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96/239)

101화. 21 – 2

“거기 가 봤어요?”

“어디요?”

“그 ‘배’ 말이에요.”

사교계 안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최근 번즈 백작이 시작했다는 사업 때문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배를 이용한 사업은 딱히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서 다들 그냥 ‘배’라고 불렀다.

“뭘 하는 거래요? 수영을 배운다고 들었는데 배 안에서 나갈 일이 없다던데요.”

“배 안에 수영할 곳이 있대요.”

놀라운 이야기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중년의 여성에게 모여들었다. 그녀도 처음엔 자신의 딸이 간다고 했을 때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딸에게 들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었다.

“갑판 위에 물이 담긴 곳이 있다더군요. 거기서 수영을 배우는 거래요.”

물론 그녀의 딸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선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갑판으로 올라간다.

갑판 위는 단순히 수영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다과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원한다면 간단한 식사도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남자들의 클럽처럼 그 안에서 며칠 정도 머무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녀의 딸이 말했다.

“세상에.”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재미있겠다는 반응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는 반응. 당연히 후자가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

“다 큰 남녀가 배 안에서 수영을 한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부도덕한 일을 할 수 있냐는 비난이 남긴 질문에 중년의 여성은 당당하게 말했다.

“남녀가 아니에요. 여자만 들어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사람들의 반응이 누그러졌다. 여자만 들어갈 수 있다고? 그렇다면 좀 괜찮지 않을까? 그런 반응이 나오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이 물었다.

“남자가 갑자기 들어가면 어쩌려고 겁도 없이 수영을 하고 있대요?”

“오, 걱정하지 말아요. 앞에 문지기도 있다더군요.”

오웬 경이 들어가려 한 뒤 유제니는 곧바로 문지기를 고용했다. 덕분에 그녀는 왜 몇몇 남성 클럽에서 문지기를 고용하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그거, 번즈 백작이 운영하는 사업이잖아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배’는 번즈 백작의 것이다. 배 그 자체도, 사업도. 번즈 백작은 드나들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무슨 일인가 하고 구경하러 왔던 젊은 여자가 끼어들었다.

“번즈 백작님도 못 들어와요.”

사람들의 시선이 에스마 양에게 향했다. 그녀도 ‘배’를 이용해 봤다. 심지어 거기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의 권유로 즉석에서 수영복을 주문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안은 전부 레이디 비스컨이 관리하거든요.”

에스마 양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부딪쳤다. 설마 번즈 백작이 감히 레이디 비스컨을 고용한 건 아닐 테고, 둘이 동업하나?

“아니에요.”

그날 오후, 사과를 하러 배에 탄 리사에게 유제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재빨리 덧붙였다.

“동업은 맞지만요.”

그녀의 말에 리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의 질문은 번즈 백작과 약혼하기로 마음먹은 거였냐는 거였다. 그건 아니라고 했는데 동업은 하기로 했다고?

어리둥절해하는 리사에게 유제니가 말했다.

“백작이 제게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좋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쓰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유제니와 로렌은 경험을 쌓고 엘리엇은 돈을 벌 수 있고.

하지만 리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를 홀짝인 뒤 씩 웃으며 말했다.

“번즈 백작님은 모두를 위한 게 아니라 당신만을 위하길 바랄 것 같은데요.”

동시에 주변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머나. 부러움과 감탄이 뒤섞인 탄성에 유제니는 재빨리 찻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찻잔을 든 게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가리려는 게 아니라 마시기 위해서였다고 보여 주기 위해 한 모금 홀짝인 뒤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번즈 백작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거든요. 매년 물놀이로 인한 사고를 일어나잖아요.”

강이나 호수에 빠져 사망하는 귀족 여성은 매년 한두 명씩 나온다. 사망 사고를 막고 싶다는 말에 리사의 얼굴에 감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표정을 보자 유제니는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돈을 벌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수영을 배우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수영을 해 보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들도 수영하고 싶어 할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게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던데요.”

그때, 유제니와 리사에게 다가온 로고소 양이 말했다. 다행이다. 유제니는 불편한 대화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에리카 로고소 양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말했다.

“네. 로렌이 제안했어요. 남편이나 약혼자가 같이 이야기하거나 기다리는 동안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도록요.”

유제니는 그렇게 말하고 로고소 양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일부러 리사를 쳐다보진 않았다. 지난번에 그녀의 약혼자가 벌인 소동으로 부끄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소동을 벌인 게 오웬 경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녀의 마음도 좀 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유제니는 누구의 약혼자와 배우자가 무례했는지 떠들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로렌이면 리즈 양 말이죠?”

