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4/239)

119화. 25 – 1

“비스컨 남작이 어디 갔는지 압니까?”

강 상류로 달려온 클레어는 조정 선수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하지만 말 위에 탄 채 질문하는 여기사를 본 남자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흰 사자 기사단에 여기사가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여기사를 본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클레어가 정말 소문의 그 여기사가 맞는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클레어의 호통을 들었다.

“비스컨 남작, 어디 있냐고요!”

“저, 저기….”

집으로 간다고 했다. 아까 샤워를 했으니 지금쯤 저 앞에 있을 거다.

남자들의 설명에 클레어는 그대로 말 머리를 돌렸다. “이럇!” 하는 그녀의 호통에 남은 남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말했다.

“검은 사자의 여기사, 맞지?”

“흰 사자겠지.”

검은 늑대와 흰 사자가 혼동이 된 모양이다. 친구의 실수를 바로잡은 남자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런데 비스컨 남작은 왜 찾지?”

“싸우려는 거 아냐?”

“비스컨 남작과 저 여기사가? 왜?”

“둘이 사이가 별로 안 좋다던데.”

그런 소문이 있다. 라넌 경과 비스컨 남작이 싸우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고 비스컨 남작이 라넌 경을 협박하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다.

물론 사람들은 왜 안 좋은지까지는 모른다. 그건 올리버도 모르니까.

남자들은 우르르 고개를 돌려 클레어가 사라진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싸우면, 도와줘야 하나?”

“누구를?”

올리버 편을 들어서 여자 하나와 싸운다고? 말도 안 된다는 소리에 남자는 인상을 썼다. 그렇다고 친구인 올리버를 두고 저 여자를 도와줄 수는 없다.

“방금 훈련 끝나서 그 녀석 기운 하나도 없을걸?”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는데 피곤해서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고 했다.

“클럽에서 쉬면 되지.”

“그러게.”

다들 지금 클럽으로 가는 길이다. 널찍한 의자에 앉아 담배도 좀 피우고 술도 마시고 하는 게 더 편할 텐데.

“요즘 동생이 바빠서 자기라도 집에 있어야겠다던데.”

“집에 뭐 발라 놨대?”

어이없다는 듯한 남자의 말에 친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비스컨 백작 부인이 걱정하신다더라. 최근에 부인들만 노리는 강도 사건 때문에.”

그런 거라면 할 수 없다. 남자들은 다시 서로를 쳐다봤다. 라넌 경과 올리버 중 한 명을 도와야 한다면 좀 창피하지만, 올리버를 도와야 한다.

망설이던 남자 중 하나가 말했다.

“그래도 기사잖아?”

“그, 그렇지. 올리버 정도는 한 손으로 제압 가능할걸?”

곧바로 남자들의 머릿속에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 사람은 한숨을 내쉬고 클레어가 달려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비스컨 남작!”

아이고, 피곤하다. 뻐근한 어깨를 반대편 손으로 만지며 걸어가던 올리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비스컨 가의 하나뿐인 마차를 유제니가 가져가서 집으로 가려면 걷거나 삯마차를 타야 한다.

“어, 뭐야.”

말을 탄 한 무리의 남자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도로 전세 냈어? 왜 우르르 몰려와? 그렇게 생각하던 올리버는 그들이 흰 사자 기사단의 기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일록 경.”

선두에 있는 남자를 알아본 올리버가 말했다. 빅터 사일록 경. 사일록 후작가의 방계다. 모든 방계가 그런 건 아니지만 사일록 경은 사일록 후작가의 방계라는 이유로 꽤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의 검술 실력이 상급이라는 것도 한몫했고.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올리버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다. 이쪽은 조정 훈련장이 있으니까. 조정 훈련을 하거나 선수의 가족들이 아니면 잘 안 온다. 흰 사자 기사단은 왕궁을 지키니 왕궁 밖으로 나올 일도 별로 없고.

“그래? 난 만날 줄 알았는데.”

사일록 경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기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올리버는 그들이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것을 확신했다.

젠장.

다들 기사복 차림이다. 이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군. 올리버는 이 자리에 유제니가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라면 이 상황과 저들이 기사복 차림인 것을 보고 어떻게 처신하면 되는지 알려 줄 텐데.

아니, 아니다. 곧바로 올리버는 고개를 저어 유제니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을 감사했다. 무기를 든 다수의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는 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좋지 않은 상황에 유제니가 휘말리는 건 원하지 않았다.

“날 만나러 온 거라면 집으로 와도 됐을 텐데.”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살폈다. 도움을 구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도움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조정 선수와 그 관계자만 오는 곳이니까.

