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26 – 2
“커널 남작이요? 남작 부인이 아니라?”
클레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커널 남작 부인이 살해당했다는 것도 잊고 있었잖아.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클레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남작의 정부였습니다. 그, 소문이 꽤 복잡했거든요.”
“어땠는데요?”
머릿속에 아직 작은 응접실에 로고소 양이 기다린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우선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질문에 클레어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디께 말씀드리기에는 민망한 소문이라서요.”
허어. 가끔 보면 클레어는 엘리엇보다 더 나를 보호하려고 든단 말이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클레어를 노려봤다.
그러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말했다.
“남작 부인이 후계자를 임신하자 질투한 남작의 정부가 살해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별로 복잡하지 않네요?”
“후계자가 진짜 남작 부부의 자식인지 의문이 좀 있었던 거로 기억하거든요.”
오, 그거라면 좀 복잡해지네.
나는 재빨리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금까지 클레어의 꿈은 예지몽이었다. 그녀는 미리 경험한 것에 가깝다고 주장하지만.
그리고 예지몽에 의하면 커널 남작 부인의 남작의 정부에게 살해를 당했지. 남작의 후계자를 임신해서.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작 부인은 임신하지 않았고 남작의 정부는 남작 부인을 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소문에 의하면 오히려 남작 부인의 정부가 남작 부인을 살해하려 했지.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꿈에서도 남작 부인에게 정부가 있었나요?”
“음, 아니요. 그런 소문은 못 들었습니다.”
하지만 있었을 수도 있다. 클레어는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정신이 없었을 거라고 말하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꿈대로라면 화가 난 드래곤이 이 나라를 공격했을 거다. 어떻게든 드래곤을 막기 위해 국왕 전하는 군대를 조직했을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평화롭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생사의 고비에 서 있는데도 말이지.
“고마워요, 클레어.”
나는 우선 클레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로고소 양에게 돌아갔다. 다행히 그녀는 응접실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가 눈치 빠르게도 로고소 양에게 쿠키와 과일을 좀 더 내놓은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앞에 놓인 디저트를 보고 사과하며 말했다.
“미안해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기사를 확인하고 오신 거죠?”
로고소 양이 곧바로 말했다. 그녀도 그 기사를 보고 찾아온 모양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스토 경과 만났다는 걸 누구에게 말했나요?”
“아무에게도요.”
“그럼 처음 커널 남작 부인이 공격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미스토 경이 의심을 받지 않은 거죠?”
“어, 우리가 이야기한 카페가 있어요. 거기 직원이 증언을 해 줬대요. 그때 다른 여자와 있었다고요.”
허. 생각보다 간단했구나. 나는 잠시 몸을 늘어트렸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렇다면 그 직원이 증언을 철회했다는 말이다. 직원이 증언을 철회하고 커널 남작 부인이 죽고, 그 범인이 미스토 경이라면 유리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커널 남작뿐이다.
하지만 꿈에서는?
후계자를 임신한 부인이 정부에게 살해당했다. 커널 남작은 완벽하게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로고소 양에게 입을 열었다.
“로고소 양, 도박 좋아해요?”
“아니요.”
로고소 양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럴 것 같다. 사실, 나도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건 도박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여 작은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커널 남작 부인 말입니까?”
그날 오후, 나를 찾아온 엘리엇은 커널 남작 부인과 미스토 경의 사건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꿈에서도 커널 남작 부인에게 정부가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기울이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렇겠지. 남의 정부 유무에 관심을 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아, 하지만 원래라면 사망했다는 건 기억납니다.”
“원래요?”
“실수했습니다. 꿈에서요.”
원래라.
클레어도 로렌도 꿈이 실제 같았다고 했다. 그러니 엘리엇 역시 꿈을 실제로 느꼈을 거다. 꿈이 원래고 지금이 바뀐 거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
나는 엘리엇의 말실수를 납득하고 다시 물었다.
“범인이 커널 남작의 정부였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까?”
아, 이런 이야기를 또 모르는군.
