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2/239)

117화. 24 – 4

클레어였다. 그녀는 기사단 근무복 차림으로 말을 타고 전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어, 저거 멈출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엘리엇이 나를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가려졌다. 나는 클레어가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돼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엘리엇은 키가 크고 그의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본다는 건 태양을 맨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클레어가 떨어지지 않았기를 빌며 그녀에게 물었다.

“클레어,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클레어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엘리엇은 나를 놓아주었다. 힘 좋네. 나는 그에게서 나는 좋은 냄새를 맡지 않으려 애쓰며 클레어를 쳐다보았다.

꽤 말을 달렸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근무복이면 모자도 있을 텐데 모자도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고.

하지만 클레어는 먼저 내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말을 빠르게 달려서 나를 놀라게 한 것에 대한 사과인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클레어가 말에서 떨어질까 봐 걱정했을 뿐이에요.”

저렇게 빠르게 달리다가 말이 갑자기 멈추면 앞으로 튕겨 버린다. 그런 사고를 몇 번 들었다. 말뿐만 아니라 마차도 마찬가지고.

클레어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괜찮지 않다. 보통 말 사고는 말을 잘 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오히려 말을 잘 못 타는 사람은 조심하니까 사고가 잘 안 일어나고.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설마 왕비님을 잘 대접하라고 당부하러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온 건 아니겠지. 나는 엉망이 된 클레어의 머리카락을 쳐다보며 물었다.

빗으로 좀 빗어야겠는데.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대충 쓱쓱 빗으며 말했다.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뭐를요?”

이상하게도 클레어는 뜸을 들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그녀는 망설이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가 열기를 반복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흰 사자 기사단에서 당신의 오, 비스컨 남작을 공격하려고 해요.”

“흰 사자, 뭐라고요?”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흰 사자 기사단에서 올리버를 공격한다고? 왜? 검은 늑대라면 마찬가지로 말도 안 되지만 가능성이 있긴 하다.

검은 늑대는 에스컬레 경이 단장이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 집과 연관이 있기는 한 거잖아.

하지만 흰 사자는 아니다. 우리 집과 아무 관련도 없는 기관이다. 나는 혹시 엘리엇은 이해했나 싶어 그를 돌아보았다.

“좀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게 좋겠군.”

엘리엇 역시 이해가 안 된 모양이다. 그의 요청에 클레어는 약간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나를 돌아보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흰 사자 기사단과 비스컨 남작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거든요.”

왜 안 좋았는데? 나는 엘리엇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내 얼굴에도 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 전에 비스컨 남작이 절 도와줬잖습니까?”

안다. 그걸로 내게 상담도 했다. 물론 올리버가 아니라 클레어가.

올리버는 그걸 도와준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얼마 전에 왜 도와줬냐고 물어봤더니 도와준 게 아니라고 했거든.

그는 그냥 누구 한 명을 찍어 두고 괴롭히는 놈들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뿐이다. 그런 점만은 오라버니라고 인정하고 싶다. 그러니까 오라버니라는 거 말고 내 혈육이라는 거.

“그걸로 기사단이 비스컨 남작을 좀, 못마땅해하고 있었거든요.”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 엘리엇의 얼굴에 떠올랐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명은 나중에 들어도 된다는 태도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요?”

그건 나도 안다. 그러니까 흰 사자 기사단이 올리버를 못마땅해한다는 걸. 늘 가는 카드 게임도 지난주부터인가 가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카드 게임 하는 녀석들과 가볍게 다퉜다고 했지.

하지만 올리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 놈들과 카드 게임을 하면 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나와 어머니는 카드 게임을 작작 하라고 했고.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클레어가 이렇게 경고를 하러 달려온 것을 보면.

“저기, 그게, 방금 비스컨 남작을 손봐 준다고….”

“손봐 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엘리엇을 돌아보았고 그는 나를 보며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저게 자기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뜻인지 별거 아니라는 뜻인지 모르겠네.

“올리버가 위험할까요?”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기사단인데 귀족을 위험하게 만들 리 없다. 하지만 클레어는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

내 신음에 엘리엇이 재빨리 내 팔꿈치를 잡았다. 내가 쓰러질까 봐 걱정한 모양이지만 그 정도로 내 신경 줄이 가늘지는 않다.

