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0/239)

135화. 28 – 6

“윽.”

방 안은 악취로 가득했다. 진짜 시체라도 있는 거 아냐? 나는 코를 감싸 쥐며 방 한가운데에 놓인 침대로 다가갔다. 물론 악취는 침대로 다가갈수록 더 심해졌다.

“오,”

하마터면 올리버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건 올리버가 맞았다. 얼굴 한쪽이 좀 부어 있고 여위긴 했지만, 확실히 올리버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올리버에게 달라붙었다가 그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주인어른의 그, 손님인데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거짓말이다. 나는 올리버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가 그의 몸에서 악취가 난다는 것을 깨닫고 집사에게 말했다.

“불이 필요한데.”

다행히 집사는 내 요구에 순순히 램프를 가져와 주었다. 불빛 아래에서 본 올리버의 얼굴은 훨씬 더 끔찍했다. 부어 있을 뿐 아니라 멍이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오, 세상에.

내가 쳐다보자 집사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넘어질 때 부딪쳐서….”

“넘어진 게 아니라 맞은 것 같은데.”

넘어지면 보통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려 한다. 얼굴에 이렇게 멍이 들었다는 건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뜻이다.

내 지적에 집사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은 그분이 왜 일어나지 않는지만 알아내시면 됩니다.”

알아내라고? 올리버가 쓰러진 이유를 모른다는 뜻이다. 즉, 쓰러질 만한 큰 상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램프를 들어 올리버의 몸을 훑었다. 상의에는 피가 좀 묻어 있긴 하지만 이건 코피인 것 같다. 그 외에는 피가 보이지 않았다.

젖어 있긴 하지만.

뭐가 문제일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을 가늘게 뜬 올리버와 눈이 마주쳤다.

어.

나는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가 재빨리 집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뜨거운 물과 깨끗한 천을 가져오게.”

“물을 얼마나….”

“한 양동이 가져오게.”

뜨거운 건 얼마나 뜨겁게 해야 하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걸로 충분했나 보다. 집사가 나가자 나는 재빨리 램프를 들어 올리버의 얼굴을 살폈다.

“올리버, 정신 차리고 있지?”

“유제니?”

올리버는 그제야 나를 알아봤는지 몸을 휙 돌렸다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올리버!”

어디 부러진 거 아냐? 깜짝 놀라서 오라버니를 붙잡는데 그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괜찮아, 괜찮아.”

“갑자기 쓰러져서 못 일어났다던데?”

“일부러 그런 거야.”

“끙” 하고 자세를 고친 올리버가 일어나 앉으려 했다. 나는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일부러 그랬다고?”

“어어. 그래야 저 녀석들이 내가 죽은 줄 알 거 아냐.”

죽은 척한 거란 말야? 내가 인상을 쓰자 올리버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죽은 줄 알면 어디다 갖다 버릴 줄 알았지.”

“사일록 경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서 다행이네.”

자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 감금해 둔 사람이 솔직하게 고할 리가 없는 것이다. 강이나 산에 갖다 버릴 수도 있었다.

“어떻게 왔어? 너 혼자 온 건 아니지?”

“엘리엇과.”

“번즈 백작만? 단둘이 온 거야?”

애초에 난 올리버를 구하려고 온 게 아니다. 여기 있는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지. 나는 우연히 엘리엇과 함께 간 무도회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정말 여기에 올리버가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것도.

“그럼 번즈 백작은 어디 있어?”

“아참.”

올리버를 만나는 바람에 잊어버렸다. 나는 램프를 들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창문을 연 뒤 램프를 창문틀에 올려놓았다.

이게 신호다. 내가 올리버를 찾으면 그 방의 창문틀에 램프를 올려놓기로 했다.

나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엘리엇이 여기를 찾았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못 찾았나?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올리버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며 물었다. 일어나려 하는 걸 보니 어디 다친 건 아닌 모양이다. 그냥 기운이 없는 건가?

나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의사를 구한다길래 의사인 척했지.”

“네가?”

올리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여자 의사가 있던가?”

나도 모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없어도 그걸 이 집 사람들만 모르면 되는 거 아냐?”

여자 의사 앞에서 여자 의사는 없다고 말할 멍청이는 없을 테니까.

올리버는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딱 벌렸다가 다시 주춤주춤 일어나려 하며 말했다.

“도망치려면 지금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집사가 돌아올지도 몰라.”

