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24 – 1
며칠 뒤, 나와 어머니는 응접실에 앉아 신문과 편지를 읽고 있었다. 어제 일어난 습격 사건 때문에 신문은 공포스러운 문구로 가득했다.
귀족 부인이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다행이지 뭐니.”
신문을 다 읽고 편지를 집어 들며 어머니가 말했다. 습격당한 부인은 무사하다고 한다. 하지만 충격을 많이 받아서 요양 중이라고.
“그러게요.”
나는 충격적인 사건에도 초대는 여전하다는 편지를 읽으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다른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연회와 파티는 계속될 모양이다.
“밤늦게 다니지 마렴, 올리버.”
편지를 읽던 어머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옆에서 신문을 보던 오라버니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유제니한테 할 말씀을 잘못하신 거 아니에요?”
“오, 아니야. 이 집에서 밤늦게 돌아다니는 건 너 하나뿐이잖니.”
어머니의 지적에 오라버니의 얼굴이 못마땅하다는 듯 변했다. 그는 다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조심하셔야 할 쪽은 어머니일걸요? 듣기로는 귀족 부인만 노리는 것 같다던데요.”
이 한심한 오라버니가. 나는 재빨리 다리를 들어 올리버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린 뒤였다.
“악.”
다행히 비명은 어머니의 입이 아니라 올리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파? 아프긴 해? 저 비명이 좀 더 처절했다면 마음이 풀렸을 것 같다. 나는 올리버를 한 번 노려보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말도 안 돼요. 피해자가 한 명 나온 거로 귀족 부인을 노린다고 말할 순 없어요.”
내 지적에 어머니는 창백하게 미소를 지었다. 올리버 역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재빨리 끼어들었다.
“맞아요. 그 사람은 운이 나빴던 거죠.”
엉망진창인 위로였지만 어머니께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올리버를 한 번 흘겨보더니 곧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편지 써야겠다.”
연회가 취소되지 않는다는 편지가 왔으니 답장을 해야 할 거다. 나는 이 편지만 읽고 따라가겠다고 하고 자리에 앉았다. 편지라기보다는 보고서다. 로렌이 배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출과 수입뿐 아니라 방문객의 수와 실제로 지출로 이어진 게 몇 명인지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둔 보고서였다.
“너, 한동안 어머니와 붙어 다녀.”
혹시 몰라서 로렌이 적어 둔 숫자가 맞는지 계산하는데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올리버가 말했다. 엄마야. 나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가까운 올리버의 얼굴에 흠칫 놀라서 물러났다.
“저리 가.”
어디서 얼굴을 들이대? 질색하는 내게 올리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너도 혼자 다니지 말고.”
아까 그 이야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떨어트린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사건 하나로 왜 이렇게 난리람? 게다가 어머니 말대로 나와 어머니는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건 오라버니가 들어야 할 말인 거 같은데?”
“나 농담하는 거 아니야. 들은 게 있어서 그래.”
아, 진짜.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여전히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올리버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신문을 집어 들며 말했다.
“이 사건 말야. 진짜로 귀족 부인을 노린 거라는 말이 있어.”
그러고 보니 신문에도 그런 말은 안 나와 있었다. 신문에 실린 피해자가 몇 번째라는 말도 없었고. 당연히 범인은 금품을 노린 강도라는 추측만 있었을 뿐이다.
“누가 그래?”
나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 물었다. 가십이란 대부분 허황되거나 왜곡된 이야기다.
“클럽에서. 이미 피해자가 몇 명 더 있는데 다들 쉬쉬한다더라고.”
그럴 리가 없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럴 리가 있다. 밤늦게 돌아다니다가 강도를 만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은 대체 어딜 그런 늦은 밤에 돌아다녔냐고 수군거린다. 오늘 신문에 실린 분은 음악회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 있는 거지.
“강도?”
“아마도.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나 봐.”
다들 돈만 빼앗겼다는 말이다. 그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습격당해 본 사람으로서 습격당한 충격은 꽤 오래간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의 말이 맞다. 우리는, 그러니까 나와 어머니는 이번 주에도 두 군데의 저녁 파티에 초대받았다. 티 파티나 오찬까지 하면 다섯 군데고.
“커널 남작 부인도 아마 그런 피해자 중 하나인 것 같다더라.”
