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2/239)

97화. 20 – 1

“뭘 어쩐다고?”

오믈렛을 먹던 올리버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그가 어머니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라버니와 어머니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저렇게 정색하니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다.

“수영장 말이야. 입장료를 받을까 해.”

내 설명에 어머니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엘리엇이 배를 마음대로 쓰라고 허락했다는 이야기까지는 어머니께 했다. 친한 사람들에게 배 위에서 수영하지 않겠냐고 권할 거라는 말도 했고.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입장료라니, 돈을 받겠다는 말이니?”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오믈렛은 한 입도 먹지 않았지만 긴장한 탓에 입맛이 싹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마른 입을 적시기 위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서요.”

“친한 사람들만 초대하면 되잖니. 오고 싶다고 아무나 초대해서는 안 되지.”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 배로 다른 걸 하고 싶었다.

“경험해 보고 싶어요.”

나는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로렌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궁금해졌다.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있어서 결혼은 하는 게 당연한 거고,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어서 그 집안을 다스리고 후계자를 길러 내는 게 내 인생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여전하다. 별일이 없으면 나는 아마 결혼을 하겠지. 그게 꼭 엘리엇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건, 어닝과의 일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어닝과 파혼 후 내게 구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물론 올리버와 어머니가 어떻게든 나와 결혼할 사람을 찾았겠지.

하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수도원에 들어가야 했다면 어땠을까.

수도원에 들어가는 건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수도원은 세속적인 책은 반입을 금지한다고 들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괴물이 나오는 소설은 절대 반입이 안 되겠지.

“로렌이 그러더라고요. 결혼도 안 하고 수도원에도 안 가고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서 살고 싶다고.”

“하!”

제일 먼저 올리버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웃겨? 나는 그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자 올리버가 남은 오믈렛을 먹으며 말했다.

“뭐 하고 돈을 벌 건데?”

나? 아니, 로렌 말이구나. 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걸 고민 중이다.

“로렌은 모르지.”

“모르면서 무슨 돈을 벌겠다고? 시집이나 가라고 해.”

허어. 내가 올리버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말하려 했을 때였다. 어머니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나 가렴, 올리버. 제발.”

“그래, 올리버. 오라버니나 좀 가.”

“유제니, 너도 가렴.”

괜히 끼어들었다가 혼났다. 나는 세 명의 구혼자 중 빨리 한 명을 선택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슬쩍 쳐다보니 올리버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는 무슨 경험을 하고 싶다는 건데?”

어머니의 공격은 다시 나를 향했다. 공격이 아닌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돈을 벌어 보고 싶어요.”

다시 어머니와 올리버의 시선이 부딪쳤다. 어머니가 생각에 잠긴 사이 올리버가 물었다.

“번즈 백작이 개털이래?”

“올리버!”

나와 어머니의 힐난이 쏟아졌다. 나는 사람에게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화를 냈고 어머니는 단어 사용을 제대로 하라고 혼을 내셨다.

개털이 아니라 가난하냐고 말하라는 뜻이다.

“모르지, 번즈 백작이 가난한지. 난 그 사람 재산에는 관심 없으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올리버는 남은 오믈렛을 삼킨 뒤 말했다.

“에이, 우리가 번즈 백작을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가 그 녀석 재산 하나잖아.”

아닌데. 나는 고개를 저었고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올리버가 당황해서 물었다.

“어머니?”

“시끄럽다.”

그렇게 따지면 올리버가 엘리엇보다 나은 게 뭐냐고 묻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게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번즈 백작 때문은 아닐 테고. 그 리즈라는 아이 때문이니?”

“꼭 그 애 때문만은 아니고요.”

직접 돈을 벌어 먹고살고 싶다는 로렌에게 영향을 받은 거냐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으려다 멈칫했다. 자극받은 건 맞으니까 영향받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어닝하고 파혼했을 때요.”

내가 다시 입을 열자 식당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올리버는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고 어머니는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렸다.

나는 최대한 가볍게 말하려 했지만 그리 쉽지는 않았다.

“수도원으로 들어갈 생각도 했거든요.”

“네가 왜 수도원에 가?”

곧바로 올리버의 반박이 튀어나왔다. 짜증 나는 오라버니지만 이럴 때는 고맙다. 나는 올리버를 향해 씩 웃어 보이고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운이 좋다는 건 인정하려고요.”

운이 없었다면, 엘리엇이나 라이언 경이 구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수도원으로 갔거나 평생 올리버와 같이 살아야 했겠지.

으으, 올리버와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니, 너무 끔찍하다.

