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4/239)

109화. 22 – 4

에리카를 떠나보내고 다시 배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에리카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몇 명 더 온 모양이다.

수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슬슬 여름이 끝나 가고 있었고 나는 이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선선한 날씨에 수영을 하는 건 그리 좋지 않다고 의사가 말했기 때문이다. 여름이야 더우니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작지만, 날이 서늘해지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 게다가 배는 강에 떠 있어서 집보다 더 빨리 서늘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수영장을 다른 데에 지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레이디 비스컨, 들었어요?”

내가 갑판으로 올라가자 갑판 위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돌렸다. 뭘? 나는 오늘 아침에 읽은 신문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이 사업이라는 게 꽤 바빴다. 사람들은 날이 뜨거운 점심시간 이후에 수영을 즐기고 싶어 했고 나도 그즈음에 배에 나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오후에 쓰던 편지를 오전에 쓰기 시작했다. 내 느긋하던 오전 시간은 그렇게 바빠졌고 덕분에 신문을 읽을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어떤 거요?”

어떤 거라고 해도 분명 내가 모르는 이야기일 거다. 나는 소문에 그리 빠르지 않으니까.

자기반성과 주제 파악의 중간쯤 단계에 선 나는 직원들에게 차를 새로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이미 사람들은 찻잔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좀 저렴한 찻잔이긴 하지만 배 위에 있는 수영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 뒤에서 투덜거릴지는 몰라도 그것까지 신경 쓸 수는 없고.

“하몬 경이 수영장을 만들고 있다네요.”

“하몬 경이요?”

누구더라? 익숙한 이름이다. 잠시 뒤에야 나는 하몬 경이 하몬 상회의 그 하몬 경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상당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그 사람이 수영장을 왜 만들어요?”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케리언 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남자들을 위한 수영장이래요.”

“아, 그래요?”

그럼 나랑은 상관없네. 나는 빈 의자를 끌고 와 그늘에 앉았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늘막의 그늘 위치가 달라져서 중간중간 이렇게 의자를 끌고 다녀야 한다.

“그것뿐이에요?”

직원이 가져다준 찻잔을 받아 드는데 사람들이 물었다. 그것뿐이라니, 뭐가?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케리언 양과 클레어를 쳐다봤다.

“또 뭐가 있어요?”

“하몬 경이 수영장을 짓는다는데 괜찮아요?”

“하지만 남성용이라면서요?”

그럼 나랑은 상관없는 거 아닌가? 우린 여성용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케리언 양과 시선을 부딪친 로멜 부인이 말했다.

“시작이야 남성용이지만 여성용도 곧 만들어질 거예요.”

“그건 모르는 거죠.”

“아니에요. 하몬 경이 그랬대요. 우선 남성용을 짓고 그 뒤에 여성용도 지어서 부부나 연인이 함께 수영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함께요?”

부부나 연인이 함께 수영하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 같이 목욕을 하는 부부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불현듯 떠오른 낯 뜨거운 생각에 내 뺨이 뜨거워졌다. 나는 재빨리 그 생각을 털어 내고 말했다.

“단둘이 사용하는 수영장을 만들겠다니, 대단하네요.”

“그게 아니라, 남성용 여성용 따로 만들되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다네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내 질문에 케리언 양도 로멜 부인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들 모르는 모양이다. 어쩌면 나는 알 거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한 건지도 모르고.

“하먼 경뿐만이 아니에요.”

이번에는 린가르드 양이 말했다. 린가르드 남작의 먼 친척인 그녀는 찻잔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패터슨 자작 부인도 수영장을 짓는다던걸요.”

“패터슨 자작 부인도요?”

사람들의 관심이 린가르드 양에게 몰렸다. 음, 역시.

나는 차를 홀짝이며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배는 크지만, 수영장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을 수용하기엔 작다.

게다가 이 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보통 젊은 사람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내가 배에 있는 수영장을 개방한다고 하자 몇몇 나이 든 부인들이 튀는 짓을 한다고 싫어했다. 당연히 나이 든 분들은 이 배를 이용하지 않았고.

하지만 이렇게 인기를 얻었으니 자기들도 해 보고 싶은 거겠지. 내게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기는 자존심이 상하니 직접 만들겠다는 거다.

“좋은 일이죠.”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그렇게 말했다. 수영장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바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지정된 장소에서 하는 해수욕을 제외하면 수영은 생각도 못 했다.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이 수영을 할 줄 몰랐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들 수영을 할 줄 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안다.