로고소 양이 로렌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는 저쪽에서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인들이 할 일이지만 이쪽으로 걸어오던 로렌이 발견하고 정리하는 거다.

귀족은 아닌가 보네. 리사는 로렌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귀족이라면 흐트러진 의자가 있다고 나서지 않는다. 그건 하인들이 할 일이니까.

“아직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들었는데 굉장히 어른스럽네요.”

리사의 말에 유제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이다. 느닷없이 가출을 해서 그렇지 로렌은 친구인 줄리아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그녀는 의자를 정리한 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는 로렌을 쳐다봤다. 행동하는 것만 봐서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정도로 보인다.

꿈을 꿨다고 했지. 유제니는 로렌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꿈으로 살아 봤다고 했다. 그건 엘리엇과 라넌 경도 마찬가지라고 했고.

왜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정도일까. 유제니가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 리사가 로고소 양에게 물었다.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요즘 에리카는 매우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커널 남작가로 시집간 언니, 이멜다 커널 남작 부인 때문이다. 에리카는 리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덕분에요.”

이곳에 에리카를 초대한 건 유제니가 아니라 리사였다. 유제니에게 사과하기 위해 방문하면서 에리카를 데려왔다. 에리카는 기분 전환이 될 테고, 유제니에게는 배를 이용하는 손님이 될 테니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대로 에리카는 기분 전환이 되기는 했다. 그녀는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수영을 배우겠다고 했을 텐데.

“수영복을 보는 게 불편해요?”

유제니는 에리카가 한숨을 내뱉는 것을 보고 오해해서 물었다. 가끔 수영복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들이고 에리카처럼 젊은 사람이 불편해하는 건 못 봤다.

물론 유제니는 수영복 자체를 불편해하는 노부인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사회에서 살았고 그때의 생각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 아니에요.”

자신의 반응을 유제니가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은 에리카는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수영복이 불편한 게 아니라 부러운 거다. 그녀는 유제니가 권하는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선 저도 하고 싶어요.”

수영복을 입고 물 안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다니, 열두 살 이후로 한 번도 못 해 본 자유다. 이런 시설이 작년에만 생겼어도 그녀는 제일 먼저 수영복을 주문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제가 지금 조심하는 중이라서요.”

조심? 유제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물 안에 들어가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기사는 샅샅이 읽어 봤다. 물론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여기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유제니의 의견이 아니라 엘리엇의 의견이다.

물론 유제니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기사가 있긴 했다. 여자가 물에 들어가면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끌고 내려간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었다. 남자 고기보다 여자 고기가 더 맛있다나 뭐라나. 유제니는 그럴 리 없다고 인상을 썼고 엘리엇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고기의 성별을 가리다니 퍽 입맛이 고급인 괴물이군요.

“무슨 조심이요?”

리사가 물었다. 에리카는 우물쭈물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릴세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들 눈에 띌 만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건 유제니도 마찬가지다. 유제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영이 눈에 띄는 행동이긴 하지만 다 같이 하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다들 재미있어하는걸요.”

오히려 눈에 띈다면 유제니가 더 띈다. 번즈 백작과 동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의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유행하는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되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에리카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녀는 아주 조금의 흠집 잡힐 만한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때문이에요.”

언니가 누구지? 유제니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에리카의 언니가 커널 남작 부인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유명한 호색한을 남편으로 둔 여자.

최근에 애인이 생겼다고 해서 소소하게 사교계의 가십에 올랐다. 물론 커널 남작은 유제니가 들은 정부의 수만 다섯이니 부인이 정부를 만들었다는 소식에 신경도 안 쓸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남작님이 난리를 치고 있거든요. 언니가 임신이라도 하면 전 끝장이에요.”

다시 기가 팍 죽어 버린 에리카의 모습에 리사와 유제니의 시선이 부딪쳤다. 남작 부인이 임신하면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두 사람이 입을 열기 전에 에리카가 말을 이었다.

“저라도 조심해야죠. 파혼당하지 않으려면요.”

저런.

유제니는 에리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로고소 양의 집안은 부유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귀족이 아니다. 그녀의 큰아버지가 로고소 남작이기에 로고소 양의 아버지까지는 로고소 경이라 불리지만 로고소 양과 그녀의 언니는 귀족으로서의 특혜를 받을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커널 남작 부인은 커널 남작과 결혼했다. 그녀야 남작 부인이 되었지만, 에리카는 아니다. 여기서 에리카가 파혼당한다면 유제니와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그녀가 귀족과 결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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