든요.”

로렌은 줄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줄리아는 여전히 로렌이 하몬 양에게 마음을 쓴다는 걸 못마땅해하는 표정이었고.

어허. 나는 줄리아를 향해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그러지 말라는 내 표정에 줄리아는 한숨을 내쉬더니 자세를 바르게 했다.

“그중에 하몬 경과 하몬 부인도 있었는데 하몬 양은 안 데려갔대요.”

“응?”

“나라 밖으로 떠나면서 하몬 양은 안 데려갔다고?”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물었다. 꿈을 꾼 사람들이 일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화가 난 드래곤이 발시안을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왕족이 사망한다. 그 틈을 타 이웃 나라에서 전쟁을 걸어 오고 발시안은 몰락 직전까지 몰린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왕이 되고.

왕이 된 나는 꽤 강하게 나라를 다스린 모양이다. 내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많은 모양이거든. 클레어도 처음엔 날 죽이려 했다고 했고.

“네. 하몬 경이 음, 돈을 꽤 많이 번 모양인데 아들과 손자만 데려갔다고 하더라고요.”

“잠깐, 하몬 경은 지금도 꽤 부자잖아?”

수영장을 새로 짓고 있다. 그걸로 어머니가 약간 못마땅해하셨지. 하지만 꿈에서 하몬 경은 더 부자였나 보다. 그것도 그리 좋은 방식으로 돈을 번 게 아니고.

“그거에 대해 말이 좀 많았어요. 피해자가 있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하몬 양이 그 피해자들에게 시달린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허어.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하몬 양은 내게 와서 내가 레이디 비스컨이라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본다고 말했었지. 누가 그런 소릴 했냐고 물었을 때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쩐지 누가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은데.

“나도 소문 들었는데.”

줄리아가 수틀을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힐끔 보자 그녀는 나보다 훨씬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애는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뭐든 일단 하면 잘한다니까.

문제는 줄리아가 이런 거에 관심이 없다는 거지만.

“하몬 부인이요. 귀족 사위를 보려고 안달이래요.”

“아, 그건 나도 들었어.”

로렌 역시 줄리아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음, 하지만 그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이 귀족과 결혼하길 바란다. 어머니가 어닝이 내게 구혼했을 때 가장 기뻐한 게 그거였는 걸.

그가 유서 깊은 렌시드 자작가의 후계자라는 거.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나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만약 내게 딸이 있다면 그 애가 귀족과 결혼하길 바랄 거다. 아, 물론 어닝 같은 놈과 결혼할 거라면 차라리 혼자 살라고 하겠지만.

“아, 그런데 하몬 부인이 번즈 백작님을 마음에 들어 한대요.”

그래? 나는 차를 홀짝 마시며 그러냐는 반응만 보였다. 엘리엇은 누가 봐도 탐날 만한 사람이다. 잘생겼고 부유한 귀족일 뿐 아니라 아주 다정하거든.

특히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으면 화가 났던 걸 잊어버리게 된다. 젠장. 내가 왜 이렇게 잘난 남자를 두고 돈을 벌겠다고 이러고 있는 건지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데?

“그리고 하몬 양은 올리버에게 마음이 있고요.”

이어진 줄리아의 말에 나는 그대로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콜록, 콜록, 뭐? 콜록, 뭐라고?”

“올리버요. 유제니의 하나뿐인 오라버니.”

줄리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으, 하나뿐인이라는 말을 강조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하다.

“음, 그래서 라넌 경에게 그랬나?”

“뭐가요?”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가 줄리아와 로렌의 눈동자를 맞닥트리고 당황했다. 아니, 아닐 수도 있긴 한데.

“하몬 양 말야. 라넌 경에게 무례하게 군 게 혹시 올리버 때문이었나 해서.”

“올리버 때문에 라넌 경에게 무례하게 굴 이유가 있어요?”

있다. 납치당한 올리버를 구해 준 게 라넌 경이라는 소문이 났잖아. 물론 소문뿐만 아니라 사실이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서 라넌 경에게 질투한 건가 해서 말야.”

“에이, 그건 아닐 거예요.”

“맞아요. 라넌 경과 비스컨 남작님이 무슨 사이인 것도 아니잖아요.”

아닌가? 나는 올리버에게 이상하게 날을 세우던 클레어를 떠올리며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아가씨.”

그때, 갑자기 집사가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지? 나는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신호에 나는 줄리아와 로렌에게 양해를 구하고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집사가 들고 있던 명함을 내게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커피 하우스의 지배인이랍니다. 아가씨께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해서요.”

“무슨 말이요?”

커피 하우스? 그건 남자들만의 공간이다. 나 같은 귀족 여자들은 드나들지 않는 게 예의고.

나는 혹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 싶어서 명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나 모르는 이름이었다.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집사가 다시 말했다.

“자신을 안 만나면 후회할 거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이요?”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네. 나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집사에게 손님에게 안내해 달라고 말했다. 대체 무슨 후회를 한다는 건지 궁금했다.

“마님께 알릴까요?”

응접실 문 앞에서 집사가 물었다. 혼자 이 손님을 만나도 되겠냐는 태도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나중에요.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일단 들어 보기만 할래요.”

알겠습니다.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음, 위험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빅스가 이 집에 들일 리가 없다.

“그리어 존스 씨?”

나는 명함에 적힌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나를 보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레이디 비스컨이십니까?”

좋아. 날 모르는 게 확실하다.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네, 레이디 유제니 비스컨이에요.”

나를 한 번 훑어보던 남자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떨떠름하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소문을 전혀 모르시나 보군요?”

“소문이요?”

존스 씨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는 이를 드러내고 웃더니 말했다.

“레이디 비스컨이 커피 하우스에 드나들고 있다는 소문 말입니다.”

허.

나는 이게 무슨 못된 장난인지 몰라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커피 하우스에 드나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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