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28 – 4
“행방불명이라면 치안관에 연락하는 게 좋을 텐데요.”
“그게 문제예요.”
엘리엇의 충고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다음은 어떻게 하더라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가 오른쪽으로 가서 손뼉을 치고.
“종종 이런 일이 있거든요. 다른 집안에요.”
나는 다시 엘리엇의 앞으로 돌아가자 이야기를 이었다. 올리버 정도의 나이를 먹은 미혼의 남성들이 며칠씩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다.
대부분 술집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여관방에서 눈을 뜬다고 한다. 당연히 지갑은 사라지거나 텅 비어 있고.
그런 이야기를 남자들이 무훈처럼 하는 걸 몇 번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가끔 좀 안 좋은 곳에서 발견되는 사람이 있어요.”
안 좋은 곳이라는 말에 엘리엇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나는 콧잔등을 찡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며 설명했다.
그냥 안 좋은 곳이라고 뭉뚱그리기는 하지만 상황은 다양하다. 마약 굴에서 발견되거나 불법 도박판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가벼운 범죄에 연루된 경우도 있었고.
범죄에 가볍고 무겁고가 있겠냐마는 술에 취해서 밀수에 가담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외국의 담배나 술을 몰래 한두 병 들여오다가 들킨다고 한다.
술에 취하면 갑자기 용기가 솟나 보지?
“용기가 아니라 멍청해지는 거죠.”
냉정한 엘리엇의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말이다. 나와 어머니는 만용을 부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 멍청해진다는 그의 말도 맞다.
“그런 경우에는 벌금이 꽤 많거든요. 하지만 벌금보다 더 문제는 소문이 나는 거예요.”
십 대 어린애들이 그러는 거라면 어려서 뭘 모른다고 하지만 올리버가 그러면 나이가 찼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는 소리를 듣는다.
“백작 부인께서는 비스컨 남작이 안 좋은 소문에 휘말릴까 봐 걱정하시는군요?”
놀랍게도 엘리엇은 누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맞다. 어머니는 올리버가 안 좋은 소문에 휘말릴까 봐 걱정을 하는 거다. 그게 올리버가 결혼하는 데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그리고 더 나아가서 비스컨 가에 먹칠을 할까 봐.
또 다른 면으로 보자면, 우리가 먼저 알고 개입하면 일이 커지기 전에 올리버를 빼낼 수 있다. 무슨 소리냐면, 올리버가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벌금이 무서울 수도 있고요.”
내 말에 엘리엇은 피식 웃었다. 그는 곧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실례지만 백작 부인께서는 비스컨 남작이 다쳤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런 가능성도 있다. 사고를 당하거나 해서 다쳤을 가능성. 심하게 다쳤다면,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면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일단 어머니와 나는 그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따라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엘리엇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곧이어 사람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음악이 끝난 뒤 파트너에게 보이는 일종의 예의였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뼉을 쳤고 나란히 홀 가장자리로 이동하며 말했다.
“어머니는 그럴 가능성을 최대한 생각하고 싶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아예 그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신다. 불길하다고.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나도, 빅스도 아니다. 나는 엘리엇이 내민 팔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커런트의 모든 병원에 연락을 취해 봤답니다.”
어느 곳에서도 올리버처럼 생긴 남자가 입원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다. 올리버가 어머니가 걱정할 사고를 치고 있거나 쳤을 가능성.
“비스컨 남작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요?”
엘리엇은 그제야 진지하게 물었다. 사흘 전 조정 클럽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올리버는 높은 모자 클럽으로 간다고 했다.
하지만 높은 모자 클럽에서는 그가 오지 않았다고 했고.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알아요.”
엘리엇이 충고를 하려 했기 때문에 나는 걸음을 멈추며 그의 말을 막았다. 혹시 모르니 올리버를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거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올리버가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자체를 거부하고 싶으신가 보다.
“에스컬레 경에게는 이미 말해 놨어요.”
에스컬레 경이 비공식적으로 올리버의 행방을 찾고 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오라버니가 돌아오지 않으면 공식적으로 행방불명으로 처리해서 찾을 거다.
“그게 아닙니다.”
엘리엇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저도 못 찾을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나도 엘리엇이 뭐든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한 건 아니다. 올리버는 우리 집 사람이고 우리 집 일은 우리 집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올리버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엘리엇에게 말한 것만으로도 나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말이지.
