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4/239)

149화. 32 – 2

아주 잠깐의 정적 후, 다실 안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타깝게도 하몬 양은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할까 봐 재빨리 덧붙였다.

“다아리브혼을 쫓아내기 위해 영웅 발시안이 목숨을 바쳐야 했잖아요. 거마로트 백작의 검술 실력이 영웅 발시안보다 훌륭하다면….”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다실을 둘러본 뒤 말했다.

“사람들이 몰랐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다시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힐데자르의 검술 실력은 절대 유명하지 않다. 아마도 몇몇 사람은 몇 년 전 그가 왕실 검술 대회에서 거들먹대다가 우스꽝스럽게 지는 걸 기억할 거다.

“그러고 보니 거마로트 백작의 검술 실력은 형편없죠.”

아니나 다를까 에스마 양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나를 향해 몸을 내밀며 속삭였다.

“저 같으면 창피해서 다시는 검을 못 잡았을 거예요.”

정말 엄청나게 창피하게 졌다. 온갖 도발이라는 도발은 다 해 놓고 딱 한 대 맞고 졌거든. 그것도 맞은 게 아니라 상대가 휘두른 검을 피하려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기절했지.

“하지만….”

하몬 양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우리가 웃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번즈 백작이 거마로트 백작의 공을 가로챘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지 않나요?”

“거기, 당신. 거마로트 백작은 공을 세울 실력 자체가 없다고요.”

하몬 양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다시 다실 안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명백하게 하몬 양을 비웃는 웃음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방금 전에 내가 하몬 양의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이유를 제시하긴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납득했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헛소문을 믿고 있겠지.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일부도 하몬 양처럼 여전히 헛소문을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가장 급한 건 핸더슨 후작 부인의 고발을 막는 거다. 후작 부인이 엘리엇을 고발하면 싸움은 엘리엇과 후작 부인의 싸움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사람들의 주의는 엘리엇에게 진짜로 귀족이 될 자격이 있느냐로 가겠지.

귀족이 될 자격이라.

티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과연 누구에게 귀족이 될 자격이 있을지 생각했다. 우리는 대부분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귀족이다. 그중에서 운이 더 좋은 사람은 힐데자르처럼 유서 깊고, 부유하며 작위도 더 높은 공작가의 후계자로 태어난다.

그리고 운이 나쁜 사람은 로렌처럼 몰락한 귀족가의 딸로 태어나고.

내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우리를 그렇게 가르치셨다. 우리는 운이 좋게 귀족으로 태어났다고.

그러니 우리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영지를 다스리고 영지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고 국왕 전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가문을 지켜야 한다.

“미안한데 번즈 저택으로 가 줄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바람결에 마부가 알겠다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디 비스컨.”

엘리엇의 집사는 이번에는 내가 누군지 알아봤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밖으로 나오더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어르신께서 손님은 모두 거절하라 하셨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엘리엇의 집사에게 물었다.

“엘리엇이 나도 막으라고 했나요?”

“죄송합니다.”

사실인가 보네. 나는 창문이 굳게 닫힌 저택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층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소리쳤다.

“엘리엇 번즈! 나예요, 유제니 비스컨!”

다음 순간, 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엘리엇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집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 뭐야. 나는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엘리엇!”

“무슨 짓입니까.”

다음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엘리엇이 나타났다. 와, 방금 이 층에 있었는데? 뛰어내리기라도 했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가 나를 번쩍 들었다.

“헉!”

방금 그 신음은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다. 혀를 깨물까 봐 재빨리 입을 다물었거든. 엘리엇은 나를 집 안으로 들이더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인상을 쓴 채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용서할게요.”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엘리엇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뭘 용서하냐는 듯한 표정에 나는 다시 말했다.

“허락도 없이 날 짐짝처럼 옮긴 거요. 이번만 용서할게요.”

이제 엘리엇의 얼굴에는 꽤 익숙한 표정이 떠올랐다. 때때로 올리버가 짓던 표정이다. 나는 저 표정을 아주 잘 안다. 목을 졸라 버리고 싶다는 표정이지.

하지만 올리버가 그러하듯 엘리엇도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한동안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요.”

