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23 – 1
“경쟁자가 생기면 뭐가 좋냐고요?”
응접실에 앉아 차를 마시던 엘리엇이 내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오늘은 줄리아가 일을 도와주는 날이다. 덕분에 오전부터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수영장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아.”
엘리엇은 자신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패터슨 자작이 만든다더군요.”
“자작 부인이 아니라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들더니 나를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씩 웃으며 말했다.
“실례. 자작 부인이 만드는 거겠군요.”
“자작이 자랑했군요?”
클럽에서 부인이 만드는 걸 자기가 하는 것처럼 자랑했겠지.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자작 부부니까 부인이 하는 일이라면 남편도 어느 정도는 연관돼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엇을 보고 찻잔을 들어 올렸다. 한참 후덥지근하던 날이 많이 서늘해졌다. 서늘해졌다는 것도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의 이야기지, 한낮은 아직도 덥지만.
“하몬 경도 짓는다더군요. 남성용으로요.”
“그렇습니까?”
엘리엇은 몰랐다는 듯 말했지만, 그의 표정으로 이미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인상을 쓴 채 차를 홀짝이고 물었다.
“경쟁자가 생긴다는 게 과연 나쁜 일일까요?”
다들 걱정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나쁜 일인가? 내가 돈을 벌어 보지 않아서 더 그러는 건지도 모르지. 나는 버는 쪽이기보다는 쓰는 쪽이었으니까.
쓰는 쪽의 입장으로는 경쟁자가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다.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더 좋아지니까.
이렇게만 말하니까 파는 쪽의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생기는 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설명에 찻잔을 들고 있던 엘리엇이 남은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쓸었다.
“이론적으로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이론적으로요?”
그럼 현실적으로는 안 맞는다는 말인가? 나는 어리둥절해서 엘리엇을 쳐다봤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착한 일을 한다고 꼭 상을 받는 건 아니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보통은 경쟁자 없이 편하고 쉽게 돈을 벌고 싶어 하거든요.”
“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경쟁자가 없다면 사람들은 내 배로만 오겠지. 아니, 내 배가 아니라 엘리엇의 배.
하지만 모든 건 흘러가기 마련이다. 지금은 배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신기함에, 수영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호기심에 사람들이 오겠지.
“시간이 지나도 벌 수 있을까요?”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 변화가 없다면요. 지금이야 신기하지만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사람들의 흥미도 사라질 거예요.”
그렇다면 점점 배를 찾아오는 사람도 줄어들 거다. 수영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추운 겨울까지 강에 떠 있는 배 위에서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나는 경쟁자가 생기는 쪽이 더 좋아요. 가십성이 생기는 거니까요.”
사람들에게 알려지려면 결국은 가십이 되어야 한다. 사교계에서도 그렇다. 유행의 선두 주자는 늘 가십에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와 구두, 모자. 심지어 장갑까지.
하지만 그게 한 명이라면 그건 유행의 선두 주자가 아니라 그냥 좀 특이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지금 이 배가 그냥 좀 특이한 장소인 것처럼.
경쟁자가 생기면 수영장은 특이한 게 아니라 재미있는 유흥이 될 거다. 사람들은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이야기할 테고 취향에 따라 고를 거다. 내가 가는 찻집과 가지 않는 찻집처럼.
“사람들이 경쟁자에게 몰리면요?”
엘리엇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음” 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구두를 벗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손님이 있어서 참았다.
“그러네요. 경쟁자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생길 테니까요.”
“셋입니다.”
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사업가가 나타난 모양이군. 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은 슬슬 수영장을 종료할까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그렇습니까?”
엘리엇은 전혀 놀라지 않은 태도로 물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구두를 벗었다. 드레스 자락에 가려질 테니 괜찮겠지.
“정확하게는 배를요. 조금 더 있으면 추워질 테니까요.”
지금도 저녁때 수영을 하는 게 좀 춥다는 말이 있다. 난로를 가져다 두긴 했지만, 갑판 위라 불을 크게 피우지 못하고 있다.
아마 여름이 완전히 가고 가을이 오면 수영하기는 더 힘들어질 거다.
“그럼 다른 사람들처럼 수영장을 만드실 겁니까?”
엘리엇의 질문에 나는 차를 홀짝였다. 지붕이 있고 벽이 있다면 덜 춥긴 하겠지. 하지만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수영장으로 돈을 꽤 많이 벌긴 했지만 약간은 로렌과 내 미래를 위해 남겨 두고 싶다.
“모르겠어요.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어요.”
수영장은 해 봤으니 다른 걸 해 보고 싶다. 찻집을 차리는 건 어떨까 했는데 그건 솜씨 좋은 제과사가 필요하다. 나는 다시 뭘 할지 생각해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슬슬 왕궁에 가야겠어요. 마차 가져왔나요?”
