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36/239)

141화. 30 – 3

테드의 질문에 세이마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최근 여기저기에서 그 질문을 받았다. 사교계에 올리버 비스컨이 그를 질투하는 한 기사의 공격을 받아 심하게 다쳤다는 소문이 돌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는 얼굴에 큰 흉터가 나서 그 잘생긴 얼굴이 망가졌다는 소문도 있다.

“그럼요. 멀쩡해요.”

세이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미소를 지은 뒤 유제니를 따라 음악실로 향했다. 그 모습에 테드는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엘리엇이 자신을 쳐다보자 재빨리 변명했다.

“대단하신 분 아닙니까? 아들이 그렇게 다쳤는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 엘리엇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와 유제니가 올리버를 구해 내서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세이마리아는 거의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기절하지 않고 아들을 침실로 옮기고 의사의 진료를 받게 했다. 아들의 상태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자 집안사람들의 입단속을 시작했고.

그 뒤로는 흰 사자 기사단과 사일록 가문과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논했다고 한다.

세이마리아 비스컨 백작 부인은 아들이 다쳤는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크게 충격을 받았고 힘겨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충격보다 아들의 상태를 먼저 생각했을 뿐이다.

“사람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

엘리엇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을 이었다.

“한쪽만 보고 판단하는 건 그리 좋은 버릇이 아닐 텐데.”

그리고 그대로 음악실 쪽으로 걸어갔다.

뭐야, 저 녀석은. 느닷없이 비난을 받은 테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가 뭘 안다고.

그는 올리버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야기를 들어 왔다. 비스컨 가의 실질적인 가장이 세이마리아 비스컨 백작 부인이라고도 들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레이디 비스컨의 구혼자만 해도 그렇다.

번즈 백작이 나타나자 비스컨 백작 부인은 딸을 파혼시키고 번즈 백작과 결혼시키려 하고 있다.

실제 사정은 전혀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테드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예의 바른 척하기는. 살인자 주제에.”

엘리엇이 멀어진 다음에야 투덜거린 테드는 천천히 음악실로 향했다. 어느새 집사가 손님들에게 연주가 시작되니 음악실로 모여 달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클레어가 비스컨 저택에 들어선 것은 초대받은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그녀는 늦게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던 집사에게 재빨리 사과를 건넸다.

오늘 늦을 거라고 미리 이야기를 들은 탓에 빅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왔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방금 첫 곡이 끝났습니다. 다행히 두 번째 곡부터는 놓치지 않고 들으시겠군요.”

다행이다. 클레어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아주 조용히 음악실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음악실에는 초대받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비스컨 백작 부인의 친구들이 맨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고 유제니와 올리버의 친구들은 다들 서 있었다.

의자를 두면 음악실에 비좁기 때문에 연장자의 자리만 마련한 것이다.

그녀는 맨 뒤에 서 있는 엘리엇을 발견하고 표정 변화 없이 묵례를 했다. 그리고 비스컨 가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제니는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이런 자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클레어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놀랍게도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은 사람들의 집중을 받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한,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 앞에서 고통을 참으며 멀쩡하게 걸었던 걸까.

클레어는 다시 한번 유제니에게 감탄하며 시선을 비스컨 백작 부인에게 돌렸다.

“백작 부인의 연주 솜씨가 대단하군요?”

그녀의 앞에서 모르는 얼굴의 여자가 속삭이는 게 들렸다. 그 옆에 있는 게 리즈 양인 걸 보니 레이디 비스컨이 초대한 사람인 모양이다.

기사단에 다녀오느라 정복 차림인 로렌과 달리 처음 보는 얼굴의 소녀는 약간 화려하다 싶은 드레스 차림이었다. 음악회에 오느라 잘 차려입었나 보다. 그 옆에서 리즈 양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하는 게 들려왔다.

“그런가 봐요.”

로렌도 잘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달은 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하긴, 저 나이 대의 소녀들이 그걸 알 리가 없다. 그녀도 유제니에게 들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에게 들었다.

세이마리아 비스컨 백작 부인은 악기 연주에 조예가 깊다고 했다. 피아노에서 플루트와 바이올린, 하프까지 연주할 수 있다고 들었다. 비스컨 백작과 결혼하기 전에 아카데미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비스컨 백작 부인이 젊었을 때는 소수의 상급 귀족이나 부유한 귀족은 자식을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았다. 즉, 비스컨 백작 부인은 아카데미에 가지 않을 정도로 부유했다는 말이다.

“어머.”

다음 순간, 섬세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간 아슬아슬한 유제니의 피아노 연주와 누가 들어도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한 비스컨 백작 부인의 플루트 연주 위로 올리버의 바이올린 연주가 얹어졌다.

“세상에.”