“저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고요.”

이번에 엘리엇은 내 목을 조르고 싶다는 표정이 아니라 자신의 목이 졸리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는 내게 왜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따위 헛소문에 당신을 멀리하는 비열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거든요.”

다시 한번 엘리엇의 입에서 목이 졸린 듯한 소리가 났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당신의 성격을 잊었군요.”

잊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그는 내 성격을 잘 알 정도로 오래 알고 지낸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는 당연하게 그렇게 말했고 나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스틴, 차를 내오게.”

곧이어 엘리엇은 문을 열더니 여전히 밖에 있는 집사에게 그렇게 지시했다. 그리고 나를 어제 안내했던 응접실로 안내했다.

“진짜로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줘요.”

나는 엘리엇의 집사가 차를 가져오기도 전에 불쑥 말했다. 내 맞은편에 앉으려던 엘리엇은 나를 보고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약간 냉정하다 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연관되는 게 싫다고 말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난 이미 연관됐어요.”

오늘 우리 집에 온 편지가 몇 통인지, 그중에 엘리엇에 대해 묻는 게 몇 통이었는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가 사교계에 나타난 뒤, 나와 어머니께 오는 편지가 확 늘었다. 그런데 오늘은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많은 편지가 왔다.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리고 좀 궁금하거든요. 진짜로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러면 말을 더 안 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엘리엇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 산을 찾았을 때는….”

어, 진짜로? 내가 궁금하다니까 말해 주는 거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재빨리 그의 말을 막으며 물었다.

“그 산은 어떻게 찾았는데요?”

엘리엇이 피식 웃었다. 그때 집사가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집사가 차를 따르고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게 어서 마시라는 시늉을 하더니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거마로트 백작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힐데자르를 어떻게 알고? 나는 그를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질문을 바꿨다.

“꿈에서도 거마로트 백작이 용을 공격했나 보죠?”

“차라리 용을 공격했다면 더 나았을 겁니다.”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천천히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용은 알을 품습니다. 부화될 때까지 먹지도 자지도 않습니다.”

아는 이야기다. 발시안은 용을 몰아낸 영웅이 세운 나라다. 우리는 용을 악당으로 한 동화를 보고 자란다. 용이 알을 품는다는 걸, 알을 품은 용이 특히 더 포악하다는 걸 배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 새끼를 품고 있는 짐승 중 포악하지 않은 생명체가 있기나 할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엘리엇이 왜 이 이야기를 했는지 깨달았다.

“잠깐, 다아리브혼이 암컷이었어요?”

유명한 사실이다. 크리사는 암컷, 다아리브혼이 수컷. 엘리엇은 놀란 내 질문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응? 지금 우리, 다아리브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어? 잠깐, 엘리엇이 다녀온 곳이 다아리브혼이 아니라 크리사의 둥지였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엘리엇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꼭 알을 암컷이 품어야 할 필요는 없지요.”

어.

어어, 그렇네?

나는 생각도 못 한 부분을 지적받은 기분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임신하고 출산하는 거야 암컷이 한다고 해도 세상에 나온 자식을 꼭 암컷이 길러야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새도 알을 낳지만,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가며 품는다고 들었다.

용은 다를 이유가 없지.

“설마 다아리브혼이 알을 품고 있었어요?”

나는 새로운 사실에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엘리엇 역시 차를 마시고 대답했다.

“네. 용은 수컷이 알을 품는다더군요.”

허.

생각도 못 했다. 새처럼 돌아가면서 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내가 신음을 내뱉자 엘리엇이 다시 씩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거마로트 백작은 용의 둥지를 찾았습니다.”

그게 하필 알을 품고 있는 다아리브혼의 둥지였던 거다. 그리고 하필 그때 다아리브혼은 알에게서 떨어져 있었고.

왜 그랬는지는 엘리엇도 모른다고 했다. 다아리브혼에게 그걸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힐데자르는 용의 알을 보자 흥분해서 달려들었고 용감하게도 그걸 둥지에서 꺼내 가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때, 자리를 비웠던 다아리브혼이 돌아왔고 힐데자르는 알을 잡고 다아리브혼을 협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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