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48/239)

153화. 33 – 1

“핸더슨 후작 부인이 고발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던데요.”

다음 날, 우리 집을 방문한 리사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 뒤 그게 나를 향한 말임을 확인했다. 다른 손님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느라 이쪽에 관심이 없어 보였거든.

티 파티 주최자로서 이 광경은 그리 좋지 않다. 손님들이 주최자에게 관심이 없는 거니까.

하지만 평소보다 많은 손님을 초대한 지금의 내게는 매우 고마운 장면이었다. 나는 매년 티 파티를 열지만 초대하는 손님은 열 명을 넘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티 파티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방문해 있었다. 원래 초대하려던 인원 외에는 전부 초대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들이다.

“그래요?”

나는 리사를 따라 찻잔을 들어 올리며 반문했다. 내가 엘리엇과 핸더슨 저택을 찾은 게 이틀 전이다. 후작 부인이 벌써 고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단 말이지?

“네. 아들의 몸 상태가 나빠졌대요.”

저런. 나는 안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엘리엇의 설득이 먹힌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설득이 아니라 엘리엇의 설득이.

그가 뭐라고 후작 부인을 설득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설득은 후작 부인에게 먹히지 않았다.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면 안다.

엘리엇은 나를 마차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후작 부인과 대화를 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후작 부인의 분위기는 좀 달라져 있었다.

무슨 설득을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리사가 물었다.

“뭐라고 했어요?”

“네?”

“후작 부인에게요. 당신이 설득한 거죠?”

어떻게 알았지? 내가 후작 부인을 설득했다는 거 말고, 내가 후작 부인을 만났다는 걸 리사가 어떻게 안 걸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리사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당신과 번즈 백작이 핸더슨 저택을 찾았다던데요.”

대체 어떻게 안 걸까.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자 리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능청스럽게 복숭아 디저트가 참 신기하다고 둘러댄 뒤 내게 속삭였다.

“난 당신이 좋아요, 유제니.”

어어, 그건 참 감사한 일인데.

나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리사가 차를 홀짝이고 말했다.

“당신은 솔직하거든요. 진실하다는 건 대단한 장점이에요.”

“말하지 않는 게요?”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죠.”

아무래도 리사의 기준이 굉장히 관대한 모양인데.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홀짝였다. 리사는 그런 내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요. 그러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게 되죠.”

“내가 번즈 백작과 핸더슨 후작가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보죠?”

“번즈 백작이 핸더슨 저택 앞에서 후작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만 말하죠.”

그때인가 보다. 내가 마차에서 엘리엇을 기다릴 때. 나는 다시 차를 홀짝이며 물었다.

“번즈 백작 혼자 방문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 몇 시간 전에 당신이 번즈 백작의 저택 앞에 서 있는 걸 본 사람도 있거든요.”

와, 세상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리사를 쳐다봤다. 대단한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리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리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뭐가요?”

“이런 거, 그리 유쾌하지 않잖아요. 기분 상했죠?”

아니, 전혀 아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불쾌하지 않고요?”

거기까지 말한 리사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의 사생활을 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음, 그런가? 나는 “으음” 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사생활을 캐나? 하지만 그녀가 사람을 보내서 지켜본 건 아니잖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가십으로 퍼지는 수준이잖아요. 당신은 그 가십을 누구보다 먼저 들었고 처음으로 그 두 가십을 이어서 생각한 거고요.”

그건 대단한 거다. 내가 가정 교사에게 배운 것 중 하나가 그런 거였다. 산발적인 정보 중에서 이어진 정보를 연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

어느 지역에서 어떤 작물이 잘 나오는지, 그 지역의 올해 날씨가 어땠는지를 보면 그 작물의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알 수 있다. 그것 외에도 몇 가지 봐야 할 것들이 있지만 어쨌든 투자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다.

리사는 그걸 사람으로 바꾼 것뿐이다. 내가 번즈 저택에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몇 시간 뒤 엘리엇이 핸더슨 후작 부인과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눴다던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내가 개입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타당한 판단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내 말에 약간 기운을 얻었는지 리사가 내게 몸을 내밀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많은 소식을 빠르게 얻는 것과 그 소식들을 조합하는 건 각각의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네요, 리사.”

리사의 얼굴이 확 굳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내가, 그….”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럼요.”

둘 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소식을 얻으려면 많은 돈을 쓰거나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둘 다 쉬운 일이 아니지. 그리고 그 소식을 조합하는 건 재능이 있거나 훈련받은 기술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항상 제가 이상한 데 돈을 쓴다고 뭐라고 하시거든요.”