“그렇게 빨리는 못 올 거야. 뜨거운 물을 가져오랬으니까.”

이 밤에 물을 끓여서 가져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올리버는 그제야 내가 집사에게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고 한 이유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는 감탄하는 올리버에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도망칠 생각 없어.”

“안 도망친다고?”

내가 어떻게 올리버를 데리고 도망친단 말인가. 이 집 크기로 보건대 하인이 적어도 세 명 정도는 필요하다. 집사에 사일록 경까지 하면 최소 다섯 명의 남자가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사일록 경은 기사고.

더 나쁜 건 올리버가 제대로 걸을 힘이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나는 올리버를 업거나 안기는커녕 부축하기도 어렵다.

올리버는 내 두 배란 말이지.

나는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는 올리버를 눕도록 손으로 밀며 말했다.

“클레어가 에스컬레 경과 의사를 데리고 오기로 했어. 엘리엇이 우리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면….”

클레어와 에스컬레 경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려 주는 거다. 그러면 피해 없이 올리버를 데리고 여길 빠져나갈 수 있다.

“허.”

내 계획을 들은 올리버가 감탄했을 때였다.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집사가 왔나? 올리버는 재빨리 다시 누웠고 나는 뜨거운 물을 가져왔냐고 물어보려 했다.

“어?”

하지만 집사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나와 올리버를 보더니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인상을 썼다. 그리고 내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레이디 비스컨?”

아, 젠장.

* * *

“여기예요!”

클레어는 환히 불이 켜진 저택을 보고 소리쳤다. 밤길이라 주소를 제대로 찾을지 모르겠다던 마부 역시 환하게 불이 켜진 저택을 보고 마차를 멈춰 세웠다.

“여기 올리버가 있다고?”

재빨리 마차에서 내린 에스컬레 경이 클레어가 내릴 수 있도록 부축해 주며 물었다. 유제니가 사일록 경의 집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먼저 가서 집의 동정만 살핀다고 했는데 정작 그 집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클레어는 집 근처에 유제니가 있는지 찾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엘리엇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해하는 클레어 옆에서 로인 역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저택을 쳐다보고 있었다.

“번즈 백작과 레이디 비스컨이 같이 갔다고 하지 않았나?”

“네.”

둘이 같이 갔다. 그러니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번즈 백작의 실력을 아니까.

하지만 그 순간, 저택의 현관문이 열렸다. 순간적으로 긴장했던 클레어와 로인은 문을 연 사람이 엘리엇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달려갔다.

“번즈 백작!”

“유제니는요?”

엘리엇 역시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올리버를 부축하며 물었다.

“의사를 데려왔습니까?”

유제니가 혹시 모르니 의사도 데려와 달라고 했다. 그제야 로인은 마차에 남은 의사를 부르기 위해 달려갔다.

“레이디 비스컨, 유제니는요?”

클레어는 엘리엇이 부축하고 있는 올리버는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는 한쪽 팔로 올리버를 부축한 채 저택 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곧 나오실 거네.”

곧 나오신다고? 같이 있는 게 아니었어? 클레어가 올리버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집 안에서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악!”

곧이어 남자가 열린 현관을 통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뭐야? 긴장하는 클레어와 달리 엘리엇은 여유로웠다. 그는 의사를 데려온 에스컬레 경에게 올리버를 넘기고 천천히 현관을 향해 다가갔다.

“유제니!”

클레어 역시 엘리엇을 따라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안쪽에서 지팡이를 든 유제니가 인상을 쓴 채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괘, 괜찮습니까?”

머리카락이 약간 흐트러져 있긴 했지만, 유제니는 멀쩡해 보였다. 그녀는 마치 검을 쥐듯 쥐고 있던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엘리엇과 클레어의 사이를 향해 외쳤다.

“괜찮아요?”

누구를 향해 말하는 거지? 뒤를 돌아본 클레어는 사일록 경이 주저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방금 전에 데굴데굴 굴러 나온 사람이 사일록 경이었던 모양이다.

“팔, 부러졌을 거예요.”

다시 걱정스러운 유제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당황한 클레어가 다시 유제니에게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엘리엇이 그녀에게 다가가 지팡이를 받아 들고 있었다.

“이거, 검이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그러자 안에서 가느다란 검이 빠져나왔다. 전에 유제니에게 보여 준 적이 있는 지팡이다.

당연히 유제니도 그게 검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검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검으로 공격하면 상대가 너무 심하게 다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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