오늘 왕비님을 알현하기로 했다. 엘리엇이 마차 없이 왔다면 가는 길에 그의 집에 내려 줄 생각이었다.
이크. 일어나면서 걷어찼는지 구두가 저만치 굴러갔다. 재빨리 발을 뻗어 구두를 가져오려는데 엘리엇이 내 구두를 집어 들고 내게 다가왔다.
“아니요. 말을 타고 왔습니다. 태워 주신다면 말은 다음에 사람을 보내서 가져가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가 신발을 내게 내밀었기 때문에 나는 허리를 숙여 그걸 받아 들려 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다시 내 발 앞에 구두를 내밀었다.
할 수 없지.
“집으로 가나요?”
나는 엘리엇의 손에 들린 구두에 발을 넣으며 물었다. 다시는 손님 앞에서 구두를 벗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했지만 나는 아마 다음번에도 그럴 거다.
이건 어머니가 안 그러겠다고 다짐해도 아침마다 커런트의 속삭임을 먼저 집어 드는 것과 같은 거다.
“레이디 비스컨.”
왕궁 안은 조금 서늘했다. 아마도 마법을 이용해서 공기를 서늘하게 했거나 뭐 그런 거겠지. 처음 이 마법이 나왔을 때는 여름이 겨울이 되는 거 아니냐는 불안이 많았었던 게 기억난다.
나는 내게 자리를 권하는 왕비 전하께 인사를 건넸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초대하지 않아도 자주 놀러 오고 그러게.”
왕대비 전하와 같은 말을 하네. 나는 말없이 씩 웃었다. 왕궁의 정원을 구경하는 건 좋지만 왕족과 만나는 건 그리 달갑지 않다.
나는 왕비 전하의 뒤에 서 있는 패터슨 자작 부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며 왕비의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날이 많이 덥지요?”
“그래. 곧 가을이 오려는 모양이야. 더위가 이렇게 절정인 걸 보니.”
왕비 전하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람들이 내온 차는 따듯했다. 그야 그렇겠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왕궁은 어느 귀족가보다도 보수적인 곳이다. 아무리 차가운 차가 유행한다고 해도 손님에게 내지는 않는 법이다.
“자네의 배가 어떤지 소식을 들었네. 아주 성공적이라고 하더군.”
그렇지. 안 그래도 패터슨 자작 부인이 왕비 전하가 수영장에 오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나는 재빨리 찻잔에서 입술을 떼고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듣기로는 여성만 들어갈 수 있다고?”
“다들 수영복을 입고 있으니까요.”
당연하다는 내 대답에 왕비 전하의 말이 멈췄다. 그녀는 패터슨 자작 부인을 돌아보았고 나는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하루를 사용하고 싶은데.”
곧이어 왕비 전하가 말했다. 나는 배를 하루 쓰겠다는 거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녀가 뒤이어 말했다.
“제오르지오와 말이야.”
제오르지오 사운더키즈. 이 나라 왕자의 이름이다. 올해 다섯 살이었던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패터슨 자작 부인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내 수영장이 여성만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왕자와 함께 들어가고 싶다는 건 억지다. 그걸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 둘 중 하나겠지. 왕비 전하가 원래 그런 사람이거나, 패터슨 자작 부인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거나.
나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왕궁에서 내오는 차는 꽤 좋은 찻잎을 쓴다.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은 찻잎으로 차를 내오지는 않을 거다. 아마 이것도 내가 백작의 딸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대접이겠지.
“전하, 다른 부인들도 가족과 함께 사용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저는 전부 거절했고요.”
놀랍게도 이런 요구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배우자와 함께 오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정부와 함께 남몰래 즐기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별로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아들이나 남편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부는 좀 심하지 않아?
“내가 다른 부인은 아닌 것 같은데.”
왕비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맞다. 왕비 전하는 그냥 귀족 부인이 아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비다. 왕의 파트너. 차기 왕의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녀의 요구는 위험했다. 나와 그녀 모두에게.
“맞습니다. 그래서 다들 전하께서 저를 압박하셨다고 생각할 테죠.”
나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전부 거절했다. 부탁한 사람도 있었고 내게 과도한 선물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올리버가 그렇게까지 하는데 한 번쯤은 가족도 받아 주라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전부 거절했다.
그래 놓고 왕비 전하만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은 그녀가 나를 압박했거나 내가 그녀에게 아첨한다고 생각하겠지.
“사람들이 제가 전하께 아첨한다고 생각하는 건 괜찮습니다. 전하는 아첨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니까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윗사람에게 아첨을 하고 산다. 그러니 내가 왕비에게 아첨을 한다는 건 딱히 헛소문도 아니고 부끄러울 소문도 아니다.
그걸로 내가 뭔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반대는 안 됩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