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38/239)

143화. 31 – 1

음악회가 끝나고 이틀 뒤, 어머니는 응접실에 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신문을 읽고 계셨다. 무슨 신문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커런트의 속삭임이겠지.

“우리 음악회 이야기가 실렸군요?”

나는 편지 쓸 것을 가지고 응접실로 들어가며 물었다. 어머니의 표정이 좋은 것으로 보아 우리 집에서 연 음악회 기사가 실린 모양이다. 그것도 꽤 좋은 쪽으로.

“보렴.”

어머니는 자세를 고쳐 내가 옆에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나는 어머니의 옆에 붙어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음악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는 평가가 좋았던 음악회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전부 소규모 음악회였다.

소규모 음악회는 악단은 최소한으로 부르고 가족들의 연주를 보여 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악단은 아예 부르지 않는 집도 있다.

보통 대가족이 그렇고 우리 집은 어머니와 나, 올리버뿐이라 악단을 부르지 않으면 손님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어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연주 실력이 아주 훌륭했다네요.”

나는 고맙게도 기사에 내 연주 실력에 대한 의견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내 실력은 내가 더 잘 안다. 아마 기사에 실린다면 듣기 괴로운 실력이었다고 실리겠지.

어머니는 자신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금세 능숙하게 감정을 감추며 말했다.

“내 실력이 무슨 소용이 있니. 그보다는 그 밑을 보렴.”

그 밑에? 좀 더 기사를 읽자 몇 가지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나와 번즈 백작의 연주였고.

정확하게는 비스컨 가의 음악회에 가벼운 소동이 일자 내가 재빨리 구혼자 중 한 명과 합주를 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돌렸다고 적혀 있었다.

허.

나는 기사를 다시 한번 훑으며 말했다.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요?”

“손님 중 누군가가 제보를 했겠지.”

그럴지도 모른다. 여러 개의 악단을 부른 큰 규모의 음악회와 달리 가까운 지인만 초대한 소규모의 음악회는 어지간해서는 나쁜 평가가 없거든.

나는 딱히 별다른 기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다.

“티 파티 준비는 잘되고 있니?”

말이 티 파티지 그냥 티 타임이다. 사교 시즌이 되면 어머니와 나는 음악회와 티 타임을 번갈아 가며 개최한다.

제대로 된 가문의 안주인이라면 손님을 맞이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서 깊고 부유한 가문이라면 손님을 초대하는 행사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어머니는 내가 사교계에 데뷔하기 전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간단하게는 어머니의 친구분들을 초대해서 대접하게 하기도 했고.

“네. 그런데 손님이 한 명 더 추가될 것 같아요.”

“누구?”

“하몬 양이요. 음악회에서 자기도 초대해 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물어봤다고?”

어머니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생겼다. 하몬 가와 우리 집은 딱히 친분이 없기 때문이다. 친분이 없는 집에서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사교계에서 사교 시즌에 각 집안에서 여는 행사에 초대받는 건 일종의 자랑이 된다. 자신이 이만큼 대단한 가문과 친분이 있다는 뜻이니까.

반대로 자기 집에서 연 행사에 더 높은 집안의 사람이 참석하는 것 역시 자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몬 부인이 나와 어머니를 그렇게 열심히 초대하려 한 것이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몬 양은 아직 사교계 데뷔도 안 했어요.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죠.”

나도 사교계에 데뷔하기 전에는 왕궁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하고 싶어 했다. 화려한 왕궁 무도회에 가서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었거든.

지금도 구경하는 건 좋아한다. 그리 내키지 않는 건 잘 모르는 남자들과 춤을 춰야 한다는 거다.

“하몬 양은 모르겠지만 하몬 씨 부부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어머니의 말에 나는 편지지를 살피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메리에게 쓰려고 빼 놓은 꽃무늬 편지지가 잘 남아 있었다.

“그 부부, 수영장을 만든다며?”

아, 그거.

어머니가 하몬 부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따라서 수영장을 만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자기 자유죠.”

“하지만 네가 잘되니까 따라 하는 거잖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어머니는 내가 수영장을 열고 싶다고 했을 때 못마땅해하신 거로 아는데.

어머니는 내가 웃는 것을 보자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렇게 웃지 마라. 네가 그걸 닫은 건 잘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요?”

아쉬워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 수영장은 내게 꽤 많은 돈을 가져다주었다. 배를 빌려준 엘리엇과 나와 함께 일을 해 준 로렌, 줄리아에게 돈을 나눠 주고도 아직 좀 남았다.

어느 정도냐면 이번 티 파티를 두 번 나눠서 열 수 있을 정도로.

“네가 그걸 하는 걸 좋아했다는 걸 안다. 거기서 버는….”

거기까지 말한 어머니의 입이 멈췄다. 돈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겠지.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슬쩍 돌려서 말했다.

“네 경제적인 능력을 확인하는 것보다 뭔가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를 즐긴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네가 그런 일을 하기보다는….”

