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4/239)

139화. 30 – 1

“빅스! 악단은 다 도착했나?”

아침부터 비스컨 저택은 소란스러웠다. 음악회가 열리는 건 오늘 저녁이지만 준비는 전날부터 분주하게 하고 있었다.

물론 음식 준비나 악단을 섭외하는 건 며칠 전에 끝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섭외한 악단이 제대로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그들이 쉴 방도 준비해 줘야 한다.

부유하지 않은 비스컨 저택이지만 비스컨 백작 부인이 결혼하고 신혼집으로 산 이 저택은 방에 여유가 있어서 악단이 쉴 방은 충분하다. 물론 음악회 도중에 손님들이 무단으로 방을 이용하지 않도록 안 쓰는 방문을 잠가 두는 것도 집사의 일이긴 하다.

“곧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빅스는 약간 예민하다 싶은 백작 부인의 말에도 덤덤하게 말했다. 사교 시즌이 되면 어지간히 가난한 집안이 아닌 한은 한두 번 정도는 손님을 초대한다. 그중에서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게 소규모 음악회와 연극이다.

둘 다 집안사람들만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긴 하지만 음악회는 머릿수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

“올리버 때문에 걱정이네.”

세이마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미 몇 주 전에 결정해서 초청장까지 다 보내 둔 거지만 올리버가 최근에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음악회를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괜찮으니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올리버였다.

“도련님이 괜찮다고 하셨잖습니까.”

빅스는 백작 부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다투던 기사에게 납치를 당해 감금당했다가 풀려난 올리버는 다행히 코를 빼고는 다친 곳이 없었다. 물론 세이마리아는 그것도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잘생긴 아들의 코가 부러져서 약간 비틀렸다. 그게 어머니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는 자식을 가진 사람만이 알 것이다.

“걔가 사람들 앞에 나서도 될지 모르겠어.”

취소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반, 올리버가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 반이다. 비스컨 남작이 사일록 경과 다투다가 크게 다쳤다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소문이란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이라 사일록 경이 비스컨 남작을 납치 감금했다는 소문은 그가 올리버의 팔다리를 잘랐다는 소문으로까지 커져 있었다.

“괜찮을 겁니다. 도련님은 강한 분이니까요.”

빅스는 다정하게 말했다. 비스컨 사람들은 모두 강하다. 가장 약해 보이는 유제니가 올리버를 구해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 아이들은 모두 강하지.”

세이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약혼자의 부정에도 무너지지 않고 파혼을 결심한 딸도 그렇고, 납치당해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죽은 척해서 도망치려 했던 아들도 그렇다.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올해는 요정이 심술을 부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있지만 그래도 잘 지나가고 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장가도 안 가는 원수 같은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올리버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말이다.

“음식은 어떻지?”

금세 안정을 찾은 백작 부인의 질문에 빅스는 침착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요리사가 재료 하나가 상했다고 난리를 쳤지만 잘 해결했다.

별 문제 없이 준비되고 있다는 말에 세이마리아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유제니는 어떤가?”

“아가씨요? 아가씨는 걱정할 게 없지 않습니까.”

늘 조용하고 행동에 흠잡을 데가 없는 분이다. 하지만 세이마리아는 최근 유제니의 행보에 걱정이 많았다.

“어닝 때문에 충격이 컸던 모양이야.”

얼마 전에 수영장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하길래 응원해 주었다. 그게 친구이자 약혼자의 부정에 받은 충격을 치료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도 생각했다.

최근에 그 수영장을 그만하겠다길래 충격에서 많이 벗어난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거다. 세이마리아의 한숨에 집사는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렌시드 경은 거의 잊어버리셨을 겁니다. 워낙 좋은 분들이 곁에 계시니까요.”

최근에 새로 생긴 친구들도 있고 유제니의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오는 구혼자도 있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그녀의 말을 지지해 주는 어머니도 있고.

“그럼 왜 갑자기 또 새로운 걸 한다는 걸까.”

수영장을 정리했으니 번즈 백작의 구혼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런데 번즈 백작은 아직 정식으로 구혼하지 않았고 유제니는 더 하고 싶다고 한다.

세이마리아의 한숨에 집사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빅스도 유제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지만 그는 유제니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원래 아가씨는 좀 도전적이지 않습니까.”

빅스는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에 세이마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도 기억하지? 그 애가 열 살이었나. 유괴범이 나타났을 때 말이야.”

“아홉 살 하고 십일 개월입니다.”

