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37/239)

142화. 30 – 4

“그, 그런가?”

잘 모르겠다. 테드는 친구가 왜 이러는지 몰라 말을 흐렸다. 전이 더 낫다는 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테드가 보기에 올리버는 잘생겼기 때문이다.

당황하는 테드가 답답했던지 아치는 좀 더 열성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이 낫다니까? 전에는 이렇게 반듯했다면 지금은 비뚤잖아.”

“잘, 잘 모르겠는데.”

아치는 이번에는 클레어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떻습니까? 전이 낫죠?”

잘 모르겠다. 클레어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에게 익숙한 얼굴은 전의 얼굴이긴 하다. 그녀가 꽤 오래 봐 온 얼굴이 코를 다치지 않은 얼굴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이 낫다고 할 정도로 올리버의 얼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뒤돌아볼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흉터가 생긴다고 잘생기지 않아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냥 흉터가 생긴 잘생긴 얼굴일 뿐이다.

지금 올리버의 얼굴도 그랬다. 오히려 코가 살짝 비틀린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라넌 경도 모르겠다잖아.”

이제 그만 하라는 테드의 말에 아치는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에이, 여자들은 저런 얼굴 싫어한다니까.”

응? 클레어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치는 그녀를 돌아본 뒤 테드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여자들은 저런 얼굴 별로 안 좋아해. 좀 이렇게 매끄러워야지, 저렇게 비틀린 부분이 있으면 싫어한다니까?”

허어.

클레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정말 그러냐는 표정을 짓는 테드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치에게 물었다.

“훌륭한 변장이네요.”

“네?”

변장? 느닷없는 말에 아치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클레어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아치의 몸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동시에 아치를 훑어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뭐 하는 겁니까?”

클레어가 자신을 살펴보듯 바라보자 당황한 아치가 버럭 화를 내듯 물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그가 화를 내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얼굴을 뜯어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남자인데, 어떻게 분장한 거예요?”

“뭐? 아니, 뭐가 분장한 거라는 말입니까?”

“여자인데 남자로 분장한 거 아니에요?”

뭐?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아치의 행동이 멈췄다. 그건 테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클레어가 왜 아치를 여자로 생각하는지 몰라 입을 열었다가 클레어와 아치 뒤로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내가 왜 여자입니까?”

“여자들은 저런 얼굴 싫어한다면서요?”

다음 순간 테드는 웃음을 터트렸고 아치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뭐야, 이 여자. 그는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일반적인 여자들은 그렇다는 거죠.”

일반적인 여자들이라는 말에 클레어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일반적인 여자가 아니라고 돌려서 비꼬는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클레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게 신경 쓰였다면 기사가 될 생각도 못 했겠지. 그녀는 자신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는 것도 모르고 말했다.

“제가 아는 일반적인 여자들은 저런 얼굴 좋아하는데요.”

클레어의 말에 아치가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

“라넌 양이 좋아하는 게 아니고요?”

라넌 경이라니까. 뒤에서 테드가 안절부절못했지만, 다행히 클레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무디 씨는 여자라서 여자들이 비스컨 남작의 얼굴을 싫어한다는 걸 아나 보죠?”

그 순간, 음악실 안에 싸늘한 정적이 가라앉았다. 다들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의심하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머, 미친 거 아냐?”

“줄리아!”

깜짝 놀란 유제니가 줄리아에게 다가가며 주의를 줬지만 이미 늦었다. 음악실 안에 폭소가 터졌다. 로렌 역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제야 클레어와 아치도 비스컨 가족이 음악실에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스컨 백작 부인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빅스, 무디 씨는 그만 돌아가신다는군.”

“아, 아니….”

아치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집사가 하인과 함께 그의 양옆에 서 있다. 빅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가시죠.”

짜증 난다는 아치의 분노 어린 시선이 클레어를 향했다. 그래서 어쩔 건데? 클레어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덤빌 거면 덤벼도 괜찮다. 검이 없어도 아치 정도는 혼내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올리버는 아니었다.

“아치.”

그는 순식간에 클레어와 아치의 사이에 끼어들며 무겁게 말했다.

“어머니 말씀 못 들었나?”

그의 말에 아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손대지 마!”

그리고 ‘휙’ 하고 음악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음악실 안에 충격적인 침묵이 내려앉은 순간이었다. 유제니가 피아노로 다가가며 엘리엇에게 말했다.