사람들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게 감탄한 건 클레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올리버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녀는 올리버를 사일록 경의 집에서 구해 낸 뒤로 처음 얼굴을 본 거다. 그때는 퍼렇게 멍이 든 얼굴에 코뼈가 부러져서 피범벅인 탓에 얼굴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멍이 가라앉은 지금, 올리버는 평소의 잘생긴 얼굴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멀쩡하잖아?”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클레어도 그 소문을 안다. 올리버 비스컨이 여자를 빼앗겨서 질투에 눈이 먼 기사에게 크게 다쳤다는 소문.

물론 그 소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문이다. 클레어가 아는 한, 사일록 경의 여자라는 그 여자분은 사일록 경과 데이트는커녕 산책 한 번 한 적이 없다. 애초에 사일록 경의 짝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전보다 더 잘생겨진 것 같지 않아요?”

누군가의 속삭임에 클레어는 그런가 하고 올리버를 쳐다봤다. 언행의 한심스러움이나 믿을 수 없는 자라는 판단과 달리 올리버의 생김새만큼은 잘생겼다. 꿈에서도 올리버 비스컨이 저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을 정도니까.

“전보다 좀 더 뭐라고 하지. 남자다워진 것 같아요.”

“오, 맞아요. 전보다 저 거칠어진 것 같아요.”

무슨 소린지 알겠다. 클레어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듣고 웃음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일록 경에게 맞은 코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흠 없이 잘생긴 왕자님 같았던 올리버의 외모는 사일록 경에게 코를 맞아 약간 달라졌다. 코가 살짝 비틀어지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거친 느낌도 좀 났던 것이다.

“기분이 좀 이상하네.”

연주가 끝나자 클레어는 손뼉을 치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기억에 남은 그 얼굴이 이제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싫다고, 기회만 된다면 멍이 들게 만들려던 얼굴인데 그 얼굴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에 멍을 만들고 싶었던 클레어의 행동을 막은 건 올리버의 얼굴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몇 번 더 때릴 걸 그랬다.

클레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다시 세 번째 연주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유제니의 피아노 독주가 조금 길게 이어졌다.

박자를 좀 놓치기도 하고 한 번은 건반을 잘못 누르기도 했지만, 클레어는 그것조차 좋았다. 꿈에서 고귀한 레이디 비스컨은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지 연주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쩍 번즈 백작 쪽을 쳐다보자 그가 유제니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항상 다가가기 힘들게 느껴지던 그의 분위기가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여자들이 보기엔 전이 더 낫지 않나요?”

세 번째 연주가 끝나고 악기를 가져다 놓기 위해 비스컨 사람들이 음악실을 나서자 어떤 남자가 물었다. 다음은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진 뒤 고용한 악단이 연주한다고 한다.

“뭐가요?”

클레어는 음료가 담긴 쟁반을 들고 다니는 하인에게 손짓하며 물었다. 누군지 관심도 없다. 아마 비스컨 남작의 친구 중 하나겠지.

이 남자도 꿈이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이 나이 또래의 작위가 없는 남자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용을 잡겠다며 객기를 부리다가 사망한 사람 반, 전쟁에 나가서 전사한 사람 반이다.

“번즈 백작과 올리버 말입니다.”

역시 비스컨 남작의 친구가 맞았던 모양이다. 클레어는 남자가 비스컨 남작을 이름으로 부르자 그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자 남자가 재빨리 자기소개를 했다.

“무디입니다. 아치 무디. 무디 자작님이 제 삼촌이시죠.”

역시 작위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클레어는 다가온 하인이 들고 있는 쟁반에 손을 뻗으며 물었다.

“술인가?”

맞습니다. 하인이 대답하자 클레어는 재빨리 손을 뗐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처음 초대받은 유제니의 음악회에 취해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손을 무디를 향해 내밀며 말했다.

“클레어 라넌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인데? 아치는 클레어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라이언 경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두 분, 아는 사이입니까?”

“아니요.”

“방금 만났지.”

올리버의 친구인 만큼 아치는 테드와도 아는 사이였다. 아치의 말에 테드는 잠시 “흠” 하고 생각했다. 이 음악회에 아치가 접근할 만한 나이의 여성이 몇 명 없다. 대부분 어머니와 함께 왔고 클레어만 혼자 서 있으니 그녀에게 말을 건 거겠지.

그는 친구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아, 올리버 말야. 전이 더 낫지 않아?”

응? 테드의 시선이 올리버가 아까 연주하던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비스컨 사람들은 이미 음악실에서 나간 다음이다.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다시 들어올 것이다.

테드는 다시 아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가 더 낫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발했어?”

그는 남자가 이발을 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수염을 밀어 버려도 잘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치의 말이 올리버가 이발을 했다는 걸로 들렸다.

아치는 친구의 눈치 없는 말에 혀를 차며 말했다.

“코 말야. 비뚤어졌잖아. 전이 더 낫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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