“게다가.”
엘리엇은 다시 나를 테라스 쪽으로 이끌며 말을 이었다.
“당신과 백작 부인보다 비스컨 남작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오지랖일 뿐이죠.”
오지랖이라니. 나는 엘리엇의 언어 사용 때문에 눈을 가늘게 떴다가 피식 웃었다. 때때로 그의 거친 위로가 효과가 좋았다.
“고마워요.”
나는 테라스에 나가 울타리에 손을 얹으며 인사했다. 엘리엇 덕분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물론 올리버에게 큰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 멍청한 오라버니는 분명 친구의 집에서 술병이 나서 누워 있거나 카드 게임에 푹 빠져서 시간이 이렇게 됐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거다.
반쯤은.
내 마음속 남은 반은 올리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는 두려움으로 잠식해 있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집에 있으면 그 두려움이 커졌다.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별일 없을 겁니다.”
엘리엇은 나직하게 말하고 내 옆에 가만히 서 있어 주었다. 집에 있을 때는 불안해서 혼란스럽던 머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비스컨?”
그때, 울타리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깜짝 놀라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 나는 흠칫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내 성이긴 하다.
하지만 남자들은 이쪽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테라스에 나와 엘리엇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진짜로?”
“아, 그렇다니까? 너 아는 의사 없어? 입 무거운 놈으로.”
“아니 상태가 어떻길래? 설마 죽는 건 아니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남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슨 이야기인 걸까. 어두워서 남자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중 하나가 놀라서 소리치지만 않았으면 나는 남자 두 명이 저기 있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아냐, 죽기는. 그게 아니라….”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 좀 크게 말해 주면 안 돼? 나는 엘리엇을 돌아보았고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사일록 경이 그래서….”
띄엄띄엄 들리는 목소리 사이로 아는 단어가 몇 개 튀어나왔다. 사일록 경이라면 안다. 나는 다시 엘리엇을 돌아보았고 그는 검지를 자신의 입술 위에 올리더니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소리 내지 않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남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랬다간 남자들이 눈치챌 수 있으니 저쪽으로 돌아서 가려는 모양이다.
나는 엘리엇의 모습이 보이기를 기다리며 다시 남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알려야 하는 거 아냐?”
“뭐? 어디에?”
이제 남자들은 가볍게 다투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쑥 하고 나타났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저렇게 큰데도 나는 엘리엇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빠르고 조용하게 움직였다.
“으아악!”
엘리엇이 다가가서 뭐라고 말을 걸었나 보다. 정신없이 다투던 남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어? 나는 깜짝 놀라서 울타리에 달라붙었다. 저 사람들 놓치면 안 되는데?
다행히 엘리엇이 도망치는 남자 중 한 명을 붙잡았다. 다른 한 명은 도망쳤지만 남은 한 명은 엘리엇에게 목이 붙잡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때, 엘리엇이 붙잡은 남자의 몸이 픽 쓰러졌다.
“엘리엇!”
나는 재빨리 엘리엇을 부르며 울타리 위로 몸을 내밀었다. 잠시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던 엘리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울타리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거기 계세요. 잔디가 젖어서 옷이 망가집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해? 나는 울타리 위로 몸을 내민 채 물었다.
“저 남자는요? 어떻게 된 거예요?”
엘리엇의 시선이 쓰러진 남자에게로 향했다. 잔디가 젖어 있다는데 그는 잔디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기절한 것 같습니다.”
뭐라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인상을 썼다. 그러자 엘리엇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끔 저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기절한단 말이에요?”
“아무 이유가 없는 건 아니죠. 놀랐으니까요.”
너무 놀라서 기절했단 말이다. 허어. 나는 다시 쓰러진 남자를 쳐다보다가 엘리엇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닌 모양이다. 그는 고개를 젓더니 역으로 내게 물었다.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었습니까?”
엘리엇이 저택을 돌아 나가기 전까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묻는 모양이다. 나는 띄엄띄엄 들리던 남자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입이 무거운 의사를 찾았고 죽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도망친 남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고.
“올리버와 연관된 것 같아요.”
내 말에 엘리엇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인상을 쓴 채 다시 말했다.
“그리고 사일록 경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