그때, 올리버가 다시 말했다. 응? 나는 생각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널 남작 부인이 왜 여기서 나와?
“커널 남작 부인 말야. 의식 불명인 사람. 그 사람도 밤늦게 돌아다니다가 공격당했다며.”
그랬다. 늦은 밤에 집 밖에서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발견도 늦어서 이미 의식 불명이었다고.
다들 그녀가 정부를 만나러 가다가 그런 사달이 난 거라고 수군거렸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정부를 만나러 가던 길이라는 거.
“커널 남작 부인은 운이 더 없었던 거지. 그러니까 조심해.”
이어진 올리버의 당부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조심하는 게 좋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날 저녁, 나와 파티에 동반한 라이언 경이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 역시 귀족 부인을 노리는 강도가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뭐, 올리버도 클럽에서 들었다니까 라이언 경도 들었겠지. 두 사람은 친구기도 하고.
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머니는 약간 감동한 표정이었다. 라이언 경은 어머니께 결연하게 말했다.
“댁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 드리겠습니다.”
“고마워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곧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긴 하인이 어딜 갔는지 보이지가 않네. 목이 마른데.”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라이언 경은 친절하게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올리버의 친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군.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머니가 내게 고개를 기울이더니 속삭였다.
“괜찮은 녀석이야. 친절하고.”
그렇다. 라이언 경은 괜찮은 사람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어머니가 덧붙였다.
“하지만 번즈 백작이 더 낫지.”
“어머니.”
나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썼다. 지금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잖아.
하지만 어머니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게 좀 더 가까이 붙으며 속삭였다.
“네가 왜 시간 낭비를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봐도 번즈 백작이 더 낫잖니.”
“그건 모르는 거죠.”
내 말에 어머니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속삭였다.
“저 녀석이 번즈 백작보다 나은 걸 하나만 대 보렴.”
젠장. 없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가까스로 말했다.
“올리버의 친구죠.”
“그건 단점으로 가야지.”
“맙소사, 어머니.”
올리버의 친구라는 걸 어머니도 장점이 아니라 단점으로 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와 함께 웃음을 흘리던 어머니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만 번즈 백작과 약혼하고 저 불쌍한 녀석을 놔주라는 말이야. 누가 봐도 시합이 안 되는 싸움이잖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이 더 잔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씩 웃으며 말했다.
“번즈 백작은 제게 구혼하지 않았는데요.”
엘리엇과 라이언 경, 하인즈 경은 나를 방문하고 나와 산책을 하거나 공연을 보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결혼하자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구혼자긴 하지만 실제로 구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하면 엘리엇이 내게 구혼하지 않아 줘서 고맙긴 하다. 그가 지금 내게 구혼한다면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두 명은 왜 구혼하지 않는지 모르겠네. 구혼의 구만 입에 올려도 거절할 생각인데.
아마 그건 하인즈 경과 라이언 경도 알고 있을 거다. 내 태도가 그러니까. 나는 두 사람의 방문이나 데이트 신청을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
“난 그 남자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왜 구혼을 안 하는 건지 모르겠어.”
글쎄. 어깨를 으쓱했다. 엘리엇이 왜 구혼하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좀 알 것 같다. 그는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아는 거겠지.
그렇다면 라이언 경은 어떨까. 나는 저 멀리서 어머니와 나를 위한 음료를 두 잔 들고 걸어오는 라이언 경을 발견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어머니께 속삭였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볼게요.”
“그러지 마렴.”
놀랍게도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반대했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라이언 경을 향해 미소를 보내며 덧붙였다.
“안달 난 것 같아 보이잖니.”
“사실 아니었어요?”
엘리엇이 나와 결혼하길 바라는 거 아니었나? 나는 어머니의 말에 놀라 물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우고 나를 쳐다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으로선 그가 가장 좋은 구혼자라 그가 마음에 든 것뿐이야. 나는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가까워진 라이언 경은 나와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나는 재빨리 어머니에게 몸을 돌려 속삭였다.
“정말요? 하지만 저와 어닝을 약혼시키셨잖아요?”
어머니가 훨씬 적극적이었다. 내 물음에 어머니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 양쪽 어깨를 감싸 쥐고 속삭였다.
“그게 네게 좋은 일일 줄 알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