그때, 리사가 약간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 돈을 쓰거나 많이 돌아다니는 것 중에서 리사는 돈을 쓰는 타입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트 가는 상당히 부유한 가문이다. 아카데미 재단이 그런트 가문 거라고 들었는데.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낭비했다고 혼나는 거예요?”

“음, 그건 아니고요. 오빠처럼 어딘가에 투자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투자를 하세요.”

나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말하고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런트 가는 부유하잖아. 투자도 하면 되지?

“내가요?”

리사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안 되나? 부유하긴 하지만 리사의 용돈이 그 정도는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아차 싶어서 조금 부드럽게 말했다.

“음, 용돈으로 투자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울 수는 있죠.”

“아, 그게 아니라,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 나는 차를 홀짝인 뒤 하인을 불러 새 차를 가져오라고 해야 할지 망설였다. 차가 다 식었네.

하지만 곧바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더니 하인이 찻주전자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돈 있고 정보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투자 아닌가요?”

역시 빅스다.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지금쯤이면 찻물이 식었을 거로 생각하고 새 차를 보낸 모양이다.

나는 차에 대한 걱정을 덜고 리사에게 말했다. 그녀는 내 질문에 망설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해요?”

음, 그건 그러네.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보를 얻는 대신 돈을 주는 거죠?”

“음, 비슷하죠. 괜찮은 이야기를 하면 심부름 값을 주거나 가져온 걸 사 주거나 해요.”

“그 이야기가 알고 보니 괜찮지 않으면 어쩌나요? 오늘처럼 내가 번즈 백작과 핸더슨 저택에 간 게 착각이라면요?”

리사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할 수 없죠. 그런 일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렇게 큰돈도 아니고요.”

“그럼 투자도 그렇게 해요.”

“네?”

“처음에는 적은 돈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하면 되잖아요.”

그러자 리사가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응? 이렇게 간단한 걸 몰랐다고? 오히려 내가 당황할 지경인데?

그때, 다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또 하인이 차를 가지고 들어오는 건가’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응접실에 가벼운 감탄사가 터졌다.

“어머.”

“비스컨 남작님!”

윽.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여긴 또 왜 그러는 거람?

나는 여기 여자들이 있는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짓는 올리버를 향해 인상을 써 주었다. 모르긴 개뿔. 며칠 전부터 티 파티 준비로 집 안이 소란스러웠다.

게다가 어머니가 오늘 아침에도 올리버에게 이야기했단 말이지. 오늘 내 손님이 온다고.

“어, 유제니.”

가증스럽게도 내 오라버니는 내게 다가오더니 내 뺨에 입을 맞추려 했다. 무슨 짓이야?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틀어 그가 내 머리에 입을 맞추게 하는 데 성공했다.

뺨에 올리버의 입술이 닿다니, 으윽. 오늘 밤에 악몽 꿀 일 있어?

“오늘 손님이 오시는 줄 몰랐는데.”

올리버는 내 머리에 입을 맞추더니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손님들이 다시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대부분 ‘어머’ 혹은 ‘다정한 오라버니네’ 정도의 탄성이었다.

“어머, 올리버.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이야기하셨잖아.”

나는 내 어깨에 올라온 올리버의 손을 떼어 내며 말했다. 그가 왜 이러는지 안다. 올리버는 그냥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한다. 그것도 여자들의 관심을.

“비스컨 남작님, 지난번 음악회에서 뵌 적 있는데.”

“저도요. 그때 입은 재킷이 아주 잘 어울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그가 원하던 관심이 쏟아졌다. 아차, 잊고 있었네.

나는 내 티 파티에 초대해 달라는 요청의 반은 올리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엘리엇 때문인 줄 알았더니 올리버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엘리엇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이쪽이 더 흔했다. 사람들은 항상 나보다 올리버에게 관심이 많았고 올리버는 사람들의 관심을 즐겼거든.

정확히 말하면 잘생겼다는 사람들의 감탄을 즐겼다.

뭐가 잘생겼다는 줄 모르겠네.

나는 어느새 의자까지 가져와서 앉은 올리버를 보며 인상을 썼다. 삽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거나,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올리버의 얼굴은 내가 보기엔 그냥 남자의 얼굴일 뿐이다.

게다가 최근에 코가 삐뚤어지는 바람에 좀 어색해졌다.

“남작님, 코 때문에 더 남자다워진 것 같아요.”

“어머, 비스컨 남작님은 원래 남자였잖아.”

다음 순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흠. 올리버의 비틀린 코를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아무래도 나뿐만인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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