빅스는 똑똑히 기억한다. 유제니가 한 달 뒤면 열 살 생일이라고 어떤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할지 고민 중이었으니까.

“가난한 집 아이만 납치한다는 걸 듣고 자기 옷 중에서 가장 낡은 옷을 입고 나갔지.”

그때는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커런트에 가난한 집 아이만 납치하는 유괴범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제니는 왜 치안관이 유괴범을 잡지 않느냐고 물었고 세이마리아는 그만 말실수를 해 버렸다.

가난한 집이라 치안관의 관심이 좀 덜할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유제니의 얼굴이 확 굳었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열 살도 안 된 애가 짓기에는 너무 어른스러운 표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다음 날, 유제니가 사라졌다. 비스컨 저택은 발칵 뒤집어졌고 그 전날 유제니를 재운 유모가 이상한 말을 하더라며 이야기했다.

가난한 집 아이라 치안관의 관심이 덜하다면 귀족 집의 아이가 납치되면 치안관의 관심이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유제니의 옷장에서 가장 오래되고 낡은 옷이 사라져 있었다.

“결국 시내 광장에서 발견했죠.”

빅스는 웃으며 말했지만 세이마리아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적어도 유제니에게는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행동 조심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꾸중하는 세이마리아에게 유제니는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니는 항상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냐고. 자신은 귀족이고 귀족으로서 이 나라의 사람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래도 유괴범을 잡지 않았습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비스컨 백작 부부가 국왕 전하에게 요청했다. 유제니가 또 그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내가 잘못 키운 걸지도 몰라.”

“아주 잘 키우신 거죠.”

빅스의 대답은 곧바로 튀어나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제니 아가씨는 아주 훌륭하게 자라셨습니다. 마님을 닮은 거겠죠.”

그의 말에 세이마리아는 잠시 집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복잡한 표정이었지만 집사 역시 아무 말 없이 백작 부인의 시선을 받아 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세이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유제니의 다음 계획을.”

아직도 그녀는 반대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빅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차피 아가씨가 반대한다고 포기할 분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 세이마리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녀의 딸은 정말로 고집이 셌다. 어떤 면으로는 올리버보다 더 다루기 힘든 아이기도 하다.

“제 생각엔….”

거기까지 말한 빅스의 입이 닫혔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건 주제넘다. 하지만 세이마리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빅스. 내가, 아니, 우리 가족이 자네의 조언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있지 않나.”

유제니와 올리버는 물론 비스컨 백작 부부도 빅스의 조언을 필요로 한다. 빅스는 저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번 도련님 사건으로 그런 계획을 세우신 건지도 모릅니다. 아가씨 나름대로 불안을 잠재우려고 하시는 거겠죠.”

“그러니 그냥 두라?”

“지난번 수영장처럼 운영하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별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잖아.”

유제니가 여자들에게만 출입을 허락한 탓에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 내려 했다. 여자들이 그 배에서 무슨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 거라는 식의 그런 소문이었다.

“금세 가라앉았잖습니까.”

빅스의 말에 세이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그 소문이 사라졌다. 레이디 비스컨이 배에서 여자들을 모아 놓고 불법적인 짓을 벌이는 게 아니냐던 사람은 갑자기 수도에서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 소문에 동조하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번 일도 또 그런 우연이 일어날 거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이번 건 대상이 제한된 것도 아니고요.”

세이마리아의 걱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빅스가 말했다. 그럴까. 세이마리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마음 같아서야 유제니가 그런 고생스러운 일은 그만하고 번즈 백작과 결혼했으면 좋겠지만.”

“마님께서는 아가씨의 상대로 번즈 백작님이 마음에 드십니까?”

빅스의 질문에 세이마리아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고개를 들었다. 지금 유제니에게 구혼하는 세 남자 중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주관적으로 봐도 그렇다.

“번즈 백작에게 뭔가 이상한 부분이라도 있나?”

백작 부인의 질문에 빅스는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건 아니다. 아니, 이상한가?

그는 기가 막힐 정도로 잘생긴 번즈 백작의 얼굴을 떠올렸다. 부모의 얼굴이 궁금할 정도로 잘생긴 번즈 백작은 평민 출신에 용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평민 출신에 용병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그의 완벽한 예의범절이라던지, 하인을 다루는 태도 같은 게 그랬다.

귀족과 평민의 차이는 단순히 예의뿐 아니라 말투와 사용하는 단어, 장소에 따른 옷차림의 차이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번즈 백작은 완벽한 귀족처럼 보였다.

게다가 가장 찜찜한 부분은 그가 비스컨 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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