나는 클레어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엘리엇의 얼굴에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흠. 커널 남작 부인을 질투해서 남작의 정부가 그녀를 살해했다고요?”
“그런 소문이 있대요.”
엘리엇은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다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안 믿는 소문이잖습니까.”
내가 표정을 감추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엘리엇에게 몸을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로고소 양에게 한 가지 도박을 제안했거든요.”
엘리엇은 알 수 없는 표정을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가 더 말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줄 알고요?”
엘리엇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당신과 같이 가는 거 아닙니까?”
“어, 그건 맞는데요.”
“그거면 됐습니다.”
* * *
커널 남작 저택은 놀랍게도 생기가 돌았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마치 장례식처럼 조용했는데.
커널 남작 부인이 병상에 눕기 전에도 조용했다. 늘 집을 비우는 남작 때문에 남작 부인의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간은 갑자기 달라진 남작 부인의 태도 때문에 저택은 한층 더 아슬아슬했다. 하인들은 늘 언제 깨질지 모를 얼음을 밟는 것처럼 조심조심 다니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저택을 찾은 마르코 커널 남작은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려다가 이상한 분위기에 멈췄다.
그리고 하인들의 얼굴이 밝은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지?”
그는 지나가는 하인을 붙잡고 물었다. 하인은 새로 꺼낸 침대 시트를 들고 있었는데 커널 남작은 그가 뭘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 남작님.”
그제야 남작을 알아본 하인은 재빨리 인사를 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입니다. 마님의 상태가 호전되었답니다.”
“뭐, 뭐라고?”
호전됐다고? 일어났다는 말인가? 깜짝 놀라는 마르코에게 하인은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점심때쯤에 손을 움직이셨답니다. 의사를 불러서….”
“그럴 리가! 호전됐다면 의사가 내게 알렸을 텐데?”
혹시라도 부인의 상태에 변화가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그에게 알리라고 신신당부를 해 놓았다. 오늘 점심때였다면 그가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다.
왜 알리지 않은 거지?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하인이 말했다.
“아, 의사를 새로 불렀습니다.”
“뭐라고? 누구 마음대로!”
저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 남작은 깜짝 놀라는 하인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내 허락도 없이 누가 이 집에 외부인을 들인단 말인가?”
“그게, 로고소 양이 아는 의사라고….”
그제야 하인은 남작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왜 기분이 안 좋은 거지? 그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남작은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집 밖으로 나가며 집사에게 말했다.
“오늘은 셀리 집에서 자고 오지. 문단속 잘하게.”
“마님의 상태는 안 보고 가십니까?”
남작 부인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들었다. 마르코에게 이야기한 하인이 자신이 뭔가 실수했는지 집사에게 물어봤기 때문이다.
남작은 이멜다의 상태를 보지 않을 거냐는 질문에 네가 뭔 상관이냐고 화를 내려다 멈췄다. 그 이기적인 계집.
그는 오랜 시간 커널 남작가에서 일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보다는 남작 부인에게 충성하는 이 늙은 집사를 하루빨리 쫓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고작 손을 좀 움직인 것뿐이잖나. 정신을 차리면 알리게.”
아무리 귀족의 결혼이 개인 간의 호감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해도 남작의 태도는 너무 무심하다. 아니, 무심한 정도가 아니지.
하지만 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르코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오늘은 셀리의 집에서 자야겠다. 이렇게 집 안이 소란스러워서야.
하지만 그는 금세 몸을 돌려 집사에게 말했다.
“그리고, 의사를 불렀는데 왜 내게 알리지 않았지? 자네도 의사도 내게 돈을 받고 있는데 일을 이따위로 하면 돼?”
그럴 줄 알았다. 집사는 마르코의 비난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남작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의사를 부른 건 제가 아니라 로고소 양입니다. 비용 역시 로고소 양이 지불했고요.”
“아, 아니, 그렇다 해도 나한테 알렸어야지!”
“마님께서 깨어나시는 게 아니면 알릴 필요 없다고 하셔서요.”
집사의 대꾸에 남작의 말문이 막혔다. 그는 집사를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몸을 휙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