“엘리엇, 조랑말 행진곡 칠 줄 알아요?”

안다. 엘리엇은 씩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아카데미 음악 수업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거다. 간단한 음계를 기본으로 한 쉽고 재미있는 곡이었다.

그는 피아노를 뚱땅뚱땅 치는 유제니의 옆에 섰다. 그리고 왼손으로 반주를 하기 시작했다.

쉽고 간단하던 곡조가 순식간에 풍성해졌다. 그의 연주 실력에 사람들의 시선이 금세 유제니와 엘리엇에게 향했다.

“번즈 백작은 피아노 연주도 잘하는군요.”

“레이디 비스컨보다 훨씬 나은데요?”

솔직히 말하면 레이디 비스컨의 연주 실력은 빈말로도 훌륭하다고 하기 어려웠다. 워낙 연주 실력이 좋은 비스컨 백작 부인과 비스컨 남작 사이에서 연주했으니 비교돼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냥도 그녀의 실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조예는 있던데요.”

“듣는 귀와 치는 손은 다르니까요.”

레이디 비스컨과 대화를 나눠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녀가 그림과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식도 꽤 있다는 것을.

하지만 본인이 실제로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인 거다.

워낙 짧은 곡이라 유제니와 엘리엇의 협연은 금세 끝이 났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자 유제니는 민망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를 엘리엇에게 돌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비둘기 왈츠 가능합니까?”

그때, 라이언 경이 소리쳤다. 듣기로는 쉬울 것 같지만 연주할 때는 조금 어려운 곡이다. 유제니는 이제 그만 악단의 연주를 듣자고 말하려 했다.

조랑말 행진곡을 잘 치긴 했지만 엘리엇은 분명 피아노를 조금 칠 줄 안다고 했다. 비둘기 왈츠까지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엘리엇이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머, 세상에.”

다들 비둘기 왈츠가 듣기보다 어렵다는 걸 안다. 감탄하는 사람들보다 더 놀란 유제니가 엘리엇을 돌아보았다.

그는 별문제 없다는 듯 그녀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 유제니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몸을 기대며 속삭였다.

“조금이라고요?”

이 정도가 조금이면 잘하는 건 대체 얼마나 잘하는 거냐는 의문이 떠오른다.

저거였군. 한편 클레어는 유제니와 엘리엇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번즈 백작의 피아노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종종 왕궁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게 약간 경박하다 싶게 템포가 빠른 곡이었기 때문에 클레어는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에게 왜 저런 곡을 연주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예술을 박해한다는 항간의 소문과 달리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은 예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클레어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호오와 상관없이 예술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특히나 몰락해 가는 발시안 같은 나라라면 더더욱.

그래서 클레어는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이 예술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어디까지나 나라를 위해 의무적으로 지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거다.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은 음악을 좋아했던 거다. 때때로 왕궁에서 번즈 백작이 연주하던 조금 경박하다 싶은 음악은 그녀를 위해서였던 거다.

“라넌 경.”

유제니와 엘리엇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클레어의 앞에 다시 올리버가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화가 난 비스컨 백작 부인을 달래고 온 참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무례한 자를 친구로 뒀냐고 화를 내서 다시는 무디와 어울리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화를 낸 비스컨 백작 부인도 클레어에게 감사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건 인정했다. 올리버는 클레어의 앞에 서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뭐지?”

이 인간은 또 왜 이래? 클레어는 자신을 부른 올리버가 입만 뻐끔거리자 인상을 쓰며 물었다. 아까 그 녀석도 이상한 놈이었는데 친구라고 비스컨 남작도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아니, 그….”

뭐라고 하지? 그런 녀석을 상대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올리버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원래 그렇게까지 이상한 놈은 아닌데….”

그렇겠지. 클레어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상한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친하게 지낸 거 아니겠는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한다.

올리버는 그녀가 콧방귀를 뀌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멍청한 친구를 두둔할 때가 아니다. 아니, 전 친구지.

그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불쾌한 경험을 하게 해서 미안하네. 그리고 음, 내 편을 들어 줘서 고맙고.”

“한 가지만 확실히 하지.”

대체 무슨 소릴 하려는 건지 기다리던 클레어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좋아서 편을 든 게 아니야.”

그녀는 비스컨 남작이 싫다. 최근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잘생긴 건 잘생긴 거다. 클레어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올리버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보다 당신 친구가 더 싫었던 것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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