“어디로 간다고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기사단이 올리버를 난타할 리는 없다는 생각과 만약에라도 올리버가 위험하면 어쩌냐는 생각이 공존했다.

로고소 양의 말이 맞다. 아무리 짜증 나는 오라버니라 해도 내 오라버니다. 나한테는 맞을 수 있어도 다른 사람한테 맞으면 안 된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클럽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이 시간이라면 올리버는 클럽에 없다. 조정 연습을 하는 날이다.

“강 상류.”

나는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강 상류쯤에 있을 거다. 늘 거기서 훈련을 한다고 했다. 기사들이 그걸 몰라서 클럽으로 갔다면 다행이지만, 알고 강 상류로 갔을 수도 있다.

“클레어,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누군가가 올리버를 도와주러 가야 한다. 치안관을 불러도 되고 하인을 불러도 된다. 아니면 에스컬레 경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클레어에게 치안관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면 우리 집에 가서 하인을 불러오던가.

어느 쪽이건 클레어가 불러온 사람이 강 상류로 가서 올리버가 안전한지만 확인해 주면 된다.

“귀찮은 일을 부탁해서 미안해요. 그냥 사람만 불러와 주세요.”

만약 정말로 거기서 기사들이 올리버와 싸우려 한다면 거기엔 클레어가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다. 나는 곧바로 엘리엇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하려 한 순간, 그가 말했다.

“안 됩니다.”

“네?”

“제게 비스컨 남작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려 하신 거잖습니까. 안 됩니다.”

맞다. 나는 엘리엇이 거절할 줄 몰랐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내 표정을 본 엘리엇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더니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왕비가 온다면, 여기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 위험에 휘말릴 수 있다는 말이죠.”

그건, 그런가? 왕비님을 공격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왕비 전하는 인기가 있는 분이고 감히 그녀를 공격하려는 멍청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내 생각과 별도로 이 배 안팎으로 믿을 만한 사람들을 배치해 두긴 했다. 나는 엘리엇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괜찮을 거예요.”

그러자 엘리엇이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왜 그러는 거지? 놀라서 클레어를 쳐다보자 그녀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싫습니다.”

그때, 엘리엇이 말했다. 낮고 약간 쉰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고통을 견디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이 일로 날 미워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절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이 정도 일로 그를 미워하게 되지는 않을 거다. 그냥 왜 그렇게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지가 궁금할 뿐이지.

나는 잠시 엘리엇을 쳐다보다가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올리버를 도와주는 게 싫은 건 아닌 거죠?”

그제야 엘리엇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라.

평소의 엘리엇이라면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다고 농담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농담조차 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왜 그러는지 설명해 줄 거예요?”

“아니요.”

아니, 그건 반칙이지.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해 놓고, 내가 자길 미워해도 상관없다고 말해 놓고 설명을 안 해 준다고?

나는 대신 설명해 달라는 의미로 클레어를 쳐다봤다. 그러자 엘리엇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도 설명하지 않을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올리버가 더 급했다. 그리고 조만간 도착할 왕비 전하도.

젠장.

나는 손을 얹은 그대로 엘리엇의 손을 감싸 쥐며 물었다.

“정말 안 되는 거죠?”

엘리엇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금세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원하시는 게 제 심장이라면 지금 당장 뽑아 드리겠습니다만.”

올리버를 도와주러는 못 간다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거지.

그럼 할 수 없다.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배를 향해 소리쳤다.

“줄리아!”

“어쩌려고요?”

클레어가 놀라서 물었다. 줄리아를 올리버가 있는 곳으로 보낼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전혀 아니다. 약간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 그녀라면 에스컬레 경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만들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혹시라도 줄리아가 소란에 휘말릴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줄리아에게 에스컬레 경을 불러와 달라고 할 거예요.”

그는 검은 늑대 기사단의 단장이지만 흰 사자 기사단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내 설명에 클레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물론 에스컬레 경이 흰 사자 기사단을 가만두지 않겠지.

“제가 갈게요.”

줄리아가 나오기 전에 클레어가 말했다. 간다고? 나와 엘리엇이 그녀를 쳐다봤다. 클레어는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제가 가서 비스컨 남작을 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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