“그래서 돈을 벌고 싶다고?”

끔찍한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떠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큰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다. 거창하게 사업 같은 걸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누구와 결혼한다고 해도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남편이 일찍 죽을 수도 있고 갑자기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서 재정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은 드물지 않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시퍼 부인도 그랬지.”

기억난다. 갑자기 쓰러진 미스시퍼 경이 사망한 뒤, 부인은 남편의 사업이 적자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들었다. 빚쟁이는 몰려들었고 그녀는 남편의 사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몰랐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긴 했지만, 그녀는 가문 대대로 살던 집을 팔아야 했다.

나는 사람을 부리는 법도 장부를 읽고 쓰는 법도 안다. 하지만 그것과 돈을 버는 건 다른 문제다. 미스시퍼 부인도 장부를 관리했지만, 남편의 사업이 엉망이라는 것은 몰랐으니까 말이지.

“어머니도 그러셨잖아요. 집안일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고요.”

어차피 식사 준비나 청소, 빨래 같은 건 하인이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와 올리버에게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예를 들면 청소를 할 때 비질을 먼저 해야 한다거나 하는 거.

“뭘 모르나 본데, 유제니. 돈을 받겠다는 건 사람들 기대치도 높아진다는 뜻이야.”

오. 나는 반사적으로 손뼉을 치려다 멈칫했다. 올리버가 그런 똑똑한 소리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내면 어머니가 혼내시겠지.

나는 들어 올린 손으로 자연스럽게 깍지를 끼고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응. 그걸 맞추는 것도 경험이 되겠지.”

그게 돈을 번다는 거 아니겠어? 나는 어머니를 쳐다봤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어머니는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 배로 장사를 하겠다는 건데, 번즈 백작이 허락하던?”

그건 이미 허락을 받았다. 그의 배를 이용하는 거다. 당연히 나는 배를 빌리는 값을 내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기물 파손을 할 수도 있고 배를 관리하는 비용도 들 테니까.

“네. 배 이용료를 내려고 했는데 번즈 백작은 동업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엘리엇은 일정 금액을 이용료로 받는 게 아니라 번 금액의 몇 퍼센트를 이용료로 받겠다고 했다. 그래야 계산하기 더 쉬울 거라고.

솔직히 말하면 크게 돈을 벌 거라는 기대를 안 하는 마당에 그건 호의였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차를 몇 번 더 홀짝인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 사업은 어디까지나 번즈 백작이 하는 거야. 너는 그의 사업을 돕는 것뿐이고. 알겠니?”

“네?”

굳이 따지면 그 반대 아닌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올리버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머니 말이 맞아.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뭐?”

무슨 말인지 알겠다. 오, 젠장. 그렇군. 나는 그대로 두 손으로 내 머리를 감쌌다.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에 잠겨서, 로렌을 돕고 나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에게 수영을 배울 기회를 준다는 생각에 빠져서 중요한 걸 잊었다.

사업은 남자의 것이다. 결혼 뒤, 남편의 사업을 돕거나 남편의 사망 뒤 사업을 이어받는 경우는 있어도 나처럼 결혼도 안 한 젊은 여자가 사업을 하는 건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되바라졌다는 거다.

문득, 엘리엇이 이것까지 생각해서 나와 동업하겠다고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신흥 귀족이고 귀족의 예법을 잘 모른다.

모르나? 그는 꿈을 꾼 자다. 폐허나 다름없는 발시안의 왕이 된 내 옆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귀족이라는 거겠지.

“유제니, 번즈 백작을 좀 초대하렴.”

“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놀란 내게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네가 번즈 백작을 고른 거라면 상관없지만, 아니라면 이야기를 좀 해 봐야 하지 않겠니? 그가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아주 잠깐, 나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내가 번즈 백작을 골랐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러니까 내가 엘리엇의 구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그와 동업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그 점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백작 부인께서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압니다.”

그날 오후, 산책을 하다 들른 찻집에서 엘리엇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의 초대를 전달하던 참이었다. 뭐라고? 나는 찻잔을 들어 올리다 말고 그를 쳐다봤다.

엘리엇 역시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나랑 같은 잔인 거 맞지? 나는 내가 들고 있던 것보다 훨씬 작아 보이는 엘리엇의 잔을 보고 다시 내 잔으로 시선을 옮겼다.

“백작 부인께서는 제가 이번 일로 당신과의 결혼이 성사됐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하시는 거 아닙니까?”

허. 이어진 엘리엇의 말에 나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 눈치가 엄청 빠르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 생각 안 하니까.”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고 차를 홀짝였다.

0