다시 어머니의 말이 멈췄다. 그런 일을 하기보다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다리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좀 더 여성스러운 일을 했으면 좋겠구나.”

“결혼이요?”

제일 먼저 튀어나온 말에 어머니가 눈을 흘겼다. 왜 그러시는 거지?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게 빈정거릴 필요 없다. 네가 결혼하는 게 내 소원이긴 하다만은….”

아니, 빈정거린 거 아닌데. 나는 진짜로 어머니가 생각하는 가장 여성스러운 일이 결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전에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수영장 같은 것보다 좀 더 부드러운 거 있잖니.”

어머니가 생각하는 부드러운 게 뭘까. 내가 생각에 잠기려는 데 어머니가 내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인상 쓰지 마렴. 주름 생긴다.”

네, 네. 나는 어머니가 손을 뗀 미간에 내 손가락을 눌렀다. 주름 정도야 생기면 어때. 나이 먹으면서 당연히 생기는 건데.

하지만 지금 어머니 앞에서 괜히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다. 나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른 채 물었다.

“수영장 같은 거보다 부드러운 게 뭔데요?”

“티 파티 같은 거 말이야. 집 안에서 하고 얼마나 좋니. 괜히 밖에서 바람 맞고 햇빛 쐴 필요도 없고.”

허. 내가 뭘 하려는지 아시면 기절하시겠는데.

다음에 하려는 걸 어머니께 말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집 안이라는 게 우리 집을 말하는 거죠?”

어머니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앗, 주름. 내가 손을 들자 어머니는 재빨리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눌렀다.

그리고 손을 내리더니 언제 인상을 썼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하지. 자기 집에서 그런, 경제적인 일을 하게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있다. 내가 입을 열자 어머니는 내가 누구 이름을 댈지 아는 것처럼 말했다.

“번즈 백작의 집도 안 된다. 할 거면 그 사람과 약혼하고 하렴.”

배에서 수영장을 연 일로 어머니께 상당히 많은 편지가 빗발쳤던 모양이다. 내가 번즈 백작과 약혼한 거냐고 묻는 편지에 어머니는 아니라고 답장을 쓰느라 고생하셨다.

나는 인상을 쓰려다가 재빨리 다시 손을 미간에 가져다 댔다. 아, 안 되겠네.

장소를 빌리는 게 여의치 않아서 엘리엇에게 부탁해 놨다. 그는 흔쾌히 허락했고.

하지만 안 된다면.

나는 다시 어머니를 쳐다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우리 집에서는 된다는 거죠?”

어머니의 얼굴에 의심스럽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방금 전에 어머니가 그러지 않았던가. 밖에서 바람 맞고 햇빛 쐬지 말고 집 안에서 하라고. 남의 집은 안 되니 우리 집은 된다는 말이다.

“뭘 할 건지 물어보면 대답할 거니?”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씩 웃었다. 절대로 말 안 할 거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알면 기절하실 것 같거든.

“적어도 집 안에서 바람 안 쐬고 햇빛도 안 받고 할 거예요.”

“사람들이 홀딱 벗고 있는 것도 아니겠지?”

“수영은 수영복을 입고 있었는데요.”

소심하게 반박해 봤지만, 어머니께는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내 집에서는 여자고 남자고 옷을 다 갖춰 입어야 한다.”

옷은 아주 튼튼하게 입고 있을 거다. 나는 씩 웃었다. 내 표정을 본 어머니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로 뭘 할 거니?”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여성스러운 걸 할 거예요. 집 안에서 옷도 다 갖춰 입고.”

“차를 마시면서?”

그럴 거다. 나는 다시 씩 웃었다. 그리고 즐겁게 말했다.

“오, 그럼요. 차도 아주 많이 마실 거예요. 어쩌면 꽤 풍성한 다과를 즐겨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많은 차와 다과라는 말에 어머니의 표정이 아주 잠깐 안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내 웃는 얼굴이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모르는 척하고 다시 편지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소를 바꿔야겠다고 엘리엇에게 이야기해야겠다. 이건 만나서 하는 게 좋겠지.

“그거 다행이군요.”

그날 오후, 우리 집을 찾은 엘리엇이 장소를 바꿔야겠다는 내 설명에 차를 홀짝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응? 다행이라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적어도 아쉬운 척은 할 줄 알았다. 그는 그동안 늘 내게 우호적이었으니까.

아니, 우호적이라는 건 너무 비판적인 표현이다.

엘리엇은 내가 하는 일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 주었다. 어머니와 올리버, 심지어 줄리아까지도 난색을 표할 때 엘리엇만은 해 보라고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해 본 경험이 남는다고 했지.

아주 잠깐, 나는 내가 왜 이 남자와 약혼하지 않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때 엘리엇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동안 방문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요?”

이번에는 어리둥절한 게 아니라 아예 어안이 벙벙해졌다. 차를 홀짝인 엘리엇이 드디어 나를 쳐다봤다. 내 표정이 별로 안 좋았나 보다. 엘리엇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한동안은 당신도 제게 접근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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