아, 그래. 자유롭게 수영한다는 건 정정하자. 아까 전 내 실력은 자유롭다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경쟁자가 생기는 거잖아요. 괜찮아요?”

이어진 로멜 부인의 질문에 나는 잠깐 인상을 썼다. 경쟁자가 생기는 건가?

“경쟁자가 생기면 좋죠.”

“좋아요?”

무슨 소리냐는 케리언 양의 질문에 나는 로렌을 쳐다봤다. 비품을 확인했는지 그녀는 펜으로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적어도 여러분께는 더 좋지 않을까요?”

경쟁자가 생기면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거나, 포기하거나.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쁠 게 없다.

내가 가는 찻집이 새로 생긴 찻집과 경쟁을 한 적이 있다. 차를 시키면 비스킷을 하나 주기도 했고 차를 한 잔 더 주기도 했지.

손님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리고 내게도 좋은 일이고.

“하지만 레이디 비스컨과 리즈 양에게는 안 좋은 일일 것 같은데요.”

조심스러운 로멜 부인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나뿐만 아니라 로렌까지 걱정해 주다니 정말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인지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난 장사가 처음이라. 그리고 아마 로렌도 처음일 거다.

나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직원이 내게 재빨리 다가와서 속삭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남자예요?”

“패터슨 자작 부인이라고 하시는데요.”

뭐라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패터슨 자작 부인이 왔다고?

재빨리 직원이 내민 명함을 확인하자 진짜로 마리온 패터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인상을 쓴 채 명함을 확인하다가 말했다.

“들어오시라고 해요.”

패터슨 자작 부인이 여길 왜 왔을까? 수영장을 짓고 있다고 했으니 염탐이라도 하러 온 걸까?

여러 가지 생각과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사이, 직원이 패터슨 자작 부인을 갑판 위로 안내했다.

“자작 부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며 인사를 건넸다. 자작 부인은 갑판 위를 둘러보다가 내게 시선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았다.

“레이디 비스컨.”

음, 우리가 이렇게 친하진 않은데.

나는 가만히 서서 자작 부인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잠시 후 그녀가 팔을 풀며 물었다.

“잘 지냈어요? 아주 멋진 사업을 하고 있군요.”

“감사합니다.”

어느새 우리 주변은 나와 패터슨 자작 부인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을 의식하는 게 분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부터 꼭 와 보고 싶었답니다. 구경 좀 해도 될까요?”

“오, 그럼요. 언제든지 오셔도 되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작 부인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구경하러 오신 건가요?”

자작 부인이 고작 구경하려고 여기 올 리가 없다. 아니, 구경하러 올 수는 있지.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 거다. 내게 편지를 보냈겠지.

아니나 다를까, 내 질문에 자작 부인은 그제야 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왕비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편지라고?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자작 부인을 쳐다보다가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정말로 왕비 전하가 보낸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리 길지는 않았다. 조만간 왕궁에 와서 차나 한잔하자는 초대였다.

“알겠습니다.”

초대에 응하겠다는 내 대답에 자작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내가 응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께서도 이 배에 아주 관심이 많으시답니다.”

“왕비 전하 역시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자작 부인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환영이라는 말에 패터슨 자작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왜 저러는 거지? 어리둥절해하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그거 다행이군요. 왕비 전하께서 왕자님과 꼭 함께 수영을 해 보고 싶어 하셨거든요.”

어.

저도 모르게 입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안 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대는 왕비와 왕자니까.

그제야 나는 자작 부인이 왜 이러는지 알았다.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거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영광입니다. 이곳은 모든 여자분께 열려 있어요.”

“여자분들이요?”

“여성 전용이니까요.”

“설마 왕자님도 안 된다는 말은 아니겠죠?”

그녀가 왜 내게 이렇게 적대적인지 안다. 전에 내가 거마로트 공작의 연회에 가서 패터슨 자작을 곤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겠지.

하지만 이쪽도 할 말이 있다. 일단, 그때 먼저 시작한 건 패터슨 자작이었다. 우리는 되갚아 준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 먼저 시작한 것도 패터슨 자작 부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여기가 여성 전용이라는 걸 알려 드린 것뿐이에요.”

내 말에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던 패터슨 부인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왕비 전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게 좋겠어요. 무척 고대하고 계시거든요. 왕자님과 함께 수영하시는 걸 말이죠.”

어렵지 않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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