문득 올리버의 머릿속에 방금 헤어진 친구들이 떠올랐다. 수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 혼자 이 기사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뒤로 물러나던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고 멈췄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저들이 그를 때리려 한다면 맞을 수밖에 없다. 수적으로도 불리하지만, 저들은 기사들이니까.

검을 든 사람은 그게 어린애라 해도 이길 수 없다.

“날 만나려고 무기까지 들고 왔단 말이지?”

여전히 기죽지 않은 올리버의 태도에 몇몇 기사가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일록 경이 손을 들어 그들의 야유를 멈추게 했다.

이래서야 누가 흰 사자 기사단의 단장인 줄 모르겠군. 올리버는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다. 사일록 경이 본가를 등에 업고 멋대로 행동한다는 게 이런 뜻이다.

“걱정하지 말게. 검을 빼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참 감사하군그래.”

이죽거리는 올리버에게 샤일록 경은 피식 웃었다. 마치 이게 동등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소롭다. 그는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린 자네와 싸우러 온 게 아니야.”

그, 그래? 올리버의 긴장이 약간 풀어졌다. 그러자 샤일록 경이 검을 검집째 풀어 올리며 말했다.

“벌을 주려고 온 거지.”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에 다른 기사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들이 하나둘 말에서 내리는 사이에 샤일록 경이 말을 이었다.

“우린 자네가 기사단의 비밀을 파헤쳐서 뉴커크에 팔아넘긴다는 꽤 합리적인 의혹을 가지고 있거든.”

“뭐라는 거야?”

여전히 올리버는 샤일록 경과 다른 기사들이 무슨 소리는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사일록 경이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 기사에게 기사단의 약점을 빼내려고 했잖아. 그걸 왜 빼내려 했는지 설명할 기회를 주지. 물론….”

“내가?”

물론 기회만 줄 뿐 벌은 받을 테지만. 사일록 경이 그렇게 말하려는데 올리버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기사단의 약점을 빼내려 했다고?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샤일록 경이 말했다.

“전에 라넌 경에게 우리의 약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던 걸 부인하는 건 아니겠지?”

“아, 그거.”

이 녀석들이 라넌 경을 괴롭히길래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거다. 올리버는 믿을 수 없어서 물었다.

“그거랑 뉴커크에 비밀을 팔아넘기는 게 무슨 상관인데?”

상관없다. 이건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 올리버를 린치하기 위한 핑계니까. 하지만 사일록 경은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차였다.

그는 올리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는 왕족을 지키는 기사단이니까. 왕족을 지키는 기사단의 비밀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건 반역 행위라는 걸 알고 있겠지?”

“음, 아니, 모르겠는데.”

그게 왜 반역 행위인지 모르겠다. 왕족의 비밀을 외국에 팔아넘긴다 해도 그게 고작해야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는 정도라면 반역이 아니라 반역 할아버지도 비웃을 거다.

올리버는 꽤 타당한 의문을 내놓았다.

“루먼 경의 도박 빚이 금화 다섯 개라는 걸 뉴커크에 알린다고 반역이 되진 않을 것 같은데.”

지적당한 루먼 경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곁에 있던 기사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나한테는 금화 여섯 개라며?”

싸운다, 싸운다. 올리버와 주변에 있던 다른 기사들의 눈이 흥미진진해졌다. 하지만 그 상황이 못마땅한 사일록 경이 재빨리 제압했다.

“말 돌리지 마!”

그의 호통에 다시 기사들의 주의는 올리버를 향했다. 흠. 올리버는 이들이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자신을 때리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 정도면 모를까 사일록 경까지 총 일곱 명의 기사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맞아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샤일록 경이 주먹으로 올리버의 턱을 후려쳤다.

퍽!

느닷없는 공격에 올리버의 몸이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

맙소사. 엘리엇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순간 감각이 사라진 턱은 금세 고통이 밀려왔다.

“미쳤어?”

욱해서 호통을 친 올리버는 그의 앞에 선 사일록 경과 그 뒤에 있는 기사들 모두 낄낄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자식들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맞고 끝내자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너 죽고 나 죽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올리버는 그대로 사일록 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악!”

두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어 쓰러졌다. 깜짝 놀라 기사들이 물러난 덕에 올리버는 주먹을 날릴 수 있었다.

‘퍽!’ 하고 올리버의 주먹이 사일록 경의 턱에 빗맞았다. 아야. 빗맞은 탓에 사일록 경의 턱만큼이나 올리버의 주먹에도 고통이 찾아왔다.

그가 멈칫한 틈을 놓치지 않은 샤일록 경이 벌떡 일어나며 올리버를 밀어 냈다. 그리고 올리버가 일어나기 전에 자신의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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